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인 30여명, 장애인지원주택 입소
    권리 보장 위해 '국가 탈시설 로드맵' 필요
    전국 1517개 시설에 입소 생활하는 장애인 3만여명 달해
        2019년 12월 03일 06:05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세계 장애인의 날이 올해로 27주년을 맞은 가운데, 장애인 30여명이 시설을 퇴소하고 서울시 장애인지원주택에 입주했다. 장애인에게 시설 격리를 강요하는 반인권적 정책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함께 살아갈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서울시 장애인 정책에서 비롯됐다. 다만 서울시에 한정한 정책이라 향후 정부 차원의 ‘탈시설 로드맵’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비준국인 한국은 장애인이 사회의 시민으로 함께 살아가는 것이 행운이 아니라 권리로 보장하기 위해 국가 탈시설 로드맵을 수립해야 한다”며 “더 이상 장애인을 시설로 격리하는 게 아니라 장애인지원주택과 같이 지역사회에 기반한 주거서비스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지난 2014년 한국 정부에 대해 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에 해당하는 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 조치의 미흡함을 지적하며 ‘효과적인 탈시설 전략 수립’, ‘탈시설을 위한 지원서비스 확대’ 등을 권고했다.

    협약 19조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조건으로 거주지를 선택하고 특정한 거주형태에서 사는 것을 강요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정부는 2008년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한 바 있다.

    장애인 돌봄지원영역의 공적서비스엔 여전히 시설 입소가 포함돼 있다. 탈시설이라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요구와는 무관하게 거주 시설 ‘격리’가 복지정책으로 분류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전국 1517개 시설에 입소해 생활하는 장애인의 수는 3만여명에 달한다.

    김미연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은 “장애인이 특정한 시설에서 산다는 것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을 근거로 보면 불법적이며 인권을 침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며 “무엇보다 협약은 국가의 제도적 인권차별의 구조적 요소로서 시설을 지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탈시설 정책은 단순히 시설 퇴소 그 자체에만 그치지 않는다. 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복지 서비스 등이 뒤따라야 한다.

    김 위원은 “협약이 말하는 장애인의 탈시설은 단순히 시설에서 살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제14조를 통해 안전과 자유권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며 “개개인의 장애인이 완벽한 개별서비스를 지원받아서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유하라

    장애계는 마로니에 노숙농성 등으로 오랫동안 탈시설 운동을 벌여왔다. 행정 편의적이고 반인권적인 시설 격리 정책에서 벗어나 장애인이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활동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애인 당사자들의 이러한 노력으로 문재인 정부가 출범 직후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자립생활 환경 조성과 탈시설 등 지역사회 정착 환경 조성이 선정됐다.

    문제는 정부가 국정과제로만 선정했을 뿐 탈시설을 위한 구체적 방안 등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올해에 이어 내년 예산안에도 탈시설 지원을 위한 예산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고, ‘국무총리 산하 장애인 탈시설 추진단 구성’, ‘장애인 탈시설 로드맵 마련’ 등의 내용을 담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안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올해 서울시에선 장애인 32명이 시설에서 퇴소해 장애인지원주택에 입주한다. 서울시는 단순 주거제공 뿐 아니라 관련해 필요한 서비스 등도 함께 지원하기로 했다.

    “제 평생 처음으로 제 이름으로 계약된 주택에서 혼자 살게 됐다”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산하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생활하던 신정훈 씨는 20년 만에 시설 생활을 끝내고 서울시 장애인 지원주택에 입주하게 됐다. 신 씨는 “제 평생 처음으로 제 이름으로 계약된 주택에서 혼자 살게 됐다. 불안하고 떨리지만 기대된다. 처음엔 힘들겠지만 적응하면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제 자신을 믿는다”며 “아직 시설에 많은 장애인이 있다. 저처럼 자립할 수 있게 많은 제도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서울시 장애인 지원주택 제도가 정부 차원에서 시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정하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이사장은 “장애인에게 시설에 살기를 강요하는 시대는 끝났다”며 “그들이 지역사회에 나와서 살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 제도 중 하나가 서울시 지원주택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김 이사장은 “전국적으로 장애인 지원 주택 제도가 제도화되면 많은 장애인들이 그 혜택을 받고 지역사회와 통합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는 더 이상 기다리라 하지 말고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서 자립할 수 있는 탈시설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장애계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장애인 거주시설 해체법’ 제정을 촉구할 계획이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노르웨이 정부는 1985년도에 ‘발달장애인의 생활 여건’이라는 공식보고서를 발표해 시설에서 생활하는 발달장애인의 생활여건이 인간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고 밝혔다. 그 후 1988년도에 ‘시설해체법’을 만들고 2008년까지 모든 시설을 해체했다”며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한 한국 정부는 장애인의 권리의 이름으로 장애인 거주시설해체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1대 총선에서 전장연은 이 법을 전면에 내걸고 장애인 거주 시설을 인정하지 않는 대한민국이 될 수 있도록 투쟁해나가겠다”고 밝혔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