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당은 오른쪽, 한나라당은 왼쪽으로"
        2006년 08월 26일 03:29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열린우리당 김영춘 의원은 신사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정치인이다. 목소리를 높인 연설보다는 차분하게 대화하는 모습이 어울릴 것 같은 사람이다.

    지난 2.18 전당대회장에서 당의장 후보로 연설하던 그의 모습은 어딘가 어색하고 좌중의 정서와 동떨어져 보였다. 그렇게 보인 데는 그의 나직한 스타일 – 대중연설이라는 고압의 커뮤니케이션 형식과는 그닥 어울려 보이지않는 – 과 함께 당의 위기에 대한 그의 원칙주의적인 처방과 당원들의 정서와의 간극도 상당분 작용했을 것이다.

    그는 전당대회 기간 내내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당정청 모두를 일대쇄신해야 한다"고 호소했지만 결국 꼴찌로 낙선하고 말았다.

    "열린우리당 좀 더 오른쪽으로 갈 필요가 있다"

    그런 그가 다시 ‘쇄신’의 칼을 빼들었다(<레디앙> 21일자 기사 김영춘, "범여권 대안 마련을 위해 대논쟁하자" 기사 참조.). 이번에는 문제의식이 좀 더 근본적이다. 이념과 정당모델, 모든 것을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전당대회에서의 쇄신 요구가 리모델링이었다면 지금 김 의원은 집을 부수고 새로 짓자고 얘기하고 있다.

    지방선거 후 2개월의 암중모색을 거쳐 나온 그의 도발적 문제제기는 그러나 지금 ‘바다’에 휩쓸려 익사 직전이다. 김 의원은 "정치는 타이밍인데 시기가 좋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가슴 속에 할 말이 많은 분들이 많을 테니까 (논쟁에) 나설 것"이라고 낙관했다.

       
    ▲ 열린우리당 김영춘 의원(사진=연합뉴스)

    김 의원은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 모종의 절박감이 ‘릴레이 대논쟁’을 제안하게 된 배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 상태로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들어가면 이런 논의를 차근차근하게 할 만한 겨를도 없이 정치적 격랑에 휩쓸려갈 것"이라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근본적인 문제를 토론해야 한다"고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김 의원은 열린우리당의 이념적 위치와 관련해 "지금보다 좀 더 오른쪽으로 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시장 문제에 대해서, 기업 문제에 대해서, 노조 문제에 대해서, 북한 문제에 대해서 좀 더 오른쪽으로 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가운데 노조 문제에 대해 "노조 문제에 대해 비판을 하면 노동자를 배반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우리당의 정신적 태도"를 지적하고, "비겁하다"고 비난했다. 그는 "대기업노조는 자기들보다 더 약자에 대한 배려와 연대를 활동목표로 삼지 않고 조직된 노동자들, 대기업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에 주안점을 두고 활동하는 노조로 전락했다"고 현재의 노동운동을 비판했다.

    "열린우리당의 비약 심한 실험, 상처 큰 실험"

    김 의원은 열린우리당의 정당실험에 대해 "비약이 심한 실험이었고, 상처가 큰 실험이었다"면서 "목적이 옳고 뜻이 좋은 실험이라고 해서 반드시 정당화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의원이 얼마 전 치켜든 깃발(‘좌파적 수구세력으로 전락할 것인가’)에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이 유독 강조된 탓이 큰데, 이날 인터뷰에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얘기가 많이 오갔다.

    가장 먼저 입길에 오른 노무현 대통령의 ‘좌파신자유주의’에 대해 김 의원은 "좌파의 의미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은 토론이 필요하겠지만 신자유주의와 결합가능한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면서 "그런 개념상의 혼란이 우리당의 이념적 정체성이 뭐냐, 철학적 토대가 뭐냐, 비난받는 배경이 되는 것"이라고 완곡하게 비판했다.

    김 의원은 "태생의 기반은 좌파인데, 막상 가는 길은 보수중에서도 근본적인 보수주의자들이 얘기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라는 것, 이게 좌파신자유주의의 한 단면이 아닌가"라며 좌파신자유주의에 대한 나름의 규정을 내리기도 했다.

    "양극화 심화시키는 방향이면 한미FTA 적극 반대할 것"

    한미FTA는 신자유주의의 완결판이다. 김 의원은 "우리나라처럼 무역으로 먹고 사는 나라는 세계화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미국과의 FTA는….."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이어 "지금의 세계화가 신자유주의와 동의어가 되고 있는 이유도, 미국이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세계화가 미국적 표준과 질서를 강요하는 세계화이기 때문"이라면서 "협상에 신중하자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그러나 "기왕 정부가 협상을 시작했다면 우리가 지켜야 할 게 뭔가, 보편적 공익은 뭔가 하는 걸 잘 따져가면서, 충분한 토론을 거치면서 협상을 추진해야 된다"면서 "그런 전제 하에서의 협상 타결이라면 동의하겠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대신, 물론 ‘한미FTA와 신자유주의’를 ‘동그란 동그라미’처럼 동어반복의 용례에 놓는 기자의 상식으로는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농후한데, 신자유주의적 노선을 가속화하는 방향으로 협상이 결론날 경우 한미FTA에 대해 개인적인 반대는 물론 조직적인 반대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과 통합해도 열린우리당 정신에 가깝게 합쳐지면 발전"

    김 의원은 여당의 정체성 혼란과 관련해 "열린우리당이 시장주의 원칙에 대한 인정과 함께 그 안에서 탈락하는 약자들 혹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대우를 받는 약자들을 배려하는 정책을 제시하는데 거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을 경우, 강령적 합의가 분명하다면 그 사람을 징벌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기는 것이고, 그런 몇 번의 경험들이 정책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민주당과의 통합에 대해 "정당 민주주의에 대한 관점 차이 때문에 이혼을 한 셈인데 합쳐지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라면서도 "두 당이 합쳐진다고 하더라도 도로민주당으로가 아니고 열린우리당의 정신에 가까운 형태로 합쳐지는 것이 발전"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통합을 위해서는 현재의 민주당 구조에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의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하고, "그것을 민주당을 지지하는 대중들이 만들어 낼 것이라고 본다. 민주당이 한 두 사람의 전유물은 아니잖은가"고 말했다.

    "한나라당 집권하면 복고 반동적인 수구의 물결이 우리나라를 지배하게 될 것"

    현재 이른바 ‘개혁진보진영’의 위기감과 관련해 "위기론이란 결국 자신들의 집권을 위한 이른바 ‘중도개혁세력’의 과장된 알리바이가 아닌가"는 지적에 김 의원은 한나라당이 집권했을 경우의 사회상에 대한 묵시록적 비전을 펼치는 것으로 응수했다.

    김 의원은 "한나라당이 지금 모습대로 집권한다면 과거로 돌아가는 복고 반동적인 수구의 물결이 우리나라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며 "반한나라당 연합전선이 여전히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또 "지금의 한나라당 모습으로 집권한다면, 지난 10년 동안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성과들, 예를 들어 대북관계도 근본적으로 경색시킬 것이고, 이런저런 복지적인 장치들 만들어놨는데 그것들 전부 혹은 일부를 과거로 원상회복시킬 것이고, 과거사 문제라든지 사회적 공정성을 강화시키는 부패방지나 투명성 강화작업이라든지 하는 것들을 다시 되돌리게 될 가능성이 있는데,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라며 "그것을(위기론을) ‘늑대가 온다’고 하는 선동정치나 역공갈정치로 볼 수 있을까"고 반문했다.

    끝으로 강금실 전 장관의 정치적 거취와 관련된 질문을 했다. 김 의원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내가 강 전 장관을 도운 것과 앞으로의 내 정치적 거취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강 전 장관이 정치적)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도 "그건 내가 강 전 장관의 정치적 서포터가 된다고 하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재차 선을 그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대논쟁 제안 ‘형편없는 도전’으로 보는 사람도 있어"

    -릴레이 대논쟁을 제안했는데 배경이 뭔가.

    = 처음 위기감이 생긴 건 작년 이맘 때다. 우리당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기보다는 그때 그때 미봉하면서 어떻게 해결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버텨왔다. 5.31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이후에도 근본적인 반성과 성찰 위에서 새로 시작해보려는 노력은 부족했다. 지금 상태로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들어가면 이런 논의를 차근차근하게 할 만한 겨를도 없이 정치적 격랑에 휩쓸려갈 것이다.

    지금이라도 근본적인 문제를 토론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대논쟁을 제안하게 됐다. 우리당의 근본적인 문제는 뭔가. 우리당과 중도개혁세력이 근본적으로 지향해야 할 정치적, 정당적인 목표가 뭔가. 여태 미뤄왔던 논의를 지금 가장 어려울 때 시작해보자는 것이다.

    – 대논쟁 제안에 대한 당내 반응은 어떤가.

    = 양극단으로 많이 나눠진다.

    – 어떻게 나눠지나.

    = 기본적으로 옳은 문제의식이고 올바른 문제제기라고 하는 입장이 있다. 반면 대통령에 대한 문제제기를 민감하게 받아들여서 형편없는 도발이라고 비판하는 분들도 있다.

    – 김 의원께서 대논쟁을 제안한 글을 보면 당면한 구체적인 현안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당면 현안 중심으로 질문하겠다. 먼저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당과 운명을 함께 하겠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그래야 된다고 본다. 우리나라 정치의 불행은 당이 대통령이나 대통령 후보와 항상 운명을 같이했다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를 위해 당을 새로 만들고, 임기 끝나면 사라져 버리는 포말정당이 우리나라 정치의 불행을 만든 한 싹이었다.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정치를 하는 정체성과 근본 목표가 같다면 대통령이 인기가 없다고 해도 같이 가야한다.

    "희생양 만들고 신장개업하는 건 정치 아니다"

    대통령의 과오조차도 우리당이 함께 책임질 과오라고 생각하고, 그를 시정하기 위한 노력을 당 스스로 끊임없이 경주하면서 함께 가야한다. 노 대통령의 과실분, 그래서 폭락한 지지도까지도 부채로 함께 떠안고 가는 게 맞다. 그래야 책임정치가 이뤄진다. 한 정당이 책임져야 할 공적영역이 온전히 부각될 수 있다.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만들어놓고 뒤로 빠져버리는, 그런 다음 다른 식으로 포장해서 신장개업하는, 그건 바람직한 정치의 모습이 아니다.

    – ‘목표와 정체성이 일치한다면’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우리당과 노 대통령의 ‘정치적 목표와 정체성’이 일치한다고 보나.

    = 많은 부분 일치한다고 본다. 우리당 다수 의원들과 대통령의 근본적인 철학에는 상이함이 없다. 방법론은 조금 다르지만, 그런 문제는 서로 토론을 하고 이견을 좁히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앞으로는 대통령보다는 당의 주도권이 더 인정되고 당의 역할이 더욱 살아나야만 공존 가능한 관계가 될 것이다.

    – 노 대통령은 ‘비전 2030’을 당에 주는 선물이라고 했다. 그런데 여당 의원들은 별로 선물을 반기는 것 같지 않다. ‘비전 2030’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나는 그 내용을 못들었다. 당 지도부에만 브리핑하고 엠바고를 걸어논 것 같다. 관련 기사를 찾아봐도 내용은 없더라. 내용을 모르기 때문에 코멘트할 입장은 아닌데, 오랫동안 공을 들여 만들었다면 참고할 내용이 많지 않겠나 생각한다.

    – 여당은 ‘선물’의 정치적 부담이 크다고 한다. 기본적인 방향은 옳다고 하면서도 증세론의 역풍을 우려해 공론화를 미뤘으면 하는 것이다. 옳은 태도라고 보나.

    = ‘비전 2030’ 같은 장기플랜 속에서는 지금보다는 훨씬 복지가 강화된 국가의 미래상을 그려야 되는 것이고, 지금보다는 더 많은 조세부담이 이뤄져야 그런 복지모델을 완성할 수 있다.

    물론 증세가 너무 급격히 이뤄진다면 국민들도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고, 저항이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20년, 30년 이라는 오랜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국민의 복지부담과 조세부담을 늘려나가고, 그것이 나의 노후보장, 그리고 내 아들 딸들의 미래 복지를 보장해준다는 것이 납득된다면 국민들이 충분히 받아들이고 소화할 것이라고 본다.

    "증세반대 한나라당 혹세무민 혐의 있다"

    – 지금 그런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나.

    = 물론 필요하다. 이런 간격이 있다. 한나라당이나 증세 반대만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혹세무민의 대중선동주의의 혐의가 있는게 아닌가 싶다. 내년에 당장 복지예산을 두배로 늘리자, 그래서 국민의 조세부담도 내년부터 두 배로 늘어자는 것이라면 그 사람들 말대로 반대해야 마땅한 사안이겠지.

    그런데 그게 아니다. 10년, 20년 뒤에 우리나라가 어떻게 나아가야하는가 하는 장기플랜에 관한 문제다. 장기플랜에 맞춰, 한편에선 국민의 조세부담도 늘려나가고 또 한편에서는 조세부담을 늘리지 않아도 그런 복지가 가능한 경제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자는 것인데, ‘세금을 늘린다’며 반대하는 것은 참으로 무책임한 선동이다.

    – 지금은 여당은 이 문제를 쉬쉬하고 있다. 여당의 정치적 용기가 부족한 것 아닌가.

    = 그렇게 볼 수도 있다. 다만 그런 문제를 제기하는 절차와 방법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보다 사려깊은 과정의 조직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연구기관같은 곳에서 먼저 건설적인 제안을 하고 이후에 정치적, 사회적 공감대를 넓혀나가는 방식이 가능하다. 분명한 건 이 문제를 더 이상 미뤄놓거나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경제사회적 양극화가 극심하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지금 당장 그런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유럽 기준으로 보면 한나라는 소수파 극우정당"

    – 열린우리당이 지향해야 할 정당모델로 미국 민주당 모델을 제안했다. 우리나라도 미국식 양당제가 적합하다고 보나.

    = 우리 정치문화가 다당제에 걸맞는 건 아니다. 미국식 양당제와 유럽식 다당제의 절충 형태지만, 기본축은 양당제에 가까운 구도가 우리 정치의 과거였고, 앞으로의 정치 발전도 그런 문화적 토양위에서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그런 구도에서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의 카운터파트가 되려면 현재보다 좀 더 왼쪽으로 가야한다고 보는가.

    =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한나라당이 건전한 보수정당이라고 보지 않는다. 유럽적인 정치풍토라면 한나라당은 소수파 극우정당의 위상일 것이다. 보수의 주류에도 끼지 못할 정도의 사상적 토대와 박약한 비전 위에 서 있는 정당이 아닌가. 이런 모습은 우리나라 두터운 보수세력의 입장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한나라당은 보다 왼쪽으로 이동할 필요가 있다. 합리적인 보수세력으로 탈바꿈할 필요가 있다.

    – 열린우리당은 지금보다 왼쪽으로 가야하나, 오른쪽으로 가야하나.

    = 크게 보면 오른쪽으로 가야겠지. 그렇다고 지금 우리당이 실제로 왼쪽에 있다는 건 아니다.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의 영향이 클텐데, 어쨌건 국민들은 열린우리당이 좌파정당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또 우리 스스로 그렇게 비춰질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지배적 인식의 차원에서 봤을 때는 보다 오른쪽으로 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오른쪽으로, 한나라당은 왼쪽으로" 

    – 정책의 면에서 본다면 어떤가.

    = 혼재되어 있다. 가령 한나라당이나 보수언론은 국보법 폐지하자, 과거사 정리하자, 사학법 지금처럼 개정하자, 이런 것을 두고 우리당을 좌파라고 공격한다. 복지와 분배에 대한 강조도 포함된다.

    그러나 하나하나 따져보자. 과거사를 바로잡아 민족정기를 바로세우자, 이런 게 좌파의 이슈는 아니다. 다른 정상적인 나라에서는 우파가 전가의 보도로 내세우는 민족주의적 이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나라당같은 정치세력이 민족주의 문제를 자신들의 임무로 삼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우리라도 그런 문제를 얘기하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봐도 그렇다. 사상의 자유를 말하는 게 고전적으로 좌파의 논리인가. 서양 민주주의의 논리로 보면 사상의 자유는 자유주의자의 논리고, 자유주의자는 유럽이건 미국이건 보수주의의 출발점이다. 그런 것에 무지한 사람들이 보안법 폐지나 과거사 정리를 말하면 좌파라고 비난한다. 한마디로 무지몽매한 지식수준의 결과물이라고 본다.

    나는 그런 문제와 관련해 우리당이 오른쪽으로 가야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장 문제에 대해서, 기업 문제에 대해서, 노조 문제에 대해서, 북한 문제에 대해서 좀 더 오른쪽으로 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기업 노조에 비판하지 않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 노동문제와 관련해서 오른쪽으로 가야한다는 의미를 좀 더 설명해 달라.

    = 지금껏 우리당은 대기업 노조에 대해 말을 않는 것을 잘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비겁한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대기업노조에 포함된 사람보다 비정규직이나 파트타임 노동자들이 훨씬 많은 노동구조가 됐다. 그런데도 대기업노조는 자기들보다 더 약자에 대한 배려와 연대를 활동목표로 삼지 않고 조직된 노동자들, 대기업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에 주안점을 두고 활동하는 노조로 전락했다.

    우리나라 초기 노동운동의 건강성이 상당분 상실됐다. 노동운동이 노동자 전체에게 도움이 되는 운동인가, 혹은 자신들이 속한 기업에 도움이 되는 운동인가. 어느 쪽에도 부합하지 않는 조직노동자 이기주의에 빠져있는 게 아닌가. 그런 문제에 대해 우리당이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이 온당한 태도가 아닌가.

    – 총량적으로 전체 노동자의 삶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것이 기본적인 목표라면 그건 제대로 된 방향에서 왼쪽으로 가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걸 굳이 오른쪽으로 가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뭔가.

    = 물론 비조직 노동자들, 더 약자인 노동자들에 대한 애정과 배려를 표시하고 정책화시켜야 한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본다면 오른쪽으로 가야한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 것일 수 있다.

    다만 우리당의 정신적 태도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다. 노조 문제에 대해 비판을 하면 노동자를 배반하는 것처럼 생각되는 정서가 있다. 그건 아니다. 권력화된 노동조합은 당연히 비판해야 되고. 그것이 마치 반노동자적인 것처럼 생각되는 자세는 버려야 한다. 그게 사회적 공익에도 부합한다.

    – 김 의원께서는 열린우리당의 기간당원제 실험에 대해 맹성했다. 장차 기간당원제의 오류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도달하게 될 정당의 조직 형식이란 게 결국 기간당원제 실험 이전으로 돌아가는 건 아닌가.

    = 그게 고민거리다. 우리당은 역사가 짧고 충성스런 당원도 많지 않은 상태에서 기간당원제를 하자고 덤볐다. 그러다보니 열성 당원들의 수준을 조금만 벗어나면 문제가 생겼다. 이를테면, 후보 경선을 위한 당원을 모집하게 됐을 때 기간당원제의 취지는 금방 무색해지고 모집당원, 동원당원이 난무하게 된 것이다. 이런 면에서 단계를 뛰어넘은 성급한 실험이었다고 자기반성하는 것이다.

    "기간 당원은 당의 활동가" 

    – 실험의 성과는 있었다고 보나.

    = 목적이 옳고 뜻이 좋은 실험이라고 해서 반드시 정당화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천천히 단계를 구축해가는 방식보다 훨씬 상처가 큰 실험이었다.

    – 잘못된 실험이었다는 얘긴가.

    = 그렇다. 비약이 심한 실험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기간당원제를 없애자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기간당원제를 제대로 관철하기 위해서는 기간당원의 요건을 엄격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

    너무 방만하고 낮은 수준에서 기간당원 자격을 규정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나는 기간당원은 당의 활동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엄격한 요건에 의해 선발되고 자격을 유지해야 한다. 당 내부의 당직선출 과정에서는 전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대신 오픈 프라이머리처럼 공직 후보를 선출하는 경우에는 외부에 문호를 지금보다 더 개방해야 한다. 당 내부적인 일에 대해서는 전적인 권한을 가지되 공직 후보 선출의 경우에는 자신의 권한을 과감하게 축소하는 헌신적인 기간당원제도로 변해야 된다고 본다.

    – 노 대통령의 좌파신자유주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 노 대통령은 나라를 위해서 유익하다면 내가 좌파로 비난받는 것, 신자유주의자로 비난받는 것을 감수하겠다는 취지로 한 말이 아닌가 싶다. 때로는 그런 유연한 결합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도 기본 정향은 있어야 된다고 본다. 좌파의 의미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은 토론이 필요하겠지만 신자유주의와 결합가능한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런 개념상의 혼란이 우리당의 이념적 정체성이 뭐냐, 철학적 토대가 뭐냐, 비난받는 배경이 되는 것이다.

    노 대통령과 우리당은 기존의 부조리한 입장을 개선해야 한다는 개혁적인 입장에 서 있었다. 우리나라 보수세력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좌파적인 입장에 서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처럼 태생의 기반은 좌파인데, 막상 가는 길은 보수중에서도 근본적인 보수주의자들이 얘기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라는 것, 이게 좌파신자유주의의 한 단면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영국의 토니블레어도 좌파신자유주의자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 좋은정책포럼과 이론적 교감을 나누고 있나.

    =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교류는 전혀 없다. 한두 분 개인적으로 말씀을 나누는 정도다.

    "민노당 점진적 접근하면 비정규직 상태 당장 개선될 것"

    – 좋은정책포럼이 대안으로 내세우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모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전형이 독일이나 일본 아닌가. 그런데 독일과 일본도 자기 모델의 수정과정을 밟고 있다. 보다 경쟁적인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자신의 모델이 갖고 있는 경직성과 정체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해관계자 모델은 우리의 발전 지향이 되기 힘들다고 본다. 우리는 그것조차도 한 단계 더 뛰어넘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가 아직 그나마도 제대로 못해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경청할만한 가치는 있다고 본다.

    – 김 의원께서는 대기업과 대기업노조에 대비한 중소기업, 하청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를 주로 강조하고 있는데, 이들과 관련된 정부 여당의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 우리당의 모든 정력을 다 바쳐서 관철시키고 성사시켜낸 성과는 아직 없다. 그러나 우리당이 꽤 많은 노력을 기울여온 것도 사실이다. 비정규직 법안은 민노당과의 관점 차이 때문에 아직 법안 처리가 안 되고 있다. 우리는 점진적으로 개선하자는 것이고, 민노당은 한꺼번에 개선하자는 것이다.

    특히 쟁점이 되는 건 정규직화되는 시점을 1년으로 할 거냐, 2년으로 할 거냐, 하는 것이다. 우리당 판단으로는 지금 시점에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선이 2년이라고 보는 것이다. 민노당이 좀 더 점진주의적인 선택을 해준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태는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비정규직 법안은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임금격차를 강제적으로 좁혀놓고 있고, 그런 점에서 현재보다는 훨씬 진일보한 법안이다. 지금처럼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엄청난 임금 격차, 동일한 노동을 하면서도 2배까지 격차가 벌어지는 이런 현상은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정규직 전환의 문제도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한 걸음 더 전진된 성과를 만들어내고, 미흡한 부분은 진행과정에 대해 평가하면서 추가적인 보완입법을 해야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신자유주의 본산 미국보다 너 나쁜…"

    – 한미FTA는 참여정부의 업무 추진 방식의 독단성과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전형적으로 결합된 것이다. 어떻게 평가하나.

    = 내 기본적 입장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무역으로 먹고 사는 나라는 세계화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FTA나 다자간 무역협상에도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미국과의 FTA는… 지금의 세계화가 신자유주의와 동의어가 되고 있는 이유도, 미국이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세계화가 미국적 표준과 질서를 강요하는 세계화이기 때문 아닌가.

    미국은, 유럽보다는 못하다고 해도, 우리나라보다는 복지 수준이 훨씬 높다. 전체 GDP에서 복지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을 따져보면 우리나라는 미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고용구조도 비정규직이 50%를 넘어섰다. 신자유주의 본산인 미국보다 더 나쁜 고용구조를 보이고 있다.

    나는 미국과의 FTA로 이 같은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지금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로 촉진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고 있다. 그래서 협상에 신중하자는 입장이다. 그러나 기왕 정부가 협상을 시작했다면 우리가 지켜야 할 게 뭔가, 보편적 공익은 뭔가 하는 걸 잘 따져가면서, 충분한 토론을 거치면서 협상을 추진해야 된다. 그런 전제 하에서의 협상 타결이라면 동의하겠다. 내 생각은 그렇다.

    – 그 전제가 충족될 것이라고 보는가.

    = 서로 대화해봐야지. 간격을 좁히려고.

    – 지난 2월 3일 한미FTA 공청회 이후 국회와 각 정당은 국익에 반하지 않는 협상이면 찬성한다는 원론적 입장만 반복했다. 그러는 동안 6개월의 시간이 흘렀고, 이제 3차 협상이 목전이다. 국익을 반영하는 협상을 위해 국회나 정당에서 만족할만한 역할을 했느냐, 혹은 앞으로 할 것이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극히 부정적인 평가가 많다.

    = 일단 정부가 여당에도 제대로 정보 공개를 않고 있다. 나는 당 지도부에 협상에 대한 우리당의 입장을 정할 것을 요청했다. 우리 스스로 협상에 대한 안을 만들고, 그것을 가지고 정부와 밀도있는 논의를 하자, 이런 얘기다. 공익에 심대한 악영향을 주는 협상이라면 반대해야 되겠지. 나는 정부가 우리당의 입장을 충분히 참작해서 협상을 진행할 것으로 믿는다.

    "한미 FTA 사회발전 노선에 안 맞으면 조직적 반대"

    – 김 의원께서 소망하는대로 된다면 미국의 FTA협상사에 새 장이 열리는 것일 텐데, 암튼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한미FTA는 김 의원께서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극복과는 상반된 노선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 그런 위험성이 있다. 그래서 우리당의 입장을 빨리 정리하는 게 급선무라는 것이다.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 선결과제다.

    – 벌써 3차 협상이 목전이다. 구체적인 정치적 행동을 보여야 하는 거 아닌가.

    = 여당이라고 하는 게 공개적으로 압력 넣고 행동하기보다는 정부와 대화하고 토론하는 게 순서다. 야당이나 시민단체와는 입장이 다르다. 일단 우리 입장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 김 의원께서 얘기한 사회발전 노선에 부합하지 않는 FTA라면 반대할 건가.

    = 그렇다.

    – 개인적인 반대에 그치지 않고 반대를 조직하겠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되나.

    = 그래야겠지.

    "내년 되면 정계개편 시동될 것"

    – 정계개편 논의는 언제쯤 가시화될 것이라고 보나.

    = 내년 들어가야 되지 않겠나. 내년초로 가면 완연히 대선 분위기로 갈거고, 대선을 위한 이런저런 논의 속에서 정계개편 논의에 시동이 걸리겠지.

    – 정계개편의 현실 정치적 계기는 뭐가 될 거라고 보는가.

    = 한나라당 집권저지, 이런 게 명분이 되지 않을까.

    – 그건 퇴행적이지 않나.

    = 한편에서는 퇴행적이고 또 한편 생각해보면 이뤄지는 통합이 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내년에 대선 국면에 닥쳐서야 한나라당에 맞서기 위해 이 세력 저 세력 다 끌어모아서 가자, 이런 수준으로 가는 것이라면 옛날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열린우리당은 완전한 실험의 실패를 자인하면서 정계개편의 동력에 휩쓸려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먼저 우리 스스로, 우리가 생각하는 정치의 목표, 정당의 목표를 분명히 정리해 놓고, 거기에 부합하는 세력과 연대를 할 때, 대선에도 훨씬 힘 있게 결합할 수 있는 동력이 생길 것이다. 또 그래야 승패를 떠나 정치발전, 역사발전에 도움이 되는 대선을 치를 수 있을 것이다. .

    – 김 의원께서 생각하기에, 가치의 우선 순위가 반한나라당 세력의 물리적 통합에 있다고 보나, 아니면 장기적으로 중도개혁 노선의 안정적 통합을 도모할 수 있는 세력의 구축에 있다고 보나.

    = 나는 후자다.

    – 둘이 엇갈리는 경우 소수파의 길도 감수하겠다는 의미로 이해해도 되나.

    = 그런 각오까지 하면서 노력해야겠지. 물론 정치 상황이 항상 칼로 두부 자르듯 이것 아니면 저것, 뭐 이렇게 갈 수 없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고 하니까 큰 소리는 못치겠지만, 그런 각오로 일을 도모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 여당의 정체성 혼란에 대한 지적이 많다. 김 의원이 시장만능주의자라고 표현한 분들도 여당에 많다. 이분들이 장기적으로 같이 갈 수 있는 대상이라고 보는가.

    = 우리당에 시장만능주의자가 많은가(웃음). 우리당은 이런 문제를 가지고 제대로 토론해 본 경험이 없다. 우리당도 그렇고 우리 정치 자체가 그렇다. 이번 기회에 이런 토론이 왕성하게 이뤄지면, 많은 대화가 이뤄지면, 서로 접점을 찾고 공존할 수 있는 우리 나름의 노선적 합일점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 그것이 지금까지 여당의 이질적 세력이 공존해온 방식과는 어떻게 다른가.

    = 지금까지는 그런 철학적이고 정책적인 논쟁 없이, 여당이니까 정부가 가는대로 같이 가자, 그런 정도의 낮은 수준에서 공존했다. 그러나 이런 토론이 이뤄지고 강령적 노선이 확립되고 난 후라면, 그에 입각해서 한 차원 높은 내부 논쟁과 입장 정리, 정책결정이 이뤄지지 않겠나.

    "미국 민주당 정도라면 모두 같이 갈 수 있을 것"

    – 현재 내부에 있는 분들 모두가 새롭게 공유될 강령적 내용에 동의하면서 같이 갈 수 있다고 보는가.

    = 하루아침에는 안 되겠지. 그러나 우리당이 시장주의 원칙에 대한 인정과 함께 그 안에서 탈락하는 약자들 혹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대우를 받는 약자들을 배려하는 정책을 제시하는데 거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을 경우, 강령적 합의가 분명하다면 그 사람을 징벌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기는 것이고, 그런 몇 번의 경험들이 정책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본다.

    – 한 정당의 정체성이 포괄할 수 있는 외연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임종인 의원과 강봉균 의원이 왜 같은 당에 있어야 하는가. 굳이 모두 함께 갈 필요가 있나.

    = 미국의 정당들도 내부에 좌우파의 분파가 있고 대립과 투쟁의 우열이 있다. 우리도 그런 정도로 충분히 공존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강령적 모토가 확고하게 들어선 이후에도 당의 강령과 맞지 않는 행동을 할 경우 자기 자신을 수정하지 않고는 함께 갈 수 없는 그런 정당을 만들어야겠지.

    – 새로운 당을 구성하고 당의 강령을 만드는 작업은 일종의 노선투쟁일텐데, 그 과정에서 내용적으로 하나의 틀로 묶이지 않는 경우 결국 같이 가기 힘든 거 아닌가.

    = 그런 경우라면 같은 당으로 함께 이어갈 명분이 우리 스스로 없는 거겠지.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원형인 미국 민주당 정도의 정체성이라면 우리당 대부분의 사람들이 함께 갈 수 있다고 본다.

    – 어쨌건 결과에 대한 예단 없는 논쟁은 필요하다고 보는 건가.

    = 그렇다.

    "민주당과 분리돼 있는 게 부자연스러워"

    – 민주당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 우리당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다만 민주당을 이끌고 있는 몇 몇 분의 감정의 문제가 장애다. 큰 틀에서는 생각의 차이가 거의 없고, 지지층도 생각의 차이가 거의 없다. 그런 의미에선 분리되어 있는 게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정당 민주주의에 대한 관점 차이 때문에 이혼을 한 셈인데 합쳐지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 정당실험의 실패에 대해서는 김 의원께서 앞서 자인했다. 실패할 실험을 위해 당을 깨고 나갔으니 통합을 위해서는 당신들이 반성해야 된다고 민주당이 주장한다면 어떻게 할 텐가.

    = 그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민주당이 분당된 배경에는 공천 민주화에 대한 견해 차이가 있었다. 탈당해 나왔던 사람들은 공천권을 당원과 대중들에게 돌려주자, 보스의 공천권을 부정하자, 계파들간의 밀실협상에 의한 공천권 배분을 부정하자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당시 민주당 당권파는 기존의 제도를 유지하자는 것이었다.

    열린우리당의 정당실험이 부분적으로 실패했다고 앞서 말했지만, 그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고, 그 정신을 우리가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민주당의 합당조건이 ‘옛날 식으로 공천하자’는 것이라면 못하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공천 민주화의 범위를 지금보다 더 넓히고 개방하자는 입장이다.

    – 민주당의 지금 행태와 체질이 분당 전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 제가 알기로는 민주당 국회의원과 지지하는 당원들의 정서는 우리당과 다를 것이 없다.

    – 내부적인 운영방식, 예를 들어 한화갑 대표 개인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거나 하는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 그런 면에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많이 다르다.

    – 그렇게 다른데 결합이 가능한가.

    = 두 당이 합쳐진다고 하더라도 도로민주당으로가 아니고 열린우리당의 정신에 가까운 형태로 합쳐지는 것이 발전이겠지.

    – 합당을 위해서는 민주당의 현재 구조에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분들의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건가.

    = 그렇다. 당연히 그렇다. 나는 그것을 민주당을 지지하는 대중들이 만들어 낼 것이라고 본다. 민주당이 한 두 사람의 전유물은 아니잖은가.

    "한나라당은 우리보다 훨씬 강했고, 우리가 갖는 두려움이 컸다"

    – 지금 개혁진보진영이라고 통칭되는 세력의 위기감이 상당하다. 개혁진보진영은 늘 자신의 위기를 사회적 위기와 동일시해왔다. 그러나 따져보면 87년 이후의 모든 대선에서 이른바 개혁진보세력에 의해 수구세력의 집권을 저지해야 할 절박한 당위가 주장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위기론이란 결국 자신들의 집권을 위한 이른바 ‘중도개혁세력’의 과장된 알리바이가 아닌가 하는 혐의도 두게 된다.

    = 한나라당이 다시 집권하게 될 때 그 결과가 어떨까, 정치. 경제. 사회적인 영향이 어떨까 생각해 보자. 한나라당이 지금 모습대로 집권한다면 과거로 돌아가는 복고 반동적인 수구의 물결이 우리나라를 지배하게 될 것이 아닌가. 그냥 보수세력의 집권과는 차원이 다른, 역사의 물줄기를 거꾸로 돌리는 그런 위험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나는 반한나라당 연합전선이 여전히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한나라당을 반대하기 위해서 깃발을 만들었고, 그것이 알리바이용 깃발이었다, 그렇게 본다면, 마찬가지 각도에서, 매 시기 한나라당은 우리보다 훨씬 강했고, 그것이 갖고 올 결과에 대해 우리가 갖는 두려움이 그렇게 컸다, 이런 식으로 뒤집어 볼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 그건 결과적으로 일종의 ‘역공포정치’, ‘협박정치’ 아닌가.

    =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 그런 결과가 초래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한나라당이 돌변해서 합리적인 보수주의로 간다고 하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나라당 모습으로 집권한다면, 지난 10년 동안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성과들, 예를 들어 대북관계도 근본적으로 경색시킬 것이고, 이런저런 복지적인 장치들 만들어놨는데 그것들 전부 혹은 일부를 과거로 원상회복시킬 것이고, 과거사 문제라든지 사회적 공정성을 강화시키는 부패방지나 투명성 강화작업이라든지 하는 것들을 다시 되돌리게 될 가능성이 있는데,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것을 ‘늑대가 온다’고 하는 선동정치나 역공갈정치로 볼 수 있을까.

    – 대선은 결국 후보들 싸움이다. 현재 염두에 두고 있는 후보가 있나.

    = 없다.

    "강금실 전 장관을 도운 것과 내 정치적 거취는 별개"

    – 여당 후보군의 지지율이 대단히 낮다. 현재 상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어떤 대안이 가능할까.

    = 나는 그런 가정은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우리가 환골탈태를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나서 판단할 일이다. 자강의 노력을 하지 않고 판단할 일은 아니다.

    – 별로 반기지 않는 질문일 것 같은데, 그래도 하겠다. 김 의원께서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강금실 전 장관의 선대본부장을 맡았다. 지금 강 전 장관에 대한 당 안팎의 기대가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대선 국면에서 강 전 장관이 모종의 역할을 하지 않겠느냐, 그를 위한 동조세력의 움직임이 있지 않겠느냐, 그런 일련의 과정에서 김 의원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 않겠느냐, 이런 추측들이 나오고 있다.

    = 지난 지방선거에서 내가 강 전 장관을 도운 것과 앞으로의 내 정치적 거취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내가 강 장관을 도운 것은 당을 위해서였다. 당의 명령으로 강 장관 선대본부장을 했던 것이다.

    물론 강 장관이 요구했던 것이기도 하지만, 나도 그렇게 하는 것이 당인으로서의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또 강 전 장관이 위험한 상황에서 투신을 해준 셈이니까, 투신에 대한 마땅한 응답이라고 생각해서 도와준 것이기도 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 분을 좋아하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문제와 정치적 행보는 별개 아니겠나.

    – 강 전 장관의 정치적 역할을 기대하나.

    =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건 내가 강 전 장관의 정치적 서포터가 된다고 하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 강 전 장관의 적극적인 역할이 당에 필요하다고 보나.

    = 아무래도 우리당에는 도움이 되겠지. 보다 많은 선택지가 생기는 것이고, 보다 많은 인적자원이 들어와서 우리당을 강화시켜주는 것이니까. 좋은 작용을 할 것으로 본다.

    – 대논쟁을 제안했는데, 논쟁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복안이 있나. 지금은 ‘바다’가 논쟁도 삼켜버린 게 아닌가 싶은데.

    = 그런 시기 문제도 있다. 정치는 타이밍인데 시기가 좋지 않았다.

    – 의식적으로 논쟁을 조직할 필요가 있지 않나.

    = 가슴 속에 할 말이 많은 분들이 많을 테니까 나서겠지.

    – 김 의원께서는 그냥 화두를 던지고 마는 건가, 다른 계획이 있는 건가.

    = 제 뜻에 공감하는 분들과 함께 하나하나 결과물을 내놓는 작업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