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 장면들,
    미 방첩대 비밀문서·사진으로 살피다
    [책소개] 『첩보 한국 현대사』(고지훈/ 앨피)
        2019년 11월 16일 10: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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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문서기록청에서 발굴한 ‘우리 역사’

    이 책은 미 국립문서기록청에서 새롭게 발굴한 한국 관련 사진들과 각종 문서자료들로 재구성한 한국 현대사 책이다. 재구성! 전작인 《현대사 인물들의 재구성》 이후 무려 14년 만에 선보이는 저자의 재구성물 2탄이다. 현재 국사편찬위원회에 몸담고 있는 저자의 애초 의도는 맡은 바 소임의 결과물들을 엮은 가벼운 사진집이었으나, 워낙 입은 무겁되 글은 가벼운 저자의 스타일대로 아는 것도 많고 할 말도 많은 책이 되어 버렸다.

    미 국립문서기록청NARA: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이하 NARA)이 어떤 곳인가. 미국이 생산한 역사 관련 기록들을 모아 두는 곳, 그 자체로 ‘20세기의 세계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어지간한 주요 사건 관련 기록들이 모두 보관되어 있는 곳 아닌가. 과연 그곳에는 우리의 짐작대로 우리 현대사 속 미국의 역할을 증언하는 수많은 사진과 문서자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의 큰 그림과 결정적 역할

    NARA에는 20세기 세계의 ‘어지간한 주요 사건 관련 기록’들이 보관되어 있다. 이 말은 20세기 세계의 어지간한 주요 사건에 모두 미국이 관련되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이 책은 ‘미군정기’라 불리는 1945년 해방 직후부터 1948년 8월 15일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기까지 약 3년 동안 남한에서 미육군 방첩대(CIC)가 펼친 활약상에 초점을 맞추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만들어진 비밀부대Secret Service의 후신인 미육군 방첩대의 임무는 각종 정보 수집과 요인 사찰, 간첩 색출 및 정치공작이었다. 간첩 활동을 막는 방첩防諜은 기본이고, 여기에 소련으로 대표되는 공산주의 사상의 유입을 막아내는 반공反共이 이들의 임무였다. 그간 한국 현대사 연구는 전후 미국의 대외정책 변화에 주로 초점을 맞추느라 미국이 주도한 반공 선풍의 흐름을 명확히 규명하기 어려웠다. 특히 해방 이후 남한에서 큰 지지를 받던 공산주의가 어떻게 그렇게 짧은 기간 사이에 궁지에 몰려 소멸했는지 밝히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 책은 NARA에서 새롭게 발굴한 자료들을 통해 전후 냉전 흐름(구체적으로는 반공주의)을 이끈 세력이 바로 미군 방첩기구였음을 보여 주고, 우리 현대사의 결정적 국면 뒤에 암약했던 이들의 활약상을 면밀히 추적한다. 세계사의 큰 그림 안에서, 때론 그들의 마음속까지 꼼꼼히.

    대한민국사 made in USA

    가령 이런 식이었다. 한국전쟁기 북에서 ‘간첩들’(스파이)이 피난민들 속에 섞여 남으로 내려온다. 한국 경찰이나 유엔군 장교들이 피난민들을 1차 심사 후 방첩대(CIC)의 정밀심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목에 식별표를 걸어 방첩파견대 심문소로 보낸다. 그러면 방첩대가 정밀심문을 하여 간첩이나 정보원으로 분류된 이들을 포로수용소로 보낸다. 간첩 색출이 방첩대의 주요 임무였으므로. 그렇다면 요인 사찰은? 정보 수집은? 정치공작은? 미군 방첩대는 우리 현대사의 모든 장면 뒤에 암약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들의 임무였고, 그로 인해 우리 역사와 정신세계는 다소 많이 바뀌었다. 저자가 말한 “99.99퍼센트 ‘made in USA’”라는 표현은 그래서 나왔다.

    명확한 자료와 사진 출처

    이 책은 각주의 원 출처를 정확하게 명시하여 참고문헌 및 자료들 속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적절한 지침을 준다. 한국 현대사 관련 책들은 인용되는 자료들이 대부분 미국 자료들이어서 출처 표기를 명확하게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2019년 현재, 미국의 자료는 물론이고 유렵과 러시아, 일본, 중국 등 해외 소재 한국사 관련 자료들의 다수가 국사편찬위원회는 물론이고 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 국립기록원 등에 수집되었고, 실물이 그대로 일반에 서비스되고 있다.

    이 책은 미국 자료(미 의회도서관, CIA 홈페이지)는 물론이고, 참고문헌에 실린 책들도 인터넷에서 열람할 수 있는 경우는 모두 정확한 출처와 URL을 표기했다. 언제든 어렵지 않게 직접 원본을 찾아서 읽을 수 있다. 아울러 이 책에 실린 NARA 발굴 사진 역시 시민들의 재산으로 누구나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에서는 모든 사진들을 공개하여 활용할 수 있도록 사진 원본을 인터넷에서도 서비스 중이다.

    우리가 알았던 듯 몰랐던 것들

    # 안가와 이승만 그리고 김구

    김구는 이승만이 살던 마포장에 구금될 예정이었다. 1948년 1월 혹은 1947년 12월경 김구가 장덕수 암살의 배후로 지목되면서 하지를 포함한 미군 수뇌부는 김구를 이런 종류의 사설감옥(?)에 구금하기로 계획했다. 이승만도 이 사실을 알았는지 여부는 분명하지 않지만, 이승만이 이사한 지 불과 석 달도 안 되는 상황에서 본인의 주거지를 선뜻 미군에 내준 것은 기억해 둘 만하다.

    미군 헌병대뿐 아니라 미군 CIC, 한국 경찰 등도 이런 종류의 귀속재산을 안가로 활용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는데, 안가는 사설감옥보다는 정보원들이 보고서를 작성하거나 따로 교육받는 용도로 주로 활용되었다. 그만큼 많은 수의 정보원들이 암약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미군 방첩대는 정보원망을 다시 구축하여 반란군, 반역자, 반체제 인사 등을 찾아내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 김수임과 미군 정보원

    정보원 운영은 미국 내에서 경찰, FBI의 일상적인 업무 중 하나였고, 한국에서도 CIC와 함께 미군 헌병대가 적극적으로 정보원망을 구축하여 간첩 수사는 물론이고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 데 활용했다. 이 책에서는 북한 간첩으로 체포되어 사형당한 김수임의 사례를 통해 미군 정보원 운영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살펴본다. 안가, 정보원의 급료, 전국적인 정보원망 구축 등 지금까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정보원 운영과 관련한 내용들을 풍부한 자료를 통해 검토한다.

    미군 정보원들은 미국 예산으로 급료를 받았기 때문에 관련 기록이 남아 있을 테지만, 아직 비밀 해제되지 않아 누가 정보원이었는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예산 운용과 관련해서는 Project 416(헌병대), Project 432(방첩대)로 할당되어서 특정 시기 어느 정도 예산을 사용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이 예산을 토대로 미군들이 운용한 정보원들이 어떻게 정보를 수집했는지를 살핀다.

    # 1920~30년대 세계질서와 반공 드라이브 구축

    이 책은 1945년 해방된 시점보다 20여 년 거슬러 올라가, 전 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제2세계’ 공포가 유럽과 미국, 아시아 지역에 몰고 온 반공 선풍과 미군 방첩대의 관련성에 주목한다. 특히 이민자가 많았던 미국 사회에 불어 닥친 반공 선풍은 미국 내부에 반공기구가 구축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책은 미군 방첩대를 비롯하여 군부 반공주의의 역할, 특히 이런 반공 드라이브 구축에 브레이크 작용을 했던 뉴딜주의와 루스벨트의 개혁정책을 검토하면서, 반공과 수정주의의 갈등을 몇 가지 정책을 통해 드러내 보이고자 시도했다. 행정부가 중심이 되었던 수정주의 흐름은 루스벨트의 사망과 함께, 아울러 사회주의국가가 동유럽과 아시아 지역에 구축되면서 2개의 커다란 ‘진영논리’가 구축되면서 사라지게 된다. 이후 미국적 제국주의와 소련식 제국주의는 한반도와 베트남 등에서 열전을 일으키며 양보할 수 없는 냉전의 시기로 돌입한다. 이런 냉전 분위기를 가장 앞장서서 이끌었던 세력이 다름 아닌 미군, 특히 방첩관련 기구였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미군 방첩대 성립과 제국주의 간섭전쟁

    미군은 19세기 말부터 200여 차례 전쟁에 참가했다. 미국 내부의 분위기와 달리 이런 종류의 개입주의적 정책은 일찍부터 군부 기관의 세분화를 이끌었다. 특히 정보참모부와 방첩대의 성립은 이런 흐름을 잘 보여 준다. 19세기 말에 성립된 정보참모부는 적군에 대한 정보들을 입수하는 단순한 군사기구였다가, 제1차 세계대전에 이르면 “사회주의 체제에 기여하는 모든 세력”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탄압에 앞장서는 최전선의 반공기관으로 탈바꿈한다.

    # 왜 파업은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투쟁이었을까?

    제2차 세계대전 무렵 미군이 점령한 남한과 독일 그리고 일본 등지에서는 정치와 무관하게 “순수한 군사적 관점”에서 점령이 이루어졌지만, 그 정책의 내용들은 반노동자적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반공주의에 입각한 것이었다. 미군 정보기관들은 왜 일찍부터 냉전주의적 시각을 갖게 되었을까? 왜 그들의 사고는 반노동주의였을까? 특히 방첩대나 정보기관 헌병과 같은 미군 내부의 경찰 관련 기관에는 전직 경찰 출신들이 많았으며, 이들은 대개 1930년대 미국의 노동자 탄압 과정에서 실무를 담당했던 전문가 출신이었다. 헌병사령관이었던 베어드를 비롯하여 한국전쟁 당시 방첩대 요원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이 일찍부터 미국에서 경찰로 활동하면서 그 비슷한 업무들을 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방첩대가 틀을 갖추어 가던 무렵, 이들이 FBI 그리고 미국 내 정보경찰들과 맺고 있던 상호관계는 결국 방첩대가 해외 점령지역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를 잘 보여 준다. 우리 역사 속 몇 가지 사례, 경성방직 노동조합 선거나 파업에 대한 정보기관의 보고, 그리고 인민위원회 수사 등에서 미군의 냉전적인 시각이 어떻게 나타났고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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