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위 ‘조국 사태’와
    한국경제 축적체제의 위기
    [기고] '조국 사태' 전후 정세 동력과 변혁진영의 과제-1
        2019년 10월 29일 11:2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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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국 사태’를 둘러싼 격론과 갈등의 첨예화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배경과 이면을 살피고 또 이러한 정세 속에서 진보진영의 실천적 과제가 무엇인가에 대한 김정호 씨의 생각을 정리한 기고 글이다. 정치세력의 갈등과 대립의 구조적 배경으로 재벌문제가 존재함을 지적하며 재벌개혁에 대한 변혁적 태도과 개입을 강조한다. 이견과 논점이 제기될 수 있는 글이다. 레디앙에는 토론과 대화의 공간은 늘 열려 있다. 글이 다소 길어서 2회에 나눠 게재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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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국의 법무부장관 임명 적격성 여부를 따지는 얼핏 사소한 쟁점이, 끈질기게 두 달 넘게 계속되었다. 한 쟁점이 이토록 오래도록 지속될 경우 대중들은 대개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이 같은 피로감은 자칫 정치에 대한 대중의 전반적인 무관심을 낳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집중도를 높여 강한 스트레스를 자아낸다. 만일 후자일 경우, 이 같은 스트레스는 사회적 긴장도를 너무 팽창시킨 나머지 자칫 한꺼번에 폭발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평소엔 어떤 정치세력이나 언론들도 이렇듯 한 쟁점을 지나치게 파고드는 일을 터부시한다. 이러한 관례에 비추어 본다면 금번 조국 사태는 매우 보기 드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투쟁 양상 역시도 매우 비타협적이다. 상대에 대한 일격필살의 ‘치명타’를 노리면서 각자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역량과 카드를 동원하여 전력투구(올인)하고 있다. 한쪽은 마치 놓칠 수 없는 좋은 ‘먹잇감’을 발견한 듯 여기서 끝장을 보겠다는 태도이며, 이 때문에 다른 쪽도 쉽게 발을 빼지 못하고 함께 어울릴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한 마디로, 정치세력들이 서로 배수진을 쳤다는 것은 이번 조국 사태를 보는 사람들의 공통된 느낌일 것이다.

    이 같은 정국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지금 한국사회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으며, 과연 현 정세를 밀어붙이는 진정한 ‘동력’은 무엇일까? 일련의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현 정세의 특징

    정치권에서 이렇듯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는 이유에 대해, 어떤 이는 내년 총선 혹은 더 나아가 내 후년 대선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그렇다면 매번 선거 때마다 정치세력들은 지금과 같이 격렬한 공방전을 벌였던 것일까?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매번 선거를 앞둔 공방전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강도와 양상은 각기 달랐으며 그 목적 또한 똑같을 수는 없다.

    현 정세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 특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 정국의 가장 두드러진 점은 국가권력 내부의 다툼이라 할 수 있다. 즉 하급기관인 검찰 권력이 상급기관인 청와대 권력에 노골적으로 도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과거 노무현정부 시절에도 한 차례 나타난 적이 있었다. 사실 조국 사태가 예상치 않게 이렇듯 커지고 완강하게 지속되는 것은, 검찰 권력의 저항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좀 더 깊은 분석이 필요하다.

    얼핏 검찰의 반항은 ‘부처 이기주의’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 내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검찰개혁을 강력히 주장하는 조국을 굳이 법무장관에 앉힌 것에 대한 불만의 표시라는 것이다. 여기에 때마침 그간 ‘적폐청산’이라는 대의명분에 밀려 내내 수세에 몰리면서 반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던 한국당과 검찰이 죽이 맞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수언론이 이에 가세하였다. 이리하여 검찰은 조국과 가족에 대한 혐의사실을 계속해서 흘리고, 이를 보수언론이 대대적으로 받아쓰고, 한국당은 국회에서 강력한 정치 공세를 폄으로써 지금의 조국정국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분석이 틀린 것은 아니며, 실제 사태는 그런 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는 표면상으로 드러난 것 이상의 좀 더 내면적인 것에 천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검찰개혁’ 사안 자체가 갖는 중요성이다. 만약 그것이 진보세력이 수구세력과 맞붙는 수많은 적폐청산 과제 중의 하나가 아니라, 현 한국사회의 보수연합세력에 심대한 타격을 가할 수 있는 ‘결정적’ 사안이라고 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럴 경우 검찰개혁은 개혁세력 입장에서나 보수세력 입장에서나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일종의 ‘전략 고지’의 성격을 지니며, 이 때문에 정치세력 간에 일전이 불가피해진다.

    실제로 조국 사태가 상당기간 지속되면서 검찰개혁과 관련하여 그동안 몰랐던 사실들이 언론과 SNS를 통해 알려지게 되었다. 대체로 모아지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검찰은 한국사회에서 특별한 지위와 역할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처럼 노골적 폭력에 의존하기가 어렵게 된 지배세력이, 오늘날의 형식 민주주의 진전에 발맞추어 자신들의 보호막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검찰 권력이라는 것이다.

    한국 검찰은 국제적으로도 드물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한 몸에 지니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치중립’이라는 명목 하에 그 수장인 검찰총장의 임기는 보장된다. 이리하여 검찰은 사실상 국민의 감시통제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으며, 심지어 경우에 따라서는 대통령의 지휘통제권마저 미칠 수 없는 권력기관으로 변했다. 재벌과 보수언론 등 기득권세력들은 이러한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의 속성을 파악한 후, 대기업 사외이사, 전관예우, 김&장 같은 법률로펌에의 영입과 같은 갖가지 매수와 특혜 수단을 통해 이들 소수정예 집단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이리하여 검찰 권력은 재벌총수와 언론사주, 그리고 고위 권력층이 법을 위반할 때마다 축소수사, 불기소 등으로 그들을 보호해주는 방패막이 되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정적을 쓰러트리는데 있어서는, ‘피의사실 유포’를 통해 언론과 공조함으로써 그 무엇보다도 예리한 공격무기가 되었다.

    여기서 검찰-언론의 밀착 사례는 해외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그 대표적인 나라가 일본인데,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이 자신의 칼럼에서 소개한 책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 일본의 사례, 1945-2012년』(마코사키 우케루 저) 의 내용에 따르면, 일본의 자민당 내 친미파와 자주파 간의 대립에서 미국은 자주파를 견제하고 관리하는 수단으로 일본의 검찰 권력과 언론을 종종 이용한다는 것이다. 다음을 보자.

    “정치인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 피의자가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서기 전까지 수많은 언론 보도가 쏟아진다. ‘단독’이라는 선정적인 제목의 기사는 대부분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또는 ‘익명을 요구한 검찰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이라고 정보의 출처를 댄다. 검찰 쪽에서 누군가가 흘려줬고, 언론이 그대로 받아쓴다는 의미다. 검찰이 ‘유포’하고, 언론이 ‘추정’한 혐의들은 독자들에게 유죄의 ‘심증’을 갖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피의자는 재판을 받기도 전에 이미 여론재판을 통해 범죄자로 낙인찍히는 마녀사냥을 당하는 셈이다.” (이의엽, “정치검찰을 물리쳐야 한다”)

    작금의 조국 사태의 진행과정을 잘 묘사하고 있다. 또 브라질의 온라인 저널 ‘디 인터셉트(The Intercept)’의 보도에 따르면, 얼마 전 브라질의 노동자당 권력이 몰락하고 룰라가 구속된 최대의 부패 스캔들 ‘페트로브라스 사건’(일명 ‘세차작전’,Operation Car Wash)에서도 현지 검찰-언론의 콤비가 큰 역할을 하였다고 전한다.

    이 같은 국내외 사례들을 보노라면, 우리는 왜 그동안 삼성 이재용 등 재벌총수와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의 사주들이 그토록 많은 범법행위들을 저지르고서도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한 마디로 검찰 권력은 1987년 이후 파쇼권력이 사라지고 형식적 민주화를 이룬 한국사회에서 재벌을 비롯한 지배세력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핵심 보호장치가 되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검찰개혁과 긴밀한 연관을 갖고 있는 조국 사태를 단순한 보수세력이 만난 우연한 ‘호재’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개혁과 수구세력 간에 ‘전략 고지’를 놓고 벌이는 서로 ‘양보할 수 없는’ 한판 승부라고 평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여 진다. 그런 면에서 일찍이 노무현정부 시절의 개혁 추진과정에서 검찰 권력에 막혀 일차 패배의 쓰라린 경험을 겪었던 것은 개혁세력 모두에게 있어선 소중한 교훈이었다. 지금 이 ‘전략 고지’를 둘러싼 전투의 승패가 어떻게 나느냐에 따라 이후 정국의 양상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문재인정권은 왜 이렇듯 보수세력의 강력한 반발을 무릅쓰고 조국 임명을 강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적당한 타협의 길은 없었던 것일까?

    그것은 문재인정권으로서도 그 정도 강도의 ‘적폐청산’을 수행해야지만 촛불혁명을 통해 자신에게 권력을 맡긴 대중의 분노를 잠시나마 누그러뜨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보여 진다. 사회적 모순이 격화할수록, 그리고 이 때문에 대중들의 변화에 대한 갈망이 강할수록, 그것을 대변하는 ‘개혁정부’ 역시도 급진적일 수밖에 없게 된다. 물론 개혁세력의 공세가 거칠어짐에 따라 보수세력의 저항 역시도 필사적이게 된다. 이것이야 말로 개혁-반개혁이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정세를 한발 짝씩 고양시켜가는 변증법이다. 지금은 이 같은 변증법이 작동하는 정세인 것 같다.

    현 정국의 동력은 한국경제 축적체제의 위기로부터 온다

    여기서 우리는 문재인 정부가 사회적 긴장도가 고조됨에도 불구하고 검찰개혁과 같은 강도 높은 개혁을 계속해서 밀고 나갈 수밖에 없게 하는 대중의 불만의 강도에 주목해야 한다. 그 같은 대중적 뒷받침이 없었다면 검찰-언론-한국당 보수세력이 조성하는 입체적인 여론전에 밀려 아마 조국 카드를 진작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사실 9월 28일 서초동 집회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집권 민주당 내부의 동요는 상당하였다. 따라서 다시금 시작된 ‘촛불집회’의 진정한 원인을 규명하는 일이 필요하다.

    먼저 우리가 유념할 것은, ‘촛불집회’라는 형식은 동일할지라도 군중은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항상 동원이 가능한 ‘상비군’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그 핵심부대는 일정하다 할지라도, 집회 군중은 매 시기 갖가지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예컨대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킬 때의 촛불집회의 군중과 이명박 정부의 수입소고기 파동 때의 그것은 서로 다를 것이다. 마찬가지로 3년 전 박근혜 탄핵을 몰고 왔던 촛불집회의 군중 역시도 이번 조국 사태의 그것과 완전히 동일할 수는 없다. 따라서 촛불집회 ‘형식’이나 누가 표면상 주최했느냐는 측면보다도, 우선 금번 대규모 촛불집회가 성립하게 된 사회적 요인에 더 주목해 보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한 ‘축적양식’이 근본적으로 한계에 부딪칠수록, 정치적으로는 그 변화와 개혁에 대한 요구의 폭과 강도는 높아진다. 지금의 대중의 불만과 고통은 1990년대 이래 한국사회에 정착된 축적양식의 위기를 반영한다. 그 근거는 앞서 언급한 대로, 개혁세력과 보수세력 간에 검찰개혁이라는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전략 고지’를 놓고 한판 승부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1987년 이후 파쇼권력이 사라지고 형식적 민주화를 이룬 한국 정치사회 현실에서, 검찰 권력은 재벌을 비롯한 지배세력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핵심 보호장치이다. 이것이 제거되면 통치세력은 큰 타격을 받게 되며 이 때문에 결사저항을 하고 있는데, 문재인 정부는 그 저항을 기필코 돌파하기 위하여 군중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정면충돌이야말로 한 사회의 대 변혁기에나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한국경제는 1990년대 들어 외주화, 고용 유연화, 비정규직 확대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소위 ‘신경영’ 정책을 추진하였다. 1990년대 후반의 IMF 외환위기를 넘긴 후 이 같은 신경영에 기반한 새로운 축적체제는 한국사회에 정착되었다. 때마침 확장기를 맞이한 세계경제와 거대한 이웃나라 중국의 고도성장은 이 같은 한국경제의 신 축적체제의 발전을 위한 우호적인 외부환경을 제공하였다.

    2000년대 초 이후 비정규직을 적극 활용하고 여기에 일정 수준의 응용기술을 결합시킨 한국경제는 세계시장에서 상당한 위력을 떨쳤다. 2008년 말 금융위기가 도래한 이후에도, 아직 세계 각국이 기존의 금융 중심 패러다임에서 제조업으로의 전환을 미처 이루지 못한 2014년까지만 해도 이러한 새로운 축적모델은 여전히 유효하였다. 철강, 조선, 자동차, 전자, 반도체 등 한국경제를 대표하는 주력산업은 이 시기에도 계속해서 호황을 누렸다. 비록 사회 전반으로는 비정규직이 꾸준히 증가하고 사회적 빈부격차 역시도 확대됨으로써 사회적 불안요인이 누적되어 갔지만, 그 대신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은 상대적 고임금과 안정된 직장을 보장받아 자본에 포섭됨으로써 전체적으로 노사관계는 큰 무리 없이 안정되었다. 우리는 이 시기까지를 (비정규직에 기초한) 새로운 축적양식의 상대적 안정기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상대적 안정은 세계 각국이 금융위기의 충격으로부터 점차 회복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동요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각국은 ‘제조업’에 다시 주목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경향은 마침 앞으로 기존 경제에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몰고 올 ‘4차 산업혁명’이 접목되면서 가속화되었다. 다른 한편, 이 무렵부터 중국이 산업화 과정을 일차 마무리함으로써, 이제 중국은 한국의 거대한 수출시장이 아닌 무서운 경쟁상대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90년대 이후 정착되어 온 한국의 ‘비정규직(저임금) + 중간수준 응용기술’ 모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중국의 노동력은 한국의 비정규직보다도 아직까지 훨씬 저렴하였으며, 그러면서도 기술수준은 거의 한국을 추격하고 일부 분야에선 앞서나가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특히 튼튼한 기초과학을 바탕으로 친환경에너지, 양자통신,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분야에서는 기초과학이 취약한 한국을 크게 앞서고 있다. 이제 한국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동안 황금알을 안겨주던 중국시장에서 밀려나고 있으며, 다른 세계시장에서도 중국에 밀려 국제시장 점유율이 점차 축소되고 있는 형국이다.

    지금까지의 축적방식으로는 더 이상 한국경제의 존립이 어렵게 되었다는 점이 이제 시간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전통산업 분야에서는 중국에 밀리고, 그렇다고 해서 미래 산업에 대한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렇듯 기존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생존을 유지할 수 없으면서도, 새로운 대안을 찾지 못한다는 것은 한 사회 ‘위기상황’의 전형적인 규정이다. 현재 대중들이 겪고 있는 불안과 고통, 예컨대 날로 증가하는 실업자와 고용에 대한 불안감, 자영업자의 파산, 가계부채의 끝없는 증가, 젊은 청년세대들의 좌절감, 입시지옥 등은 바로 이처럼 갈수록 생명력을 다해 가고 있는 한국경제의 자화상에 다름 아니다. 대중은 지금 이 같은 절망적 상황에 처해 어떻게든 대책을 마련하라고 정치권에 요구하고 있는 것이며, 그를 위한 대대적인 사회 전반의 개혁을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되돌아보면 1990년대 이후 정착되어 온 비정규직에 기초한 새로운 축적양식은, 과거 ‘개발독재하의 축적양식’(1960~1987)이 그러하였듯, 대략 ‘30년 주기’의 자기 생명을 마쳐가고 있으며 그 본격적인 해체기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가 신경영 전략의 도입과 정착기였다라고 한다면, 2000-2014년은 그 발전기라 볼 수 있으며, 조선업종 불황과 4차 산업혁명 및 중국경제의 부정적 영향이 본격화한 2015년 이후는 쇠퇴기에 해당된다. 이제 2020년 이후에는 해체기에 접어들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정세를 밀어붙이고 있는 동력은 바로 이 같은 축적양식의 위기가 불러일으키는 광범위한 대중의 불안과 고통이라 할 수 있다.

    관건은 재벌개혁

    위에서 거론한 1990년대 이후의 한국 축적체제는 ‘재벌체제’로 상징되며, 따라서 당연히 재벌개혁이 초점이 된다. 그동안 문재인정부가 걸어온 2년 반의 기간을 되돌아보면, 이 핵심문제를 건드리지 않은 채 주변만 맴돌면서 우회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정치 분야에서는 박근혜, 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시키는 등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다른 분야 특히 경제 분야의 성과는 미진하였다. 예컨대 경제 분야의 대표적 정책이라 할 수 있는 최저임금제와 52시간 노동시간단축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갖가지 장애에 부딪쳐 그것을 주도하던 청와대 경제수석 장하성의 교체에서 보듯 거의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공공기관 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약속 역시도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또 다른 대표적인 문재인정부의 야심작인 북방정책 역시도 북미 간 핵협상의 부진함으로 별반 진척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내외적인 각종 악재에 휩싸인 한국경제는 나날이 악화되어 가고 있으며, 경제문제는 문재인정부의 그간의 개혁성과를 모조리 빼앗아갈 만큼 최대의 우환이 되고 있다. 이처럼 문재인정부의 지금까지의 개혁이 보여주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재벌문제를 비켜가고서는 어떠한 성과도 내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30대 재벌 매출액이 GDP의 80%에 이르는 한국적 상황이 말해주듯, 사회적 부의 대부분을 재벌이 장악한 상황에서 그 점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1980년대 후반까지는 많은 문제가 주요하게는 ‘민주화’ 문제로 귀결되었다. 그 점은 노동자, 재야지식인, 청년학생, 종교계, 농민 등 누구의 눈에도 분명하게 보였다. 왜냐하면 이들이 무슨 일을 할라치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군사독재가 나서 탄압하고 가로 막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각 부문의 주체들은 민주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한 발짝도 나갈 수가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였다. 예컨대 노동자들이 자본가에 대항해 자신들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한 기본 조직인 노조를 하나 만들고 싶을 때도 그러하였는데, 이 시기엔 이 같은 노조 결성조차도 ‘반공’의 이름 아래 군사독재정권으로부터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이처럼 언론, 결사, 사상의 자유가 심각하게 억압받는 상황 속에서 노동운동은 제대로 성장하기가 힘들었다. 또 농민이 추곡수매가 인상과 농가부채 탕감을 요구할 때도, 학생들이 자치조직으로서의 학생회 부활과 학내 민주화를 요구할 때도 그러한 탄압에 직면하여야만 하였다. 문인과 언론인과 예술인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들의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심각한 제약을 받았다. 그러기에 이들은 민주화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 투쟁 대상을 ‘군사독재’로 설정하고 그것의 타도를 위해 자신들의 부문운동의 고유한 영역을 넘어 반독재투쟁에 나서게 되었다.

    이와 비슷하게, 오늘날 재벌문제는 한국사회 곳곳에 침투되지 않은 곳이 없다. 한국의 재벌들은 ‘글로벌 경영’이라는 화려한 외형과는 달리, 여전히 기본적으로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기반 함으로써 비정규직을 양산시킨다. 한국의 재벌문제는 또한 이 같은 비정규직 문제를 매개로 해서 기타 사회문제를 한층 증폭시킨다. 예컨대 교육과 청년실업 문제가 그러하며, 남녀 성차별 문제 역시 그러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는 청년실업의 주요한 원인이며, 그것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를 매개로 하여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 또 이 같은 비정규직의 비참한 삶을 피하기 위해 학생들은 일찍부터 입시준비에 매달려야 하는데, 이는 복잡한 교육문제를 야기 시킨다. 최근의 ‘미투’로 명명되는 성폭력 문제 역시도 비정규직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예컨대, 직장 내 성폭력은 상 하급 간의 신분상 차이를 매개로 발생하는데, 정규직 상사와 비정규직 하급자 간의 심각한 격차는 그 같은 성폭력이 매우 손쉽게 발생할 수 있게끔 만든다.

    한국의 재벌체제는 또한 우리 사회의 각종 비리의 온상이자 공적 체계를 무너뜨리고 비선조직의 번성을 낳게 하는 비옥한 토양이기도 하다. 얼마 전 탄핵정국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던 ‘최순실 사건’ 역시도 좀 더 근원을 캐보면, 외환위기 이후 출현한 한국경제의 소수 ‘상위’ 재벌에의 경제력 집중 문제가 놓여 있다. 외환위기 이후 살아남은 삼성, 현대, SK, LG 등 상위 재벌들은 자신들의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치계는 물론 사법·관료·언론·문화계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 전반에 ‘재벌장학생’을 키울 정도로 무소불위한 힘을 갖게 되었다. 이 같은 재벌체제야말로 불법상속, 비자금조성, 탈세, 뇌물공여, 회계조작, 정경유착 등 갖가지 부정부패와 범죄의 온상이 된다.

    이렇듯 한국의 중대한 사회문제는 그 어느 것 하나 재벌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 1970-1980 년대에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통해 군사독재를 타도하지 않고서는 사회진보가 불가능하였듯이, 지금은 재벌체제의 근본적 개혁을 통하지 않고서는 한국사회의 발전은 꿈꿀 수가 없다.

    이러한 상황을 문재인정부도 잘 알고 있으리라 본다. 현 정부가 그동안 재벌개혁에 소극적이었다고 해서 아예 그것을 포기했다고 속단할 수는 없다. 문재인정부는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인데, 지금 웬만한 반대를 무릅쓰고 검찰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여야 하는 이유를 우리는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즉 검찰개혁은 재벌개혁이라는 한 단계 높은 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 경제가 줄곧 하강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중의 생활고에 대한 불만을 달래 줄 다른 마땅한 방책이 없다.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이 다가오고 있는 시점에서 검찰개혁을 통해 문재인정권은 자신의 개혁 이미지를 쇄신하여야만 한다. 그와 함께 다음 단계의 더 지난한 개혁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하는데, 이렇게 볼 때 지금은 현 정권이 사활을 건 승부수를 던질 때인 것이다.

    여기서 잠시 문재인정권의 검찰개혁이 성공할 경우를 상정해 보자. 이 경우 재벌개혁의 본격화로 인해 한국사회는 1990년대 들어 성립된 신 축적모델 (필자는 이를 ‘후기 신식국독자’ 체제라고 부른다)의 해체과정이 보다 가시화 될 것이다. 그리하여 누구의 눈에도 한국사회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음이 명확해질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지금의 검찰개혁을 둘러싼 공방은 1987년 민주화 대투쟁과 마찬가지로, 한 축적체제를 마감키 위한 ‘선행적인 상부구조 변화’의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지금 주도세력인 자유주의자들이 애초 의도하는 바대로 그것이 좀 더 발전적인 축적제제가 될 것인지는 별도의 문제이다.(계속)

    필자소개
    북경대 맑스주의학원 법학박사 , 노동교육가, 현재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정책자문위원, 맑스코뮤날레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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