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마공원 노동자 또 자살
    갑질, 부조리가 만든 타살
    유서 중···“경마장이라는 곳, 더럽고 치사해서 정말 더는 못하겠다”
        2019년 12월 02일 05: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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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사회는 선진경마를 외치는데 도대체 뭐가 선진경마일까. 그저 시설 좋고 경주기록 좋아서 외국 나가서 좋은 성적만 나면 선진경마인가. 지금까지 힘들어서 나가고 죽어서 나간 사람이 몇 명인데..경마장이란 곳은 정말 웃긴 곳이다.”(고 문중원 씨 유서 내용 중 일부)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15년간 기수로 일한 문중원 씨(41)가 마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부산경남공마공원에서만 벌써 4명의 기수와 2명의 마필관리사가 다단계 고용구조와 열악한 노동조건 등의 문제로 목숨을 잃었다.

    지난달 29일 경마공원 내 기숙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문 씨를 옆 방 동료가 발견했다. 고인은 유서를 통해 “세상에 이런 직장이 어디 있느냐”며 “경마장이라는 곳, 더럽고 치사해서 정말 더는 못하겠다”고 밝혔다.

    문 씨의 죽음의 원인은 마사회의 불합리한 기수, 조교사 제도와 ‘마사회–마주–조교사–기수–관리사’로 이어지는 다단계 고용구조에 있다. 고인은 유서에서 “도저히 앞이 보이질 않는 미래에 답답하고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고 적었다. 앞서 마필관리사들의 잇단 죽음 이후 마사회는 갑질 다단계 구조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문 씨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전혀 달라지지 않은 마사회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유서 내용 일부 캡처

    사진=공공운수노조

    공공운수노조는 2일 오전 세월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산경마공원 개장 이래 벌써 여섯 번째 죽음”며 “복마전 마사회의 부조리가 결국 문중원을 죽였다”고 마사회를 규탄했다.

    그러면서 “2017년 이후 네 명의 죽음이 계속되는 과정에서도, 마사회의 다단계 갑질구조와 부조리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며 “이대로라면 선진경마라는 위선 속에 또 누군가 죽어나가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노조에 따르면, 마사회 기수들은 다단계 구조로 인해 조교사의 부당경마 지시를 받는 등 갑질에 시달려왔다. 이러한 문제는 문 씨의 유서에도 담겨 있다. “일부 조교사들의 부당한 지시에 놀아나야만 했다”며 “부당한 지시가 싫어서 마음대로 타버리면 다음엔 말도 안태워주고 어떤 말을 타면 다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목숨 걸고 타야만 했다. 비가오던 태풍이 불던 안개가 가득 찬 날에도 말 위에 올라가야만 했다. 20대 때는 몸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그저 열심히만 했었는데 어느 때 부턴가 다리 허리 목 어디 성한 곳이 없어 잠을 못 이룬 날도 잦아졌다”

    특히 문 씨와 같은 기수들은 특수고용노동자로서 기본급 등 임금이나 퇴직금도 없이 경마상금만으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는 문제도 있었다.

    기수라는 직업의 한계를 느껴 조교사 자격증을 취득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마사회 간부와의 친분이 없으면 마사대부(마방 배정을 받은 조교사)가 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사회가 주관하는 조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마방 배정을 받으려면 별도로 심사를 거쳐야 하는데, 이 심사 통과 기준이 마사회 간부와의 ‘친분’이라는 뜻이다.

    문 씨 또한 조교사 자격을 취득한 후 5년째 마방을 배정받지 못해 조교사로 일하지 못했다. 그는 “죽기 살기로 준비해서 조교사 면허를 받았다. 그럼 뭐하나…면허 딴 지 7년이 된 사람도 안 주는 마방을 갓 면허 딴 사람들한테 먼저 주는 더러운 경우만 생기는데. 그저 높으신 양반들과 친분이 없으면 안 된다”고 적었다.

    노조는 “부산경남경마본부에서 최근 2년간 발탁한 마사대부는 3인의 평균 면허취득 이후 발탁까지의 기간은 1년 6개월로 매우 짧다”며 “최대 8년 동안 준비하고 기다려온 적체인원에게 큰 박탈감을 주고 있고 옥상옥 심사의 필요성과 공정성 문제가 제기된다”고 설명했다.

    조교사 자격 취득 후 순번으로 마사대부 발탁하는 방식의 조교사 제도 개선, 경마 기수에 대한 적정생계비 보장 등의 요구가 나오는 이유다. 유족으로부터 장례 등 일체의 사항을 위임받은 노조는 ▲마사회 불법·부조리 상황에 대한 진상규명 ▲갑질과 부조리 행위당사자 처벌 및 적극적인 제도개선 ▲마사회의 공식적 사과 ▲자녀 등 유가족 위로보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유족 등은 요구사항이 해결되기 전까지 고인의 장례를 치르게 않기로 했다.

    노조는 “우리는 문중원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을 것”이라며 “고인의 동료인 서울과 부산 제주의 경마기수들과 경마장의 시설환경을 관리하는 노동자, 말 관리사를 비롯해 경마장 안에서 있는 모든 노동자가 ‘더 이상의 죽음을 용납할 수 없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2년 전 박경근, 이현준열사 투쟁에 연대하고, 울분으로 떠나보냈던 노동자 시민이 또 다시 함께 할 것”이라며 “우리는 더 이상의 죽음을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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