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당 총선전략 단상,
    사당화의 우려 혹은 비판
    [기자생각] 어떤 한 평당원의 편지
        2020년 01월 09일 02:1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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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총선에서는 비록 50% 연동형이라는 반쪽짜리에 그치고 이마저도 최종 본회의 통과 시점에서는 민주당의 압박에 지역구-비례 253석-47석의 현행 의석비율을 유지하고 비례의석 30석에 한해서만 연동형을 도입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사상 처음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정치적 사활을 걸었던 정의당이 이번 선거제도 변화를 통해 상당한 수혜를 얻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지만, 정작 정의당의 총선전략은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제도적 성과는 거두었지만 이를 진보정당의 진보적 정체성을 강화하면서 당 성장의 모멘텀으로 활용하기보다는 무차별적인 외연 확장과 당 대표의 지나친 독주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정의당의 ‘사당화’ 현상에 대한 우려도 제기한다.

    심상정 대표는 작년 여름 당대표 경선 과정에서 가장 크게 목소리를 높였던 것이 ‘비례대표 정당’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의미 있는 지적이기도 했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통합진보당, 정의당 등 진보정당의 역사에서 지역구 선출 의원보다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비중이 훨씬 컸고 지역구에서는 노회찬, 심상정, 권영길, 강기갑, 조승수, 여영국 등 몇 명으로 한정되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민주당 등과의 후보단일화를 통한 경우가 많았고 민주당-자유한국당 등이 일정한 세력을 확보한 수도권 지역에서 3파전을 통해 돌파한 경우는 노회찬-심상정이 거의 유이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진보정당의 장기 발전을 위해서는 3파전 구도에서도 승리하거나 성과를 낼 수 있는 지지 기반과 자기 전략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런 진단과 달리 심상정 대표의 처방은 ‘개방형 경선제’의 도입을 통한 국회의원 후보 선출이었다. 그것도 지역구 후보가 아니라 비례대표 후보에 한해서 당원과 함께 국민들의 선거인단을 통해 선출하겠다는 것이었다. 비례대표 정당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게 지역구 후보의 활성화와 강화를 위한 방안이 아니라 비례대표 후보의 개방형 선출로 귀결되는 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진보정당의 중요한 정체성의 하나였던 진성당원제, 진보적 이념과 정책에 대한 동질적 이해에 근거한 결사체라는 기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각설하고. 비례대표 후보 선출에 개방형 경선제를 도입하기로 정의당은 결정했다. 그리고 연동형이 아니라 연동형의 냄새만 나는 연동‘향’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여하튼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었다. 정의당이 제도적 혜택을 얻을 것이라는 전망들이 많다. 최소한 지난 20대 총선 때의 비례대표 4석보다는 많게 획득할 것이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거꾸로 제도가 족쇄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즉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실제 창당하고 추진해 그들의 정당 지지율 정도의 지지를 얻는다면 연동형 제도의 의미는 완전 백지화되기 때문이다. 물론 법적 제약도 적지 않고 무엇보다 위성정당의 꼼수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 의식이 상당하기에 쉽지는 않을 것이다.(그럼에도 20석 넘는다는 등 정의당의 총선 예측 수치는 과도하거나 근거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정의당 신년회 모습(사진=정의당)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정의당의 총선전략이 우왕좌왕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첫째, 비례대표에서의 상당한 성과를 얻을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정의당의 지역구 후보들이 오히려 축소되고 비례대표 경선에 나서는 후보들이 지역구 후보의 숫자를 넘어설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이는 ‘비례대표 정당’을 극복하겠다는 심상정 대표의 공약과 전략이 실패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지역구 후보들에 대한 재정적 지원과 전략후보, 유력후보와 같은 수사적 표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 지역구 후보들이 어떻게 정의당의 기둥이자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로드맵과 계획 자체가 부재하다는 점이다. 지역구에서의 당락 못지않게 중요한 게 이들의 정치적 성장에 대한 당적 조직적 계획이라는 점에서 그 부재는 크다.

    둘째, 비례대표 후보를 염두에 둔 무차별적인 영입 전략이다. 지금 정의당에는 인력과 재정, 계획이 뒷받침되고 있지만 않은 ‘특위’가 수십 개나 있다. 영입 인사들이나 비례대표 경선에 나설 인사들에 대한 직함용 성격이 강하다. 작년 하반기 특정지역 향우회 조직을 통해 수천명이 정의당에 입당했는데 상당수가 입당 사실도 몰랐고 대리 입당의 의혹도 제기되어 이들 중 상당수 인원의 입당 처리가 안 되었던 사건이 있다. 이 의혹이 많았던 집단입당을 주도했던 향우회 인사도 특위 위원장으로 임명되어 있다. 선거를 위해 자리를 만들고 그 자리에 영입인사를 임명하는 패턴, 기성정치권에서 많이 보던 모습 아닌가? 극복하자면서 닮아가는 것 아닌가? 또 이런 비례대표 과잉 현상은 결국 진보의 정치, 계급의 정치가 아니라 ‘욕망’의 정치를 부추기고 있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정치에서 욕망 자체를 금기시할 필요는 전혀 없다. 다만 그 욕망의 정치만 과잉되는 것은 분명 적신호이다.

    셋째 김종민 부대표가 일부 당원들에게 보내는 ‘이메일 브리핑’을 보면 총선기획단에서 비례대표 명부를 20번 이상으로 구성하고, 이를 전략명부 50%, 일반경쟁명부 50%를 도입하자는 의견이라고 한다. 8일 열린 정의당 시도당위원장 연석회의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얘기들이 오간 것으로 확인된다. 당선 가능한 비례대표 명부를 24번까지를 보고, 50%(12석)는 현행 당원과 선거인단의 경선 투표를 통해 선출하고, 나머지 50%는 전략명부로 구성, 전략명부 50% 중에서 20%(4~5석)은 청년할당, 10%(2석)는 장애인할당 그리고 남은 20%(4~5석)는 개방할당으로 하자는 것으로 심상정 대표의 의견이었다고 한다.

    개방할당은 한마디로 선거권이 없는 외부 인사에 대해서 당 대표가 영입을 하고 후보로 배정하는 전략공천권을 의미한다. 이 전략공천과 관련해서는 구체적으로 한국노총의 모 노조와 협력관계를 모색하면서 지도급 인사를 후보로, 또 청년정치조직(당)과의 통합 또는 전략적 협력을 매개로 후보 1~2명, 또 영향력 있는 시민단체에 대해서도 후보를 매개로 영입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당 대표에게 공천권을 달라는 거다. 과거 거대정당들의 제왕적 총재의 공천권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과 관련해서 떠오르는 진보정치 내의 오래된 논점이 있다. ‘대중적 진보정당’과 ‘진보적 대중정당’을 둘러싼 담론이다. 고책창연하고 관념적 논점이라고 치부하기도 하지만 내 생각에는 중요한 함의를 가진 논점이다.

    ‘대중적 진보정당’론은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유지 강화하면서 그것의 대중적 기반과 세력, 영향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의 문제설정이라면, ‘진보적 대중정당’론은 대중정당이 1차적 자기 정체성이다. 대중정당의 대표적 존재는 한국에서 자유당과 민주당이다. 즉 이런 대중정당에서 보수적 색깔이 아니라 진보적 색깔을 어떻게 강화할 것이냐의 논리이다. 즉 ‘대중적 진보정당’ 담론은 정의당 등 진보정당의 논리라면 ‘진보적 대중정당’ 담론은 민주당 내의 개혁파들이 고민해야 할 논리라는 게 내 판단이다.

    그런 점에서 개방형 경선제는 진보적 대중정당의 경계로 넘어가는 첫 단계로 보이고 전략명부와 전략공천권을 둘러싼 논점은 진보정당의 경계를 훌쩍 넘어 ‘제왕적 총재’ ‘사당화’라는 구태의 냄새를 풍긴다는 생각이다. 하기야 현재 한국의 정치에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개혁, 권력 분산을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뜨거웠던 논점이 까마득한 옛날의 언어로 전락한 지도 오래되었으니.

    사족으로 하나 덧붙이면 김종민 정의당 부대표가 정기적으로 보내서 받아보는 이메일 브리핑이 있다. 아마도 이러저런 인연과 활동 속에서 알게 된 당원들에게 보내는 걸로 보인다. 정치적 맥락과 정보 등을 전해주는 것에는 당 공식 이메일보다 더 유용한 편이다. 그런데 당 개별 지도부의 이런 활동도 중요하지만 당의 정책, 정보, 정치적 맥락을 당원들이나 지지자들에게 설명하고 알리는 당 (온·오프라인) 기관지나 출판물, 미디어 등에 대한 정의당의 전략이 더 시급하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장, 전 진보신당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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