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독점자본주의 등장?
    [지구화시대 자본주의-‘후기 국독자론’] 제4장 현대제국주의⑥
        2019년 11월 18일 12:2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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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장 현대제국주의 연재 순서:

    1. 냉전체제하의 ‘동맹적 제국주의’
    2. 탈냉전과 ‘단일패권적 제국주의’
    3. 달러패권의 특별한 중요성
    4. 현대제국주의하의 세계경제 균형
    5. 현대제국주의의 쇠퇴(전회의 글)
    6. 국가독점자본주의인가 국제독점자본주의인가?

    현대제국주의에 관한 논의를 마치기에 앞서, 이제 본 연재의 기본 화두인 현 시기 자본주의 성격에 대한 결론을 내려야 할 때가 되었다. 앞서 제2장과 제3장에서 부분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긴 하였지만, 여기선 조금 각도를 달리하여 계급과 국가의 상관관계로부터 접근해보도록 하자.

    만약 자본주의가 이미 국제독점자본주의 단계에 진입하였다면, 각국의 개별적인 국제독점자본가 이외에도 이런 국제독점자본주의의 주체인 ‘국제독점자본가계급’이 마땅히 존재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현 시기 자본주의의 단계규정 문제는 계급문제와 연결되게 된다. 실제 국제독점자본가계급의 존재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하는 학자들이 있는데,

    미국학자 윌리엄 로빈슨과 제리 해리스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이 미국 《과학과 사회》(2000년 봄호)에 발표한 <현재 형성 중에 있는 통치계급: 지구화와 국제자본가계급>이란 글에서 주장한 것을 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나온다. “(지구화의 심화에 따라) 자본가계급의 내부에도 분화가 일어난다. 즉 민족국가의 자본가계급과 국제자본가계급으로 나누어진다.”, “이 국제자본가계급은 전 지구적 통치계급이며, 그들은 현재 형성 중인 국제기구와 지구적 정책결정을 통제한다.……(이 계급성원은) 다국적기업과 다국적 금융기관 그리고 초국가 경제계획기구의 관리엘리트, 집권정당 내의 주요세력, 대형 매스컴의 지배엘리트, 기술엘리트 내지 북방(서구선진국-주)과 남방(개발도상국-주) 국가의 지도자로 구성된다. 이러한 통치 집단의 정치주장과 정책은 새로운 지구화한 자본 증식과 생산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국제자본가계급은 자각적인 계급의식이 있고 자신의 국제성을 의식하고 있으며, 자본주의의 지구화와 하나의 국제국가기구의 건립이라는 자신의 계급적 목적 실현을 줄곧 추구한다.”(1)

    본 연재의 제2장에서 기술한 대로 국제독점자본은 이미 상당정도 발전하여 오늘날 사실상 자본주의의 제 분파를 대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만약 이로부터 각국의 국제독점자본가들 역시 이미 민족국가의 울타리를 깨고 전 지구적 범위에서 하나의 통일적인 계급을 형성하였다고 섣불리 결론을 내린다면 이는 현실 상황을 지나치게 과장한 것이 될 것이다. 국제독점자본집단 내부의 일체화 정도, 국제독점자본가의 자아의식과 자각정도 등 하나의 계급으로서 정식 성립하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 중요한 기준들에 입각해 본다면, 이들은 아직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많이 있다.

    우선 객관적으로 지구적 국제독점자본은 그 내부의 분산성과 경쟁성이 아직까지 통일성보다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또 주체 측면에서 볼 때도 이들 자본가들이 자신을 하나의 통일적 계급과 집단으로 간주하면서 상호 협력하는 현상은 비교적 적으며 아직 주류를 형성하고 있지 않다.(2) 다시 말해서 객관적으로든 주체적으로든 이 집단이 하나의 의식적이고 자각적인 통일적인 계급이 되기에는 현재로선 아직 이르다고 할 수 있다. 각국의 국제독점자본은 사실상 본국 정부의 지지와 협력을 국제시장에서의 주요한 경쟁무기로 삼고 있으며, 세계 각지의 배타적인 ‘지역경제 집단화’ 내지 ‘지역경제 블록화’ 현상에서 볼 수 있듯이 국제시장에 있어 각국의 독점자본 간 차이와 투쟁은 그들 간 공동이익과 협력보다도 더 크다. 그들은 다만 제한된 문제들에 있어서만 공동보조를 취하며 또 종종 본능에 입각해서 행동할 뿐이지, 하나의 ‘통일적 계급의식’에 기반하여 협력하는 것은 아니다.

    주변의 일부 사람들이 미국이라는 슈퍼 패권국가의 존재와 그것이 한때 열심히 선전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구호에 미혹되어 잠시 착각에 빠져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바로 이러한 패권국가의 존재야 말로 현 시기 각국 독점자본 간의 심각한 이해 대립이 존재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을 반영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지난 호에서 언급하였듯이 제국주의 자체는 일종의 각국 독점자본 간 ‘경쟁’의 특수한 형식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현재의 자본주의가 국제독점자본가계급이라는 사회 계급적 기초와 그 실현의 사회경제적 기초를 이미 형성하였다라고 한다면, 필연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상부구조 또한 존재하여야만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각 시기마다 그 시기 자본주의 성격에 조응하고 또 당시 지배적인 자본주의 분파의 이해를 대변하는 상부구조의 특수한 형식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19세기 중엽까지는 자유경쟁자본주의 단계에 조응하는 자유방임적인 ‘야경국가’가 존재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까지는 일반 사적 독점자본주의에 조응하는 ‘금융과두정치’가 존재하였으며, 종전 이후에는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성립에 따라 그에 조응하는 ‘복지국가’가 존재함으로써 통치계급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었다.

    그렇다면 현 시기 자본주의가 국제독점자본주의단계에 진입하였다고 한다면 그에 걸맞는 상부구조는 과연 무엇일까? 국제독점자본의 지구적 차원의 자본축적운동이 이미 본격화한 점을 감안한다면, 그것은 우선 ‘세계정부’일 것이 요구된다. 때문에 현 시기 자본주의의 성격규정에 관한 문제는 이 지점에 오게 되면 국제적으로 하나의 ‘지구적 정부’ 혹은 이와 비슷한 어떤 국제적 권력기관이 형성되었는지 여부와 관련되는 문제가 되는데, 즉 ‘세계정부’의 존재유무가 쟁점이 되게 된다.

    ‘세계정부’ 문제와 관련하여 볼 때, 국가와 국가주권의 소멸을 주장하는 세계주의자들이 소수이긴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존재한다. 예컨대 미국의 마이클 하터와 이탈리아 안토니오 네그리가 그들이다. 이들의 견해에 따르면 지구화경제 시대에 이르러서 자본‧기술‧인력‧상품의 흐름이 국경을 초월하여 진행되기 때문에 ‘세계정부’는 이미 형성되었으며, 이는 일종의 ‘체제’와 ‘규칙’, ‘패러다임’으로 구성되는 국경이 없고 중심을 세우지 않는 ‘제국’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제국은 하나의 정치주체로서, 이 같은 지구적인 교류를 유효하게 통제하고 있으며, 세계를 통치하는 최고의 권력이다.”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이렇듯 ‘세계정부’ 혹은 ‘지구정부’와 같은 개념을 제기하고 이에 동조하는 학자들이 세계 곳곳에 존재하긴 하지만, 그들은 “행정적 경계가 이미 사라졌다”, “국가주권이 이미 실효되었다”, “국제정부가 이미 형성되었다”와 같은 설교 외에는 구체적으로 이러한 국제정부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현존하는 세계의 모든 정치경제 조직 가운데서 어떤 것들이 이러한 세계정부의 기능을 담당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분명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3)

    필자는 현 시기 자본주의단계의 규정문제와 관련하여 볼 때 최근 금융위기와 세계경제위기는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본다. 금번 경제위기의 의의는 무엇보다도 미국이라는 초패권국가의 몰락과 또 그것이 구축하려고 지금까지 시도해온 새로운 세계질서의 실패를 최종적으로 확인한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로써 세계자본주의는 ‘국가독점자본주의’에서 ‘국제독점자본주의’로의 이행에 실패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전지구적인 자본주의 상부구조의 형성문제와 관련하여 볼 때, 냉전체제 종식 직후에 미국이라는 유일 패권국가가 등장함으로써 한때나마 ‘초제국주의’의 실현 가능성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그것은 대략 1990년~2000년대 초반인데, 이는 비록 역사적으로 긴 기간은 아니었지만 국제독점자본주의로의 이행에 필요한 상부구조를 성립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미국으로 상징되는 현대제국주의가 세계자본주의의 국제독점자본주의단계로의 이행을 위한 충분조건으로서의 ‘자본주의 세계정부’에 가장 근접했다고 보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시기는 지구적 상부구조의 구축에 있어 필수적인 이데올로기로서의 ‘자유화’와 ‘사유화(私有化)’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가 전세계적으로 가장 맹위를 떨쳤다.

    둘째, 현대국가의 성립에 있어 화폐권력의 수립은 매우 관건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시기 미국은 자신의 주권화폐인 달러를 중심으로 하고, 그에 덧붙여 유로와 엔화 등을 보조화폐로 하는 세계통화체계를 구축하였다.

    셋째, 이 시기는 서방 7개국으로 구성된 소위 ‘G7’의 전성기이며, 이를 통해 세계자본주의는 전 지구적 차원의 경제협력과 조절을 수행할 수 있는 일정한 기재를 형성하였다.

    넷째, 당시 미국은 유일무이한 슈퍼군사력을 바탕으로 스스로 ‘세계경찰국가’로 자임하였으며, 심지어는 민주와 인권을 내세워 다른 나라의 주권을 제한하는 수준으로까지 나아갔다. 잘 알다시피 무장력은 어떠한 정치적 상부구조에 있어서도 가장 근본적인 요소이다.

    미국은 이렇듯 이 시기 국내적으로는 그 국력이 2차 대전 종전 이후 최전성기를 맞이하였으며, 국제적으로도 ‘초제국주의 세계체제’의 성립을 강력히 주도함으로써 잠시나마 국제독점자본주의단계로의 이행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필자가 보기엔 자본주의는 이처럼 초제국주의가 주도하는 세계체제라는 형식으로밖에 그 ‘세계정부’ 수립의 목표를 실현할 수 없으며, 각국의 평등한 관계에 입각한 ‘세계공민’으로 구성되는 지구적 연방정부의 성립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1990년대 세계자본주의가 누렸던 비교적 긴 기간의 호황은 기술적으로는 IT혁명에 기인한 바가 크지만, 다른 한편에선 상부구조 측면에서 볼 때 이 같은 ‘초제국주의체제’ 성립을 향한 사업진척이 이 시기에 비교적 순조로웠던 요인 역시 빼놓을 수가 없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진원지였던 리먼브라더스

    그러나 미국이 자국 발 금융위기를 맞이하면서 미국 국력의 급속한 쇠퇴와 함께, 세계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로의 이행의 가능성도 사실상 물거품이 되었다. 자본주의는 초보적인 초제국주의국가를 탄생시키는 데까지는 일시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것을 장기적으로 구조화하고 안정화하는 데에는 실패하였다고 볼 수 있다. 최근의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신자유주의 이념은 그 설득력을 대부분 상실하였으며, 미국 군사력도 이 같은 ‘이념적 지지’를 상실함으로써 기능이 현저히 저하되었다.(4) 또 금번 경제위기 기간 중에 미국이 보여준 자국 경제위기를 다른 나라에 노골적으로 전가하는 태도는 국제적으로 미국 달러패권에 대한 의문을 강하게 제기하게 만들었으며, G7 전반의 지도력도 경제위기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됨에 따라 그 지위를 개발도상국의 신흥강국들이 다수 참여하는 G20에 넘겨주게 되었다.

    필자는 1990년~2000년대 초반에 잠깐 출현하였던 미국으로 상징되는 초제국주의의 존재 가능성은 현대사회에 있어 두 번 다시 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며 향후에도 재현되기 어렵다고 본다. 비록 미국을 비롯한 세계 자본주의국가들이 이 같은 체제의 ‘복구’를 위한 시도에 나서겠지만, 그러나 또 다시 이 같은 국가가 출현하거나 더 나아가 안정적으로 구조화 하는 것은 지금에 와선 거의 불가능하다. 금융위기 발발 이후 미국과 다른 서구 선진국들의 국력이 지속적으로 약화되어 가고 있는 모습은 이를 잘 입증해준다. 자본주의는 그 때문에 앞으로도 세계적 다국적기업들이 경제적 토대에 있어 실현하고 있는 전 지구적 생산관계와 생산시스템에 걸맞지 않게, 정치적 상부구조에 있어선 여전히 ‘일국적’ 국가형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모순에 시달릴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자본주의 기본모순인 생산의 사회화와 자본주의적 사적점유 간 대립의 새로운 발전양상이자 그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아직 지구적으로 통일적인 국제독점자본가계급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고, 또 무엇보다도 자신의 진정한 자본주의적 ‘세계정부’를 성립시키지 못하고 있는 현 단계 자본주의는, 비록 그것이 국제독점자본주의로의 발전을 지향하고는 있을지라도 여전히 국가독점자본주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때문에 필자는 현 시기 자본주의를 ‘후기 국가독점자본주의’라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며 이를 제안한다.(제4장 현대제국주의—끝)

    [본문 주석]

    1. 이상의 예는 [中]王金存,2008년,《帝国主义历史的终结―当代帝国主义的形成和发展趋势》,pp219-220에서 재인용.

    2. 위의 책,p221.

    3. 이상 예와 인용문은 위의 책, p.222 참조.

    4. 패권국가 미국의 도덕적 역량의 쇠퇴와 관련하여 그가 앞장서 표방해온 신자유주의의 운명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폭발은 1980년대 초부터 시작해서 과거 30년 가까이 추진해온 미국자본주의 발전의 주요한 이데올로기와 실천(즉 신자유주의)을 커다란 모순에 부딪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미국공산당은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금융위기는) “넓은 의미에서 미국자본주의 이데올로기, 정치 그리고 경제상의 커다란 실패이다. 금융화, 금융주도의 지구화와 신자유주의는 비록 아직 완전히 쇠망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 미래에 있어 문제가 첩첩이 쌓여져 있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미국 금융시장의 붕괴는 미국제국주의의 21세기 패권에 대한 야심에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금융위기와 이라크에서의 재난, 세계 민중의 세계 신자유주의와 구조조정정책에 대한 분노 및 각 지역의 새로운 강국의 출현은, 미 제국주의의 패권위기가 새로운 단계로 들어섰음을 의미하며, 단극세계가 이미 막바지에 진입하였음을 뜻한다.”[中]李慎明 主编,2009,《달러패권과 경제위기(美元霸权与经济危机)》,社会科学文献出版社, pp598-599.

    필자소개
    북경대 맑스주의학원 법학박사 , 노동교육가, 현재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정책자문위원, 맑스코뮤날레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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