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산지석(他山之石) 반면교사(反面敎師)
[상선여수] 그들의 조락, 우리는 과연 얼마나 다른가
    2019년 12월 05일 11: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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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은 경영 측과 ‘좋게, 좋게’라는 무원칙한 것이 되어버린 한편, ‘당’ 건설을 뒷받침하는 힘을 잃어 공허한 테제만을 외우게 하는 것이 되어버렸고, 지도자에게는 순종하는 의존적, 비주체적인 인간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지도자들 자신 또한 시대적 상황을 분석하는 것도, 또 노동운동이 나아갈 방향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조직 활동은 논쟁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지게 되어 조합운동은 ‘스케줄화 되어 버린 행사를 소화하는 것’으로, 조합조직은 ‘구심력을 잃어버린 껍데기’가 되어 갔다.”

얼마 전 만난 일본 노동운동가의 고백이다. 학생운동을 포함, 칠십 여년을 운동해 온 그의 회환이 가슴을 친다. 그리고 묻는다. 나는, 우리는 다른가?

한 치 앞도 못보고 건방졌던

지난 2007년 그들과 토론을 시작할 때 나는 “왜 일본 노동운동은 다시 진보정당을 만들 생각을 하지 않는가?”라고 물었었다. 물론 일본 사회당과 공산당의 역사를 모르고 한 말은 아니었다. 다만 너무 현실에 안주해 있는 듯해서 안타까웠다. 그러나 불과 1년도 안되어 민주노동당이 분당으로 쪼개졌다. 오늘 한국의 진보정당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복수노조라는 조건에서 조합원 쟁탈전이 벌어지는 것을 보며 “왜 노동조합끼리 조합원을 조직하기 위해 서로 싸우고, 심지어 죽일 정도까지 갈등이 극대화되고 있는가?”라는 질문도 던졌다. 복수노조를 인정하라고 싸우던 때였다. 그러나 복수노조가 도입된 후 사용자들이 어용노조를 이용해서 거꾸로 우리에게 ‘복수’하는 꼴이 되어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물론 민주노총 산별조직끼리 이처럼 심하게 다투게 될지는 더더욱 몰랐다.

한마디로 건방졌고, 또 건방졌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했다. 십 여 년이 지난 지금 그들 앞에 부끄러움이 더 크다. 진보정당운동에서도, 노동운동에서도, 학생운동과 시민운동에서도 우리보다 훨씬 앞섰던 그들의 조락(凋落)을 보면서 우리는 그와 다를 줄 알았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얼마나 다른가?

올 4월 68차 민주노총 임시대대 모습(사진=노동과세계)

우리는 건강한가?

많은 노조들이 어지간하면 사용자들과 ‘좋게, 좋게’ 넘어간다. 갈등을 만드는 것은 조합원들이 싫어한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야금야금 들어오는 사측의 노림수에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노조가 있는 경우 직장 내 민주화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웬만한 인사 조치는 민주적, 합리적으로 시행된다. 싸울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 신생노조가 아닌 한 쉽게 건드리지도 않는다. 이제 조합비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보험금’에 가깝다.

막 민주노총을 만들던 시절, 한국노총과의 차이를 묻는 사람들에게 “거기는 집회에 참가하는 조합원들에게 차를 대절해 주고, 밥과 술도 사줘야 간신히 조합원들이 참가한다.”라고 비아냥을 섞어 말했었다. 지금은 민주노총도 그렇게 한다. 집회에 참가하는 교통비와 식대는 조합비에서 지급한다. 산별조직이 일 년에 지급하는 교통비는 수 억 원에 이른다. 11월 전국노동자대회에 오기 위해 스스로 돈을 내고, 십시일반해서 술을 마셨던 것은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일이다. 문제는 그렇게 해도 조합원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매년 대의원대회에 등장하는 정세분석은 Ctrl+C, Ctrl+V에 가깝다. 시대적 과제가 무엇인지, 노동운동의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나마 그들의 노동조합 목표엔 ‘안전’과 ‘휴머니즘’도 있고, 기후위기에 노동운동이 대응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실제로 그런 투쟁도 한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우리 노동운동의 파업 이슈는 ‘노동’의 범주를 벗어난 적은 없다. 주택문제든, 교육문제든, 주거문제든, 청년노동자 문제든, 세금 문제든, 정치개혁 문제든 그 어느 것도 투쟁의 주요 쟁점이 되지 않는다. 오로지 ‘노동’의 문제가 투쟁의 주요 사안이다. 노동조합으로서는 당연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거꾸로 우리에게 노동운동은 없다는 얘기가 되기도 하지만…. 이런 마당에 한국사회의 주요한 문제인 ‘불평등’의 문제해결을 위한 방안과 투쟁을 모색해 보자고 하는 것은 나무위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緣木求魚)에 가깝다.

한 해를 보내며 지난 1년 내내 ‘스케줄화 되어 버린 행사를 소화하는 것’으로 지낸 것은 아닌지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노동운동이 나아갈 방향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조직 활동은 논쟁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라는 그의 고백에 오히려 내가 부끄럽다. 노동운동이 ‘구심력을 잃어버린 껍데기’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타산지석(他山之石), 반면교사(反面敎師), 2020년을 맞는 나의 사자성어다.

필자소개
이근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 정책실장. 정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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