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병행발전’은 파산”
    2006년 08월 11일 02:4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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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천은 1980년대에 진보학계와 운동권을 풍미하던 ‘종속심화론’에 반대한 드문 학자다. 그 논쟁에서 그가 이기지는 못했지만, 한국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세계 분업체제에서의 지위 상승’을 통해 그의 주장을 증명해 보였다.

한 번 맞추었다고 또 맞추란 법은 없겠지만, 요즘처럼 복잡하고 혼란스러울 때, 이병천은 어찌 생각하고 있는지 듣고 싶었다. 아스팔트도 허덕이는 8월의 뙤약볕 아래에서 반바지, 슬리퍼 차림의 이병천 교수를 만났다.

“나는 87년 6월 항쟁을 원동력으로 하여 개시된, 이제 20년을 내다보는 한국의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한 순환이 끝났다는 생각을 한다.…자유주의 개혁 세력의 그간의 모순에 찬 개혁성의 역사적 시효가 만료되었음을 의미하고 있다고 본다.” 「2006년 6월,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시민과 세계』 2006 하반기호

   
 

그는 그 구체적 근거로 노무현 정부가 한미 FTA를 추진하면서 생긴 ‘자유-보수 컨센서스 대연합’을 들고 있다. 그의 말마따나 한미 FTA 문제에 있어서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보이지 낳는다. 오히려 열린우리당이 더 막무가내라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가 이처럼 한미 FTA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민주주의 자체가 모순물이고, 특히 한국의 87년 체제는 더 모순적이지요.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합친 것이 87년 체제인데, 본질적으로 시장은 민주주의를 싫어하기 때문에 한국 자유주의는 87년 체제 이전 개발주의의 장점을 일정 정도 계승했어야 해요. 예를 들면 개발주의가 가지고 있던 시장관리적 요소나 자본규제적 요소는 지켰어야 하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 피해가 민중에게 고스란히 전가됐잖아요. 그래서 민중들은 ‘민주’ 세력의 무능력을 경험으로 느낀 거죠. 반면, ‘반민주’ 세력이 유능했었다는 기억이 있는 것이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이념 기조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은 파산했어요. 현실 경제에서 실패했고, 선거에서 졌죠. 그 끝에 한미 FTA가 서있는 것이예요.”

그렇다, 한미 FTA는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마지막 몸부림일 게다. 한미동맹 때문에 그랬다는 둥, 중국의 조건 좋은 FTA 제안을 거부했다는 둥의 언론보도는 한국 자유주의자들이 한미 FTA에 얼마나 투기적으로 임하고 있는지를 드러낸 단편이다. 이병천 교수가 보여준 일본 외무성의 <FTA 전략(2002. 10)>은 아시아 각국과의 FTA를 최우선으로 하고, 미국과의 협상은 ‘기타’로 분류해놓고 있었다.

“외세와 한국 지배세력의 결탁이 한국 근대사잖아요. 그런데 노무현 정부는 그런 인식이나 경계가 전혀 없어요. 또, 한미 FTA를 왜 하는지, 어떻게 되고 있는지도 숨기고 있잖아요. 이게 바로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예요. 노무현 정부는 설명책임(accountability)을 전혀 지키지 않고 있는 거예요. 지금이라도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국민에게 설명해야 해요.”

   
 

이병천은, 자유주의에 대한 대안 또는 보완으로 자주 제기되는 최장집 교수의 민주주의론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제대로 된 진보정당이 없다는 점에서 정당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최장집의 주장은 의미 있죠. 하지만 민주주의는 정당 민주주의만으로 채우지 못할만큼 풍부하고 다양한 것인데, 최장집 교수의 주장 그리고 그의 사고관에는 토의 민주주의나 숙의 민주주의 같은 것이 미약한 것 같아요.” 

“한국의 민주주의자들이 최 교수가 지적한 좋은 정당 정치의 중요성을 모르고 있었을까. 좋은 진보정당을 건설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컨대 그간 혹독한 세월을 견뎌내면서 민주노동당을 세운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그랬던 것일까.

…대중들이 국가 권력 및 시장 권력과 쟁투전을 벌리면서 참여를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이를 통해 민주주의를 학습하고 시민적 주체로서 성장해 나가는 ‘진지전’적 과정이 한국 민주주의의 진로를 위해 대단히 중요하다.

…참여연대의 권력감시 활동을 비롯하여 시민사회운동이 펼쳐온 제도 권력에 대한 감시활동 또한 단지 대의정치를 정상화하기 위한 과도기적인 현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또 다른 방식의 쟁투적인 정치로서, 한국 민주주의 진화의 필수적 구성 부분으로서 영구 개혁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2006년 6월,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시민과 세계』 2006 하반기호

   
 

이병천은 지리멸렬한 민주노동당에게서 애정을 거두지 않았고, 참여연대 몇몇 사람의 행각을 비판하면서도 그 미래를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필자는, 지금 민주노동당을 이끄는 사람들 모두가 ‘혹독한 세월’을 견뎌낸 사람들인지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참여연대의 문화와 정서가 ‘진지전’이나 ‘영구 개혁’ 같이 거칠고 끈질긴 투쟁에 어울리는지도 의문스러웠다.

이병천은 지난 몇 년 동안 내내 ‘대안’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그는 언제나 ‘사회경제적 권리의 확대’를 주장했고, 그런 그를 ‘사회민주주의’나 ‘시민자본주의’로 받아들인 사람들도 많다.

그가 보기에 중요한 것은 이 사회가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목표나 준거인데, 지금 한국은 일본 명치유신 때 수준의 준거나 목표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네덜란드 모델이나 스웨덴 모델까지 들먹이던 이 정부가 ‘멕시코의 길 – 리틀 아메리카’로 빠지고 있는 것이다.

경제학자인 이병천의 논문을 들여다 보고 있어도 구체적인 대안 경제상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정치에서든 경제에서든 그의 방법을 지지한다. 

“사회경제적 시민권과 정치적 시민권의 상보적 발전, 사회통합적 복지 자본주의와 국민경제의 내발적 선순환을 추구하는 ‘양 날개 민주주의’와 시민경제의 대안적 기획은 “현실적이 되려면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라고 하는 아래로부터의 급진적 시민 민주주의의 정신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양극화의 함정과 민주화의 깨어진 약속 : 동반 성장의 시민경제 대안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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