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대 일본군의 기이한 변용
    광신주의와 합리성의 사이에서
    [책소개] 『역설의 군대』 (도베 료이치/ 소명출판)
        2020년 01월 12일 09:3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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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일본군에 대한 이미지는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비슷하다. 비합리적이고 광신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던 것도 사실이다.

    저자 도베 료이치는 그러한 점을 인정하면서 물음을 던진다. “과연 일본군은 처음부터 비합리적이고 광신적이었을까?” 저자의 대답은 “아니오”이다. 처음에는 합리적인 그리고 근대화를 선도한 조직이었지만, 나중에 크게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저자는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 육군이 탄생할 때부터 제2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일본 육군이 무너지기까지의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무릇 군대라는 것은, 인간의 행위 가운데 가장 비합리적인 ‘전쟁’이라는 행위를 실천하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조직이다.”

    일본이 근대화를 추진하고 육군을 건설ㆍ발전시켰던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은 세계적으로 2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던 격변의 시대였다. 이때 일본 육군은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며 근대화를 이끌었다. 새로운 시대는 대규모 공업화를 위해 규격화된 인재를 원했고, 강력한 군사력을 위해 징병제를 요구했다. 이에 대응해 일본 육군은 장병들에게 규격화된 교육을 제공하는 한편, 상당한 반발을 무릅쓰고 신분제로 편성된 군 인력을 정리했다. 또 무기 산업의 육성을 통해 공업 발전을 선도하고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군사력을 건설ㆍ유지했다. 그 결과 일본 육군은 방대한 조직으로 발전하며 청일전쟁, 러일전쟁의 승리를 주도했다. 이것이 변화와 혁신을 주도했던 초기 일본 육군의 모습이다.

    그러나 성공에 도취하고 조직이 커지자 일본 육군은 점차 완고하고 이기적인 조직으로 바뀌어 갔다. 그래서 제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진행된 전쟁 방식의 변화, 범세계적인 민주주의 흐름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는가 하면, 정치적 중립을 방패삼아 정부의 통제로부터 조직을 독립시켜 나갔다. 나아가 그들은 국가 방위를 내세우며, 국정 전반의 각종 문제에 개입했다. 정치적 중립을 가장 엄정하게 지켜야 할 조직이 오히려 최대의 정치 플레이어가 된 셈이다.

    이러한 일본 육군의 대외 강경책은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이 전쟁이 온전히 육군 때문에 일어났다고 볼 수는 없지만, 육군이 각 전쟁의 발발에 최대의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전쟁은 일본 육군을 피폐하게 했다. 특히 미군의 압도적인 화력 앞에서 일본 육군의 군사력은 점차 무너져 갔다. 그러나 군대가 무너지는 가운데서도 일본 육군은 대외 강경책, 결사 항전, 정신주의 등을 끝까지 고집하며 자신들의 오판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군대로서, 조직으로서 광신적인 행태마저 보이기에 이르렀다. 이후 일본 육군의 폭주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고 천황이 정식으로 항복한 이후에야 멈추었다. 조직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나서야 폭주가 멈추었을 정도로 자정 작용이 미약했던 셈이다. 이후 일본 육군은 해체되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결국, 초기에 변화와 혁신을 선도했던 일본 육군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완고하고 이기적인 조직으로 바뀌었으며, 나중에는 가장 과격하고 광신적인 조직으로 변질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역설의 군대>는 위와 같은 극적인 이야기를 차분하게 풀어낸 책이다. 일본 육군이 주도한 일본의 제국주의에 그 누구보다 커다란 피해를 받았던 대한민국에 번역됨으로써, 일본을 비판적으로 이해하여 그들의 과오를 짚어내고 나아가 우리 스스로 경계할 타산지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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