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길-심상정 콤비 외통부 콧대 꺾어
        2006년 08월 25일 07:0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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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과 심상정 의원이 한미FTA 협상에서 또하나의 판도라 상자를 열수 있을지 주목된다. 외교통상부는 한미FTA 협상에서 현재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국내법에서 개정이 필요한 법령을 조사해 보고하라고 전 부처에 지시한 대외비공개 공문을 25일 공개했다.

    그동안 정부는 한미FTA 협상에 따른 국내법 충돌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해온 만큼, 조사 지시 자체는 물론 그 결과 개정이 필요한 국내법이 다수로 확인될 경우 파문이 예상된다.

    외교통상부 반기문 장관은 이날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참석, 외교부가 지난 14일 전 부처에 보낸 대외비공개 공문을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에 제출했다. 공문의 주요 내용은 ‘한미FTA 협상에서 현재 미국 측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경우, 국내적으로 법개정이 필요한 법령을 제출하라’는 것.

    심상정 의원, 대외비 공문 존재 포착

    외교통상부의 이 대외비 공문은 지난 23일 국회 한미FTA 특위 회의에서 심상정 의원의 질의를 통해 그 존재가 확인됐다. 심 의원은 지난 3일 이미 정부 전 부처에 공문을 보내 국내법에서 충돌되는 법령을 요청한 바 있다. 그러나 일부 부처들을 제외한 대다수 부처들이 자료 제출을 하지 않았다.

    심의원실 쪽의 말에 따르면 각 부처에 자료제출을 독촉하는 과정에서 각 부처 관계자들이 외교통상부에서 관련 자료를 밖으로 공개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려서 제출이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러한 정황을 파악한 심 의원이 23일 특위 회의에서 외교부 대외비 공문과 외부 유출을 금지한 보안 지시 여부에 대한 사실 확인을 요청한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회의에 참석한 김종훈 한미FTA수석대표는 “8월 14일 외교부 공문으로 각 부처에 미측 주장을 그대로 수용할 경우, 우리 국내적으로 법개정이 필요한 사항은 어떤 게 있는지 조사해 법령 목록을 제출해달라고 지시했고 현재까지 3개 부처에서 답신을 보내왔다”고 밝혔다.

    또한 “(국회에) 자료를 제출하겠지만 걸러지지 않은 채로 국민들에 전달되면 상당한 오해가 야기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특위에서 비공개 여부를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다른 곳에 주지 말라고 한 적은 없다”며 심 의원의 주장을 부인했다.

    권영길 의원, 집요한 제출 요청에 외통부 결국 공개

       
    ▲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질의를 하고 있는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사진=연합뉴스)
     

    이와 관련 25일 국회 통외통위에 참석한 반기문 장관도 “국회에 제출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해당 공문 발송 사실은 인정했다. 또한 권영길 의원의 해당 공문 제출 요청에 따라 대외비 공문을 공개했다. 반 장관은 “(해당 공문을) 대외비 문서에서 일반 문서로 직권 재분류하고 권영길 의원에 제출하고 각 부처에도 일반 문서로 재분류됐음을 통보하겠다”고 밝혔다.

    심 의원실은 이날 대외비 공문의 공개로 향후 각 부처로부터 국내법과 충돌되는 법령 자료를 제출받을 수 있는 근거가 확보됐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심상정 의원은 다음 주중에 각 부처에 관련 자료를 제출하도록 요청할 예정이다.

    심 의원 쪽은 “각 부처들이 외교부가 대외비로 조사를 지시해 조사 결과를 제출할 수 없다고 주장했었다”면서 “대외비 공문이 이날 공개된 만큼 이제 조사 결과를 제출 못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이미 국회 특위에 자료의 비공개여부 검토를 요청한 상태여서 관련 자료들이 일반에 완전 공개될 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자료 공개여부와 별개로 그간 국내법 충돌이 없다고 공언해 온 정부가 비공개로 각 부처에 관련 조사를 지시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비난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특히 이번 조사 결과 미국의 요구와 국내법이 상충되는 사례가 다수로 확인될 경우 파문이 확산될 수 있다. 정부는 그동안 한미FTA 협상에서 우리측이 제시한 내용은 국내법과 충돌하지 않고 다만, 미국측이 제안한 내용 가운데 세법과 충돌하는 것이 있을 뿐이라고 밝혀왔다.

    하지만 반기문 장관은 이날 “협상결과에 따라 국내법을 조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혀 추가적인 국내법 상충과 개정 가능성도 시사했다. 반면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법 개정은 상원과 하원의 영역으로 자신들의 권한 밖이라며 일찌감치 FTA 협상에 따라 기존 법과 제도를 고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밝히고 있어 불공정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고개 숙인 반 장관, 권영길 의원에게 사과

         
    ▲ 25일 오전 국회 통외통위에 출석한 반기문외교통상부장관이 2005년도 세입세출결산 관련 보고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한편 이날 통외통위에서는 대외비 공문이 제출되기까지 반 장관과 권 의원, 외교통상부 직원 사이 고성이 오가고 반 장관이 결국 사과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초 반 장관은 오전 회의에서 대외비 문서라며 열람만 할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권 의원의 “한미FTA가 체결되면 어떤 법이 저촉될 것이냐 하는 문서가 왜 대외비냐”는 지적에 공문 제출을 약속했다.

    그러나 장관이 자리를 비운 오후 회의에서 외교통상부 관계자들은 “장관이 열람에만 동의했다”며 공문 제출을 거부하고 나섰다. 이에 권 의원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며 오전 회의 속기록 확인을 요청했고 결국 반 장관이 공문 제출을 약속한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반 장관이 회의 속개에 앞서 권 의원에게 비밀문서라며 그냥 넘어갈 것을 요청했다고 권 의원측은 밝혔다. 이에 대해 권 의원이 “공식적으로 이야기하자”며 일축하자 반 장관은 외교부 직원들에 공문 제출을 지시하며 “아무것도 아닌 것 갖고…”라며 ‘급’이 안되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 의원이 장관의 발언을 강하게 반박하자 한 외교부 직원이 권 의원에게 “국회의원이 장관을 협박하는 것이냐”고 발언에 파문을 초래했다. 권 의원은 회의 속개 후 “의원을 무시하고 모독하는 처사에 대해 위원회의 적절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반 장관은 “저를 포함해 직원들이 권 의원께 불경스럽게 한 것을 사죄드린다”면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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