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붉은오늘] '박헌영은 미제의 간첩인가' 3부
        2019년 12월 30일 11: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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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 자리에 오기 훨씬 전부터 살아나갈 수 없는 신세임을 느끼고 있었다. 이 재판은 말 그대로 요식일 뿐, 어떠한 최후 진술도 너희들의 각본을 뒤집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남로당 간부들은 모두 조국의 해방과 통일, 사회주의 혁명과업을 위해 밤낮으로 일해 온 정직한 애국자들이다. 나에게 떨어진 죄의 대가가 어떤 것이든지 간에 달게 받겠으니 죄 없는 남로당 간부들을 용서해 달라. 거듭 부탁한다.”

    간첩으로 몰려 재판을 받으면서 박헌영이 한 말들입니다. 당시 박헌영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무엇이 진실일까요?

    아래는 당시 북한 검찰이 박헌영을 간첩으로 기소할 때의 주요 범죄 사실로 규정한 것들입니다.

    1. 1939년 10월 박헌영은 서울 종로에 있는 식당인 백합원에서 언더우드를 만나 미국의 간첩 활동을 하기로 서약

    2. 박헌영은 1925년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구속되었을 때 변절하여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동맹의 지하 비밀조직을 폭로하고 지도 간부들을 알려주는 조건으로 석방

    3. 1933년 상하이에서 체포되고 1934년 조선공산당 재건 사건으로 재판을 받으면서 공산당의 수괴에게는 너무나 가벼운 6년형을 선고

    4. 1939년 5월에 결성된 경성콤그룹은 박헌영이 출소하여 결합한 1939년 12월 이후 대규모로 검거되며 조직이 상당한 정도 와해. 박헌영이 명단을 넘겨 줌. 그는 체포 모면

    5. 박헌영은 공산당의 지도부를 장악하기 위해 갖은 활동을 벌였다. 그는 일제시대 끝까지 항일운동을 한 것은 경성콤그룹이라고 주장. 종파주의의 전형임.

    이상이 미제의 간첩 박헌영에 대한 해방 전 활동에 대한 혐의들입니다. 박헌영은 미제의 간첩이면서 동시에 일제의 밀정이기도 한 셈인데요.. 그럴까요?

    김일성(왼쪽)과 박헌영(1948년 4월 평양의 남북연석회의장 정원에서 환담 중)

    2019년 한해 잘 갈무리 하시고, 새해에 뵈요. 연말 연초 박헌영이 과연 미제의 간첩이었는지를 같이 살펴보면서 45년 해방의 기쁨이 불과 5년만에 동족간의 전쟁으로 이어지는 참혹한 우리 역사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침 내년은 한국전쟁 후 70년이 되네요.

    [방송듣기] 박헌영은 미제의 간첩인가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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