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 '중병' 직선제로 치료될까?
        2006년 08월 20일 03:5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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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년 1월23~25일 민주노총 위원장을 80만 민주노총 조합원이 직접 선출하는 역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질 것인가? 그 해답은 오는 25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결정난다.

    민주노총은 18일 오후 3시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1층 회의실에서 제 20차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내년 1월 열리는 민주노총 임원 선거를 조합원 직선제로 치르자는 집행부 안에 대체적으로 의견을 모았다. 이에 따라 22일 중앙위원회를 거쳐 25일 대의원대회에서 직선제 실시 여부가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조합원 100명당 1명씩의 선거인단을 선출해 선거를 치르자는 기존 입장을 바꿔 이날 중앙집행위원회에 직선제 실시안을 전격적으로 제출했다. 민주노총은 ▲조합원에 의한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해 대중적인 신뢰를 강화하고 ▲선거제도를 둘러싼 반복되는 내부갈등을 치유하며 ▲민주노총의 조직력을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직선제를 실시하자고 제안했다.

    또 민주노총은 직선제 실시의 효과로 ▲조합원의 조직에 대한 신뢰 강화 ▲조직력 강화와 조직혁신의 계기 마련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지 구축 등을 꼽았다. 이어 직선제 실시를 위한 선거인명부 작성과 선거비용, 부정선거에 대한 대책 등을 제출해 토론을 벌였다.

       
     
    ▲ 지난 2월 21일 민주노총 임원 선거를 위한 대의원대회 모습(사진 레이버투데이)
     

    투표권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가 쟁점

    이날 회의에서 직선제 실시에 대한 반대의견은 한 사람도 없었다. 단, 선거인 명단 작성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조합원은 민주노총 의무금이 포함된 조합비를 냈는데 단위노조나 연맹에서 민주노총 의무금을 않아 투표권이 없는 조합원 문제가 주요한 토론 내용이었다. 민주노총 의무금을 내지 않은 조합원은 16만명이나 됐다.

    중집위는 ①안 특별선거기금 2,000원 납부한 자에게만 선거권 부여 ②안 2006년도 의무금 100%납부 강제를 통한 선거인수만큼 선거권 부여 ③안 대의원대회 직후인 9~10월 의무금 납부율 평균으로 선거인수만큼 선거권 부여 ④안 선거권과 의무를 분리해 모든 조합원에게 선거권 부여 등 4가지 안을 중앙위원회에 올려 토론하기로 했다.

    민주노총이 선거인단 선거에서 직선제로 급선회한 이유

    민주노총 집행부는 그 동안 직선제가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제출해왔다. 민주노총은 7월 24일부터 단위노조 대표자를 대상으로 한 전국 순회 설명회에서 곧바로 직선제를 하지 못하는 이유로 ▲선거인 명부가 없고 ▲조합원 30% (16만명)에게 선거권이 없으며 ▲공명정대하고 일사분란한 선거관리 체계가 없고 ▲부정선거 시비 등으로 조직분열을 겪게 될 것이기 때문에 철저한 준비를 통해 직선제를 실시하자고 밝혔다.

    그러나 전국순회 설명회에서 단위노조 대표자들은 선거인단 선거의 문제점에 대해 많은 지적을 했고, 직선제를 실시하자는 의견이 많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8월 14일 열린 상집회의에서 직선제가 다시 검토되기에 이르렀다. 이날 회의에서 일부 실장들은 직선제에 대해 반대의견을 표명했으나 조준호 위원장이 “그럼 나에게 개혁을 하지 말라는 것이냐?”고 얘기하며 직선제로 방향을 전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직선제가 나오기까지

    이번에 민주노총 집행부가 직선제를 전격적으로 수용한 이유는 무엇보다 지난 2월 열린 민주노총 임원선거에서 기호 1번 후보들이 민주노총 대의원들의 자격을 문제삼으면서 대의원대회가 파행으로 치달았던 사건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이 때 이정훈 위원장 후보 측은 KT노조(옛 한국통신노조)의 대의원이 회사측 어용대의원이라고 주장하며 출입을 막았고, 대의원대회는 결국 파행으로 끝나고 말았다.

    민주노총의 임원을 선출하는 대의원은 연맹별로 납부한 의무금에 따라 인원이 배정된다. 각 연맹에서는 다시 단위노조에 대의원 숫자를 배정하고, 단위노조에서는 정해진 숫자만큼 대의원대회에서 선출 또는 인준하게 된다.

    이러한 2중 간선제로는 대의원이 조합원들의 이해를 대변할 수 없다는 지적이 오래 전부터 계속되어 왔다. 게다가 일부 연맹에서는 임의적으로 대의원을 배정하고, 그마저도 참석하지 않으면 연맹 상근간부를 후보대의원으로 참석시켜 ‘부정선거’ 시비의 원인이 되곤 했다.

    이같은 이유로 3년 전부터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를 직선으로 치르자는 의견과 민주노총 대의원을 직선으로 선출하자는 의견이 제기되어 왔다.

    직선제에 반대하면 혁신에 반대하는 사람(?)

    이날 회의에서 연맹 위원장이나 민주노총 지역본부장들은 어느 누구도 직선제에 대해 반대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조준호 위원장의 말처럼 직선제에 반대하면 혁신에 반대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분위기가 민주노총 내에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회의에 참가했던 한 연맹 위원장은 “정말 우려되는 부분이 많았지만 민주노총이 하겠다고 하는데 반대하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의 의견그룹들도 직선제에 대해 적폭적인 지지는 아니어도 노골적인 반대의견을 피력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직선제를 제기했던 ‘새흐름’과 ‘노동자의힘’은 공개적인 지지 입장이고, 21일 최종 입장을 정리할 예정인 ‘전진’도 직선제를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민주노총 집행부인 ‘전국회의’와 ‘노연’도 집행부가 직선제 수용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공개적인 반대 입장을 표명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22일 열리는 중앙위원회에서도 공개적으로 직선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구체적인 시행 방안과 관련된 논쟁이 벌어진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노총 김명호 기획실장은 “민주노총 단위노조 대표자 수련대회와 대의원대회에서 직선제 실시의 가능성에 대해 본격적인 토론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의원대회 통과 가능성은?

    그렇다면 대의원대회에 통과 가능성은 높아진 것일까? 민주노총 임원 선거를 직선제로 치르려면 규약을 개정해야 하고 규약개정은 직접-비밀-무기명투표로 2/3 이상을 얻어야 한다. 67% 이상의 압도적인 찬성이 있어야만 규약개정이 가능하다.

    공개적인 반대 입장을 표명한 정파가 없기 때문에 통과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도 높지만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분위기 때문에 공개적인 반대를 하지는 않지만 실제 투표에 들어가면 반대의견도 적잖을 것으로 보인다.

    애초 집행부가 우려했던 것처럼 최근 민주노총 대전과 경남본부에서 진행된 지역본부 임원 직선제에서 나타난 것처럼 부정선거 시비와 정파간의 극한 대결에 대해 대의원들이 상당히 우려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급적인 산별노조운동으로 민주노조 위기 극복해야”

    또 민주노총 산하 연맹이 산별노조로 전환하면 민주노총의 대표성 시비가 상당부분 해소될 것이기 때문에 산별노조 전환을 통한 계급적인 노동운동이 급선무라는 지적도 적지않다. 금속산업연맹의 한 간부는 “직선제는 부정선거의 우려 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이 산별노조가 아니라 민주노총으로 과대 집중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새흐름’의 한 노조간부는 “직선제가 간선제보다는 제도적으로 나을 수 있지만 조직혁신의 핵심적인 화두가 될 수는 없다.”며 “정규직 노동자가 임금에 목을 메면서 사실상 자본주의화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노조운동이 비정규직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사회연대투쟁에 나설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게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라고 말했다. 계급적인 산별노조운동없이 직선제만으로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민주노총은 ‘이대로는 안된다.’ ‘뭔가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위기의식으로 오는 25일 대의원대회에 임원 직선제를 상정했다. 강경투쟁을 결정하고 책임지지 않는 조직, 대공장노조에서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까지 연루된 비리, 민주적 의사결정이 사라진 회의, 민주노총 안에서 활개치는 어용노조 등 민주노총의 중병을 직선제라는 ‘특효약’으로 치료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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