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정보 규제완화 ‘데이터 3법’
    "기업 거래 허용···사실상 의료민영화"
    MB 때 시작, 박근혜 때 본격화, 문재인 시기 전면화
        2019년 11월 07일 09:3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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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정보의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데이터3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보호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데이터3법은 문재인 정부 혁신성장 정책의 대표 법안으로 개인정보의 ‘보호’보다는 ‘활용’에 중점을 두고 사실상 민간기업이 개인정보를 사고파는 행위를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6일 오후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주노총, 참여연대, 추혜선 김종훈 의원 등이 주최한 ‘데이터3법의 위험과 정보인권 보장 토론회’에 참석해 “개인정보보호법 논의에 있어서 개인정보의 활용을 위해 보호를 희생해야 한다는 식의 접근은 잘못”이라며 “개인정보 보호가 절대적인 권리가 아닐 수 있고 사회적 가치를 위해 양보할 수도 있지만 기업의 상품개발 등 사적 이익을 위해 개인정보 주체의 권리를 제한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납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사진=유하라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데이터 경제활성화’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름을 가린 개인정보를 ‘당사자 동의 없이’ 영리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이 데이터 경제활성화 계획을 밝히자,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포털·통신·금융·보건의료 등에서 기업 간 개인정보를 판매, 공유, 결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데이터3법’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기업 간 개인정보 거래가 가능해진다. 통신사가 포털사이트에 고객의 개인정보를 요청하면 포털사이트가 이를 가명처리해 통신사에 제공하는 식이다. 금융회사에서 갖고 있는 금융정보, 병원에서 보관하는 환자정보도 모두 공유할 수 있다.

    개인정보보호 규제 완화는 이명박 정부에서 등장해 박근혜 정부 창조경제의 상징으로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으로 본격화됐고,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데이터3법이라는 이름으로 국회 처리를 앞두고 있다. 보수정부 때부터 강력하게 추진해오던 법안이라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이 법안에 대해 이견이 없다.

    시민사회계는 데이터3법이 산업계의 의견만 반영해 정보주체의 권리를 전혀 보장하지 않고 있다고 보고 있다.

    오병일 대표는 “데이터3법의 가장 큰 문제는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고객정보를 동의 없이 다른 기업에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점”이라며 “예를 들어 네이버가 KT의 고객정보를 가명처리만 하면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받을 수 있다. KT가 네이버에 공짜로 개인정보를 제공하진 않을 테니 개인의 정보를 기업이 사고팔 수 있게 된다”고 우려했다.

    오 대표는 “제가 아는 한 해외에 이런 사례는 없다. 공공기관이 개인정보를 (산업·상업적 목적이 아니라) 학술·연구의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제공할 때도 촘촘한 관련 법률이나 가이드라인 등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학술·연구 영역 내에서도 그런 제도가 갖춰져 있지 않다. 그렇다면 일단 학술·연구를 목표로, 가장 낮은 단계부터 그러한 시스템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며 “(정부 관계자들을 보면) 정말 이해가 안가는 게 권리의 문제를 얘기할 땐 조금 더 연구와 검토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산업적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허용하는 것에는 왜 그렇게 과감한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보건의료계는 데이터3법이 사실상 의료민영화라고 보고 있다.

    변혜진 건강과대안 상임연구위원은 “데이터3법은 의료민영화와 매우 긴밀하게 연관돼있다”고 말했다.

    변 상임연구위원은 “박근혜 정부 당시 의료영리화 추진 과정에서 ‘비식별 가이드라인’이 나오면서 보건의료 쪽에서 개인의 건강정보에 관한 규제완화 내용이 쏟아졌다. 병원과 민간기업이 의료정보회사 설립을 추진하는 등 각종 보건의료 개인정보를 활용한 기업들의 비즈니스 계획이 발표됐다”며 “이와 같은 사업들은 사실상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지난 10년 간 의료민영화 추진으로 논란이 되어 왔던 것들”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런 사업은 건강보험공단과 심평원 등 공공기관과 병원이 진료 목적으로 수집한 환자 개인의 의료정보와 건강정보를 상품화해 기업에 넘겨주는 조치를 전제로 하고 있다. 심평원이 건당 30원에 환자 정보를 팔아서 문제가 됐던 것을 모두 합법화해주겠다는 것이 데이터3법 중 개인정보보호법에 관한 내용”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보험회사들은 환자들의 정보를 받아 어플리케이션으로 운동을 지시하고 식단을 관리해주면 사람들이 건강해져서 운동 열심히 해서 건강이 증진된다고 한다. 보험회사는 이 시나리오로 지난 20년 넘도록 개인의 건강정보를 달라고 요구해왔다”며 “이는 건강보험을 자신들이 대체하기 위해 했던 주장들이고 시민사회는 박근혜 정부 때부터 이 법안을 의료민영화라고 막아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플리케이션이 운동 열심히 하라고 한다고 건강이 증진된다는 발상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하지 않는다”며 “미세먼지에 대한 해결책도 없는데 밖에서 달리기 한다고 건강이 증진되겠나”고 반문했다.

    건강 불평등 문제 확산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변 상임연구위원은 “공적 자원이 이런 방식으로 투자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료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투자돼야 한다”며 “여전히 2차 산업에서 사람들이 산업재해로 죽어 가는데 4차 산업혁명은 무슨 4차 산업혁명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데이터3법을 추진하면서도 사회적 합의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오병일 대표는 “정부는 데이터3법을 발의하기 1년 전에 시민사회에 자문을 달라고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사실상 아무것도 안한 것”이라며 “사회적 합의 없이 밀어붙인다면 법안 통과돼도 수많은 사회적 갈등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변 상임연구위원도 “개인정보 범주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마당에 법안은 당장 통과를 앞두고 있다”며 “산업계가 요구하는 것도 알겠는데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 논의를 통해 어떤 것도 감추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에게 이 법안에 대한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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