• 미국 '핵보유 인정' 비판…노대통령 '적극 대응' 주문
        2006년 09월 16일 03:0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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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미국의 대북 정책을 강도높게 비판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이 요 며칠 새 집중적으로 쏟아낸 일련의 발언들은 일체의 외교적 겉치레를 생략한 채 미국의 대북 정책을 직설적으로 난타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14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창간호와의 특별 인터뷰에서 미국의 대북정책을 중동정책에 비유하면서 "미국의 네오콘은 마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장벽을 치듯 북한을 잘못되고 강경한 길로 몰아붙이고, 중국의 품으로 자꾸 밀어넣으면서 악용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9.19 북미합의를 사실상 교살하고 있는 북한의 위폐 논란에 대해서도 "작년 9월19일 6자회담에서 합의가 된 다음날인가 마카오 은행문제(북한 위폐문제)가 터져 오늘날 6자회담도 완전히 정지상태가 돼버렸다"며 발생 시점에 의혹을 제기했다.

    또 15일 부산대 특별강연에서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 나를 찾아와 ‘1년만 더 대통령의 자리에 있었으면 햇볕정책의 틀 속에서 한반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것이었는데 참으로 아쉽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는 일화를 소개한 뒤 "그 말을 들었을 때 너무 가슴이 아팠다"고 말하기도 했다. 북핵 문제를 둘러싼 한반도 긴장고조의 1차적 책임이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책에 있음을 우회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DJ 정부에서 통일부장관을 지낸 정세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상임공동의장은 14일 흥사단 통일포럼에서 "미국이 관리 가능한 범위내에서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허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미국의 북핵 정책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이 이 같은 발언들을 쏟아내는 배경에는 남북관계 및 한반도 안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위기감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가운데 미일의 대북 경제제재와 북측의 강경대응이 상승작용을 하면서 북한이 ‘핵 실험’을 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가면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환경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된다는 우려감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아직은 북이 핵 실험을 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하지는 않았지만,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위기감이 상당히 눈에 보이고 있다"며 "DJ는 이런 상황에 경종을 울리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북핵 문제 및 남북 관계, 동북아 안보 환경에서 북한의 ‘핵 실험’이 중대한 의미를 띠는 사건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남한에는 총체적인 위기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먼저 북한의 핵 실험은 북핵 문제의 차원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핵은 포기시켜야 할 대상이 아니라 안전하게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전환된다. 북한을 상대로 군사적 옵션을 사용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적어도 군사적인 면에서는 북한 체제의 안전이 보장되는 셈이다. 경제 제재로 인한 북한의 내부적 붕괴 가능성도 거론되지만 중국이 이를 방치할 것으로는 보지 않는 시각이 다수다.

    남북관계의 우위도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는 경제원조를 바탕으로 남한이 페이스를 주도해왔다. 남북관계에서의 우위를 바탕으로 평화통일을 이루겠다는 게 한국 정부의 궁극적인 목표다. 세종연구소 백학순 남북관계연구실장은 "북한이 핵 보유를 통해 체제의 안전성을 보장받게 되면 남북관계에 매달려야 할 유인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된다"며 "남한 주도의 평화통일 전략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북아 안보 환경도 급변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일단 북한의 핵 보유는 일본을 비롯한 동북아 주변국들의 핵무장을 촉진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개연성이 크다. 북한의 핵 보유가 일본의 핵무장을 불러오고, 이것이 또 중국의 핵 전력 강화로 이어지고, 인도와 파키스탄을 거쳐 이란 등 중동지역의 핵 확산으로 번지는 연쇄작용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런 제반의 상황을 고려할 때 북핵 문제와 관련된 한국 정부의 최고의 정책 목표는 북한이 핵을 보유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두 가지 방법론이 있다.

    먼저 주고받기식 타결을 통해 북 스스로 핵 카드를 버리도록 유도하는 클린턴식 접근법이 있다. 이는 성사 일보 직전의 단계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또 북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도록 정치, 경제, 외교적 압박의 강도를 높이는 부시의 방법이 있다. 그러나 부시의 접근법은, 적어도 북핵 저지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미 실패한 정책으로 판명났다는 게 중론이다. 백학순 실장은 "부시 독트린 이후 북한의 플루토늄 보유량이 4배 증가했고, 핵보유 선언이 있었고, 미사일 실험 발사가 있었다"며 "부시 행정부의 북핵 정책 실패는 이미 객관화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기존의 대북 정책을 수정할 의사가 전혀 없어 보인다. 오히려 대북 압박 강도를 한층 높이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기존의 대북 압박책이 먹혀들지 않은 것은 6자회담 참여국들의 공동 압력이 부족해서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이 북핵 문제에 관한 부시 행정부의 진의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갖는 것도 미국의 북핵 정책이 이렇듯 경험의 법칙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강화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즉, 부시 행정부의 궁극적인 의도가 한국 정부와 같이 ‘북한이 핵을 보유하지 않는 것’에 있느냐에 대한 회의라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이 "미국이 북한을 강경한 길로 몰아붙이고 있다"고 말한 것이나,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이 "미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허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고 지적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백학순 실장은 "북한의 핵 보유 선언 이후 북핵 문제에 관한 한미간 이해관계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며 "미국은 사실상의 북핵 허용 정책을 펴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핵 문제에서 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의 엇갈림을 상수로 놓을 경우 한국정부의 적극적인 대북정책의 필요성은 한층 강조된다. 이 점에서 최근 김 전 대통령이 던지고 있는 강력한 메시지는 노무현 대통령을 겨냥한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이 "하루라도 빨리 남북정상회담을 해야 문제가 풀린다"고 지적한 것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노 대통령이 지난 8월 어느 비공식 만찬에서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발언한 것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깔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즉, 한국 정부가 이니셔티브를 쥘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 있는데도 이를 스스로 묵혀놓고는 엉뚱한 얘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라는 것이다.

    백학순 실장은 "현재 상태로는 6자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며 "DJ는 6자회담에서 1/6 지분 이상의 역할을 하라고 한국 정부에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를 위한 지렛대가 ‘남북정상회담’이라는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북한 최고위층과의 대화 채널을 뚫어야 ‘중재’도 가능하다는 논리다. 6자회담에서 중국의 중재 역할이 가능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백 실장은 "6자회담은 향후 동북아다자안보체제의 틀이 될 것이고, 6자회담에서 북핵 문제 해결에 어떤 기여를 했느냐에 따라 국가적 위상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핵 이후’로 이어되는 장기적 국면에서 보더라도 남북정상회담은 중요한 결절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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