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벌 범죄의 반복,
    3·5법칙 솜방망이 처벌 탓
    「삼성공화국으로의 회귀」 간담회
        2020년 01월 22일 11:23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을 맡은 재판부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적 운영 상황에 따라 양형을 조정하겠다고 한 것을 둘러싸고 법조계 안팎으로 비판이 쏟아진다. 재벌총수에 대한 한국 법원의 관대한 처벌이 재벌 범죄가 반복되는 근본 원인이라며, 기업 내 준법감시제도 설치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김종보 변호사는 22일 오후 서울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긴급 간담회에서 “이재용 부회장 파기환송심 사건은 그 자체로 국정농단 사건이며 권력형 범죄다. 권력형 범죄자는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 ‘응징’의 대상”이라며 “재판부는 이토록 자명한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종보 변호사는 “재벌총수들이 무서움 없이 뇌물죄나 횡령·배임죄를 저지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사법부가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의 3.5법칙을 지속적으로 적용해 솜방망이 처벌을 했기 때문”이라며 “사법부의 이러한 판결 경향은 권력형 범죄를 용인하는 사회적 풍토를 조성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 이재용 부회장 사건 재판부가 이를 반복하지 않을지 심각하게 우려된다”며 “재판부는 사법부의 과오를 기업 내 준법감시제도로 덮으려 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간담회는 ‘삼성공화국으로의 회귀: 재판부와 검찰인사는 어떻게 이재용을 구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 경제개혁연대, 민변, 참여연대가 공동주최했다.

    준법감시위 설치를 전제로 이 부회장의 양형을 조정하는 것은 미국 연방 양형기준에도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지난해 10월 첫 공판기일에서 “삼성그룹 내부에 실효적이 준법감시제도가 작동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이 사건과 같은 범죄는 재발할 수 있다. 이와 관하여는 미국 연방양형기준 제8장과 그에 따른 미국 대기업들이 시행하는 실효적인 감시제도를 참고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다만 삼성의 준법감시위 설치 여부가 재판 결과에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4회 공판기일에 준법감시위가 실효적으로 운영된다면 양형 조건으로 고려될 수 있다며 입장을 바꿨다.

    사진=참여연대

    “재판부, 이재용 부회장에게 집행유예 선고하겠다고 작정했다는 의심 사기에 충분”

    미국 연방 양형 기준 8장에 따르면, 범행 당시 준법제도를 운영하는 등 내부통제 시스템을 잘 갖췄을 경우 기업의 형량을 깎아준다. 범죄를 저지른 후 관대한 처벌을 받기 위해, 사후적으로 준법제도를 도입한다고 해서 양형을 조정해주진 않는다는 뜻이다. 더욱이 “재판부가 거론한 미국 연방 양형기준은 회사에 대한 양형기준이지 임원 개인에 대한 양형기준이 아니”라는 것이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 사후적 도입 문제 등을 모두 배제하더라도 총수 개인인 이 부회장에겐 적용될 수 없는 셈이다.

    그는 “범죄를 저지른 임원은 회사에서 퇴출되어야지 퇴출된 임원이 회사에 준법감시제도를 도입할 수는 없다”며 “현 상황에서 재판부가 제8장을 거론하며 준법감시제도 도입을 요구하는 것은 이미 이재용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겠다고 작정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고 비판했다.

    재판부가 한국 대법원의 양형기준이 있음에도 미국 연방 양형기준을 끄집어낸 것 역시 의문점이다. 대법원의 양형기준에 따르면 법원이 인정한 이재용 부회장의 업무상횡령금액인 약 86억원에 합당한 선고형은 4~7년이다. 이 밖에 범죄를 통한 지배권 강화, 증거은폐 시도 등을 종합하면 형량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최한수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대법원 양형기준으로는 집행유예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최 교수는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처럼 사회적으로 주목 받는 사건의 경우 우리 대법원의 양형기준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그럼에도 대법원의 양형기준을 배척하고 미국의 양형기준을 강조하는 태도는 사실상 재판부가 이재용을 풀어주기로 결정하고 이를 위한 명분을 찾는 태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재판부 주장처럼 이재용 부회장 재판에서 미국 연방 양형규정을 선별적이 아니라, 모두 적용해 예상형량을 계산하면 이 부회장은 최소 5년 10개월~9년까지의 실형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준법감시위 설치가 재벌범죄를 억제하는 데에 그 효과가 미미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최 교수는 “재판부가 내부통제장치의 역할을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특히 기업범죄가 주로 CEO의 보수와 관련된 미국과 달리 재벌 총수의 그룹지배권 승계와 유지를 위한 범죄가 대다수인 우리나라에서, 준법감시위원회는 지배주주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권한과 책임도 불분명해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 법원의 재벌 총수일가에 대한 관대한 처벌이 재벌범죄가 반복되는 근본 원인”이라며 “재판부가 언급한 이른바 ‘치유적 사법’은 최근 미국의 형사사법시스템에서도 주된 철학이라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