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백년전 미국 농무부 공무원이
    한중일에서 발견한 놀라운 비밀
        2006년 08월 15일 01:4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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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9년 미국의 농무부 공무원 한 사람이 동양의 중국과 일본, 한국의 농촌을 답사하여 쓴 글을 책으로 묶어 출간했다. 올해 우리나라에도 4천년의 농부』(F.H. 킹, 들녘)로 소개된 이 책에서 저자는 4천년 이상 오랜 세월 동안 농사를 지었음에도 전혀 흙이 사막화되지 않은 이 지역의 농부들에게 경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서양에선 100년만 농사를 지어도 그 땅은 황폐화되거나 심하면 사막화 현상이 나타나는 것에서 볼 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어 그 비밀의 열쇠를 파악하기 위해 비행기도 없는 고난의 여행길을 저자는 과감히 뛰어들었다.

    1년 가까이 이 지역을 구석구석 탐사한 끝에 저자가 내린 비밀의 핵심 세 가지 중에 첫째는 똥이었다. 서양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똥을 혐오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육식을 주식으로 하는 습성 때문에 우리처럼 밥과 김치나 된장을 먹는 사람들의 초식 똥보다 육식 똥이 더 더럽기 때문이다.

    똥이면 다 같은 똥이지 육식 똥과 초식 똥이 뭐가 다르겠냐고 하겠지만 초식동물인 소똥을 옛날엔 연료나 건자재로도 썼던 것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거름으로 쓸 때도 소똥이 제일 안전하다.

    어쨌든 서양 사람들에게 인분을 거름으로 쓴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인분은 사람 눈에 보이지 않게 물로 씻어서 아주 멀리 처분해야 될 가장 더러운 쓰레기일 뿐이다. 그래서 그들이 수세식 변기를 만들었고 인분의 해양투기 방식을 개발했다.

    저자에 따르면 아직 현대식 수세 변기가 일반화되지 않은 시절에 강물이나 호수나 바다에 똥을 깨끗하게 투기하는 자기 나라에선 파리가 극성을 부리는데 반해, 동양 3국에선 앞마당, 뒷마당, 하다못해 길거리에서도 흔하게 똥을 볼 수 있는데도 파리가 별로 없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똥을 물에다 버리면 반드시 구더기가 크게 번식한다. 뿐만 아니라 그 똥은 병원균의 온상이 된다. 그러나 똥을 흙에다 버리면 구더기도 끼지 않을 뿐 아니라 병원균은커녕 오히려 병원균을 죽이는 좋은 미생물들이 증식한다. 바로 똥을 퇴비로 만드는 과정이다. 저자가 본 것은 다름 아닌 이렇게 똥을 퇴비로 만드는 동양인들의 지혜를 본 것이다.

    사람이 먹고 살기 위해 흙을 갈아서 씨를 심어 작물을 키워먹지만 먹은 만큼 다시 땅에다 돌려주지 않으면 땅은 이내 황폐해지고 만다. 돌려주지도 않을 뿐 아니라 계속 수탈해 먹으면 곧바로 땅은 죽음의 사막으로 변하고 만다. 앞글에서 잠시 비췄지만 땅을 가장 수탈해먹는 방식이 바로 목축 중심의 농업이다.

       
    ▲ 한 농부가 논갈이에 쓸 거름을 소달구지에 싣고 논으로 옮기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먹은 만큼 다시 땅으로 돌려주는 것의 핵심이 똥이다. 똥과 아울러 음식물찌꺼기와 농사짓고 생기는 부산물들 그리고 땅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잡초들까지 모두 다 돌려주면 땅은 계속 자원순환의 바탕이 된다. 이런 순환 농사를 지을 줄 모르는 사람들이 화학비료를 만들었다. 자기가 먹다 남은 것은 자연을 오염시키는 쓰레기로 버리면서 그로 인하여 생기는 빈자리는 비싼 돈 주고 사다가 메우는 아주 이상한 방식인 것이다.

    그런데 똥을 그냥 땅에 뿌려주면 땅은 오염된다. 똥을 퇴비화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퇴비화란 한마디로 발효를 뜻하는데, 이를 위해선 똥을 풀과 함께 섞어야 한다. 가축 우리에 풀을 넣어서 가축들 똥과 함께 섞여 절로 발효되어 나오는 두엄이 바로 그 전형이다.

    이렇게 하면 밭에서 풀을 매고 생기는 다양한 풀들도 다시 땅으로 돌아가고 가축들에게 먹일 여물과 다양한 풀들은 가축들 배를 거쳐 훌륭한 똥거름을 만들어낸다.

    저자가 놀란 동양인들의 지혜 중 두 번째는 치수정책이다. 중국은 고대의 우왕 때부터 치수를 나라의 근간으로 삼았다. 황하와 양자강을 이어 대운하를 만들었고 그것을 대동맥으로 삼아 시골 마을 구석구석까지 물이 다 들어가게끔 했다.

    그리고 이 물로 중국의 농민들은 논농사를 열심히 지었던 것이다. 양자강 유역의 거대한 논농사 지대는 또한 그 자체가 거대한 호수의 역할도 했다. 그래서 양자강 유역이 중국의 곡창 지대로 각광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양자강 유역처럼 평야지대가 아닌 산악지역이라 중국과 다른 치수정책을 펼쳤다. 둠벙과 저수지, 그리고 다락논이다. 우리는 평야지대에서조차 논 한배미를 크지 않게 했고 되도록 계단식으로 만들었다. 논배미가 크지 않아야 물 담수하기가 수월하고, 계단식으로 해야 홍수가 나도 논이 물에 잠기지 않는다.

    요즘은 기계화시킨다 하여 논배미도 크게 만든 데다가 죄다 평평하게 경지 정리를 하는 바람에 홍수가 나면 논은 거대한 호수가 되어 벼들이 다 물에 잠기곤 한다. 다락논의 치수 능력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의 다락논도 훌륭하지만 남중국과 필리핀에서 볼 수 있는 산꼭대기에까지 만들어 놓은 다락논은 말 그대로 미스테리한 역사(役事) 그 자체이다.

    모노컬쳐처럼 단일 작물을 대량으로 재배하는 데에도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작물은 거의 벼밖에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작물은 같은 곳에서 계속 재배하면 이른바 연작 피해를 입는 반면 같은 곳에 계속 심어도 그런 피해를 입지 않는 게 바로 벼다. 게다가 벼는 논에서 물을 담아 키우기 때문에 환경보호 능력이 대단하다. 그러나 밭작물을 단일작물 위주로 대량으로 재배하게 되면 밭은 금방 황폐해진다. 예컨대 우리의 강원도 고랭지 배추 밭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세 번째로 위의 저자가 발견한 동양인들의 지혜는 단작농사가 아닌 혼작, 윤작, 간작 농사를 짓는 데에 있었다. 작물 여러 가지를 섞어심기도 하고, 다른 작물들을 돌려가면서도 재배하기도 하고, 나아가서는 서로 다른 작물을 시공간적으로 교차하면서 사이사이에 심는 이른바 사이짓기는 동양인들의 놀라운 지혜였다.

    이렇게 여러 작물을 재배하면 땅에서 종의 다양성이 실현되어 땅이 아주 건강해진다. 게다가 콩처럼 공기 중 질소를 땅에 고정시켜주어 흙을 비옥하게 해주는 콩과식물을 활용하면 땅은 더욱 비옥해진다. 말하자면 단일작물을 심음으로써 땅을 수탈해먹는 농사를 짓지 않고, 콩과 작물을 비롯해 여러 작물을 함께 심으면서 땅을 보호하는 농사를 지었던 것이다.

    위의 저자가 발견한 동양 농부들의 지혜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바로 순환농업이다. 동양의 농부들은 벼를 논에서 물을 담아 키움으로써 물을 지키고, 일체 땅을 빼먹는 수탈 작물을 단작으로 하지 않는 반면 땅을 지켜주는 콩과 식물을 잘 활용하면서 다양한 작물을 함께 재배하여 땅을 늘 비옥하게 유지해 왔다.

    그러나 동양인들의 순환농업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똥의 재활용이었다. 아무리 논으로 물을 지키고, 콩으로 흙을 비옥하게 한다한들 먹고 남은 것을 다시 땅으로 돌려보내지 않는다면 그들은 땅을 그렇게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똥이 지구의 사막화를 막아준 일등 공신인 셈이다.

    다음 글부터는 똥의 위대함과 똥을 둘러싼 재미있는 얘기들을 소개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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