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륭전자, 국제노동계 진상조사단 문전박대
    By tathata
        2006년 08월 26일 11: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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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륭전자는 국제노동계 진상조사단을 문전박대했다. 국제노동계 진상조사단은 기륭전자의 노사상황을 듣고 국제금속노련의 서한을 전달하고자 면담을 요청하였으나, 기륭전자는 철문을 굳게 닫은 채 이들을 만나지 않았다. 

    국제노동계 진상조사단은 26일 오후 구로구 가리봉동에 있는 기륭전자를 찾았다. 지난 24일부터 ‘한국 노동탄압 및 ILO권고 이행여부’를 조사하는 국제노동계 진상조사단은 공무원노조 사무실을 폐쇄한 경기도청과 파업으로 조합원 26명이 구속된 대구경북건설노조에 이어 이날 기륭전자분회를 방문했다.

    이날 진상조사에는 안나 비욘디 ILO 노동자그룹 사무국장, 론 블룸 국제금속노련(IMF) 제네바 본부 자동차분과 담당자, 칸디아 수리마니암 국제자유노련 기획총무 책임자 등 10여명이 참석했다.

    ‘외국손님’ 온다는 소식에 조합원 30여명 모여

    오랜 투쟁으로 인해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은 지쳐있었지만, ‘외국 손님’이 온다는 소식에 30여명의 조합원이 모여 손님을 맞았다. 이날은 김소연 분회장의 ‘정리해고 철회 · 정규직화’를 위한 목숨을 건 단식농성 3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김 분회장이 먼저 1년이 넘도록 계속돼온 노조의 투쟁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지난해 7월에 기륭전자에 파견된 노동자들이 연대해 노조를 결성했다. 다음 달인 8월에 노동부가 기륭전자에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지만, 기륭전자는 정규직화는커녕 조합원 80여명을 해고했다. 노조가 해고중단과 성실교섭, 정규직화 등을 요구하며 55일간 파업을 벌였지만, 정부는 공권력을 투입했으며 조합원 2명이 구속됐다.

    사측도 용역깡패를 동원해 조합원들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가했고, 노조에 54억원이라는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그러나 우리의 투쟁은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가 아직까지도 투쟁을 멈추지 않는 것은 설사 다른 회사에 취업한다 하더라도 비정규 파견직으로 일해야 하는 현실이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땅의 고통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더 이상 나오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에서 단식 투쟁을 시작했다.”

       
    국제노동계 진상조사단이 기륭전자분회의 상황을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듣고 있다. 
     
       
     ▲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은 국제노동계 진상조사단의 방문을 환영했다.

    김 분회장의 말에 진상조사단은 매우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ILO가 취할 수 있는 조처와 대응방안 등을 제시했다. 또 김 분회장의 단식에 우려를 표했다. 안나 비욘디 ILO 노동자그룹 사무국장은 “기륭전자분회의 싸움 또한 노동자들의 권리를 향상시키기 위해 하는 것인데, 오히려 단식으로 건강이 크게 해치지 않을까 염려된다”며 단식투쟁을 중단할 것을 호소했다.

    발란 나이르 국제건설목공노련(BWI) 아태지역 사무총장은 “한국에는 노사간에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될 때 이를 조정하고 중재할 사회적 기구가 없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우병국 금속연맹 부위원장은 “노동위원회가 있기는 하지만 매우 형식적인 절차만을 진행할 뿐이며, 노조가 신뢰할만한 기관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기륭전자에게 국제적 망신을 주어야 한다"

    진상조사단은 기륭전자가 위성라디오를 생산하는 업체로, 미국의 유명 위성라디오 업체인 시리우스사(社)에 단말기를 수출한다는 사실에 관심을 보이며, 미국노총과 연대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해보자고 제안했다.

    론 블룸 국제금속노련(IMF) 제네바 본부 자동차분과 담당자는 “미국노총과 국제금속노련,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가 연결망을 형성해서, 미국 소비자들이 시리우스사로부터 구매하는 위성라디오가 사실은 노동착취와 저임금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알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기륭전자의 제품을 구매하는 미국 기업에도 이같은 사실을 알려 기륭전자가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나 비욘디 사무국장은 “민주노총은 오늘 오전 기륭전자를 포함한 장기투쟁사업장의 문제를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에 제소했다”며 “ILO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진상조사단의 이같은 말에 조합원들은 오랜 가뭄 끝에 소나기를 맞은 듯 화색이 도는 웃음을 보이며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마침 이때 소나기가 내려 천막 농성장에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어 국제금속노련은 기륭전자에 항의의 뜻을 담은 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회사의 문을 두드렸다. 기륭전자 공장의 굴뚝 위에는 두 대의 CCTV가 설치되어 농성장의 상황을 감시하고 있었다. 이를 본 진상조사단의 한 관계자는 “제2의 군대(second military)"라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기륭전자의 철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철문의 틈새마저 합판으로 가려 외부에서는 공장 안을 결코 볼 수 없도록 철저히 차단시켰다. 진상조사단은 문을 두드리며 “우리는 ILO에서 왔으며, 사회적 대화를 통해 기륭전자의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라는 취지에서 관계자들을 면담하고 싶다”고 거듭 말했다.

       
     ▲ 기륭전자가 철문을 굳게 닫은 채 외면하자, 국제노동계 진상조사단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진상조사단 빗속 30분동안 면담 요청…기륭전자 끝까지 거부

    하지만 문 저편에서 들려오는 말은 어이없게도 용역깡패의 “단식한다고 하더니 3끼 다 먹더라”는 비아냥 섞인 목소리였다. 진상조사단은 “제발 문을 열어달라”며 신분증을 작은 문 사이로 밀어 넣었지만, 기륭전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진상조사단은 빗속에서 30여분을 기다린 끝에 면담을 포기하고, 문 앞에서 항의서한을 읽는 것으로 이날 진상조사 활동을 마쳤다.

    존 블륨 국제금속노련 관계자는 “기륭전자분회의 투쟁은 한국의 800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며 “이 싸움은 다른 사업장에도 영향을 미치므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회적 대화를 통해 회사를 교섭 테이블로 나오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국제금속노련과 ILO가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진상조사단은 굳은 침묵을 지키며 차창 밖 풍경을 응시했다. 그들에게 한국은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궁금했다. 민주노총은 국제노동계 진상조사단에게 ‘노조탄압 종합세트’를 제시하며 국제적인 연대를 호소하고 있지만, 진상조사단 또한 문전박대를 당하는 등 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은 현실에 안타까운 표정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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