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공포 연계,
    입국금지 등 중국인 혐오담론 우려
    “혐오 통해 두려움 대한 심리적 안정 얻으려는 것”
        2020년 01월 28일 06:4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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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에 대한 공포가 중국과 중국인 혐오로 이어지고 있다. 감염병이 단지 중국 우한에서 시작했다는 이유에서다. 청와대 국민청원엔 중국인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는 게시글이 올라오는 한편, 일부 노동조합에선 중국인 밀집지역에서의 근무를 금지해달라는 요청까지 해 논란이 예상된다.

    지난 23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중국인 입국 금지 요청’이라는 제목의 글은 28일 오후 기준 53만여 명이 참여했고, 해당 청원 글에 동의하는 수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에 관한 기사가 쏟아지는 가운데, 포털사이트의 관련 기사엔 중국을 비하하는 ‘짱깨’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댓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일부 커뮤니티 사이트도 마찬가지다. “중국에만 있지 다른 나라에 가서 바이러스를 퍼뜨려 다른 외국인까지 감염 시키냐”, “짱깨가 있는 곳을 피해야 한다”, “중국 조선족이 운영하는 식당과 술집은 가지 말라” 등이다. “중국인 추방”, “더러운 중국인들 손때 묻은 제품 전부 돌려보내야 한다”는 식의 한국에 거주하거나 관광 중인 중국인을 모두 추방해야 한다는 댓글이나 게시글도 적지 않다.

    심지어 우리 정부가 의료물품이 부족한 중국에 마스크 200만개 등 의료구호 물품을 지원하기로 한 것에 대해서도 “우리 쓸 것도 모자라는데 왜 퍼다주냐” 등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댓글도 쉽게 눈에 띈다. 우리 정부가 WHO(세계보건기구) 권고에 따라 질병의 명칭을 ‘우한 폐렴’이 아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으로 사용하는 것을 두고도 “중국 눈치 보기”라는 근거 없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일부 커뮤니티 사이트에선 일본과의 수출분쟁이 벌어졌던 당시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사용했던 ‘노 재팬(No Japan)’ 포스터와 똑같은 ‘노 차이나’ 포스터도 공유되고 있다. 이 포스터엔 ‘죽기 싫습니다’, ‘받기 싫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중국인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중국인에 대한 혐오조장은 일부 노동조합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조 배민라이더스지회에선 28일 오전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에 “안전마스크 지급”, “확진자가 발생한 지역 및 중국인 밀집지역 배달금지 또는 위험수당 지급”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배달노동의 특성상 불특정 다수와 접촉한다는 위험이 있긴 하지만 ‘중국인 밀집지역 배달금지’는 노조가 중국인에 대한 혐오 조장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홍창의 서비스일반노조 사무국장은 <레디앙>과 통화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감염의 위험도 있고 전파의 가능성도 높다. 조심하자는 차원으로 공문을 보낸 것”이라며 “당연히 노동조합이 혐오를 조장하려고 공문을 보낸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반면 이영주 라이더유니온 정책국장은 “마스크를 지급하거나 라이더들의 안전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엔 동의하지만 인종, 국적 등을 이유로 중국인 밀집지역에 위험수당을 지급하거나 배달금지를 요구하는 건 맞지 않다”고 말했다.

    우아한형제들도 이날 공문을 통해 “배달금지 지역 설정 및 위험수당 지급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손소독제와 마스크를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서비스연맹은 문제가 불거지자 이날 저녁 “공문 내용 중 매우 부적절한 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이 있었다”며 “가맹조직의 혐오 표현에 대해 당 연맹은 중대한 책임감을 느끼며, 상처 입은 분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냈다.

    중국과 중국인뿐 아니라 확진환자에 대한 혐오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포털사이트 뉴스 댓글엔 ‘왜 여러 사람과 접촉해서 피해를 주나. 전염병을 퍼뜨린 자는 국가 차원에서 벌을 줘야 한다’, ‘고의로 감염시키는 악성 감염자는 살인미수죄로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 등 확진환자를 비난하는 댓글이 많이 달려 있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사태 때도 감염자 개인의 부주의에 비난이 폭주해 논란이 일었는데, 그때와 같은 상황인 셈이다.

    질병에 대한 공포가 혐오로 번지는 이 같은 행태에 대해 도처에 깔린 일상적 공포의 원인을 특정 집단에 돌리려는 혐오 문화에 익숙해진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감염병이라는 직접적인 공포에 대한 근본원인을 고민하고 논의하는 등 이성적인 판단은 뒤로 한 채 특정인에 대한 혐오로 심리적 안정감을 찾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서영표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누군가에게 적대를 표현해 자신이 가진 두려움에 대한 심리적 안정감을 얻으려는 것”이라면서도 “(감염병으로 불거진 혐오 문제는) 단순히 하나의 사건이라기보다 우리가 직면한 문화적 양태 등 여러 가지가 토대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감염병이 발생할 때만 이러한 문화가 있는 것은 아니라 성소수자, 여성, 외국인 노동자, 난민 등에 대한 문제가 나올 때마다 온라인 등 가상공간에서 이러한 혐오 담론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공장식 닭, 소의 집단적 유통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인간이 만든 인위적 위험이다. 한국에서도 감염병이 발생할 수 있다”며 “혐오의 감정은 이러한 감염병이 가진 문제 지점에 대해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일부 전문가와 언론 등이 공포와 혐오를 재생산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특히 확진환자 등에 대해 비난에 대해선 감염병이라는 위험에서 정부가 개인을 보호할 것이라는 신뢰가 붕괴된 것을 원인으로 꼽았다.

    서 교수는 “차에 치이고, 가스가 폭발하는 등 일상이 위험이다. 국가가 그 위험에서 국민을 보호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지만 실제론 별로 기대를 하지 않는다”며 “이 때문에 (위험에 노출됐을 때) 사회에 대해 책임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결국은 개인에게 책임을 돌린다. 위험을 방어하기 위해 돈을 많이 벌어서 좋은 차를 사고 비싼 보험을 들어서 나를 방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문제는 사회에서 오지만 비난은 개인이 받아야 하고 그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선 개인이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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