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운의 혁명가, 투사 박헌영을 넘어
    [책소개] 『박헌영 평전』(안재성/ 인문서원)
        2020년 02월 01일 01:5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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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자였던 박헌영은 해방 후 남조선노동당을 이끌고 월북하여 김일성 체제의 북한정권 수립과 조선노동당 창건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결국 미제 간첩이라는 죄목으로 처형당하고 만다. 남한에서는 좌파 정당을 이끈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북한에서는 ‘미제국주의 간첩 및 국가 전복 음모’를 이유로 외면당하며 지금까지 객관적인 평가 자체가 철저히 거부되어 왔던 박헌영. 그는 세간의 평처럼 ‘적과 동지를 모두 배반한 반역자’, ‘원칙에만 빠져 현실을 보지 못하는 실패한 혁명가’였을까?

    역사 다큐멘터리 집필에 꾸준히 매달려온 안재성이 2년여의 집필 기간을 거쳐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자들의 독립운동과 해방 후 부르주아민주주의를 꿈꾸었던 남한의 조선공산당의 역사를 박헌영을 통해 꼼꼼히 복원해냈다. 『박헌영 평전』은 비운의 혁명가, 투사 박헌영을 넘어 인간 박헌영을 재조명하는 책이다.

    박헌영의 삶과 정신세계를 통해 되돌아보는 해방 전후 현대사

    1900년 아버지 박현주와 어머니 이학규 사이에서 태어난 박헌영은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1운동을 겪으며 급속히 공산주의에 경도된다. 그는 이 무렵부터 시작해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철두철미한 공산주의 혁명가로 살았다. 일본 생활을 거쳐 다음 해 11월 상하이로 망명한 박헌영은 이르쿠츠크파 공산당에 입당한 후 고려공청 상하이회를 결성해 활동하던 중 1922년 국내로 잠입하다가 체포되고, 이후 10여 년간 수감과 출소를 반복한다. 그 후 경성콤그룹의 지도자가 되어 청주와 서울의 비밀 아지트에 기거하면서 지하운동을 벌였고, 해방 후 월북해 북한의 김일성 체제 확립에 기여한다.

    하지만 30년 세월을 준비했건만, 막상 다가온 해방의 시간은 너무나 빨리 혼란스럽게 흘러갔다. 걷잡을 수 없는 사건의 홍수들이 그를 정신없이 난타했고, 월북 이후의 무기력한 처신은 그의 전 생애를 치욕의 구덩이로 몰아넣고 말았다. 그는 1952년 시작된 대대적인 남로당 숙청 작업 때 ‘미제국주의 고용간첩의 두목’, ‘공화국 전복 기도’ 혐의로 기소되었고, 그를 살리려는 중국의 마오쩌둥과 소련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1956년 7월 김일성의 지시하에 평양 교외에서 권총으로 살해된다.

    지금까지 수집된 자료와 증언으로 보건대, 박헌영을 역사에 길이 남을 위인이라거나 불세출의 영웅이라 찬양하기는 어렵다. 그는 공산주의 이론에는 탁월했지만, 선동력과 포용력 등 대중정치가로서 필요한 정치적 수완은 거의 갖추지 못한 사람이었다. 근본 성품은 온후하고 지성적이었지만, 정치적 입장은 다분히 교조주의적이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표범처럼 단단한 인상에 좀처럼 웃지 않는 과묵하고 비밀주의적인 성향은 지하운동의 지도자에게는 적합했을지라도 공개 정당의 지도자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결코 미국의 간첩 노릇을 했거나 비겁자인 적은 없었다. 그는 식민지 후반기 내내 국제공산당으로부터 조선공산당 조직의 최고책임자로 임명되어 있던 사람이었다.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이 해방되자마자 그를 최고지도자로 옹립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원칙적이고 교조적인 성향이 ‘결과적으로’ 적을 이롭게 했다고 공박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면모가 없었다면 애초에 공산당 지도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그의 한계요, 시대의 한계였다.

    혁명은 그를 배신했고 몽상은 깨졌지만, 적과 동지가 모두 그를 반역자라고 부르게 되었지만, 한국전쟁을 일으킨 전범의 한 명인 것도 부인할 수 없지만, 적어도 식민지시대의 그는 온몸을 던져 제국주의와 맞서 싸운 애국자였다. 해방 후에는 이승만 파시즘에 맞서 민중이 주인 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만들어보려고 애쓴 민주주의자였다. 그 측면만으로도 그의 일생을 되살려보는 의미는 충분하리라.

    우리가 모르는 그의 진짜 모습, 인간 박헌영을 만나다!

    저자 안재성은 구술자료와 인터뷰 등을 통해 박헌영의 삶과 정신세계를 꼼꼼하게 복원해냈고, 그를 통해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정치가로서의 면모와 함께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생활인으로서의 인간적인 면모도 생생하게 담아냈다.

    3?1운동 당시 함께 활동했던 사람들로부터 “그때 그의 나이가 열아홉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를 종종 선생님이라 불렀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젊은 시절부터 그의 열정과 지도력은 탁월했고, 그는 ‘당은 무오류’라는 원칙 아래, 소련공산당 혹은 코민테른의 결정이라면 무조건 복종하며 죽는 그날까지 단 한 마디조차 공산주의에 대해 회의하는 말은 남기지 않았다. 정치가로서의 박헌영은 이처럼 지나치리만큼 원칙적이고 교조주의적인 성향에 최측근에게조차도 자신의 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탓에 끊임없이 공박당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후배들을 위해 직접 밥을 짓고 된장국을 끓여 밥상을 차려내거나, 가벼운 농담을 하며 특유의 수줍은 듯 엷은 미소를 지어 보이기도 하는 사람이었다.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지내는 딸 비비안나에게 보낸 편지에는 아버지로서의 절절한 부성애가 드러나고, 세 번째 부인 윤레나와 행복한 한때를 보내는 모습에서는 고단한 일상을 잊게 하는 작은 행복이 엿보이기도 한다. 박헌영과 가족, 주변 인물들의 모습과, 박헌영의 활동을 담은 화보는 그의 인생 역정과 현대사의 주요 장면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인간 박헌영을 만나게 된다. 그가 진정 꿈꾸던 세상은 어떤 것이었으며, 그의 일생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생하게 읽어낼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은폐되고 왜곡된 역사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복원해냄으로써 여전히 우리 사회의 검은 유령으로 떠돌고 있는 좌우 이념 대립의 사슬을 끊어내는 데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일생을 보면 해방 전후 현대사의 중요 장면들, 더불어 한민족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보인다. 박헌영이라는 인물에 다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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