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구속되고, 손배맞고, 미치겠다"
By tathata
    2006년 08월 12일 10:5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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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에서 수백여명의 건설 노조 조합원이 하중근이 되어 서울로 올라왔다. 고 하중근 씨의 영정을 앞세우고 “하중근을 살려내라”고 뜨거운 태양 아래 목이 터져라고 외쳤다. 일부 조합원들은 상복을 입고 경찰의 침묵과 외면으로 치르지 못하는 하씨의 장례를 염원하는 소망을 담았다. 

그의 ‘한’을 풀기 위해 경찰 책임자 처벌과 구속 조합원 석방 등을 요구하는 결의대회가 지난 11일 서울 서부역에서 열렸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경찰청 앞까지 행진을 시도하려 했으나, 경찰의 저지로 인해 끝내 가지 못하고 되돌아와야만 했다.

이해삼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은 “죽은 뱃속의 아기는 7년 동안 부부가 기다려 만든 시험관 아기였다”며 “부부의 오랜 염원이 담긴 아기를 경찰은 무참히 짓밟고 살해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영희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은 “경찰이 하중근 조합원의 수사 중간발표를 했지만, 유족들과 인터넷 매체 기자들은 기자회견부터 출입을 봉쇄당해 밀실에서 한 발표였다”며 “경찰들이 일방적으로 선정한 기자들만 모아놓고 발표하는 것은 군사정권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조에 대한 탄압으로만 보면 군사정권에서 참여정부로 이름만 바뀐 채 달라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포항건설노조 조합원이 노래 ‘흘러’를 박수를 치며 부르고 있다.
 

   
상복을 입은 조합원들이 "하중근을 살려내라"고 외치고 있다.
 

이어 문화공연에서는 ‘흘러’라는 노래를 기타의 반주에 맞춰 불렀다. “흘러 흘러 지랄같은 눈물이 흘러 노동자 잘 사는 그건 세상이 꿈속에 어른거리네”라는 구슬픈 노래를 박수를 치며 부르는 검은 얼굴을 한 조합원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고인 듯 했다.

지난 10일 밤에 서울에 상경한 포항에서 올라온 이 아무개 씨는 남편과 함께 서울 삼성동 포스코서울 사무소 앞에서 노숙농성을 했다. 이씨는 “애 먹고, 외롭고, 힘든 투쟁에 남편 곁에서 힘을 보태기 위해서 왔다”고 말했다. 그는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선글라스에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있어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얼굴이 있지만, 얼굴을 가려야 하는 ‘얼굴없는 노동자’가 돼야 했다.

1989년 포항건설노조 창립 초기부터 조합원에 가입했다는 박 아무개 조합원(48)은 “지난 20여년간 지금보다 더 힘든 싸움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건설현장의 노동보다 파업이 더 힘들고 고되다고 털어놓았다.

“하중근이 죽었지, 58명 구속돼 있지, 12명 병원에 입원해 있지, 뱃속에 아기까지 죽었지, 경찰은 사과도 안하지, 포스코 손해배상 때린다고 하지,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손가락을 일일이 꼽아가며 포항건설노조가 마주한 과제를 세는 그의 얼굴에는 시름이 깊었다. 5시경 ‘미군없는 아름다운 서울’ 대책위 소속 학생들이 결의대회에 결합했다.

   
하중근 씨의 영정을 앞세우고 상복을 입은 조합원들이 경찰청으로 행진하고 있다.  

이후 그들은 서부역에서 경찰청을 향해 행진을 시작했으나, 경찰청 바로 앞인 서소문 4가리에 닿아 경찰에 의해 행진을 저지당했다. 경찰은 건설연맹의 집회신고가 서부역으로 정해져 있을 뿐, 경찰청까지는 집회 신고가 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가로막았다.

하지만, 대책위는 경찰청까지 행진하겠다는 집회 신고를 이미 한 상태였다. 경찰 관계자는 “대책위는 경찰청까지 행진할 수 있으나, 건설연맹 조합원은 빠져라”고 주장했고, 이에 반발하는 조합원과 경찰과의 충돌이 빚어졌다. 조합원들이 "대책위에는 민주노총이 소속돼 있다"고 주장하자, 경찰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통제했다.

   
 ▲"건설연맹은 빠지라"고 요구하는 경찰에 조합원들이 맨몸으로 밀고 있다.
 

조합원들은 경찰에 항의하며 몸으로 밀었고, 경찰 또한 조합원들을 방패로 막으며 약 1시간 가량의 몸싸움이 벌어졌다. 다행히 부상자는 없었고, 집회 참가자들은 오후 8시경이 되어서야 몸싸움을 풀고 해산했다.

조합원들은 영정을 앞세우고 경찰청까지 행진하여 경찰의 사과를 받아내고자 하였으나, 경찰은 ‘궁색한’ 이유를 들며 이들의 진입을 통제했다. 이날도 고 하중근 조합원의 영정은 대접받지 못한 채 쫓겨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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