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준법감시위원회 역할?
'삼성 견제' vs '이재용 봐주기 명분용'
김지형 위원장 역할 의문 제기···'노조파괴 사측 대변'
    2020년 01월 09일 06:3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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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결심공판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삼성그룹 준법감시위원회’가 출범을 서두르고 있다. 준법감시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지형 전 대법관은 “삼성 개입을 완전히 배제하고 독자적으로 운영할 것”이라며, 준법감시위를 통해 삼성의 불법행위를 감시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삼성의 진의에 제기되는 의구심이 있지만 이런 불신을 넘어서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러나 삼성 자본으로 운영되는 준법감시위가 ‘삼성 견제’라는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전망이 더 많다. 준법감시위가 이재용 부회장이 다가올 선고에서 유리한 양형을 얻기 위한 도구로 활용될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김 전 대법관은 9일 오전 11시 자신이 대표 변호사로 있는 법무법인 ‘지평’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금 진행되는 총수의 형사재판에서 유리한 양형사유로 삼기 위한 면피용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있었다”면서 “그러나 무엇이 계기가 되었든 삼성이 먼저 벽문을 열었다는 사실 자체가 변화를 향한 신호라고 판단했다”며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직을 수락한 배경을 밝혔다.

그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설치에 관한) 진의에 많은 의구심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이런 불신을 넘어서야 한다. 이것은 일차적으로는 삼성이 풀어내야 할 과제인 동시에 위원회의 몫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기자간담회 중의 김지형 변호사

준법감시위 설치는 법원의 요구로 이뤄졌다.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을 맡은 서울고등법원은 삼성 측에 내부 불법 행위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준법감시위를 설치하라고 주문한 바 있다.

김 전 대법관은 위원장 수락 조건으로 ‘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대한 자율성과 독립성의 전적인 보장’을 요구했고, 삼성이 이를 수용했다고 전했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을 직접 만나 이에 대한 확답을 받았다고도 밝혔다.

위원장을 포함해 7인으로 구성되는 준법감시위 내정자 명단도 발표했다. 외부인사 6인과 내부인사 1인으로 구성됐다. 법조계에선 대검찰청 차장검사 출신 봉욱 변호사, 시민사회계에선 권태선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와 고계선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 학계에선 심인숙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학·경영전문대학원 교수다. 삼성 내부 인사로는 MBC보도국 부국장 출신의 이인용 삼성전자 사회공헌업무 총괄고문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김 전 대법관은 “외부위원을 압도적 다수로 배정하려고 했다. 위원회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라며 “위원 내정 권한도 처음부터 위원장인 제가 전권을 일임 받았다. 6명 내정자 전원은 삼성의 아무런 관여 없이 제가 독자적으로 판단해 참여를 권유했고 수락을 받았고, 회사 측 이인용 내정자도 예외 없이 제가 지정했다”고 설명했다.

준법감시위는 주요 계열사인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SDS, 삼성화재와 계열사 간 협약을 맺고 이달 말 이사회 결의를 거친 후 운영한다. 위원회 운영 경비는 7개 계열사들이 분담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석유시추선 수주 과정에서 뇌물을 준 혐의로 미국 법무부에서 벌금 900억을 내라는 판결을 받은 삼성중공업은 협약 대상에서 빠졌으나, 김 전 대법관은 그 이유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준법감시 분야엔 법 위반의 위험이 있는 대외 후원, 계열사나 특수관계인 사이의 내부거래, 협력업체와의 하도급 거래, 일감 몰아주기 등의 공정거래 분야나 뇌물수수나 부정청탁 등 부패행위 분야는 물론 노조 문제나 승계 문제 등도 포함된다.

그러나 준법감시위는 삼성의 기존 위법행위에 대해선 다루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대법관은 “준법감시위원회가 어느 사안까지 다룰 것인지, 과거 문제까지 다룰 것인지는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준법감시위가 설치된 이후 사안을 중심으로 다루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할 것”이라면서도 “아직 확정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전 대법관은 대략적인 운영방식과 관련해 “법 위반 위험요인을 인지하면 적절한 방식으로 조사 및 보고를 시행하고, 이에 따라 법 위반 사항이 확인되면 시정 및 제재 요구 등의 조치를 강구해 재발 방지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필요한 범위 안에서 계열사 준법지원인 등에게 보고, 자료제출 및 조치를 요구하겠다”며 “계열사 이사회가 위원회의 요구나 권고를 수용하지 않는 경우 이를 위원회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방법으로 공표하는 방안이 마련될 예정이다. 때에 따라 법 위반 사안을 직접 조사하기로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특히 회사 최고경영진의 법 위반 행위에 대해 위원회가 곧바로 신고를 받는 체계를 만들겠다. 그에 따라 법 위반 위험요인이나 위반행위를 적발할 경우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절차도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김 전 대법관은 운영방식이나 산업기술보호법을 근거로 삼성이 정보·자료제출을 거부할 경우에 대한 대응책 등 구체적인 방향성에 대해선 정해진 것이 없다고도 밝혔다.

그는 “삼성과 삼성의 최고경영진은 구별해서 봐야 한다. 최고경영진이 변해야 삼성이 변하고, 삼성이 변해야 기업 전반이 변하고, 기업 전반이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며 “위원회의 기능과 역할도 여기에 초점을 모아 삼성 최고경영진의 법 위반 리스크를 철저히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성범대위 등의 기자회견(사진=유하라)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삼성전자서비스지회, 삼성전자노조, 유성범대위 등은 이날 오전 10시 간담회가 열린 지평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준법감시위원회 발족은 삼성 이재용 봐주기”라며 준법감시위 설치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김태연 유성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은 “서울고법은 이례적으로 삼성에 준법감시기구를 만들라고 했다. 범죄에 대해 법의 잣대로 심판해야 할 재판부가 이재용을 구속하지 않기 위한 명분을 만들기 위해 이러한 주문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 대법관 전력도 준법감시위의에 대한 회의적 전망의 근거가 된다. 그는 2016년 구의역 사고 진상규명위원장, 2018년 김용균씨 사망 사고 관련 진상규명위원장을 맡으며 진보성향 법조인사로 불렸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유성기업 노조파괴 사건의 사측 법적 대리인이기도 했고 현대·기아차, 현대위아 등 현대차 계열사의 불법파견 소송의 사측 대리인까지 맡았다. 판사 시절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혐의를 무죄로 판결해, 삼성의 편법승계에 사실상 힘을 실었다. 여론의 관심이 집중된 사회 활동에서와 달리, 법조인으로서 재판에 임할 땐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온 셈이다.

김태연 위원장은 “김지형 변호사가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것에서부터 (편법승계를 위한) 이재용 국정농단은 시작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노조파괴를 저지른 회사 측을 변호한 것에 대해서도 “법조인의 주무기는 판결과 변론이다. 김지형 변호사는 그 주무기로 그간 재벌을 비롯한 자본의 편을 노골적으로 들었다. 그가 다른 진보적인 활동했다고 해서 결코 진보의 아이콘이 될 순 없다”고 말했다.

노동계에 따르면, 김 전 대법관은 유성기업 노조파괴 사건 사측 대리인으로서 주로 대법원 심의를 주로 대리했다. 해당 재판에서 어용노조설립무효소송과 직장폐쇄기간 임금청구소송, 해고무효소송 등 어용노조설립이 유효하고, 직장폐쇄 및 해고가 정당하다고 주장해왔다.

유성범대위 등은 “전 대법관 출신이라는 이유로 그는 대법원 심의에서 주로 대리한 것은 한국 법조계에 뿌리 깊이 박힌 전관예우, 공공연한 선후배 관계 등을 악용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명숙 인권운동 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는 “노조파괴를 한 유성기업을 대변하면서 동일한 시기에 김용균 구의역 사건 맡은 것은 자기분열적 태도”라며 “이것은 진보적인 지식인에 대한 흠집내기가 아니다. 김지형 변호사는 단순히 갈지자 아니고 왼손과 오른손이 다른 행동을 한 것이다. 사임 의사를 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들은 “노조파괴 자본을 변호하며 유성기업 노동자들에게 긴 시간의 고통을 안겨준 장본인인 김지형 변호사를 삼성그룹의 준법감시위원장으로 내정한 것은 스스로 기만성을 드러낼 뿐”이라며 “준법감시위원회가 얼마나 허울뿐인지를, 법을 우롱하는 기구인지를 실토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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