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호르무즈해협 독자 파병
    야당 "국회 동의 필요" 시민사회 "반대"
    이인영 "청해부대의 작전 변경 확대, 지혜로운 선택"
        2020년 01월 22일 11: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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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미국과 이란 사이에 갈등이 높아지고 있는 호르무즈 해협에 ‘독자 파병’을 결정했다. 소말리아 아덴만에서 활동하는 청해부대의 작전반경을 호르무즈 해협까지 넓히는 방식이다. 미국 주도의 ‘호르무즈 호위 연합체’인 국제해양안보구상(IMSC)에는 참여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활동할 계획이다.

    정부는 작전반경의 확대라고 그 의미를 축소하지만 사실상 미국 요구에 따라 우리 부대를 분쟁지역에 파병하는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일부 야당은 국회의 파병 동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하는 한편,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의 일방적인 파병 결정에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청해부대 모습(방송화면 캡처)

    국방부는 21일 “현 중동 정세를 감안해 국민의 안전과 선박의 자유 항행 보장을 위해 청해부대 파견 지역을 한시적으로 확대하기로 결정했다”며 “아덴만 일대에서 오만만, 아라비아만(페르시아만) 일대까지 범위가 확대되며, 우리 군 지휘 아래 우리 국민과 선박 보호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청해부대 작전 지역은 기존 아덴만 일대(약 1130㎞)에서 오만만, 호르무즈해협, 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 일대까지(약 3960㎞) 약 3.5배 확대된다.

    국방부는 중동 지역 교민 안전 보호와 안정적 원유 수급, 호르무즈해협을 통항하는 우리 선박 보호 등을 고려해 독자 파병을 결정했다. 그러면서 “유사시 상황에 대비해 우리군의 신속한 대응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으로 인한 중동지역 긴장이 고조되는 현 상황을 ‘유사시’로 판단한 것이다.

    청해부대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해양안보구상엔 참여하지 않고 한국군의 지휘에 따른다. 다만 필요에 따라 국제해양안보구상와 협력할 예정이다. 정보 공유 등 제반 협조를 위해 청해부대 소속 장교 2명을 ‘연락장교’로 국제해양안보구상 본부에 파견할 계획이다. 우리 선박을 독자적으로 보호할 수 없을 때 IMSC에 도움을 청하겠다는 뜻이라고 국방부는 설명했다.

    정부는 사전에 파병 결정을 이란에 설명했고, 이란은 파병에 반대한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은 외국군의 호르무즈해협 주둔을 반대해왔고, 청해부대가 국제해양안보구상 활동에 개입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이란과의 관계 악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민주당 “작전범위 확대”…야당들, 국회 동의 필요

    국회에선 국회의 파병 동의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작전 범위 확대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지만, 야당은 사실상 미국의 요구에 따라 우리 군부대 파병이기 때문에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2일 오전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지난 연말에 통과시켰던 파병 비준 동의안에 ‘유사시에 우리 국민에 대한 보호 활동을 목적으로 할 경우에 국회 동의 없이 작전 변경의 확대가 가능하다’는 해석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엄밀하게 표현하면 파병의 문제가 아니고, 청해부대의 작전 변경을 확대하는 것”이라며 “(호르무즈 독자파병은) 청해부대 파병의 본래의 목적에서 크게 이탈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독자파병 결정에 대해선 “호르무즈해협을 지나가는 선박 상선과 우리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이 요구되고 있고, 미국의 파병 요구가 있지만 (독자파병이라는 절충안으로) 이란과의 외교적 갈등을 첨예하게 만들지 않는, 지혜로운 선택이었다”고 평가했다.

    반면 파병에 대한 찬반 입장과는 별개로 야당은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김종대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오전 국회 브리핑에서 “이번 파견지역 확대의 본질은 군사적 목표의 변경으로, 새로운 파병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며 “새로운 파병을 국회 동의도 없이, ‘파견지역 확대’라는 애매하고 부정확한 절차를 통해 감행하는 정부의 행태는 매우 위험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런 결정은 그간 정부가 유지한 신중한 입장과도 위배된다. 배후에 어떤 압력이 있는지는 몰라도 이런 식으로 무분별하게 작전범위를 확대하는 것에 대해 정의당은 유감을 표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김 수석대변인은 호르무즈 파병은 국회 동의 사항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청해부대 파병은 국회의 비준권을 보장하는 헌법 60조를 위반하는 것“이라며 ”정의당은 국익과 안전을 위협하는 파병에는 단호하게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박주현 민주평화당 수석대변인은 전날 논평을 내고 “청해부대는 한국 선박들을 해적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아덴만에 파견된 부대다. 이 부대의 목적이 변경된 것인 만큼 국회에서 반드시 동의 절차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평화당 또한 호르무즈 파병에 대해 “미국이 이란을 상대로 벌이는 명분 없는 전쟁에 참전하는 일”이자 “미국의 편을 들기 위해 이란의 적국으로 참전하는 것”이라고 규정하며, 파병에 단호히 반대했다.

    호르무즈 파병을 찬성해온 자유한국당도 국회 동의 절차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성원 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에서 “청해부대의 작전 지역을 일부 확대하는 형식으로 호르무즈 해협 파병결정이 발표됐다”며 “다만 파병 결정과정에서 제1야당이 철저히 배제된 점은 유감이며, ‘파견지역·임무·기간·예산 변동 시 국회 비준동의 절차’에 따른 국회동의절차에 대한 부분도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시민사회 “호르무즈해협 파병 반대”

    시민사회계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반전 단체를 비롯해 89개의 각계 시민사회단체는 이날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군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규탄한다”며 파병 결정 철회를 정부에 요구했다.

    이 단체들은 “지금 호르무즈 해협은 매우 불안정하고 많은 위험이 도사린 곳이다. 한국군이 이곳으로 파병된다면, 그 위기의 한복판에 휘말리게 될 것”이라며 “특히 이번 파병 결정은 국회 동의 절차를 생략한, 즉 헌법에 명시된 국회 동의권마저도 무시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끊이지 않는 분쟁 속에서 중동 민중이 받는 고통과 희생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 정부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될 것”이라며 “한국군 파병이 미국의 군사 부담을 덜어 주고, 미국의 공세를 정당화하는 데도 이바지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 지역이 불안정해지고 위험이 커진 일차적 책임은 미국 트럼프 정부에 있다”면서 “(미국 요청에 따른) 한국군 파병은 그 지역 안전에 이바지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지역 위험과 불안정 고조에 기여할 뿐”이라고 했다.

    이들은 “미국과 이란 사이에 정면충돌 위기는 당장에는 피한 듯하지만, 언제든 위험천만한 상황이 불거질 수 있다. 거기에 청해부대가 휘말릴 수 있으며, 파병 군인과 현지 교민들의 안전도 더 취약해질 것”이라며 “따라서 그 어떤 이유에서든 한국군 파병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 파병 결정을 즉각 철회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평화를 염원하는 대중과 함께 끝까지 정부의 파병에 반대하는 항의를 지속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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