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동형 선거제도 개혁, 좌초의 기로
    대기업 단가 후려치기 vs 개혁 알박기
    민주당-정의당 갈등 심화에 자유당, 즐거운 불구경
        2019년 12월 16일 12: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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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개혁을 위해 출발한 선거제도 개혁 논의의 원칙이 거대양당의 기득권 집착에 훼손될 위기에 놓이게 됐다.

    16일 본회의 상정을 앞둔 선거제 개정안을 둘러싸고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대안신당)협의체가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협의체에서 당내 반발을 이유로 지역구 의석수 축소를 최소화한 데이어, 연동형을 적용할 비례대표 의석수마저 줄이자고 제안한 탓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공조를 유지해온 민주당과 정의당은 지난 주말 내내 말폭탄을 주고받으며 긴장 수위를 높였다.

    심상정 대표는 지난 15일 유투브 생방송 ‘심금라이브’에서 민주당을 향해 “자신들의 비례 의석 수 몇 석을 확보하고자 선거제도 개혁 취지를 흔드는 것이 매우 유감”이라며 “민주당은 ‘정의당 너희들이 그 정도 되면 받아들여야지’ 이런 투인데 자존심도 상한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단가 후려치기 하듯 밀어붙이니 사실상 협상이라는 게 크게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에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긴급 최고위원회의 후 “일부 정당은 협상 파트너에 대한 기본적 신뢰와 존중이 없지 않나”라며 “대기업의 중소기업 후려치기 발언 등은 매우 유감”이라고 말했다. 특히 석패율제에 관해 “그 정당은 몇몇 중진 의원을 살리기 위한 집착과 함께 일종의 ‘개혁 알박기’를 하고 있어 유감”이라고 했다. 정의당에서 중진 의원은 3선인 심 대표가 유일해 홍 수석대변인의 해당 발언은 심 대표를 겨냥한 발언인 셈이다.

    민주당, 원안 표결 으름장…부결돼도 상관없다?

    주말 내 협의체를 가동했으나 성과를 내지 못한 민주당은 원안 표결 가능성을 거론하며 소수야당을 압박하고 나섰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그동안에 합리적인 선거제도를 만들기 위해서 저희 당이 소수당의 의견을 많이 수용하면서 노력을 기울여 왔는데 아직까지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이제 지난 4월 패스트트랙에 올린 원안의 정신과 원칙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역구 225, 비례 75, 연동률 50%로 하는 원안 표결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민주당 내부에 대한 설득도 이뤄지지 않은 데다, 지역구 축소를 우려하는 호남계 의원들의 강력한 반발로 원안이 표결에 부쳐질 경우 부결 가능성이 높다. 사실상 민주당의 제안을 모두 수용하지 않으면 선거제 개혁을 무위로 돌리겠다는 협박인 셈이다.

    이 대표는 석패율제 도입 여부에 관해서도 “‘지역 구도를 완화하기 위해서 어려운 지역에서 정치하시는 분들이 회생할 수 있도록 만든 취지’였는데, 요즘 얘기되는 것은 오히려 중진들 재선 보장용으로 악용되는 퇴색한 결과를 가져온다”며 “중진들 재선 보장용으로 하는 석패율 제도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도 “‘4+1’ 협상이 난항에 직면했음을 고백한다. 처음 왜 이 길을 나섰는지 돌아보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는 “선거개혁, 검찰개혁의 초심보다 때로는 서로의 주장이 더 앞서는 경우가 많아졌다. 원점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한다”며 “원점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다시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심상정 “개혁 원하는 국민에 대한 협박”

    선거제 개혁 논의를 주도해온 정의당은 민주당의 거듭된 양보 요구에 비판의 수위를 높이며 강경하게 맞서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본청 농성장에서 열린 상무위원회에서 “국회 본회의에서 패스트트랙 법안이 상정될 예정이지만 정의당은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민주당은 개혁을 거부하는 자유한국당과의 합의를 의식해서 수시로 브레이크를 밟다가 결국 4+1 테이블에 개혁의 원칙이 크게 훼손된 안을 들이밀었다”고 말했다.

    당초 선거제 개정안 논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 비율을 2:1로 하는 방안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민주당이 당내 반발을 고려해 비례대표 의석을 75석으로 줄이고 연동률도 50%로 낮추자고 제안, 소수야당들이 이를 수용하면서 여야4당의 단일안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최근 민주당은 75석이었던 비례의석을 50석까지 낮추고 연동률을 적용할 비례대표 의석을 30석으로 제한하는, 이른바 ‘캡’을 씌우는 안을 제시하며 소수야당들에 또 다시 양보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심 대표는 “개혁 열차는 운행을 멈추고 말았다”면서 “정의당이 비례대표 의석 몇 석 더 얻기 위해 합의를 거부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실상은 기득권 양당이 소수정당에 끊임없이 양보를 요구해 온 것이 그동안의 과정”이라고 짚었다.

    그는 “지난 주말 자유한국당은 대규모 장외집회를 열고 선거제도와 공수처에 대한 온갖 폭언을 쏟아냈다”며 “그러나 민주당은 그런 자유한국당과의 협상카드를 흘리고 또 한편으로는 4+1 협상이 뜻대로 안되면 원안을 상정해서 부결돼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압박을 하고 있다. 이것은 개혁을 원하는 국민들에 대한 협박”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힘을 앞세운 거대 양당의 기득권 논리가 소수 정당의 진심과 개혁의 원칙을 집어삼키고 있다”고도 질타했다.

    심 대표는 “정의당은 그 동안 부족한 힘으로 정치개혁 사법개혁을 위해 모든 것을 감수하면서 사력을 다해 왔다. 하지만 소수당으로서 지금 이 모든 상황을 감당하기에 역부족이다. 오늘 본회의에 패스트트랙 법안 상정이라는 시간의 촉박함과 정의당의 힘의 한계를 고려할 때 의사진행을 마냥 반대할 수도 없다”며 “정의당이 힘이 부족한 것에 대해서 국민들께 죄송할 따름”이라고 했다.

    이어 “개혁이 성과를 거두게 될 것인지, 아니면 또 기득권 앞에 좌초될 것인지는 오직 집권여당인 민주당의 손에 달려 있다”며 “민주당은 자유한국당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개혁을 시작했던 바로 그 자리로 돌아오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자유한국당, 민주당에 “거대양당의 협상 테이블로 오라” 요구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연동형 자체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집하며 거대양당 간 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선거제 개정안, 공수처 신설법 등을 상정할 임시회의 회기 결정의 건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할 계획이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여권 정당들이 의석 나눠먹기 밥그릇 싸움을 벌이다가 각자의 욕심을 다 채울 수 있는 방법이 없게 되자 파토가 난 상황”이라며 “그동안 집권당과 군소정당들의 당리당략에 국회가 너무 많이 휘둘려왔다. 민주당은 법적근거가 없는 ‘1+4’ 협상을 즉각 중지하고 의회민주주의가 명령하는 정상적 협상 테이블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심재철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진정으로 국민과 민생을 위한 국회를 열고 싶다면 국회법 정신에 맞게 임시회 회기를 30일로 해야 한다. 민주당이 30일 임시회 개최에 동의한다면 우리 자유한국당은 회기결정의 건에 대해 무제한 토론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기결정의 건이 무제한 토론의 대상이 안 된다’는 문희상 국회의장의 주장에 대해 “국회법을 전혀 모르는 이야기”라며 “문 의장이 회기결정에 건에 대한 무제한 토론을 방해한다면 우리는 국회법에 저촉되는 그의 불법을 용납하지 않고 직권남용과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형사고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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