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험 외주화 말랬더니
    현대제철, 고령의 계약직 채용으로 법 회피
    유해작업 도급금지 등 내년 개정 산안법 시행 앞두고 꼼수 모색
        2019년 12월 17일 04:2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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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제철이 28년 만에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 시행을 앞두고 기존의 하청노동자를 해고하고 그 자리에 55세 이상의 고령자를 원청 소속 계약직으로 채용하겠다는 공고를 내 논란이 일고 있다. 55세 이상의 고령자의 경우 2년 이상 일해도 정규직 전환 의무가 없는 고령자고용촉진법을 악용해, ‘원청의 안전책임 강화’, ‘위험의 외주화 금지’라는 법 취지 자체를 무력화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특히 현대제철의 법 회피 사례가 용납된다면 향후 산업계 전체에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 정부의 강력한 관리·감독이 필요해 보인다.

    전국금속노조(충남지부·광주전남지부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여영국 정의당 의원은 17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을 원청이 관리하는 계약직, 촉탁직 비정규직으로 바꿔 법망을 피해가겠다는 꼼수로 산안법을 무력화시키려 한다”며 “원청이 직접 안전보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법의 취지는 온데간데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고 김용균 노동자를 계기로 정부와 국회가 28년 만에 개정한 산업안전보건법이 내년 1월 16일부터 시행된다. 하청노동자에게 집중되는 산업재해를 막겠다는 것이 산안법 개정안의 정신이다. 도금작업과 수은, 납 또는 카드뮴을 제련, 주입, 가공, 가열하는 작업, 허가대상물질을 제조, 사용하는 등 유해한 작업의 도급을 전면 금지하도록 했다.

    현대제철 당진 제1, 2 냉연공장과 순천공장의 철판 롤 아연도금 작업을 해온 노동자들도 모두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법 개정에 따르면 해당 작업을 해온 하청노동자들은 모두 원청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한다. 그러나 현대제철은 지난 12일 전체 하청업체를 대상으로 도금 작업자 모집 공고를 냈다. 직영 관할 계약직(촉탁직)으로 채용하고 55세 이상자를 우대한다는 내용이다.

    조정환 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사무장은 “460도로 끓는 용해로 앞에서 부산물 제거 작업을 하며 수년간 유해한 작업 환경에서 일해 왔다. 김용균법이 통과된 후 안전하게 일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지만 회사는 갑자기 일하고 있는 56명의 직원을 내쫓고 55세 이상의 고령자를 뽑겠다는 채용공고를 냈다”고 전했다.

    2년 이상 근무해도 정규직 전환 의무가 없는 고령자고용촉진법을 악용해, 더 적은 임금을 주고 언제든 해고할 수 있는 고령자의 비정규직을 채용하겠다는 뜻이다.

    노조는 “법 위반만 피하면 된다는 얄팍한 꼼수”라며 “부족한 법을 개선하고 근본적인 위험의 외주화 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 협소한 법 규정마저 악용해 하청 고령 노동자를 위험한 일터로 내몰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현대제철은 2명의 하청노동자가 ‘2인 1조’로 해오던 아연도금 부산물 제거 작업과 아연투입 지원업무를 분리해 부산물 제거 작업만을 원청 계약직으로 채용할 방침이다. 두 작업은 같은 공간에서 연속해서 이뤄지는 작업이다. ‘2인 1조로’ 작업이 진행됐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노조는 “도금작업은 사고 위험성이 높고 다량의 유해물질에 노출되기 때문에 2인1조 작업이 필수적”이라며 “그런데 한 명은 원청이, 다른 한 명은 하청업체가 관리토록 하는 책임의 이원화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실질적 책임부재나 책임회피 상황을 발생시켜 안전 확보는커녕 위험상태를 더욱 가중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자회견 모습(사진=금속노조)

    법 시행을 앞두고 법망을 회피하려는 사업장에 대해 고용노동의 강력한 행정지도와 감독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온다.

    여영국 의원은 “위험한 업무는 외주화하지 말라고 했더니 그 자리에 비정규직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은 위험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파렴치한 행태”라며 “산안법의 정신이 현장에 정착될 수 있도록 관리·감독해야 하는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현대제철의 법 회피 사례가 통용된다면, 도금작업을 외주도급화 해 온 전체 산업 업종 사업주들의 따라하기로 이어져 유해작업 도급금지 조항의 사문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권과 고용노동부가 현대제철의 편법과 불법을 묵인한다면 시행을 앞두고 있는 개정 산안법이 노동 현장에서 모두 휴지조각이 될 것”이라며 “노동부는 지금까지 사업장에 조치해 온 수백 수천 배 강력한 행정지도와 감독으로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법안 무력화 기도에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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