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롭고 불행한 이들에게
    [그림책 이야기] 『아니의 호수』(키티 크라우더/ 김영미 옮김/ 논장)
        2019년 11월 05일 09:2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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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년 연속 OECD 자살률 1위, 한국

    가수 설리가 스스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설리는 유명 연예인이기에 언론은 앞다투어 그녀의 부고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하지만 같은 날 한국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설리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13년 동안 한국은 OECD에 가입한 국가 가운데 자살률 1위를 기록했습니다. 2016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하루 평균 36명, 40분마다 한 명씩 자살하는 나라가 바로 한국입니다.

    더 무서운 일은 하루 36명이 자살에 성공한 사람들의 수라는 사실입니다. 날마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은 이에 40배가 넘는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자살을 고민하는 사람들, 불행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도 초고속 경제성장과 엄청난 교육열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왜 이렇게 슬픈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을까요?

    외로운 ‘아니’

    ‘아니’는 세 개의 섬이 있는 호숫가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아니는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거의 매일 마음속에 어두운 것이 가득합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부터 아니는 줄곧 혼자입니다. 일 년에 한 번 달력을 팔러 찾아오는 집배원 말고는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니는 우울하고 모든 것이 지겹습니다.

    어느 날 한밤중에 조용하던 집안이 흔들립니다. 번개가 치고 폭풍이 다가옵니다. 잠에서 깬 아니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습니다. 아니는 옷을 입고 집안을 정돈하고 물가로 갑니다. 무거운 돌을 찾아 배에 싣고 세 개의 섬으로 다가갑니다. 아니는 자기 주위에 있던 모든 것에게 작별의 인사를 건넵니다. 이윽고 아니는 무거운 돌을 다리에 묶고 물속에 몸을 던집니다.

    다행히 해피 엔딩

    다행히 아니는 목숨을 구합니다. 누가 어떻게 아니를 구했는지는 말해 드릴 수 없습니다. 정말 놀라운 이야기가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까지가 그림책 『아니의 호수』의 시작이라는 사실입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신기하고 아름다운 아니의 사랑 이야기는, 안타깝게도 아니의 자살 시도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많은 한국 독자들은 이 작품이 주인공 아니의 자살로 시작된다는 이유로 보지 않으려고 할 수 있습니다. 또는 자신은 이 작품을 보더라도 어린이에게는 보여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많은 한국 사람들은 정말 불행하기 때문에 불행을 숨기려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림책에 총이 나오지 않는 나라

    그림책에 총이 나오지 않는 나라가 있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참 좋은 나라지요? 하지만 놀랍고도 아이러니하게도 그 나라는 ‘마트’에서 총을 파는 나라, 바로 미국입니다. 해마다 엄청난 총기 사고로 수많은 인명 피해를 겪는 나라,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면서 어마어마한 무기를 수출하는 나라, 바로 미국에서는 그림책에 총이 나올 수 없습니다.

    총기 소유와 판매를 합법적으로 허용해서 총기 사건이 끊이지 않는 미국에서는 그림책에 총을 그리는 것이 금기입니다. 총기 소유와 판매를 허용하는 것이 스스로 엄청난 잘못인 줄 알기에 차마 그림책에서는 총을 허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만들어지기 어려운 작품

    그림책 『아니의 호수』는 한국에서는 만들어지기 어려운 작품입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그림책을 단순히 어린이가 보는 책 또는 교육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한국 사람들에게 주인공이 자살을 시도하는 이야기로 시작되는 그림책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게다가 한국에는 불행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외모로 차별하고, 시험점수로 차별하고, 학력으로 차별하고, 학벌로 차별하고, 직업으로 차별하고, 남녀로 차별하고, 국적으로 차별하고, 빈부로 차별하고, 장애로 차별하고, 종교로 차별하고, 질병으로 차별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차별을 조장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교육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러니 행복하게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살하는 사람이 많으니 자살을 이야기하는 게 금기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문제는 총을 숨기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가입니다. 만약에 평화로운 세상이 되면 총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총기제조업자가 돈을 벌 수 없겠지요. 어쩌면 그래서 평화로운 세상이 되기가 어려운지도 모릅니다.

    더불어 문제는 자살을 숨기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가입니다. 만약에 우리 모두 행복해지면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겁니다. 오히려 진시황이 그랬던 것처럼 불로장생을 바랄 것입니다.

    그림책 『아니의 호수』는 지금 외롭고 불행한 이들에게 삶의 진실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곁에는 이미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고. 진정한 친구도, 이상형의 연인도, 바로 우리가 손만 내밀면 되는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이 세상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과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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