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대받던 비정규직 공장을 뒤흔들다
    2006년 08월 23일 06:3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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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0 사장이 임금 떼먹고 달아나자 전면파업을 벌여 만 하루만에 체불임금이 통장에 들어왔다.

11:00 비정규직 노동자가 파업을 벌여 기계를 멈추고 본관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

14:00 22개 회사의 대표로 구성된 사측 교섭위원들이 또 빈손으로 나오자 노조 교섭위원들이 성실교섭 하라고 호통을 쳤다.

14:30 식당 조합원들에게 강제노동을 시킨 지점장과 관리자가 조합원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를 했다.

20:00 식당 주간조 조합원 80여명이 퇴근 후 식당 앞에서 단체협약을 체결하라는 선전전을 벌였다.

23:00 야간조 400명이 파업을 벌여 공장을 멈추고 영화 <파업전야>를 관람했다.

22일 하루 동안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서 생긴 일들이었다.

   
▲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 조합원 400여명이 22일 오전 11시 2시간 파업을 벌이고 화성공장 본관 앞에 모여 임금인상과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등을 촉구하며 집회를 하고 있다.(사진=금속노조) 
 

450명으로 출발한 노동조합이 1년 만에 세 배로 늘어나고, 노조와 합의 없이는 구조조정을 할 수 없도록 22개 업체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비정규직 파업으로 공장이 멈춰 하청 사장들은 물론 기아자동차 회사까지 전전긍긍하게 만들었다. 언제 쫓겨날지 몰라 숨죽여 살아가야 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도리어 악덕 사장을 쫓아내고, 고용과 근로조건을 보장받으면서 공장을 뒤흔들고 있는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을 찾았다.

22일 오전 11시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본관 앞. 10시 30분부터 파업을 벌인 금속노조 기아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주간조 조합원 400여명이 뙤약볕에 땀을 줄줄 흘리며 모였다. 환갑에 가까운 늙은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실사용주 원청은 교섭에 나오라"며 목청껏 구호를 외쳤다.

이동우 조직부장이 "체불임금 청산을 요구하며 100여명의 우성기업 조합원들이 21일 전면파업에 들어가자 22일 아침 조합원들의 통장에 체불임금이 모두 들어왔다"고 말하자 조합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조합원들은 투쟁만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쟁취할 수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하청회사와 12차례에 걸쳐 교섭을 했지만 하청 사장들은 ‘다 알고 있지 않냐? 우리가 결정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교섭만 지연시키고 있습니다. 바지사장이 비정규직에 대한 구조조정을 조금이라도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교섭과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우리 임금을 바지사장이 단돈 10원도 올려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원청을 상대로 끝까지 투쟁해 임금과 특별요구안을 반드시 쟁취합시다." 김원주 교섭위원의 목청보다 더 뜨거운 조합원들의 함성이 본관을 우렁차게 메아리쳤다.

600일간 노조사무실로 사용된 두 동의 천막

   
 

금속노조 기아자동차비정규직지회(지회장 김영성) 노조사무실로 정규직 노조사무실 건너편에 쳐진 두 동의 천막이다. 천막 입구에 테이프로 붙여놓은 지회 현판이 유일하게 이곳이 노조사무실이라는 걸 증명하고 있다. 천막 안에는 이불과 옷장, 조그마한 냉장고, 밥솥 그리고 컴퓨터 한 대가 놓여있었다. 선풍기 2대가 돌고 있었지만 천막 안은 한낮의 열기로 후끈했다.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서 일하는 정규직 조합원은 1만명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1차 하청만 2천여명이고 2∼3차 하청까지 합치면 2,500명 정도다. 그 중에서 기아자동차비정규직지회에 가입한 조합원은 1,200명을 넘어섰다. 조합원들은 30여개에 이르는 하청업체에서 수출반제품 포장, 주철주조, 조립, 플라스틱, 도장, 피디아이(검수), 식당, 청소 등의 일을 하고 있다.

노조설립 1년 만에 조합원 세 배로

지회가 만들어진 것은 작년 6월 4일이었다. 그 전에는 ‘노동해방을 향한 비정규직 현장투쟁단'(현투단)이라는 이름으로 2002년부터 3년 정도 활동했고, 그 힘을 바탕으로 450여명이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노조설립 1년 만에 조합원이 3배로 늘어난 것이다.

작년 7월부터 20여개 업체를 대상으로 집단교섭을 요구했으나 사측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8월 26일 첫 번째 독자파업을 벌여 공장을 세우자 9월 중순 하청업체 대표들이 모두 교섭에 나왔다. 그러나 단체협약 체결의 길은 멀고 험했다.

8월 26일부터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파업을 벌였다. 기아자동차는 비정규직 파업을 깨기 위해 구사대는 물론 용역깡패를 동원했고, 연일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으며 조합원들은 용역깡패의 폭력에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으로 실려갔다. 파업 과정에서 1천명까지 늘었던 조합원들은 무자비한 폭력 앞에 움츠러들었고, 노조를 탈퇴하기 시작했다.

2005년 10월 말 노조 최대 위기

   
 

 

기아자동차는 10월 말 6개 하청업체에 계약해지 경고장을 보냈고, 10월 31일 주력업체였던 신성물류에 계약해지를 통보하면서 노동조합을 무너뜨리려고 했다. 조합원은 500명 밑으로 떨어졌다. 노동조합 최대 위기상황이었다.

비정규직지회는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했다. 10월 25일부터 27일까지 조립공장을 점거해 전면파업을 벌이면서 최종적으로 합의안을 끌어냈고, 11월 4일 마침내 22개 업체와 단체협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계약해지된 하청업체 조합원 전원이 고용승계되고 단체협약과 근속 등 근로조건도 모두 승계됐다.

이준영 교선부장은 "끝까지 남아있었던 조합원들은 어떻게 만든 노조인데 여기서 무너지면 안된다는 절박한 심정들이 있었다."며 "요구안보다도 노조를 지켜야 한다는 심정으로 끝까지 싸웠다."고 말했다.

대안은 다시 현장투쟁이다

노동조합이 무릎 꿇지는 않았지만 상처는 컸다. 조합원들에게 계약해지에 대한 공포가 밀려왔고, 노조를 탈퇴한 조합원들은 패배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회는 다시 현장에서부터 조합원들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판단했다. 지회는 작년 4/4분기 노사협의회를 진행하면서 조합원들이 요구하는 정년문제, 노동강도, 노동안전 문제들을 주요한 안건으로 올려 조합원들의 관심을 끌어냈다.

PDI, 조립도장플라스틱, PG 등 공정별로 노사협의회를 공동으로 진행했다. 공동잔업거부 투쟁을 벌이면서 조합원들은 차츰 자신감을 회복해나갔다. 여기에 민주노총 총파업을 어김없이 수행하면서 조합원수가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독자적이고 주체적인 노동자니까 파업투쟁을 언제든지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식들을 갖게 됐다.

기홍과 기광이라는 업체가 올해 5월 1일부로 계약해지되는 상황이 발생했고 사측은 조합원들의 고용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 때 지회는 조합원들이 전원 참여하는 파업을 통해서 고용과 단체협약을 승계했고, 이 투쟁을 계기로 비조합원들이 다시 금속노조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노조, 13차 교섭도 빈손으로 나온 사측 호통

오후 2시. 기아자동차노조 화성지부 회의실에서 열린 금속노조와 하청사장들과의 13차 집단교섭. 사측은 22개 업체를 대표해 이날 4명이 교섭에 나왔고, 지회는 5명이 참가했다. 그러나 사측은 임금, 원청사용자성 인정, 2∼3차 하청노동자 동일적용 등 요구안에 대해서는 또 다시 빈손으로 참가했다. 배우자와 자녀도 독감예방주사를 실시하게 해달라는 소박한 요구에 사측은 조합원에게만 하겠다고 나왔다.

김영성 지회장은 "독감예방접종은 아주 기본적인 요구인데 일시키고 돈만 벌어먹으면 되는 거냐?"고 호통치면서 "자기네가 할 수 있는 것도 안하고 할 수 없는 건 못한다고 하고, 교섭을 해태하는 책임은 사측에 있다."고 경고했다. 지회는 또 교섭위원을 징계한 일에 대해 강력히 항의했다. 사측은 묵묵부답이거나 차기에 안을 내겠다고 말했고, 교섭은 50분만에 끝났다.

업체 사장을 퇴출시킨 조합원들의 자신감

   
 

오후 3시 KD공장 옆 식당. 전면파업을 벌여 단 하루만에 퇴직금을 받아낸 이종훈(57) 대의원은 "어제까지 조합원이 98명이었는데 이번 파업으로 22명이 가입했고 이제 비조합원은 딱 6명 뿐"이라고 자랑했다. 21일 파업으로 자동차 반제품을 포장해 해외 현지공장으로 수출하는 KD공장이 멈췄고, 당황한 사측이 돈을 구해와 체불임금을 해결했다.

신성원 부지회장은 "다른 업체 사장이 돈을 냈다고 하는데 누가 1억이 넘는 돈을 대신 냈겠냐?"며 "수익성이 가장 좋은 KD공장이 서자 기아차 원청이 해결하고 모른 척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훈 대의원은 "체불임금이 해결됐는데도 조합원들의 분노는 사그러들지 않았다"며 "업체 사장이 교체되어도 고용과 권리를 하나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현장에 복귀했다."고 말했다. 이 때 신임사장 내정자인 현대차 아산의 임굉호 소장이 23일 공식적으로 인사를 하겠다는 전화를 걸어왔다.

이종훈 대의원은 "노동조합의 힘은 결집력이고 숫자 아니겠냐?"며 "포기하거나 단념하지 말고 미래를 바라보면서 환경을 바꾸려고 노력하면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가슴에는 ‘임금 특별요구안 쟁취. 06투쟁 승리’와 ‘근조 더 이상 죽이지 마라’는 2개의 리본이 달려 있었다.

간부들의 큰 희생

비정규직 지회를 단단하게 세우는데 적지 않은 희생이 필요했다. 김수억 조직국장, 이상언 노동안전보건부장, 신성원 부지회장, 박종환 사무장 등 4명이 감옥에 다녀왔다. 김영성 지회장은 수십건의 고소고발이 걸려있고, 수배중이어서 600일 동안 공장 밖을 나가지 못했다. 이번 7월 파업으로 인해 지회장을 포함해 8명의 상집간부들이 고소고발을 당했다. 연대했던 정규직 6명도 같이 고소당했다.

지회 간부들은 잠시도 쉴 틈 없이 움직였다. 선전물을 만들고 현수막을 찍어오고, 23일 비정규직 울산집결투쟁에 확대간부들을 조직하고, 교섭속보를 쓰고, 조합원들을 실어나르고… 밥 먹을 시간조차 없을 정도였다. 더구나 주간과 야간 조합원들을 모두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집회와 선전전은 아침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계속됐다.

   
 

개·돼지 취급받던 식당노동자들의 분노

저녁 7시 30분 노동조합 사무실 옆 식당 앞. 사복으로 갈아입은 주간조 식당 조합원 70여명이 식당 앞에 모였다. 윤준열 조합원은 "사측 놈들 위해 지금까지 일해와 병밖에 남은 게 없다.

약을 열 가지나 먹는 사람도 봤다. 정말 억울하고 분하다. 이제 똘똘 뭉치자."고 말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조합원들 앞에 선 장성례 소위원이 "진짜 떨린다."고 말하자 곳곳에서 아줌마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뭐가 떨려?" "하고 싶은 말 다해라." "분노 터지는 말 다해." 그러나 장 소위원은 ‘투쟁’이라는 구호만 외치고 자리로 돌아갔다. 남 앞에서 한번도 연설해보지 않은 순진한 조합원들이 점점 투사로 변해가고 있었다.

뜨거운 국에 두 다리가 익어 뼈가 보이고, 무 커터에 손가락이 잘리고, 바께스를 집어던지며 욕을 하는 관리자들에게 당했던 모욕이 식당노동자들을 단결하게 만들었다. 220명의 노동자 중에서 200명이 노조에 가입했고, 현대푸드와 단체교섭을 하고 있는데 단체행동권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21일 조립3부 식당에서 한 관리자가 기계로 깎던 감자 200Kg을 손으로 깎으라고 지시했다. 정정자 소위원은 "너무 힘들어 오늘 출근 못한 사람도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조합원들은 노조에 이를 알렸고, 대의원과 지회 간부가 항의한 끝에 22일 지점장과 관리자가 조합원들에게 사과했다.

   
 

15년 전 영화 <파업전야> "바로 우리 얘기예요."

밤 10시 30분 노동조합 회의실 앞. 2시간 파업을 전개한 야간조 조합원들 300여명이 스크린 앞에 앉았다. 16년 전인 1990년 작은 금속공장을 배경으로 노동조합 결성을 둘러싼 노동자와 회사 간의 충돌을 그린 영화 <파업전야>가 상영되기 시작했다.

간부들은 봉고차로 조합원들을 계속 실어 나르기 시작했고, 11시에는 400여명으로 불어났다. 크지 않은 화면은 계속 흔들렸고, 더빙도 시원치 않아 말과 행동이 엇나가기도 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동우 조직부장은 "PG공장은 기계가 쇳물로 주조를 하고 남은 찌꺼기를 일일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수작업으로 떼어내는데 시끄럽고 철가루가 날려 이곳 조합원들이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게 많았다."고 말했다.

12시 30분 영화가 끝나자 이곳저곳에서 조합원들이 영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PG공장 백우 소속의 이길수 소위원(56)은 "영화에서 앞장선 사람만 다치는 거라고 나오는데 지금도 저렇게 얘기하는 조합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에요. 저런 선배들이 있어서 우리도 지회가 생긴 거겠지요. 앞으로 더 열심히 싸워야죠."라고 말했고, 한 조합원은 "오래된 영화인데 우리랑 너무 흡사하다"며 "노동자 입장에서 달라진 게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수현 조합원은 "구사대, 용역깡패, 회유와 협박까지 작년에 우리가 했던 파업하고 너무 비슷하다."고 말했고, 김오남 조합원은 "간신들 하는 짓도 똑같네요. 작년에 우리가 악발로 했으니 안 쫓겨났지 아니면 벌써 쫓겨났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조합원들은 지난 해 10월 파업 당시 기아차 회사가 수백명의 용역깡패를 동원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회사에 대한 분노를 쉼 없이 쏟아냈다.

<파업전야>가 "우리 조합원의 정서에 딱 맞는 영화"라는 김영성 지회장의 얘기가 떠올랐다. 23일 새벽 1시 400여명의 노동자들은 16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이어진 <파업전야>의 현실은 온 몸으로 느끼며 싸워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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