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인천자문』을 아십니까?
[역사의 한 페이지] 지극한 정성으로 천명의 지혜를
    2019년 12월 24일 10: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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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는 밤낮으로 그치지 않고 점점 붉은 색으로 변해가네
물똥은 끈적끈적 고기 씻은 물 같고,
곱똥은 방울방울 똥을 잘 누지 못하네
바라보는 내 마음 절로 슬퍼지도다.
잠시도 염려 놓을 수 없어,
왔다 갔다 하며 자주 손자의 얼굴을 살피네.
(……….)
커가는 손자 지켜보는 일 즐거워
내 자신 늙는 줄도 모르겠네.
사람의 말 분명하게 흉내 내는 것이,
나날이 전보다 나아지는구나.
(………..)
열 대를 때리고 차마 더는 못 때렸다.
손자가 한참을 엎드려 우는데
늙은이 마음 또한 울고 싶을 뿐이다.

조선시대 『양아록(養兒錄)』에 실린 글의 일부이다. 『양아록(養兒錄)』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육아일기로 현재 서울시 시도유형문화재 제373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육아일기를 쓴 이가 여성이 아니라 이문건이라는 한 노년 남성이었다는 점이다.

[사진] 묵재 이문건의 육아 일기인 『양아록』의 첫 페이지 부분.

묵재 이문건(李文楗, 1494~1567)은 16세기 정암 조광조의 문인으로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경상도 성주에서 가족과 함께 오랫동안 귀양살이를 한 인물이다. 그 곳에서 1551년 외아들 이온(李熅)이 숙길을 낳았는데 그때는 묵재 나이 58세 되던 해였다. 자손이 귀했던 집안의 경사라였던지라 묵재는 이때부터 시문 형식의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 일기가 바로 『양아록』이었다.

처음 일기가 시작되는 1551년부터 숙길이 어엿한 청년이 되어 일기를 마무리하게 되는 1566년까지 이문건은 꼬박 16년간 손자에 대한 육아 일기를 남겼다. 이 일기에는 ‘기어 다니기’, ‘걸음마 연습’, ‘이 갈기’, ‘말 배우기’ 등 손자의 성장 발달 과정과 함께 ‘글자 깨우치기’, ‘한문 독해 교육’ 등 교육내용, ‘말로 타이르기’, ‘손 들고 있기’, ‘종아리 때리기’ 등 잘못에 대한 다양한 훈계 방법 등도 꼼꼼히 기록되어 있다. 또한 손자가 무병장수하기를 기원하는 초제문(醮祭文)을 작성하여 초제를 지낸 일과, 이질· 학질· 홍역 등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정황과 그 치료법도 소상히 적고 있다. 손자를 훌륭한 사람으로 기르고자했던 조선 중기 한 할아비의 지극한 손자 사랑이 담긴 책이 이 『양아록』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양아록』 보다 더한 감동을 주는 책이 있다.

이름하여 『천인천자문(千人千字文)』!

이번 글은 이 책에 대한 것이다.

천자문과 천인천자문

『천인천자문(千人千字文)』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천자문』부터 먼저 살피는 것이 순서겠다. 『천자문』을 모르는 독자들은 없으실 것이다. 『천자문』은 중국 양나라 무제가 왕희지의 글씨 중에서 소중히 여기는 1000개의 글자를 추린 후 글재주에 능했던 주흥사에게 운에 맞추어 글을 짓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황제의 명을 받은 주흥사는 하룻밤 사이에 『천자문』을 완성하여 그 다음날 황제에게 바쳤다. 그런데 그 하룻밤 사이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았던지 주흥사의 머리카락이 귀밑까지 모두 희어졌다고 한다. 이 『천자문』을 다른 말로 『백수문(白首文)』이라고도 부르는 이유이다.

『천자문』은 네 글자씩 묶어 250개의 문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천지현황(天地玄黃)’으로 시작하여 ‘언재호야(焉哉乎也)’로 끝난다. 내용은 자연의 구성 원리, 사람이 응당 지켜야 될 윤리와 도리, 자연의 섭리를 담고 있다. 천자문은 이후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한자를 익히는 기본서로 널리 사랑받았다. 『춘향전』에서는 몸종 방자가 이 도령 앞에서 “높고 높은 하늘 천, 깊고 깊은 따 지, 홰홰 친친 감을 현, 불탔다 누를 황”이라고 읊는 장면이 나온다. 이처럼 『천자문』의 앞 문장쯤은 조선시대 장삼이사(張三李四) 초동급부(樵童汲婦)들도 다들 외우고 다닐 정도였다.

그렇다면 이 『천자문』 앞에 ‘천인(千人)’을 붙인 『천인천자문(千人千字文)』은 무엇일까?

천인(千人)이 쓴 천자문??

빙고!!

『천인천자문』은 말 그대로 천명이 한 글자씩 써서 만든 천자문이다.

왜 이런 책을 만들었을까?

이 책이 만들어진 배경을 알아보기 위해 조선시대 어느 양반집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응애∼ 응애∼ 응애∼”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어느 양반 집안에 귀한 아이가 태어났다. 자손이 귀한 집안이었던지라 경사도 이런 경사가 없었다. 집안은 온통 잔치 분위기. 보석 같은 아이가 태어났으니 이 집안사람들은 한결같이 이 아이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서 집안의 대를 잇고, 과거를 통해 입신출세하기를 소원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갓 태어난 아이의 아버지(혹은 할아버지)는 이러한 소망을 담아 태어난 직후부터 이 아이의 돌상에 올릴 책 하나를 만들기 시작한다. 『천자문』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보통의 『천자문』이 아니었다.

[사진] 김홍도의 평생도 중 돌잔치 부분이다. 사람들은 첫돌 맞은 아이가 돌상 위에서 고르는 물건에 따라 그 아이의 미래가 달라진다고 믿었다. 이 의식을 돌잡이라고 한다.

『천자문』 정도라면 이들의 정성을 채우기에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그리하여 아버지(혹은 할아버지)는 아들(혹은 손자)를 위해 직접 명망가나 친지, 지인 등 1000명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천자문의 순서에 따라 한 글자씩 친필을 받아 책을 완성해나간다. 천인(千人)의 덕망과 지혜가 아들 혹은 손자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즉 지혜를 구하는 행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글자 한 자를 받을 때는 반드시 그 옆에 글 쓴 사람의 이름과 수결 혹은 도장 받는 것도 잊지 않아 ‘글자 실명제’를 완벽히 구현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책이기 때문에 이 책에 실린 천자의 글씨체는 모두 제각각이었다.

이런 특이한 형식의 책이었기 때문에, 이 『천인천자문』은 몇 가지 별칭을 가지고 있다.

먼저 『만인문(萬人文)』이라는 이름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천명으로부터 글자를 받았다는데 왜 열배 뻥튀기한 만명을 붙여 ‘만인문’이라 부른 것일까?

우리가 관용적으로 쓰는 숫자 백(100), 천(1000), 만(10000)은 그 숫자 자체를 의미하는 경우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냥 ‘많다’는 뜻으로도 흔히 쓰인다는 점도 동시에 기억할 필요가 있다. 즉 ‘백 개의 성’을 뜻하는 ‘백성(百姓)’이 단지 백가지 성을 가진 사람만 뜻하지 않고 ‘모든 국민’을 뜻하고, ‘백가지 재화를 파는 점포’라는 의미의 ‘백화점(百貨店)’에 꼭 백 가지 품목만 팔지 않고 ‘모든 물품을 파는 곳’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점을 생각하면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이렇듯 우리말의 백(100), 천(1000), 만(10000)은 그 숫자 너머의 의미를 담고 있으니 천 사람이 쓴 글자로 만든 천자문을 ‘천인문(千人文)’이라 하지 않고 ‘만인문(萬人文)’이라 한들 그 의미는 동일한 것이다. 오랜 세월을 살라는 의미로 ‘백세(百歲)’를 살라한들, 천세(千歲)·만세(萬歲)를 살라한들 의미는 대동소이한 것과 같은 이치로 보면 되겠다.

이 『천인천자문』의 또 다른 이름은 『걸자천자문(乞字千字文)』이다. 1000명의 사람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글을 구했기 때문에 ‘글자를 구걸하여 만든 천자문’이라는 뜻이다. 글자를 청하는 행위를 ‘구걸’로 표현하여 책의 가치와 의미를 다소 격하했다는 느낌도 들지만, 나름 재미있는 이름이다.

그렇다면 이 『천인천자문』을 만들 당시 글자를 ‘구걸’하고 싶은 사람으로 가장 인기 있는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생원(生員)과 진사(進士)였다고 한다. 그 이유는 뭘까?

이들의 글자가 인기 있었던 이유는, 조선시대 입신양명의 가장 중요한 방법이 과거시험 합격이라는 점과 관련이 깊다. 과거의 문과 시험 1단계 시험인 소과(小科)의 합격자인 생원과 진사의 글씨는 분명히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끼쳐 먼 훗날 과거시험 합격의 행운을 가져다 줄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첫돌을 맞은 아이가 돌상에서 이 천자문 책을 골랐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이 아이는 장차 과거 시험에 합격할 아이가 되는 것인데, 이왕이면 그 책의 글씨를 생원, 진사가 써 준다면 그 의미는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수능 시험을 앞 둔 수험생에게 전년도 수능 만점을 받은 학생의 사인이나 격려문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이 따로 또 뭐가 있겠는가? 축구 선수가 되고 싶은 아이에게는 토트넘 손흥민의 사인볼이, 정치인을 꿈꾸는 아이에게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의 사인이 의미가 큰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 책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글자를 청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당시의 교통과 통신 조건이 대단히 열악했다는 사실이다. 그런 조건 속에서 그것도 아무나가 아니라 학식 있거나 존경할만한 사람 1000명을 선별해서 일일이 찾아다니며 글자를 받는다는 것은 결단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게다가 태어나서 돌상에 책을 올릴 날까지의 시간도 그리 넉넉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 1년 동안 대략 하루에 3명꼴로 글을 받아야 책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글자를 청할 때는 그냥 빈손으로 가는 것을 결례로 여겨 글자를 받을 때마다 술과 조기·북어 같은 선물로 보답을 했다고 하니, 이 책을 만들 때 들인 발품이나 비용 그리고 정성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자식과 손자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 지극한 정성, 사랑의 힘 아니고서는 만들어 질 수 없는 책이 『천인천자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위대하다.

『양아록』도 위대한 책이긴 하다. 그러나 『양아록』이 이문건 혼자 16년 공력으로 만든 책인데 비해, 『천인천자문』은 한 아이의 지혜와 행운을 위해 천명의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정성을 모았다는 점 때문에 더욱 위대하다.

“한 마을에 불행한 사람이 있으면 마을 전체의 책임이고, 아이 하나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힐러리 클린턴이 인용해서 유명해진 말이지만, 원래는 아프리카의 속담이다. 우리 역사에서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의 의미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천인천자문』이 아닐까?

모든 부모, 혹은 조부모는 자식, 자손의 건강과 무병무탈을 기원하고, 그 아이가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것은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비록 경제적으로 풍요롭다고 해서 오늘날 우리가 옛 사람들보다 더한 정성과 사랑으로 자식들을 키우고 있다고 자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점에서는 옛사람들도 더하면 더했지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옛사람들의 자식 사랑이 담긴 『양아록』이나 『천인천자문』을 보면서 오늘날 우리들은 어떤 정성으로 자식들을 키워야하는지를 겸허하게 생각해보게 한다. 돈으로 거의 모든 것이 해결되는 우리 시대에 그 책들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그래서 크고도 무겁다.

수집 실패담

필자는 이 『천인천자문』과 관련된 기억하기 싫은 수집 실패담을 가지고 있다.

2년 전 『천인천자문』이 경매에 나온 적이 있다. 2017년 9월 20일에 있었던 한 경매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백수문]이라는 이름이 표지에 쓰인 책자였다. 필자도 처음에는 이 책이 조선시대 흔하디흔한 천자문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진으로 책 내부를 본 결과 이 책은 그냥 『천자문』이 아니라 『천인천자문』이었다. 필자가 이 책에 관심을 가지고 수집을 결심한 이유는 이 책에 담긴 부모의 자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이었다. 그것에 감동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것은 돈으로 쉽게 가치를 매기기 힘든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이나 그 외 몇 군데 박물관에 전시된 것을 보긴 했지만, 이런 자료가 경매에 나오다니……..

그런데 경매 물품에 대한 설명은 좀 이상했다.

[사진] 경매에 출품된 『백수문』이라는 이름의 천인천자문이다. 왼쪽은 책 표지이고, 오른쪽은 책의 첫 페이지이다. (코베이 사진)

“축수(祝壽)를 위해 천명이 각각 한 글자씩 써서 만든 천인천자문 1책. 한 사람이 한 글자 씩 써서 천명이 만든 천인천자문으로 매 글자마다 옆에 글씨를 쓴 사람의 이름과 도장이 찍혀 있다. 크기 37*27cm”

천명이 각각 한 글자씩 써서 만들었다는 설명은 정확하지만, ‘축수를 위해’ 만들었다는 것은 명확히 잘못된 설명이었다. 앞에서 설명한대로 천인천자문은 자식들이 부모의 장수를 위해 만든 책이 아니라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아들과 손자의 덕망과 지혜, 출세를 위해 만든 책이기 때문이다. 나이 든 노인들이 『천자문』을 사용할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출품된 책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100년은 족히 더 된 책으로 보였다. 시작가는 50만원이었다. (컬렉터들은 자신이 수집한 컬렉션 가격을 잘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는 어쩔 수 없이 가격을 공개한다. 이야기가 조금 더 생생할 뿐만 아니라 문외한들에게는 이런 정보들도 나름 흥미로울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집에 실패했으니……..)

필자는 90만원으로 예약 금액을 설정했다.

그러나 수집에 실패!

어쩔 수 없었다. 이 책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꽤 많았던 것이다.

낙찰 금액은 최종 300만원이었다. (여기에 15% 이상의 수수료를 지불해야하니 낙찰 받은 사람은 실제 350만 원 정도의 돈을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로부터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18년 6월 20일 동일한 그 책이 다시 경매에 출품되었다. 흔치 않은 일이다. 이 『백수문』(천인천자문)은 왜 다시 경매에 나온 것일까?

낙찰 받는 이가 낙찰 직후 구매를 포기했었던 것일까? 그래서 원 소유자가 몇 개월 뒤 이 물품을 다시 경매에 재출품한 것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그것을 수집했던 컬렉터가 1년 만에 싫증을 느낀 것? 그도 저도 아니면 낙찰 받은 그 컬렉터가 경제적 문제로 그것을 되 팔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일까?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경매 시작 가격은 지난번 시작가격보다 높은 100만원이었다. 이번에는 예약 금액을 전보다 훨씬 높게 설정했다. 210만원. 내가 이 책에 부담할 용의가 있는 최대치였다. 그만큼 욕심나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이번의 최종 낙찰 금액은 220만원이었다. 나보다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던 것이다.

아깝게 다시 수집에 실패! 분루를 삼킬 수밖에……

1년을 마무리하는 시기이다.

오손도손 가족들이 모여 지난 1년을 돌아보고, 희망찬 새해를 계획하는 이즈음, 가족 사이의 지극한 정성과 사랑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천인천자문』이 갑자기 떠 올랐다. 지금까지 필자가 쓴 글의 소재는 모두가 필자 소장품이었다. 그러나 수집 실패담에서 밝혔듯 『천인천자문』만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되고 말았다.

어쩔 수 없다. 관심 있는 물건이라고 다 소장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것이 인생 아니겠는가?

그래야 또 새로운 희망과 목표가 생기는 것이다.

때가 되면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천인천자문』!

[사진] 경매에 출품된 천인천자문이다. 각 천자문의 글자마다 한글로 뜻과 음을 아래에 썼으며, 그 오른쪽에 글씨를 써 준 이의 이름과 도장 날인이 보인다. (코베이 사진)

필자소개
박건호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 국사학과와 한국외대 대학원 정보기록학과를 졸업하고 명덕외고 교사로 있다가 현재는 역사 자료들을 수집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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