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균법은 누더기 되고
    죽음의 외주화는 여전해
    경영진 무혐의, 특조위 권고는 외면
        2019년 11월 27일 11:39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태안화력발전소 고 김용균 노동자의 1주기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문재인 정부가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을 계기로 만들어진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은 시행령으로 인해 ‘누더기 법’이 됐고,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김용균 특조위)의 권고안도 석 달째 이행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겠다는 공약 이행에 의지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경찰은 원청인 한국서부발전 김병숙 사장 등 경영진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김용균재단과 노동·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고 김용균 노동자 1주기 추모위원회’는 27일 오전 광화문 고 김용균 분향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경영진에게 관대한 처벌을 해왔던 관행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진=유하라

    김용균 노동자의 유가족과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는 지난 1월 11일 원청인 한국서부발전과 하청인 한국발전기술 관계자 등 16명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와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고소·고발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맡은 충남 태안경찰서는 지난 11월 22일, 핵심 경영진 김병숙 한국서부발전 사장과 백남호 한국발전기술 사장에 대해선 혐의가 없다며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본부장과 한국기술발전 태안사업소장 등 11명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송치됐다. 하청노동자 산재 사망사고의 주요 관계자로 지목되는 최고 책임자에 대해서만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나올 만한 지점이다.

    추모위는 “태안화력발전소 9,10호기 인력투입에 대한 용역계약은 태안화력본부가 아니라 한국서부발전이 결정했기에 한국서부발전 본사는 스스로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그런데 경찰은 몸통은 온 데 간 데 없이 깃털만 처벌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한국서부발전 또한 지난 2월 5일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와 합의에서 ‘본 사고는 하청구조로 인한 부족한 인력과 안전관리시스템으로 발생한 사고’라며 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

    김용균 노동자가 일했던 태안화력발전소는 서부발전 소속으로, 서부발전은 태안화력발전소의 인력 운영, 예산 편성, 지출 등 모든 경영 방침을 결정한다. 김용균 노동자 등 컨베이어 설비점검 작업자들의 근무형태에 대한 결정 권한, 대상 설비 개선조치 권한 등도 갖고 있다. 서부발전이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에 책임을 인정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추모위는 “태안경찰서의 조사결과는 노동자들은 목숨을 잃어도 괜찮다는, 사업주는 솜방망이 처벌만 받으면 된다는 한국 사회의 노동자 생명안전 경시 태도를 다시 한 번 보여줬다”며 “‘진짜 책임자’인 한국서부발전과 한국발전기술 사장 등에 대한 철저한 재수사와 업무상과실치사죄가 아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찰이 서부발전 등 핵심 경영진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은, 산재 사망사고 해결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간 노동·시민사회계는 하청노동자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산재를 줄이려면 원청과 그 경영진에 단호한 처벌을 내리는 중대재해기업처벌 제정이 필요하다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김용균 특조위의 권고안을 무시하고 20여년 만에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마저 시행령을 통해 무력화했다.

    노동안전보건단체들은 이날 오전 고 김용균 분향소 앞에서 연 기자회견을 통해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하고 김용균 특조위의 권고안을 수용하겠다고 약속했던 문재인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반문했다.

    김용균 특조위는 지난 8월 연료환경설비운전과 경상정비 분야의 직접고용 등을 골자로 하는 22개 권고안을 발표했다. 정부여당도 이듬해 2월, 김용균 특조위 권고안 시행 책임과 정규직 전환의 조속한 실시, 노무비 착복 없는 지급 등을 약속했었다. 그러나 정부는 석 달 째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박기영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문재인 대통령은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하겠다고 공약했고, 국민의 산재 사고를 반으로 줄이겠다고 천명했다. 말은 차고 넘치지만 그 많은 말이 아무런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상임활동가는 “구의역 김군 사고, 김용균 죽음 등 산재 사고의 근간엔 위험의 외주화가 있다. 김용균 특조위도 다단계 하도급에 따른 위험의 외주화가 산재 사망사고의 근본 원인이라 지목했다”며 “그러나 위험 외주화 금지 논의를 촉발한 업종에서조차 개선 조치를 이뤄지지 않고 있고, 민간영역에서 위험의 외주화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은 허울 좋은 말만 내세우지 말라”며 “노동자의 죽음의 향연은 멈추려면 말을 멈추고 즉각 행동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요구가 나왔다. 노동안전보건단체들은 “권고안의 첫 번째 권고사항인 직접고용 정규직화는 산업재해로 노동자들이 죽어나가게 하지 않기 위한 1차적 조치”라며 “외주화를 금지하고 일터에서 차별 없이 설 수 있어야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온전히 주장할 수 있다. 그래야만 사업주들도 자신들이 해야 할 의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윤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인식하고 있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적 풍토가 안착해야만 우리는 더 이상 김용균들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며 중대재해를 일으켜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기업의 처벌을 강화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