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민을 세우고 살리는
    농촌교회, 전북 율곡교회
    [그림 한국교회] 씨앗 주인은 농민
        2019년 11월 14일 10:1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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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주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 신경림, “농무”

    가을햇살이 눈부신 날, 청명한 하늘 아래 누렇게 물든 농촌 들판을 달리니 기분이 들떴지만, 금방 시 ‘농무(農舞)’가 떠올랐습니다. 영등포산업선교회에 일하던 1980년대, 종종 우리 강당에서 열린 농민운동단체의 집회에서 농촌문제를 접할 수 있어서, 농민들의 신명나는 춤에서 가슴에 맺힌 분노를 길러낸 이 시가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전북 완주군 고산면 율곡교회를 찾아가는 길이 수월했던 것은, 오랫동안 YMCA 활동을 하다가 십여 년 전에 완주군에 정착하여 사회적 경제운동을 전개하는 친동생이 저를 태워다 준 덕입니다. 율곡교회 마당에 들어서니 담임목사였던 여태권 목사님이 십여 년 전에 제게 해준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한우고기 직판장과 식당에서 돈이 많이 벌리니까 마을공동체가 갈등이 생기고 서로 싸우더군요. 그래서 식당을 접었습니다.” 이런 사연이 담겨 있었습니다.

    여태권 목사님이 1984년에 율곡교회에 부임했을 때, 고산마을은 대부분 소농이라 모두 마을을 떠날 궁리만 하고 있었습니다. 농촌이 살만한 곳이 되어 농민들이 남아 있어야 교회도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목사님은 교우들과 함께 농민들이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선 결과, 소를 키우기로 결정하고 쌀농사를 유기농으로 바꾸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을사람들의 반대와 실패를 거듭한 끝에 고산면은 대표적인 유기농업지역이 되었고, 유기농산물에서 나온 쌀겨, 밀기울, 짚 등을 끓여 만든 여물로 키운 쇠고기를 한우영농조합을 통해 출하하여 호평을 받습니다. 이에 백화점 등에 납품하던 한우 쇠고기를 파는 직판장과 식당을 운영하여 크게 성공하지만, 동네사람들이 돈 때문에 싸우고 등 돌리는 것을 보고 장사 잘되던 식당을 접은 것입니다.

    율곡교회 덕분에 고산면은 잘 살지만, 우리나라 농촌은 열악하기 짝이 없습니다. 농민은 총인구의 4.5%에 지나지 않고 고령화가 심각한데다 식량 자급률은 25%밖에 되지 않습니다. 농가소득은 2017년에 연평균 3800여 만원이었지만, 순수 농업소득은 계속 하락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거기다가 농업은 무시당하여 농업을 희생제물로 삼는 FTA가 계속 진행되고, 외국 농산물이 물밀듯 들어오고 있어서 농촌의 전망은 어둡기만 합니다.

    더구나 농민문제를 주체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70~80년대에는 가톨릭농민회가 반(反)농민정책 반대투쟁 등을 강하게 펼쳤고, 1982년 전국기독교농민회총연합회가 영등포산업선교회관에서 출범하여 농민권익쟁취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앞장섰습니다. 1990년 전국농민회총연맹이 결성되어 농민운동의 중심이 되었지만, 지금은 약화되어 농촌교회 목회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1980년 중후반에 기장, 기감, 예장통합의 농촌목회자들이 각자 조직을 결성하여 생명농업운동에 주력하기 시작합니다. 신자유주의 경제세계화가 초래한 빈부격차의 심화, 거대곡물기업의 유전자조작농산물(GMO)과 농약회사 등이 식량주권을 침탈하고 농산물생산체계를 파괴하고 전통농업과 농촌공동체를 붕괴시키는 것을 기독교 진리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인식하고, 위기를 막고 대안을 만들기 위하여 한경호 목사와 차흥도 목사 등 농촌 목회자들은 2005년 4월, 강원도 원주에서 세계기독교권의 생명농업포럼을 개최하고 2005년 11월 한국기독교생명농업포럼을 창립하여 2006년에는 ‘아시아기독교생명농업포럼’을 열었습니다.

    이런 생명농업운동과 각 교단의 농촌목회자들의 활동은 한경호 목사가 펴내고 있는 계간지 “농촌과 목회“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번 2019년 가을호에는 “한민족평화공동체와 교회의 역할, 나의 농촌목회이야기(함기용 목사), 농촌목화자의 건강(임락경 목사), 성경과 밥상(정경호 교수), 목회단상(장의성 목사), 성경다시보기, 각 농목소식” 등이 담겨 있습니다.

    농촌 목회자들이 드리는 ‘농촌교회 신조’에는 농촌을 사랑하는 진정어린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생명의 창조자이시며 모든 일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과, 이 세상에 생명의 밥으로 오시어 당신의 몸과 피를 나누신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땅 온 마을 마을에 가득하신 보혜사 성령을 믿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빚은 흙과 생명을 보듬어 안은 땅이 하나님의 성전임을 믿으며, 모든 생명을 살리시는 하나님이 농부의 땀과 자연의 기운을 통해 생명을 풍성케 하심을 믿으며, 흙에서 배우고 흙을 돌보며 생명을 일구느라 땀을 흘리는 농부가 하나님의 신실한 종임을 믿습니다. 땅은 더럽힐 수 없으며, 결코 사고팔 수 없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서로의 삶과 일을 나누고 섬기는 농촌공동체가 하나님 나라임을 깨닫고, 온 식구가 일한 뒤에 나누는 밥상이 진정한 주님의 성찬임을 믿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과 함께 논과 밭에서 일하는 가운데 죽음의 기운이 사라지고 생명의 기운이 만물에 깃들어 모든 것이 살아나는 영원한 생명, 새 하늘과 새 땅이 눈앞에 활짝 펼쳐짐을 바라보나이다. 아멘.”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율곡교회는 1906년 장덕선 씨의 집에서 예배를 드림으로 창립되었습니다. 역대 담임교역자를 살펴보니 대부분 전도사들이어서 이전에는 열악한 농촌교회였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다행히 1984년에 부임한 여태권 목사님이 31년간 마을과 교회를 생명이 넘치는 곳으로 세우고 은퇴하고, 2015년 3월에 최용기 목사가 후임으로 부임하여 잘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림=이근복

    2017년, 42년 만에 새로 건축한 교회는 소박하고 알뜰한 느낌을 주었는데 2층 예배당 전면에 이런 글귀가 있었습니다. “율곡교회는 사랑과 평화의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을 정성껏 예배하며, 예배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며, 다른 이를 하나님의 자녀로 여기며, 다른 존재를 하나님의 창조물로 소중히 대하고 축복합니다,”

    지금 150여명의 장년들이 출석한다고 하니 율곡교회는 농촌의 큰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 마당의 종탑에는 “NO,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라는 현수막과 교회 입구에 “씨앗의 주인은 농민이다.”라는 글판이 있고, 유치원, 고산지역 아동센터, 친환경농산물판매장, 노인일자리 작업장인 완주시니어클럽 건물들이 지역사회와 더불어 살아가는 교회다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날 교회식당에서 오순도순 주일식사를 준비하는 여성교우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아쉽게도 여태권 목사님과 최용기 목사님을 만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필자소개
    성균관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 전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 역임. 전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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