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 전엔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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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8월 17일 03:1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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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은 희망인가, 질곡인가. 희망으로 보는 사람이나 질곡으로 비판하는 사람이나 모두 그곳은 중요한 곳이며, 우리의 기대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희망이나, 질곡이라는 표현이 아니라, 현실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그곳으로부터 문제점과 대안을 찾아내려는 자세일 것이다.

    <레디앙>은 앞으로 세차례에 걸쳐 울산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이를 통해 변화해가는 노동자와 노조운동의 현실,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역 여론과 노동자 정치의 현주소,노동운동과 정치운동의 관계 등을 짚어볼 예정이다. <편집자 주>

    울산에 대해 무엇을 먼저 얘기해야 하는가. 울산을 진단하는 문제를 놓고 쉽사리 이야기를 풀어나가지 못하는 것은 어떤 ‘무게감’ 때문이다. 울산은 어떤 곳인가. 울산은 87년 이후 노동운동의 핵심 역할을 해왔고 ‘계급운동’을 선도해왔다는 측면에서 ‘진보운동’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곳이다.

    그렇다면 지금 울산은 무엇인가. 진보세력에게 울산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사실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울산을 파헤치고 울산이 겪는 다양한 문제의 지점을 찾아 나설 이유가 없을 것이다.

    ‘울산’은 그저 울산이 아니다. 울산은 진보운동의 역사이자 상징이다. ‘관심’을 접을 수 없는 것은 울산이 지니는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상징성 때문은 아닐까 한다.

    이 글은 울산을 통해 진보운동의 현재를 조망하기 위한 기초 자료이며 글의 대부분은 울산지역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활동가들의 구술에 의존했다. 따라서 객관적인 분석이 더 필요할 것이다. 또 울산의 전반적인 상황을 모두 포괄하지 못한 한계도 가지고 있다. 

    허구뿐인 8시간 노동제와 주5일근무제

       
    ▲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근로자들이 10일간의 여름 집단휴가를 마치고 7일 조업에 복귀하기 위해 출근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울산의 인구는 110만. 이중 40만 명이 노동자이며 그 가족을 포함하면 80여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노조의 강력한 힘에 기반을 둔 울산은 노동자의 소득수준이 이미 2만 달러를 넘어서고 있어 전국 어느 지역보다 평균소득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평균소득이 높다는 점과 노동자들의 삶이 질적으로 변했는가는 별개의 문제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강력한 민주노조가 존재한다는 현대자동차의 경우, 노동법에 명시된 하루 8시간 노동과 주5일 근무를 기준으로 했을 때, 근속년수가 10년이 넘은 노동자들의 급여가 120만원~140만 원 선이고, 상여금 등을 합해도 월 250만원 수준이다.

    전체 노동자의 평균임금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급여도 ‘시급’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노동 강도가 여전히 높다는 사실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올해 임금교섭에서 현대자동차노조가 ‘월급제’를 주장하는 이유도 전근대적인 급여체계가 변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낮은 임금을 보충하기 위해 오늘도 여전히 휴일이나 주말을 ‘잔업과 특근’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고소득을 얻는 노동자 중에는 과로사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빈발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와의 소득차이는 ‘잔업과 특근’을 누가 더 많이 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잔업과 특근’이 빈번하던 80년대의 노동자들의 삶은 2006년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8시간 노동제와 주5일근무제로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누린다는 것은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조선과 자동차 산업의 호황 속 어용노조 확산

    울산 내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은 4만여 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10분의 1을 간신히 넘고 있어 전국 평균 조직율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수치는 현대중공업 노조가 민주노총에서 제명되면서 가속화되었다. 또한 노사협조주의를 표방한 현대중공업은 민주노조추진세력의 활동을 억제하기 위해 1대1 노무관리를 강화하고 있으며, 조선업의 호황을 기반으로 재벌기업 중 가장 높은 수익을 자랑하고 있는 현대중공업은 많은 부분 노무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 지난 7월25일 현대중공업 김성호 노조위원장이 올해 노사간 임단협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의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이번 합의로 현대중공업은 12년 무분규 협상 타결을 기록했다.(사진=연합뉴스)
     

    울산 동구에 자리하고 있는 현대중공업은 대의원 선거 시기에 투표용지를 카메라로 찍어오게 하는 등 거의 공개투표에 가까운 ‘불법적 행위’로 대의원을 선출하여 민주세력의 진입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 반면에 위원장 선거에서는 보다 자유로운 투표를 행하여 현대중공업 내에 민주세력이 45% 정도는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울산 민주노조의 핵심사업장 역할을 하고 있는 현대자동차에서도 전통적인 보수성향이 8천 명 가량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들은 최근 들어 한나라당에 대한 경계심이 약화된 정치적 환경을 이용해서 공개적이고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현대자동차 근처에 접근불가 대상이었던 한나라당과 그 지지 세력은 한국노총의 한나라당 지지선언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공공연한 활동과 노골적인 보수성을 드러내고 활동하고 있어 민주노조 간부조차 변화된 현실을 실감하며 “97년 총파업투쟁 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은 민주노조운동이 한참 밀리고 있다는 걸 실감한다.”며 걱정스러워 했다.

    이같은 보수성향의 노동자들이 활개를 치는 것은 강력한 노조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진보적인 정치활동, 지방자치활동의 부재 등으로 인해 민주노총과 노조의 파업투쟁 = 진보정치활동으로 이해하고 있어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된 때문이기도 하다.

    지역주민들의 다양한 욕구를 수용하거나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정치활동은 ‘노동자만을 위한 정치’ 또는 ‘대기업노조만을 위한 정치’로 이해되고 있어 진보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가고 있다.

    기업별 노조와 노동자의 보수성

    울산은 현대중공업 노동자의 평균연령이 40대 후반, 현대자동차 노동자는 평균 40대 초반으로 전국에서 가장 근속년수가 높은 사업장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울산은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고용안정의 효과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노동자의 고령화와 고용안정, 조선 및 자동차 산업의 호황 등의 환경이 노동자의 보수성향을 촉진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어용노조’로 평가받고 있는 현대중공업은 민주세력이 45%를 차지하면서도 강력한 투쟁이 부재한 것은 이미 정몽준 회장의 삼성식 노무관리, 즉 노동자의 임금 및 적절한 복지혜택의 제공 때문이다.

    40대를 지나고 있는 노동자들은 여느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자녀교육, 주택문제, 노후문제 등을 해결해야 하는 현실에 부딪히게 된다. 가진 것 없이 몸뚱이 하나만 믿고 살아가는 노동자들에겐 한살이라도 젊었을 때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자리하고 있다. 노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은 향후 10년, 이시기에 돈을 모아놓아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연대성을 앞세운 투쟁보다는 ‘임금’에 관심이 높고 여전히 ‘잔업과 특근’을 통해 경제력을 확보하는 일이 최우선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같은 풍토는 기업별노조가 오랫동안 정착하면서 나타나는 필연적인 결과이기도 하다.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간의 연대문제가 외면당하는 것도 결국 노동자의 개별적 임금 등이 우선적 관심사가 되는 풍토가 만들어낸 결과라 할 것이다. 문제는 기업별 노조 체제 아래 드러난 이같은 풍토는 보신주의, 비리, 특혜 등의 문제와 결부되면서 정치적 보수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용과 분배를 둘러싼 노-노 갈등

    현대자동차 노조 등 대공장 노동자들이 사회적으로 비판받았던 첫 번째 항목은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태도와 연대활동 기피현상이었다. 울산의 비정규직 노동자 규모는 25만 명에 이르고 있어, 전체 노동자의 40만명의 60%가 넘는 규모이다.

    대공장 노동자의 채용도 정규직 부문은 정체상태이며, 퇴직한 정규직 자리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차지하고 있어 정규직 노동자는 점차 축소일로에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확대추세에 있다.

    이같은 자본가의 채용관리는 정규직 노동자들로 하여금 심리적인 불안감(고용불안)을 부추기고,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적대시’ 분위기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강력한 노조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 정규직 노동자도 비정규직으로 내몰릴 것이란 불안감이 잠재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은 자본가의 ‘고용정책’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또한 ‘고용’을 둘러싼 ‘노동시장’ 진입을 둘러싼 노-노간의 우선권 다툼으로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현대자동차노조 등 강력한 노조가 존재하지만 ‘고용문제’를 해결할 만큼의 사회적 영향력을 갖추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산별노조는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불안’ 문제를 해결해야 할 막중한 과제를 안고 탄생한 셈이다.

    또한 대공장노조와 중소기업노조의 갈등도 자본가들의 차별정책이 중심에 있다. 대공장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강성노조는 민주노총 소속인대 반해, 투쟁력이 약하고 자본의 힘도 미약한 중소하청기업의 경우 한국노총 소속이 많은 편이다.

    중소하청기업들은 대기업의 ‘하청단가 인하’의 주원인을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따라서 대기업 노조의 임금인상투쟁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하고 있다.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이 올라가면 대기업 자본가들은 그 공백을 중소기업의 하청단가를 ‘뚝’ 잘라버리기 일쑤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에 집중되어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은 더욱 비참해진다. 중소기업의 하청단가가 터무니없이 깎이면 그 피해는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삭감으로 현실화되기 때문이다. 이같은 자본의 분배와 투자의 무원칙함 등으로 인해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간의 갈등으로 비화되고 있는 셈이다.

    지역경제를 흔드는 대기업 이전문제

    이번 울산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가장 큰 이슈는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가 울산에 남을 것인가, 다른 지역으로 이전할 것인가가 시민들의 요구가 이슈로 부각되었다.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이 구속되기 전 독일에 차세대 연료전지차 공장을 지으려했다는 사실은 지역주민들로 하여금 불안에 휩싸이게 했다.

    대부분의 노동자와 지역주민들 현대자동차가 울산을 벗어날 경우, 울산지역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란 데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정몽구 회장의 석방탄원 운동은 이같은 시민들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한 보수 세력과 현대 쪽의 공세적 행위로 해석되었다.

    현대 울산은 현대중공업의 일부가 포항으로 이전하는 MOU협약이 체결된 상태이고,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대거 수도권으로 이전하는 등 울산지역경제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으로 지역주민들은 지역경제의 타격을 걱정하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지역경제의 이슈에 대한 진보진영의 대안이 노동자와 지역주민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기업주가 지역주민의 여론과 노동자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맘대로 이전하지는 못한다는 여론 때문에 여전히 강력한 노조의 존재와 목소리는 그나마 노동자들에게 위안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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