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의 승리, 얻은 것과 잃은 것
    [책소개] 『기독교는 어떻게 역사의 승자가 되었나』(바트 어만(지은이) /갈라파고스)
        2020년 01월 05일 02:0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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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는 로마 제국을 장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극단적으로 바꿔놓았다. … 정부의 관행과 입법 경향, 미술과 문학, 음악, 철학, 나아가 (훨씬 근본적인 수준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수십억 사람들의 이해 자체에 영향을 준 대변혁이었다. 이 변화의 가치를 우리가 어떻게 평가하든, 즉 서구 세계의 기독교화가 인류가 소중히 여길 만한 승리였든 아니면 애석해할 패배였든, 우리 세계가 경험한 가장 기념비적인 문화적 변모였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pp. 422~423)

    유명한 성서학자이자 그리스도교의 역사.문헌.전통에 대한 뛰어난 해설가인 저자 바트 어만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전작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에서는 예수 신화의 역사적 연원을 돌아보았고, 『고통, 인간의 문제인가 신의 문제인가』에서는 ‘신이 있다면 이 세상에는 왜 이렇게 많은 고통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고통과 신앙의 관계를 분석했다면 신간 『기독교는 어떻게 역사의 승자가 되었나?』는 다신주의 국가 로마에서 지역의 작은 유대 종파에 불과했던 기독교가 어떻게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가 되었는지 알아본다.

    현재 지구상에서 성서를 가장 많이 본 인물일 수도 있는 저자는 어쩌면 불가지론자의 태도로 이 문제를 분석해나간다. 알 수 없는 것을 성급히 판단하지 않으며 납득 가능한 방대한 자료들로부터 촘촘히 논증한다. 어떤 것도 단언하거나 당위적으로 분석하지 않고 합리적인 논증으로 판단 근거를 제시한다. 이 책이 ‘기독교’를 축으로 하는 탄탄한 역사서로 읽히는 까닭이다.

    다신주의 국가 로마에서 지역의 작은 유대 종파로 시작한 기독교
    기독교는 어떻게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나?

    그렇다면 도대체 불과 20명의 신도로 시작한 지역의 작은 유대 종파였던 기독교는 어떻게 등장 400년 만에 3천만 명의 신자를 얻을 수 있었을까?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이 성공은 필연이었을까 우연이었을까? 이 복잡한 주제 앞에서 저자 바트 어만은 역사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방식을 택한다. 초기 신도들이 겪은 기적, 바울을 위시한 중요한 선교자들의 포교 방식, 이교 종교들에 비해 엄격했던 기독교의 윤리, 소외된 자들을 향한 교회 공동체의 자선 활동,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종, 로마 황제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되면서 교회가 얻은 혜택과 타종교에 대한 기독교 특유의 배타적인 성격이 어떻게 기독교에 힘을 실어주었는지를 차근차근 살펴본다.

    그중에서도 저자가 특히 강조하는 요인은 ‘기독교의 배타성’이다. 다신주의 국가였던 로마는 사람들의 일상에 여러 종교가 함께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문화였다. 사람들은 각자 원하는 대로 유피테르나 아폴로, 다이아나, 미트라, 이시스를 섬길 수 있었다.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신이 있었고 심지어 한 사람이 무한한 수의 신을 섬길 수도 있었다. 당시 거의 유일한 유일신 종교였던 유대교 역시 다신교 세계를 인정했다. 다신주의 세계에서는 언제나 새로운 종교 관행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 자신이 택한 종교만이 진실에 닿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드물었다.

    그러나 기독교는 달랐다. 기독교도가 된다는 것은 배타적 선택을 감행하는 것이었다. 이교 세계에서는 아폴로와 미트라를 함께 섬길 수 있었지만 기독교는 달랐다. 기독교로 개종한다는 것은 이교도였던 자신의 과거, 따랐던 이교 관습, 섬기던 이교 신들 모두에게서 등을 돌린다는 의미였다. 기독교 신자가 한 명 늘 때마다 이교도는 한 명 줄어들 수밖에 없었으므로 기독교의 성장은 필연적으로 이교주의의 축소를 가져왔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왜 배타적인 성격을 띠었을까? 저자는 기독교가 당시 이교들과는 다르게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할애되는 종교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교에서는 종교의식을 치를 때만 그 종교성이 드러났다면 기독교는 달랐다. 세례나 식사, 기도, 찬양 등의 의식 역시 중요한 부분이었지만 일부에 불과했다. 기독교는 윤리와 신(세계)을 이해하는 방식 등이 개인의 일생 전체와 관계 맺는 종교였다. 이때의 기독교는 삶의 요소라기보다는 삶을 움직이는 시스템이었고, 다신주의 세계에서는 허용되었던 여러 이질적인 요소를 포함하기에 삶 전반에 관여하는 이 시스템에는 틈이 없었다.

    기독교의 승리와 다신교 세계의 패배라는 역사를 딛고 있는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포기했을까

    이 책은 기본적으로 기독교가 왜 승리했는지, 어떻게 승리했는지를 성실히 분석하는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지금 우리가 향유하는 사회, 문화 전반의 토대가 되는 기독교의 역사와 정신을 가깝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나는 이 책을 승리주의적 논조로 쓰지 않으려 한다. … 궁극적으로 좋다 혹은 궁극적으로 나쁘다는 식의 가치 판단에서 한 발 떨어져, 역사학자로서 중립을 유지할 것이다. 이는 일면 기독교의 승리에 상실이, 특히 독실한 타 종교 신봉자들의 상실이 따랐기 때문이다. 한 무리가 싸움에서 이기면, 반드시 지는 무리도 있다. 이 문제에 역사적 관심을 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승자와 패자 모두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pp.15~16)

    책의 서두에서부터 ‘승리의 역사’와 ‘패배의 역사’ 모두 살피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한 저자는 이 책을 기독교가 왜, 어떻게 승리했는지를 서술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기독교 영향권 문화 속에서 살아가게 된 지금, 이러한 역사의 선택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얻게 했고 무엇을 포기하게 했을까? 사회가 제도로써 가난한 자와 약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들에게 마땅한 보살핌을 제공해야 한다는 개념은 기독교가 닦은 길일 것이다. 그 외에도 철학과 다양한 예술 작품들이 걸어온 길과도 기독교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상실을 저자는 ‘다양성’이라는 키워드로 꿰맨다. 기독교의 승리와 맞바꾼, 다신주의 세계에서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던 커다란 자산 중 하나는 ‘다름에 대한 관용’이 아니었겠냐는 추측이다. 만약 우리가 아직도 다신주의 영향권 속에서 살고 있다면 어땠을까? 저자가 던지는 질문은 우리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다양성’이란 단어를 만지작거리며 상상하게 한다.

    상상의 동물 용이 소의 머리, 사슴의 뿔, 뱀의 배, 물고기의 꼬리의 조합이듯이 상상은 아무런 질료 없이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무엇을 지나왔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지 면밀히 훑어보는 이 여정은 지금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 우리가 놓친 것, 결코 잃을 수 없는 것을 찬찬히 생각해보며 지금과 다음을 상상하게 하는 좋은 재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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