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주52시간제 또 유예
    특별연장근로 범위도 확대···"노동절망"
    심상정 "박근혜 행정독재 답습", 나경원 "정책 실패"
        2019년 11월 19일 01:2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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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내년 1월부터 주 52시간제를 도입하기로 한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 계도기간을 주기로 했다. 주 52시간을 넘겨 일을 시키는 것에 대해 단속도, 처벌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또 특별연장근로 인가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 ‘경영상의 이유’ 등을 추가하는 내용으로 시행규칙도 고친다. 사용자가 원하면 언제든 특별연장근로가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주 52시간제 무력화를 위한 정부의 행정조치에 노동계와 진보정당은 물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비판이 터져 나온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주 52시간 상한제를 누더기로 만들었다”고 했고, 노동계는 “문재인 정부 노동절망 정책에 분노한다”며 총파업 투쟁을 예고했다. 정부여당에 우호적인 정의당도 “박근혜 정부의 ‘행정독재’를 답습하는 것”이라며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부, 주52시간제 또 계도기간 부여
    특별연장근로 인가 범위도 최대한 확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1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탄력근로제 개선 등 입법이 안 될 경우 주 52시간제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장을 중심으로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우선 정부는 50~299인 사업장에 주 52시간제의 충분한 계도기간을 부여하기로 했다. 주 52시간제는 단계적으로 시행돼 중소기업은 이미 300인 이상 대기업보다 더 긴 유예기간이 주어졌으나 여기에 또 다시 추가 유예기간을 주겠다는 뜻이다. 계도기간이 얼마나 될지는 정하지 않았으나 300인 이상 대기업에 부여했던 6~9개월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가 탄력근로제 확대 법안을 처리하지 않으면 정부가 시행규칙을 바꿔 특별연장근로 인가 요건도 확대하기로 했다. 현재는 ‘천재지변 등 자연·사회적 재난’이 발생했을 때에 한정해 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얻어 주 64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특별연장근로의 범위를 정해놨지만, 정부는 이 시행규칙을 고쳐서 ‘일시적인 업무량 급증 등 경영상의 사유’로 그 범위를 대폭 확대할 방침이다. 사전 승인도 필요 없다. 임의로 노동시간을 연장하고 사후에 승인을 받아도 된다.

    노동부 “주 52시간 절대기준 아냐…유연근로와 함께 가야”

    박화진 고용노동부 노동정책실장은 18일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국회에서 (탄력근로제 확대) 입법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불확실한 상황”이라며 “경기 상황도 안 좋고 중소기업 운영하는 분들이 어려움이 있다”며 주52시간 계도기간 부여 등에 관한 배경을 설명했다.

    박 실장은 계도기간이 얼마나 될지에 대해선 “중소기업이 준비하는 데 차질이 없도록 충분한 기간을 드릴 예정”이라며 “대기업 같은 경우 지난해 6월에 시행할 때 일괄적으로 6개월을 줬고, 노동시간 단축 계획을 제출하고 개선 노력을 한 기업에 대해선 3개월을 추가로 부여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보다 준비하는 데 더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이를 감안해서 충분한 기간을 부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 실장은 정부 방침에 대한 노동계 등의 반발에 대해 “노동시간 단축은 큰 흐름에서 봐야지 주 52시간을 절대적인 기준이나 절대적인 한계처럼 생각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영상 사정으로 업무량이 늘어나면 조금 더 일하고 업무량이 줄어들면 조금 덜 일할 수도 있다”며 “근로시간 단축과 근로시간 유연책은 함께 운영해야 한다. 오히려 근로시간을 단축을 하면 유연하게 근로시간을 운영하는 게 더 필요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라 특별연장근로 등의 유연근로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특별연장근로 인가 범위에 포함된 ‘경영상의 사유’는 얼마든지 자의적 해석이 가능해 장시간 노동이 고착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도 악용을 방지할 사전, 사후 대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탄력근로제 확대를 주도해온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사용자가 마음대로 일 시킨다고 일 할 노동자가 어디 있겠느냐”는 무책임한 발언까지 했다.

    문성현 위원장은 이날 오전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악덕 사업주가 제도를 악용해 노동자 수를 줄이고 업무량은 늘리면 장시간 노동이 고착화되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 “300인 미만 중소기업은 인력난이다. 젊은 사람들이 중소기업에 안 가려고 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민주노총 “불공정 원하청 문제는 무관심, 작은 사업장 노동자에 고통 전가”
    한국노총 “자연재해와 업무량 증가 동급 취급…전 세계 유일”

    노동계는 즉각 반발이 터져 나왔다. 민주노총은 문재인 정부를 “노동절망 정권”이라고 규정했고, 한국노총은 “정부가 무능함을 스스로 인정했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18일 낸 성명에서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1만원 정책 포기에 이어 노동시간 단축 정책마저 포기하는 문재인 정부 노동절망 정책에 분노한다”며 “정부와 국회의 개악 시도에 맞서 우리가 가진 모든 역량을 모아 모든 노동자의 노동인권 보호를 위한 총파업 투쟁을 준비하겠다”고 경고했다.

    특히 특별연장근로 인가 범위 확대에 대해선 “일시적 업무량 급증은 어느 업종, 어느 사업장이나 겪는 상황”이라며 “매해 폭설이나 방제작업 등 ‘일시적 업무량 급증’에 동원돼 과로사하는 공무원 노동자들을 보며 노동시간에 대한 자의적 통제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알고 있다”고 우려했다.

    민주노총은 “일시적 업무량 급증은 원청 납품기한 일방 단축요구나 긴급 발주 등 원하청 구조문제”라며 “문재인 정부는 원청 갑질이나 불공정한 원하청 구조문제 해결에는 관심 없이, 사업장 규모가 작을수록, 임금이 적고 보호해줄 노동조합 힘이 약할수록 더 많은 희생과 고통을 전가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노총도 같은 날 성명을 내고 “정부는 노동시간단축 정책과 관련해 스스로 무능함을 인정했다”며 “시행 한 달을 앞두고 정부가 계도기간을 꺼내 든 것은 스스로 제 역할을 하지 못했음을 시인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는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정부는 강력한 정책 추진의 의지보다는 ‘보완’이라는 이름으로 애매모호한 시그널을 기업에 보내왔으니 어떤 기업이 최선을 다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이들 또한 특별연장근로 인가 범위 확대에 관해 “일시적인 업무량 증가와 경영상 사유는 사용자가 언제든지 주장할 수 있으며, 자의적인 해석도 가능하다”며 “자연재해와 회사의 업무량 증가가 동급으로 취급되는 법을 가진 국가는 전 세계에 대한민국이 유일하게 됐다”고 했다.

    심상정, 노동부 행정명령 철회 촉구
    “문재인, 박근혜의 행정독재 답습…유감”
    “행정지침 남발하는 정부, 전교조 문제는 왜 안하나”

    이용득 불출마 선언하며 “문재인 정부, 52시간제 누더기 만들어”

    정치권 내에서도 비판이 많다. 정의당은 물론 민주당 내에서도 불만이 나온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19일 오전 의원총회에서 “이번 정부의 조치는 52시간제를 형해화하려는 꼼수”라며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공약인 노동시간 단축정책을 ‘포기 선언’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심 대표는 “정부가 법으로 정해진 것을 걸핏하면 시행령 또는 행정지침으로 모법을 훼손하는 것은 심각한 입법권 침해다. 이는 과거 민주당도 날을 세웠던 박근혜 정부의 ‘행정독재’를 답습하는 것으로 매우 유감”이라며 “그런 식으로 행정지침을 남발하면서 ‘노조 아님’이라는 정부의 통보로 합법성을 박탈당한 전교조에 대해서는 왜 행정조치를 하지 않는지 궁금할 따름”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올해 전반기만 해도 벌써 262명이 과로사로 목숨을 잃었다. 전년 동기 대비 48명이나 늘어난 수치다. 그런데도 고용노동부는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확보하기 위한 포괄임금 규제나 과로사 방지 행정조치는 내팽개친 채 재계의 민원수리에만 정성을 쏟고 있다”며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중소기업의 부담에 대해서는 정부가 노동자에게 떠넘기지 말고 종합적인 대책을 세우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정의당은 주 52시간 노동제의 취지를 역행하는 정부의 반노동 정책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며 “고용노동부의 명백한 입법권 침해와 자의적 행정명령은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용득 민주당 의원은 전날 자신의 블로그에 “치란 유의미한 함수관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유의미한 함수관계가 곧 확고한 지지층으로 연결된다”며 “그러나 우리 편이라고 믿었던 정부가 2년도 안 돼 주 52시간 상한제를 누더기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에 노동자를 위한 정치는 없다”며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 의원은 “제 뒤를 이어갈 후배님들은 정치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생각하고, 유의미한 함수관계를 만들어 진정한 노동존중사회 실현을 위해 힘써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나경원 “결국 주52시간제 실패 인정…백기투항한 것”

    주 52시간제 도입 당시 유연근로 도입을 요구해온 보수정당은 “근로시간단축 정책의 실패”라며 정부를 몰아세우고 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1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정부가 결국 주52시간 위반 처벌 유예 방침을 밝혔다. 말이 계도기간 부여이지 사실상은 무리한 주52시간제의 실패를 인정한 백기투항”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가) ‘일 한번 참 못 한다’ 이런 말씀들이 많이 있다. 저도 동감”라고 덧붙였다.

    나 원내대표는 “처음부터 주52시간 도입할 때 야당과 전문가들이 업종별, 규모별 예외와 차등을 둬야 현실적으로 운용 가능하다고 수차례 지적해왔고,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연장과 선택근로제, 특별연장근로제 확대 등 보완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거듭 말해왔다”며 “그럼에도 노조 눈치보기에만 급급해서 근본적인 보완책, 개선책 마련에는 손 놓고 있다가 또다시 땜질식 처방을 내놨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와 여당은 더 이상 고집부리지 말고 자유한국당이 제안한 탄력근로제, 선택근로제, 특별연장근로제 확대를 수용하시라”며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없고 문제를 외면하거나 덮는 처리 방식이 결국 현장의 불만과 혼란만을 부추길 것”이라고 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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