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언자-되기’로서의 혁명
    [소설과 한국사회] 이청준 「예언자」
        2020년 01월 03일 11: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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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이 저물었다. 전 세계적으로 ‘저항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콩, 프랑스, 이탈리아 중남미 다수국가의 시민들의 절규가 거리를 뒤덮었다. 가까이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던 홍콩은 재작년 6월부터 시위가 일상이었으며 죽음도 일상이 됐다. 피 흘리고 쓰러진 젊은이들 사진이 휴대폰 안에 자주 전송됐다. 홍콩 전체 인구 750만 명의 30% 달하는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졌음에도 무차별적 폭력은 계속됐다. ‘프론트 라이너 (Front-Liner)’. 전방 시위대 또는 최전선으로 직역된다. 홍콩 시위의 가장 앞에서 경찰과의 전쟁을 치르며, 시위대의 퇴로를 확보하는 역할을 한다. 전방 시위대의 다수는 경찰에 맞서다가 중상을 입거나, 체포됐다. 홍콩 경찰이 쏜 실탄을 맞고 중상 입은 사람도 전방 시위대 중 하나였다.

    이들은 평범한 학생이었다. 시위대 내에 있는 학생은 흰 헬멧 위에 이렇게 적었다. “유서가 제 주머니에 있습니다. 제가 심각한 부상을 입었을 때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심폐 소생술을 하지 마세요”라고 쓰여 있었다. 또 다른 학생은 “만약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내 신체 기관을 기증해달라”고 남겼다. “매번 시위에 참여할 때마다 죽음을 예상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홍콩을 위해 무조건 이겨야 한다.” 적혀 있었다. 그들은 자필 유서를 쓰며 ‘무엇이 두려운가’ 반문했고 최루탄 속으로 뛰어들었다.

    죽음을 불사하는 혁명은 무엇일까. 온전한 자유를 위해 온전한 생존을 바치는 혁명은 혁명이 완수되지 않은 현실로부터 온다. 어쩌면 이론가들이 말하는 거룩한 역사의 필연성 따위는 없는지도 모른다. 죽음은 그가 누구든 생사 투쟁이자 정치적 표현의 극단이다. 혁명가의 죽음은 역사책 속에 불쑥 등장하는 어떤 당혹스러움 같은 것이며 그 당혹스러움 쪽을 보고 있자면 한 인간이 자기 시대를 껴안고 지금 여기에 보내온 어떤 無에 관한 보고로 읽힌다.

    이청준의 「예언자」는 ‘예언자 되기’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나우현은 동네 사람들을 보면 이따금씩 일어날 사고, 갈등, 불행을 걱정했다. 그런 그의 우려는 늘 적중했다. “예언은 마치 사람들 스스로가 그의 예언에 복종하여 그것을 실현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정확했다. 그리고 그것의 그렇게 정확한 만큼 사람들은 그의 예언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마을에 여왕봉이라는 살롱이 생기고 살롱의 주인인 홍마담은 모두가 가면을 써야만 살롱에 출입할 수 있다는 이상한 규칙을 만든다. 여왕봉에선 홍마담이 제공한 가면을 쓰고 술을 마셔야 하며 그 누구도 가면을 벗을 수 없다. 그 뒤로 여왕봉의 매출은 올라간다. 가면은 수상한 위력을 발휘한다. “서로가 애초의 탈 이름으로 상대방을 부르면서 탈에 알맞은 거동을 행사했다. 그러면서 각자가 자기 가면의 내력에 복종하며 스스로 가면의 사연들을 닮아가고 있었다.” 소설가 나우현은 자기에게 맞는 가면을 가지지 못했다. “그것을 머릿속에 기억해 두고 있지도 못했다.” 그 뒤로 나우현의 예언은 중단된다. 그럴수록 홍마담은 여왕봉의 지배자로 군림했다. 심복을 곁에 두고 가면 쓴 손님들을 지배했다. 나우현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홍마담은 불길했다. 여왕봉의 새로운 질서를 누군가 무너뜨릴 것만 같았다. 영문 모를 불안이 홍마담을 괴롭혔다. 그러던 중 홍마담은 자기 심복에게 무차별적 폭력을 가한다. 이를 지켜보던 나우현은 마지막 예언을 한다.

    “살인은 저 여자에 지배력의 완성을 뜻하기 때문이오. 가장 완벽한 지배의 방식은 죽음 이상의 방법이 없는 것이오. 저 여잔 살인으로 그녀의 지배력을 완성시킬 것이오. 그리고 그녀는 진짜 여왕봉의 여왕벌이 됩니다.”(247쪽)

    나우현의 예언 때문에 여왕봉 손님들은 초조했다. 불안스러운 나날이 이어졌다. 살인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럴수록 홍마담은 난폭해졌다. 홍마담은 공공연하게 자기 심복에게 채찍을 휘둘렀다. 끔찍하고 잔학스런 유희는 극에 달했고, 참으로 완벽하고도 압도적인 지배력의 시위가 매일 벌어졌다.

    “우리는 그 마담을 두려워하진 않습니다. 우리는 다만 살인이 있으리라는 그의 예언을 두려워해 온 것뿐입니다. 그는 살인의 예언으로 우리를 협박한 것입니다.”(262쪽)

    나우현은 선택해야 했다. “이종의 운명 철학자”로서 “액막이의 처방력이 없다는 점”에서 자신의 예언을 완성할 사람은 오직 자신뿐임을. 그는 저주받은 주술사였다. 결국 나우현은 자신을 죽이려고 다가오는 홍마담의 심복을 피하지 않고 마주한다.

    예언자는 파멸을 알면서 자기 예언의 실현이라는 필연적 운명을 받아들인다. 지배체제의 폭압을 예언하고 스스로 그 예언을 달성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다. 예언자는 기꺼이 암흑에 자신을 내어준다.

    혁명을 도모한 인간은 궁극적으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 죽음을 향해 몸을 돌린 이들은 자기 실존을 지키기 위해 무엇보다 강력한 無에 직면한다. 혁명가의 예언은 가장 고유한 자기를 향한 결의다. 파멸을 감내하는 말 없는 자기 기투로서 그들의 유서는 예언이 된다.

    1949년 이후 중국공산당은 오랫동안 ‘집권 혁명당’이었다. 중국공산당은 군중을 동원하고 절대적 통치술을 부여해 일반적 의미의 정당과 관료 체계로서의 국가를 초월한다. 1992년 시장화 이후 경제 불평등은 계속됐다. 홍콩의 금융 부동산 자본은 불합리한 경제 구조를 형성했다. “이전 50년은 변할 수 없었고, 50년 후는 변할 필요가 없다.” 는 역사적 진단은 위험했다. 이 확고한 명명은 사회모순을 덮는 언어였고 수단의 폭력을 용인했다.

    1984년 공동선언 후 홍콩의 지위에 관해 협의를 시작했을 당시 중국은 홍콩에서 시장경제가 펼쳐지길 기대했다. 반면, 영국의 종속지역이었던 홍콩의 시민들이 바랐던 것은 참정권이나 자치권이었다. 영국과 중국은 긴 협상 끝에 ‘한 나라 두 체제(일국양제, 一國兩制)’를 채택했다. 1997년 반환 이후 홍콩은 높은 경제적 수준을 유지했고, 사법 독립성, 이주와 사상의 자유를 보장받았다. 그러나 2014년 중국 정부가 행정장관 직선제를 거부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중국 정부는 행정장관 후보자를 직접 추천하는 조건으로 직선제 도입을 수락했고 행정장관에 캐리 람이 당선됐다. 반대파는 배제됐다.

    ‘독재 중국 본토에 대한 민주 홍콩의 저항’이라는 틀이 운동의 구체적인 내용을 가리기도 했다. 단순히 ‘민주’와 ‘독재’를 홍콩과 중국 본토의 관계로 보는 것은 정확한 진단이 아니다. 홍콩 사람들을 두렵게 하는 것은 홍콩인으로서의 정체성 상실이었다. 이는 관념적 불안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의 부재에서 왔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보스>에 따르면 홍콩은 억만장자가 가장 많이 사는 부유한 도시지만, 홍콩 인구의 20%는 극심한 빈곤에 시달렸다. 연금 없는 노년층, 불안정한 임금노동자들은 쪽방촌에 거주했다. 청년들마저 열악한 생활고로 내몰렸다.

    람 행정장관은 완력으로 600명 넘는 인원을 구속했다. 한편, 조치를 취하기 위해 191억 홍콩 달러(약 21억 유로)에 달하는 몇 가지를 이행하기로 약속했다. 소득세 감면, 저소득층에 대한 전기세 지원, 취약계층 학생 후원에 해당하는 내용이었다. 때문에 ‘분권’이나 ‘주권-통치권’의 구도로 홍콩 문제를 분석하는 것은 단지 문제의 일부만을 보는 일이다. 오늘의 홍콩 문제는 중국 정치의 총체적 모순을 드러낸다. 중국 본토에 대한 홍콩시민들의 심리적 간극은 추상적인 민주화 투쟁이란 기표로 드러났다. 그 심부에는 관료들의 부정부패, 가속화되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불평등이라는 사실이 있다. 민주화의 요구라는 가면을 쓰고 생존의 위협 속에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라는 생사투쟁이었다.

    많은 이들의 목숨값으로 형식적 민주주의를 획득한 한국의 상황도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마치 가면만 쓰면 모든 안위가 보장된다는 여왕봉의 질서는 “풍속적 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권력은 진화했다. 폭압적 지배가 아닌 가면놀이와 같은 쾌락을 생산 제공하며 교묘한 술수로 둔갑한다. 산업화와 맹목적 경제성장이란 가파른 길을 오르는 동안 무수히 많은 이들이 추락했다. 마치 “탈을 쓰고 간밤에 어떤 일을 저질렀건 이튿날 아침에는 서로가 그것을 말하지” 않으면서 기만적 사회 구조에 타협적이고 자발적으로 복종했다. 경제만 성장하면 모두가 행복할 거라는 일방적 확고함은 정신승리의 원천이었으며 무수히 터져 나오는 문제를 방치하고 덮으며 앞다투어 각자의 지대를 추구했다.

    그러나 그의 예언은 그 정확한 신통력에도 불구하고 다가오는 운명에 대비할 사전 처방이 없다는 점에서 현실 질서에 아무런 변화를 초래할 수 없으며 무력하다. 이처럼 누구도 달가워하지 않는 내용을, 그것을 피해 낼 방법을 내놓은 적이 없이 제기한다는 점에서 그는 “저주받은 주술사”다. (329쪽)

    그럼에도 역사의 참호를 뚫고 나온 예언자들이 있었다. 잘 닦인 도로와 휘황한 빌딩 숲을 골고다라고 명명한 예언자. 그들의 모든 죽음을 단순히 ‘역사적’인 것으로 환원하기에 보편적 죽음은 개별적 사건이며 당면한 고통이다. 거기엔 예언의 완성이라는 절체절명의 소명이 있었다. 죽음에로의 선구적 결의는 유언으로 완성된다.

    체제의 전횡적 지배 속에서 핏값을 지불해 얻은 혁명은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다. 수 세기 동안 유언을 자신의 행동과 일치시킨 자생적 예언자들이 출몰했다. 그들의 사멸은 감춰진 진실을 드러낸 언어의 탄생이자 시대의 순명한 계시였다. 그래서일까 시인은‘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라고 물어놓고 뒤이어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 라고 스스로 답했다.

    필자소개
    추계예술대학교에서 소설 창작기법을 연구했으며 성균관대 박사과정에서 현대 문학평론을 공부하고 있다. 독서코칭 리더로 청소년들과 붉은 고전읽기를 15년간 진행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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