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동당, 공부 좀 하라 그리고 나를 논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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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8월 22일 10: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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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주대환 민주노동당 전 정책위원회 의장이 울산에서 ‘진보정당의 교육 활동의 중요성과 방향’에 대해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자신의 교육 내용이 보다 널리 읽히기를 바란다며 이 글을 <레디앙>에 보내왔습니다. 필자는 이와 함께 자신의 글에 대해 누군가 논쟁을 ‘걸어주기’를 바란다고 전해왔습니다. <편집자 주>

    교육의 중요성, 그건 진보정당이라는 존재의 근거에 직결되고 있으니, 길게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진보정당은 아무리 대중정당이라도 결국에는 보수정당에 대립하는 정치철학의 기초 위에 서 있는 것이고 그러한 정치철학은 학습되고 교육되고, 토론되지 않으면 안 된다. 기독교의 반만큼이라도 학습, 교육을 일상생활로 만들 수 있다면 우리는 성공할 것이다.

    창당 6년 나는 선거브로커가 되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에는 학습과 교육과 정치철학적 토론이 아직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간혹 행사로 나타났다 사라질 뿐이다. 창당 이후 6년 동안 계속된 선거에만 젖 먹던 힘까지 쏟아 허덕대다보니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있는 상태, 정신이 없고 몸뚱이만 있는 격이다. 그래도 창당 초기에는 나 같은 먹물들은 당에 무엇을 기여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교육, 선전을 생각했다. 그러나 6년이 지난 지금 나는 선거 브로커가 되었다.

    그래서 아직도 우리는 “이념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뭐가 명확하지 않다는 말인가? 프로그램이,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야기인가? 우리가 그 무슨 별에서 떨어진 우주인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결국 선조(先祖) 진보정당들이 모험하고 실험하고 좌절하고 때로 성공하고 때로 실패하고, 노력하고 인내하여 만들었던 나라들의 범위를 넘어설 수 없다. 우리는 우주를 헤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린 세계사의 최첨단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야할 길은 오히려 분명하다. 그런데 얼치기 진보 학자들이 그런 첨단을 걷는 나라들의 학자들의 책을 잘못 읽고서는 혼란을 조성하고 있거나 대중정당에 이르지 못하고 소수 인텔리겐챠의 그룹에 머물러 있는 근본주의 종파들의 영향을 받은 청년 학생들이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독립하지 않고 민주노동당에 기식하면서 혼란을 부르고 있을 뿐이다.

    당에 기생하면서 혼란을 부르고 있는 자들

    오히려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은 민주노동당에 대해서 어떤 이미지, 바램, 이데아를 가지고 있으니 흡사 산 속에 있는 자가 산의 모습을 잘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즉 당은 아직 스스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에게 민주노동당은 영국노동당, 뉴질랜드노동당과 같은 계보의 중도좌파 정당이요, 사회민주주의 대중정당이다. 그런데 우리 민주노동당 내에서는 아직도 ‘사회민주주의자’는 욕설일 뿐이다.

       
    ▲ 칠레의 미체예 바첼레트 대통령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구체 현실과 역사에 대한 공부는 계속 미루어지고 무식, 무명의 나날은 쌓여간다. 여성 당원들은 칠레의 바첼렛트 대통령의 당선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한때 미혼모였고 지금은 이혼녀이며, 무신론자인 그녀가 가톨릭 나라 칠레의 대통령에 당선된 사실에 흥분하지 않으면 무엇에 흥분한다는 말인가? 칠레산 포도주라도 한잔 하면서 축하하고, 그녀의 현실주의, 실용주의 정치철학에 대해 얘기를 나누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룰라는 취임 일성으로 “밥을 굶는 국민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는데 그의 말은 박정희가 내걸었던 슬로건과 같은 연유가 무엇인지는 한번 쯤 생각해봐야 할 것 아닌가? 4대 사회보험에 대해서 아무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 자칭 사회주의자를 진정한 사회주의자라 할 수 있는가?

    그래서 지난 3월 26일 “진보는 보수에 대하여 지적으로 우월해야만 한다.”는 제목으로 시(詩)를 한 수 지었다. 이런 구절의 취지는 오늘 이야기와 비슷하다.

    진보는 보수에 대하여 지적으로 우월해야 한다

    노동자는 철학을 만나야 진보적 계급으로서 자신을 인식할 수 있으니
    나아가 계급으로 스스로를 조직하여 진보정당에 이를 수 있는 법이니
    철학과 그 근거로서 지식이 없는 진보정당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

    뿐만 아니라 진보는 지적 우월로서 보수를 정신적으로 눌러야 하거늘
    그러지 아니하면 물질적으로 우월한 보수를 무슨 수로 이길 수 있을까?

    우리는 흔히 도덕적 우월성 확보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신경을 쓰면서
    지적인 우월성 확보의 중대함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구나.
    ‘단순 무식 과격’의 이해는 가지만 자랑스럽지는 않은 전통의 탓인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라고 할 공부하기 싫어하는 마음 탓인가?
    어찌되었든 멀리서 들리는 소식, 서울시장 후보 선거 결과는 다행이다.

    ‘공부하는 당’ 만들기 운동은 울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노동조합의 교육은 아직도 "뭉치면 산다“는 수준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 당마저 ‘공부 안하는 당’으로 굳어지면 곤란하다. 한국 노동운동이 암담하다.

    그런데 당 전체 결의나 그런 건 의미가 없다. 어디선가 모범을 만들어야 한다. 그건 어디라도 좋지만 ‘법대로’ 운영에서 앞서나간 울산이 ‘공부하는 당’에서도 앞서나갈 수 있다고 본다. 그만큼 많은 일을 경험했고 고민이 깊다는 이야기다.

    나는 생각을 바꿨다

    오랜 고민과 모색의 시작은 리프크네히트의 말 “학습하라, 선전하라, 조직하라!”였다. 민주노동당 창당 당시까지도 당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민주노동당 강령을 <학습>하여 동료, 친구 노동자 한 사람에게 <선전>하고 그 선전의 효과로 민주노동당이 제시하는 비전이 곧 자신의 바램과 꿈, 비전과 일치함을 깨닫게 된 노동자를 입당시키는, 즉 <조직>하면서 당이 성장해나가는 그런 당 발전 과정을 그렸다. 그것이 정상적인 당이라고, 생명력이 있는 당이라고 생각했다.

         
    ▲ 1918년 독일 베를린에서 연설하는 칼 리프크네히트  
       

    그러나 굳이 말하자면 이는 독일 사민당의 성장 전략. 노동조합이 없던 시절에 사회주의 사상의 선전으로 평범한 노동자를 계급의식을 가진 노동자, 사회주의자로, 다시 말해서 당원으로 만들어나가고, 당을 중심으로 노동자를 결집시키고, 노동자계급을 즉자적 계급에서 대자적 계급으로, 자신의 세계사적 사명을 의식한 계급으로 발전시켜나가겠다는 전략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 민주노동당은 영국노동당의 길을 가고 있다. 그래서 너무 그 생각에만 집착할 일도 아니다.

    영국노동당은 이미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를 집단으로, 노동조합 전체로 가입시켰다. 그리고 블록투표제를 통해서 노동조합의 지도자들에게 큰 권력을 주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노동조합이 당에 가입하지 않고 개인으로 하여금 당에 가입하게 한 바, 이는 모순을 안고 있다.

    즉 내용적으로는 노동조합의 결의로 당에 가입하면서도 형식적으로는 개인이 가입하니 당원은 아직 당원이라기보다는 노동조합의 간부, 열성 조합원일 뿐이다.

    민주노동당 할당제의 모순

    그리고 투표권에 대해서는 대의원, 중앙위원의 지지 단체 할당이라는 형식으로 주고 있고 28%라는 할당 비율이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전농에게 14%나 줌으로 해서 장애인 등 소수자들에게 돌아갈 할당 몫이 적다는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울산에서 두 차례나 실시된 시장 후보에 대한 조합원과 당원 합동 투표 또한 이러한 모순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원이 될 자격을 계급의식을 가진 노동자로 한정하지 않고 있는 점에서 우리 당은 영국노동당에 가까우면서도 노동조합 단체 가입을 하지 않으니 독일사민당에 가깝기도 하다. 그럼에도 결국 크게는 영국노동당 계보라고 할 수 있으니 교육, 선전 사업에서도 그런 사정은 자연히 반영될 것이다.

    사회주의에 아무 관심이 없었던 영국의 노동자계급 대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했던 영국노동당을 더 절실하게 배울 필요가 있다.

    또한 문맹률이 높고 매스 미디어가 발전하지 않아서 노동자 대중이 정보 과잉에 시달리지 않아서 열성 당원과 당 활동가들의 선전, 및 조직 활동이 흡사 교회의 전도 활동처럼 이루어지고 노동자의 문화생활이 자본주의 상업 문화에 포섭되지 않았던 독일 사민당 창당 초기와 우리 당의 성장 환경은 매우 다르다는 점도 “학습하라, 선전하라, 조직하라”라는 당원의 미션을 재해석할 때 고려할 점이다.

    교육보다 중요한 것은 ‘소통과 대화’

    그리하여 우리의 화두는 차라리 <교육>이 아니라 <소통>과 <대화>가 되어야 할 것이 다. 우리는 어차피 대중을 교육할 수 없다. 아니 우리는 대중에게 사회주의 정치철학을 선전하고자 할 때 수십 년을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 영국노동당 창당의 주역인 제임스 케어 하디
     

    리프크네히트의 명령과 함께 케어 하디의 <양보와 인내>라는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 물론 그럼에도 정보의 부족이나 치우침이나 왜곡을 바로잡고 채우는 노력은 필요하다. 그래서 오늘의 교육, 선전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소통이란 무엇인가? 원내진출 이후 2년 여 동안 ‘비정규법률 개악 저지 투쟁’에 당력의 절반을 쏟아 붓고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마음에 아무런 반응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소통의 부재를 보여주는 가장 치명적인 예다.

    민주노동당은 왜 비정규직 마음을 못 움직였나

    당원들이 상임위 점거 투쟁의 장면이 텔레비전 화면에 나가는 날 저녁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퇴근하는 길목 술집에 나가서 “민주노동당은 바로 당신들을 위해서 이렇게 싸우고 있소!”라고 말해야 한다. 소통을 시도해야 한다.

    그러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 긍정할 것인지, 아니면 “무슨 소리, 저건 정규직 노동자들 밥그릇을 지키려는 싸움이지!” 라고 말하며 부정할 것인지 그것을 빨리 파악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아마 틀림없이 부정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이렇게까지 비정규직 표를 얻지 못할 수 있는가? 그런데 당원들과 당의 지방 조직들로부터 보고가 없다. 비정규직 노동자 대중의 반응에 대한 보고가 없다. 당론 수정의 요구도 없다. 결국 <소통>이 없다는 이야기다.

    한미 FTA에 대해서 교육을 한다고 할 때도 (백 년 전의) 독일 사민당이라면 당 선전가들이 이를 소재로 하여 당원들에게 다시 한번 사회주의 세계관을 선전, 교육하려고 달려들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방적인 메시지 전달보다는 구체적 정보의 제공과 대화에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차라리 KBS 스페셜이나 MBC 피디수첩 같은 프로를 함께 보고 나서 당원들과 편안한 <대화>를 나누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정직한> 마음과 마음이 만날 수 있다.

    일방적 메시지 전달보다 정보 제공이 중요

    우리는 <노동당> 당원이 대중보다 특별히 높은 <의식>을 가질 것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다만 당원들이 분명한 철학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주위의 대중들을 설득할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또 그런 과정에서 당의 정책이나 당론은 당원들에게 설명되고 당원들의 반응에 따라 수정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당원이 주위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쉬운 당론이 채택될 것이며, 대중의 정서와 요구가 반영되는 당론이 채택될 것이다.

    예를 들면 대선거구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구체적으로는 광역시도를 하나의 선거구로 하는 (1인1표제) 비례대표제가 아니라 복잡하기 짝이 없는 독일식 선거제도가 당론으로 되어 있는 것은 당원들이 우리 당의 당론으로 주위 사람들을 설득하고자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편도 느끼지 못했고, 그래서 또한 당원의 1%도 이해하거나 남에게 설명할 수 없는 당론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아직 민주노동당의 주인은 당원이 아니다.

    민주노동당의 당론은 다분히 원리론이다. 나는 노동법 전문가가 아니라서 자신 있게 말 못한다. 그러나 의심은 한다. 비정규직의 양산을 막겠다는 당론은 당장에 월급 10만원이라도 더 받기를 원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박한 정서와 요구를 충분히 대변하고 있는가?

    ‘1인1주택’ 개념을 세우는데 주력하고 있는 부동산 정책은 당장 집세의 인하를 원하는 무주택자들의 마음에 다가가고 있는가? (전세를 사는 가구가 5년 전 28.2%서 작년엔 22.4%로 줄고 월세를 사는 가구가 14.8%에서 19%로 크게 늘었다.) 지구당을 폐지한 신정당법에 대해서 “정당의 조직 구조는 정당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원리론으로 맞서는 것이 과연 정치적으로 옳은 판단이었는가?

    민주노동당의 원리론적 당론

       
    ▲ 민주노동당에서 교육은 아직 일회성 행사에 그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실시된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의 간부의무교육.(사진=민주노동당 서울시당)
     

    기초자치단체장과 의원의 정당 공천을 ‘정당정치의 발전’이라는 대의명분으로 찬성하는 우리 당론은 당장 국회의원들에게 줄서기 바쁜 지방자치의 현실을 외면하고 시민단체들의 아우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대중의 지지를 받아야 존재할 수 있다. 그런데 원리론에 얽매여, 당이 잠재적 지지층의 요구를 대변하고 그 반대급부로 대중의 지지를 얻는 그런 소박한 과정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이 모든 사태의 바탕에는 소통의 부족이, 아니 부재(不在)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분명 진보적 정치철학을 가진 이념정당이지만 동시에 대중정당이며, 무엇보다도 진리(眞理)를 당이 이미 가지고 대중을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과 더불어 진리를 찾아가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당원은 진리를 손에 들고 다니면서 대중을 가르치고 설득하기보다는 대중과 더불어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바로 그렇게 대중과 더불어 대화를 할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당내에서부터 대화를 하고 소통을 해야 한다.

    이미 공직 선거에 후보로 나간 경험이 있는 사람이 1,000명을 넘어섰다. 그러면 1,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아니 선거운동을 한 사람까지 합치면 1만 명, 2만 명이 대중과 더불어 대화를 하는 집중 훈련을 받았다는 이이야기가 되는데 우리는 왜 아직도 대중과의 대화에 서투를까? 선거운동이라는 돈 많이 들어간 <교육>에 문제가 있었다. 우리는 아마도 진정한 대화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중을 가르치려 들었을 것이다.

    표를 깨고 다니는 열성 당원들

    작년 10.26 보궐 선거 당시에 울산 북구에서 선거운동을 했던 한 여성 동지가 “대중이 아직 뭘 몰라서, 깨닫지 못해서 우리 말을 이해하지 못 한다”고 했을 때 나는 그 사람이 표를 깨고 다녔을 거라고 판단했다.

    아마 수백 명씩 투입된 당원들 중에는 표를 깨고 다닌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대화에 앞서 먼저 남의 말을, 대중의 말을 듣는 훈련부터 필요하고 진실로 “민심은 천심이라”고 한다면 하늘의 말씀을 듣는 자세부터 교정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민주노동당은 사회당이 아니라 노동당이다. 족보상 독일사민당 계열이 아니라 영국노동당 계열이다. 즉 이념적 순수함보다는 대중성을 먼저 확보하고자 하는 발전 전략을 영국노동당으로부터 물러 받았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대중정당이기 때문에 오히려 수준 높은 당 간부가 필요하다. 그래서 당원 교육보다는 당 간부의 스스로 학습이 더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학습하라, 선전하라, 조직하라!”는 미션은 결국 민주노동당 당 간부의 것이다.

    당 간부는 역사와 현실을 학습해야 한다. 선조(先祖) 진보정당들 가운데 특히 영국노동당, 스웨덴 사민당, 브라질노동자당의 역사와 그들이 이루어놓은 성과를 학습해야 한다. 그들의 발전 전략, 성과와 실험, 스스로를 민주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노력들을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당의 강령을 중심으로 현실과 그에 대한 대안을 공부해야 한다. 조세 제도와 국가 예산에 대해서, 그리고 4대 사회보험에 대해서, 교육 제도와 노동 정책, 경제 정책에 대해서 공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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