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에
    댓글조작 등 치밀한 작전?
    단 하루에 댓글 1073개···대형이슈 공직선거법은 열흘에 댓글 1600개
        2020년 01월 14일 07:38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노동자·시민의 생명과 안전, 알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제기된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이 찬성표를 던진 의원조차 그 내용을 알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난 데이어, 노동자·시민의 알권리 확대를 위한 관련 법안들에 대한 댓글 조작 의혹까지 나왔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의 임자운 법률사무소 ‘지담’ 변호사는 14일 오후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산업기술보호와 알권리에 관한 토론회에서 이 같은 의혹을 제기했다.

    이날 토론회는 개정된 산업기술보호법의 의미와 문제점을 짚는 것으로 중심으로 진행됐으며 더불어민주당 우원식·신창현 의원,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공동주최했다.

    댓글 조작 의혹은 강병원 민주당 의원이 2016년 11월 10일 대표발의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에서 시작된다. 이 개정안은 노동자들이 일터의 작업환경에 관한 각종 안전보건 자료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강병원 의원은 개정안 제안 이유에서 “2014년 산업안전보건공단이 159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물질안전보건자료의 내용 중 상당부분이 영업 비밀을 이유로 공개되지 않고 있어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근로자들은 자신의 안전보건과 즉결되는 정보에서 소외되고 있다”며 “이에 물질안전보건 자료를 작성하는 자가 일부 내용을 영업비밀을 이유로 기재하지 않으려 할 때에는 위 정보공개 심의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치도록 해 화학물질의 성분 등에 대한 정보가 현장 근로자들에게 조차 은폐되는 상황을 신속히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삼성을 비롯한 일부 기업들은 현장 노동자가 질병에 걸려 사망하는 등의 사고가 벌어져도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유해물질을 공개하기를 거부해왔다. 이 개정안은 노동자·시민의 건강권과 관련된 위험 화학물질 등의 내용이 담긴 ‘안전보건 진단 보고서’, ‘작업환경 보고서’ 등에 노동자가 자유롭게 접근해 기업의 유해물질 사용으로 인한 문제를 예방해야 한다는 취지가 담겨 있다. 노동·시민사회계에선 이 개정안을 ‘노동자 알권리법’이라고 지칭했다.

    사진=정보공개센터 페이스북

    단 하루 만에 반대 댓글 1073개
    핫이슈였던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열흘 걸려 댓글 1600개

    문제는 이 법이 발의된 후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달린 댓글의 규모다. 1,073개의 반대 댓글이 달렸는데, 모두 11월 28일 하루 동안 작성됐다. 모든 댓글이 단 하루 만에 작성됐다는 점도 그렇지만 여야 간 쟁점이 없는 개정안에 이렇게 많은 댓글이 작성되는 경우도 이례적이다. 실제로 20대 국회를 휩쓴 공직선거법 개정안(심상정 정의당 의원 대표발의)의 사례를 보면, 4월 24일부터 5월 3일까지 1,612개의 댓글이 게시됐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정치권의 모든 이슈를 집어삼켰다는 점을 감안하면 산안법 개정안에 1천개가 넘는 댓글이 단 하루 만에 게시된 건 쉽게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임 변호사는 “의심의 여지없이 조작된 여론이었다”며 “이 법안은 2018년 12월 극적으로 통과된 산안법 개정안에 ‘영업비밀 비공개 심사’ 제도 정도만 일부 반영되었을 뿐 나머지 내용들은 모두 폐기됐다”고 짚었다.

    국회를 통과한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은 어땠을까. 자유한국당 윤한홍·곽대훈·윤영석·장석춘 의원 등이 대표발의한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엔 수백개의 찬성 댓글이 달렸다. 강 의원이 발의한 산안법 개정안과 같이 하루 만에 작성된 댓글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이 2~3일 내에 게시됐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 위원장인 이종구 자유한국당 의원은 관련 개정안을 하나로 합쳐 상임위에서 처리했고, 국회는 지난해 8월 2일 반대표 하나 없이 본회의를 통과시켰다.

    임 변호사는 “누군가의 치밀한 기획으로 완성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현재 진행 중인 삼성 ‘작업환경 보고서’ 공개 소송에서 삼성 측 변호사들은 공공연하게 ‘이 사건 논란을 계기로 산업기술보호법이 개정. 사실상 입법적으로 해결’, ‘(이번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은) 이 사건에 대한 반성적 고려에서 진행된 입법적 조치’라는 이런 주장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이 논의된 산자위 법안 심사소위의 당시 회의록을 보면 ‘삼성’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했다는 지적이다. 토론자로 참석한 이종철 정의당 정책위원회 연구위원은 “회의록 상 ‘삼성’ 언급이 총 6차례 등장한다”며 “노골적으로 삼성피해자 소송을 방해한다는 내용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국가핵심기술이라는 공익적 외피를 쓰고 입법화되어 적극적인 감시와 문제제기를 무력화했다”고 비판했다.

    윤영석 의원도 자신이 대표발의한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 제안 이유에서 “최근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 관련 자료 정보공개 청구 소송에서 국가핵심기술 유출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그런데 현행법에는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를 비공개로 한다는 조항이 없어 국가핵심기술의 보호에 취약한 측면이 있다”며 “산업기술 침해행위는 산업기술 보유자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적으로도 큰 손실을 초래할 수 있는 행위”라며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삼성 측 법률대리인은 반올림과의 정보 공개 소송 과정에서 개정 산업기술보호법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임 변호사는 “지금까지 반도체 직업병 문제에 공감해 왔던 의원들, 삼성의 작업환경 은폐 문제를 강하게 비판해 왔던 의원들도 모두 이 법에 찬성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과의 무역분쟁 상황에서 산자부의 보도자료처럼 ‘산업기술 보호를 대폭 강화하는 법’ 정도로만 알았을 것이다. 누가 어떤 의도로 기획했고 얼마나 심각한 문제조항들이 담겨 있는지 전혀 몰랐을 것”이라며 “국회에서 법안이 만들어지고 가결되는 과정들을 살펴보면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그 과정에 대한 이해가 결과에 대한 무책임까지 용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과오를 인정하고 해결에 나서는 것, 그게 최소한”이라며 21대 국회에서의 법 개정을 촉구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