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이야기하지 않는 정부
[에정칼럼] 정부에 희망 못 느낀다면 더 과감하게···
    2020년 01월 02일 09: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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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20일, 네덜란드 대법원이 네덜란드 정부에 기후변화 대응은 정부의 의무라며, 기후변화 대응을 명령했다. 앞으로 네덜란드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25%를 감축해야 한다. 이번 소송은 환경단체와 시민 약 900여명이 네덜란드 정부를 대상으로 제기한 것이다. 대법원은 전 지구적으로 생명과 복지, 삶과 환경이 위협받고 있다면서, 국가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기여를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판결문에 명시했다. 네덜란드의 판결은 온실가스 감축의무가 정부에게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준 사례로 의미가 남다르다.

정부의 의무라는 점은 곧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정부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지난 12월 19일에 발표된 ‘2020년 경제정책방향’을 들여다보면 유추해볼 수 있다. 120페이지가 넘는 정책 문서에서 기후 대응과 관련된 언급은 단 세 차례가 있었다. 미래 대응이라는 전략 중 ‘기후변화 선제적 대응’ 이라는 키워드가 있었고, 구체적인 방안으로 2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한 범부처 이행 점검평가 체계 구축’과 ‘배출권거래시장 기능 강화’였다.

나머지 페이지를 읽어보면 기후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지 상당히 의문이 드는 지점들이 여럿 있다. 대규모 시설에 투자하여 경제성장을 도모한다는 명목으로 울산 석유화학 공장 건립에 약 7조원을 투자, 여수 석유화학공장 건립에 1.2조원 투자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명시되어 있다. 하나의 정책 문서에 기후변화 선제적 대응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기술하고 발표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당황스럽다. 어쩌면 기후변화 선제대응을 범부처 이행점검평가체계 구축과 배출권거래시장 기능 강화 정도로만 보고 있는 정부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 정부는 현재 해외정부들이 넷제로(net zero)를 선언하거나,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정부차원에서 주도하는 기후위기 대응정책을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나라 정부는 기후위기를 이야기하지 않는 것인가? 지금 당장 시스템 전환을 이야기하기엔 사회의 여러 부분에 닥칠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 국민들을 설득할 힘이 없어서 그런 것인가? 당장의 전환이 어렵다면 현재까지 수립된 한국의 장기 비전은 어떠한가.

지난 12월 12일 정부가 발표한 ‘혁신적 포용국가 미래비전 2045’는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인 혁신적 포용국가를 완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과제들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두고 기후위기에 대한 문제의식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체제 전환의 계획은 전혀 제시하고 있지 않다는 일각의 비판을 들을 수 있었다. 한편 경향신문이 단독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2020년까지 제출해야 하는 2050 저탄소발전전략 권고안(초안)에는 온실가스 순배출량 제로 시나리오가 제외되었다고 한다. 실현에 어려움을 예상했으며 이를 위해 보다 광범위한 국민 공감대 형성이 필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후 포럼 내부에서 추가의견 수렴을 통해 가까스로 넷제로를 고려하기 위한 긍정적인 문구로 수정하겠다는 피드백이 돌아왔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씁쓸할 뿐이다. 정책 참여도를 높이기 위한 공감대 형성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민의 공감대와 수용성을 앞세워 당장은 힘들다는 의견은 국민의 삶과 생명, 환경에 책임지지 않겠다는 변명으로 들릴 뿐이다. 이렇듯 정부에서 수립하고 있는 단기계획과 중장기 로드맵들을 보면 기후위기를 제대로 인식하고 그에 걸 맞는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위기가 위기임을 인식하지 못한 자들이 정치의 자리에서 권력을 잡고 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경제와 정치사회의 시스템전환, 급격한 온실가스 감축은 변화하지 않는 정치세력에 의해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외부의 상황을 만들어내고 더 나아가 압박을 만들어내야 한다. 압박을 통해서 보장받아야 하는 것은 체제전환을 위한 정치와 제도의 변화이다. 제도적으로 시스템전환이 가능하도록 기틀을 만들어 정치적인 연속성을 담보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과 장관, 국회의원, 시장들이 바뀌어도 기후위기 대응정책은 가속해서 이행하는 것이다. 사람이 바뀌어도 지금이 기후위기라는 진실은 바뀌지 않는다.

급격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사회에 요구되는 것들이 있다. 노후석탄발전소 연장을 금지하고 폐쇄를 앞당겨야 한다. 신규석탄발전소는 짓지 말아야 한다. 내연기관차는 빠른 시일 내에 퇴출시켜야 한다. 하지만 수립되는 정책과의 갭은 크게만 느껴진다. 정책을 수립하는 자들의 어려움을 유추할 수는 있지만 그들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고 해서 감축해야만 하는 온실가스 양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정부와 정치인들이 해야 하는 일은 이 사회가 감당해야 하는 것들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정부와 정치인들의 기후위기 문제의식 부재를 지속적으로 지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019년 한 해를 돌이켜보면 정부의 기후위기 문제의식 부재와 빠르고 강력한 대응을 촉구하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었다. 기존의 환경단체 뿐만 아니라 청년과 청소년들이 목소리 내기 시작했고 다양한 분야의 시민들이 모여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출범하기도 했다. 이들이 목소리는 항상 정부를 향해 있었다. 기후위기 비상선언을 하고,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전담조직을 구성하는 것, 기후정의를 실현하고 정의로운 전환을 바탕으로 정책을 수립하는 것 등등 정부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누군가가 그랬다. 정치인들의 입에서 기후위기를 선언하게 하고, 시스템전환, 정의로운 전환, 기후정의라는 말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거기서부터 변화는 시작되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의 정치는 기후위기를 말하지 않는다. 미국의 청년들이 조직한 선라이즈 무브먼트(Sunrise Movement)는 기후위기를 직시하고 이를 위한 사회의 돌파구로서 그린뉴딜을 이야기하는 정치인들을 지지하는 운동을 전개한다. 기후위기와 그린뉴딜을 이야기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을 찾아가서 따지기도 한다. 그런 과정에서 연행되기도 하는데 이를 동영상으로 배포하여 자신들의 활동과 정치인들의 권위적인 대응을 알리기도 한다. 우리에게도 이런 전략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는 기후위기를 말하는 정부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정부를 기대하는 것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 듯하다. 기후위기에 반응 없는 정부로부터 아무런 희망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더 과감해져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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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결의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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