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젤란 항해와 '똥' 그리고 오리엔탈리즘
        2006년 08월 28일 09: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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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사람들이 신세계를 찾아 온 세계를 떠돌고 다닐 때 그들은 목숨을 건 위험한 여행을 감내해야 했다. 실제로 그들은 장기간의 세계를 여행하고 오면 많은 동료들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야 했다.

    세계를 한바퀴 도는 데 성공한 마젤란의 동료들도 떠날 때는 몇 백명이었지만 살아 돌아온 숫자는 불과 몇 십명에 불과했다. 그들의 여행은 왜 위험했을까? 동력선이 아니어서 태풍이나 폭풍을 만나면 위험을 그대로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었을까?

    놀랍게도 그들의 귀한 목숨을 앗아간 주범은 똥이었다. 그들의 배에는 변변한 화장실 하나 없어 배 안의 위생상태가 극도로 좋지 않아 전염병이 빈번히 발생했다. 화장실이라고 해봐야 갑판 끝에 구멍 하나 뚫어놓았다든가, 침대 옆에 놓아둔 개인용 요강이 전부였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갑판 끝 구멍 화장실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아 개인 요강을 사용했는데, 걸어가다 요강을 찬다든가 파도에 배가 요동을 치면 요강은 엎질러지기 일쑤였다. 어떤 사람은 갑판 위에서 엉덩이를 내밀고 똥을 싸다 그만 균형을 잃어 바다에 빠져 죽기도 했다.

    육식을 주식으로 했던 그들은 장거리 배 여행을 할 때 가축을 배 안에 태웠다. 일반 선원들은 그 가축들과 바로 옆에서 자야했다. 가축들의 똥오줌 냄새를 맡아가며….

    호주의 금광개발로 이민이 성행하던 1852년 충격적인 보고가 있었다. 42척의 배에 1만5천477명이 영국을 떠나 멜버른으로 향했는데 그 중 849명이 성홍열, 발진티푸스, 홍역, 설사 등으로 죽었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었다.

    140일간의 호주를 향한 여행 끝에 도착한 배는 그야말로 화장실이나 다름없었다는 타이콘데로호의 얘기는 황당하기 그지 없다. 옷장에는 오물 투성이에다 구더기가 우글거렸고, 침대에는 물이 스며 세균이 번식하고 있었으며 통이란 통에는 사람들의 인분이 가득차 있었고 소변이 가득한 병들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18세기 태평양을 여행 중이던 게으르크 포스터란 사람의 배도 마찬가지로 갑판 위에는 온통 분뇨로 뒤덮였다. 그런 그들이 어느날 남태평양의 천국 타히티와 마르케사스 섬에 도착해서는 “목욕도 자주 하지 않고, 길가에 방뇨를 하지 않나 배설물을 땅에 묻지 않나 참으로 불결하고 무례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이라니!”라고 했단다.

    그야말로 똥 묻는 개가 겨 묻은 개를 흉보는 꼴이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동양을 낮춰보는 서양인들의 태도, 곧 오리엔탈리즘의 허구와 위선이 여기에서 한껏 드러난다.

    유럽인들의 똥 얘기를 하나만 더 하고 넘어가자. 아무래도 배의 얘기는 대표적인 사례로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서다.

       
    ▲ 고대 로마시대의 공중화장실
     

    유럽 사람들을 멸종의 위기까지 몰아갔던 페스트 균의 창궐도 그들의 아주 불결한 똥과 뒷간 문화에 인한 것이었다. 로마의 전통을 이어받아 그들의 주택은 5층 가까이 되는 고층들이었는데 화장실은 1층의 공동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고층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요강을 쓸 수밖에 없었는데 똥오줌으로 가득찬 요강을 처치하는 것은 여간 골치가 아니었다.

    그들은 불가피하게 창문 넘어 길거리에다 요강의 내용물을 투척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유럽의 길거리는 더럽혀져 갔다. 어느 왕의 세자는 똥오줌에 뒤범벅이 된 길거리를 말 타고 가다 미끄러져 다치는 바람에 국가 차원에서 길거리에 대리석 보도블럭을 까는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이기도 했다.

    프랑스의 위대한 군주 루이 14세의 얘기를 들으면 더욱 기가 막히다. 그가 만든 베르사이유 궁전엔 민망하게도 화장실이 없었다. 여건이 되는 사람은 요강을 장만해서 휴대해 가야했으며 그마저 없는 사람은 군주를 기다리는 동안 복도의 커튼 뒤에다 몰래 실례를 해야 했고 여자들 같은 경우는 펑퍼짐한 치마로 가려 선채 몰래 일을 보아야 했다. 그러다보니 임금을 기다리는 복도는 찌린내로 진동을 했다.

    루이 14세는 요강 위에 앉아 친족과 귀족들을 맞았다. 루이 14세에게 베르사유 궁전이란 군주의 신성불가침한 절대권력을 장엄하게 표현하는 자신의 무대였으며 왕의 배설욕구조차 그런 표현의 일부로 삼은 것이다. 변비가 심해지면 알현하던 사람이 옆에서 관장을 도왔고, 왕 근처에 머무는 특권을 얻기 위해 어떤 희생도 마다 않던 귀족들은 왕의 밑을 닦아주기도 하고 심지어 왕의 요강을 관리하는 특권을 얻으려고 별의 별 노력을 다했다.

    유럽인들이 지금의 수세식 화장실을 보편적으로 사용한 것은 그리 얼마되지 않은 일이다. 19세기 말에 와서야 수세식이 보급되기 시작했고 20세기에 들어와서도 부유한 사람들이나 수세식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보통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뒷간 문화로 자리잡은 것은 20세기 후반에 와서였다. 1973년 프랑스에서 70퍼센트의 사람들이 화장실을 집안에 설치해놓았고 65퍼센트의 사람들이 욕조와 샤워시설을 갖춘 화장실을 소유했다.

    그러나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하는 유럽인들은 여전히 문명화된 사람들이고 재래식 뒷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미개한 사람들로 보아야 할까? 다음 글에서는 이에 대해 따져보는 것으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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