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에서 버림받은 기구한 '인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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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8월 10일 01:1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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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남자가 살기 힘들어 월북했다는 기사도 황당한데, 그 사람을 서울중앙지검 공안부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했다니 정말로 이보다 더 한 희극이 있을까 싶다. 건설현장에서 눈을 다쳐 보상금을 300만원밖에 받지 못해 중국으로 치료차 갔다가 월북하였는데, 북한에서도 추방되었다는 이 50대 남성은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얼마나 살기가 팍팍했으면 북으로 갔을까

빈곤과 양극화가 얼마나 극심하면, 한국에서 제대로 치료받기조차 어려웠으면 이 사람이 월북을 결심했겠는가. 더욱더 비극적인 것은 북한에서도 추방당하였고, 한국에서는 이 사람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탈북자 문제에 대해서 언급할 때, 북한에서 단순히 국경을 넘은 사람을 처벌하는 것 자체가 유엔인권규약에 반하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탈북자는 송환되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데, 구속된 이 사람은 탈북자가 아닌 ‘탈남자’로 그 경우는 완전히 동일하다.

살기 힘들어 국경을 넘은 사람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하는 것이 북한이 송환된 탈북자들을 처벌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 사안을 보면 북한과 남한의 국가권력은 50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놀랄 만큼 동일한 방식으로 공권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개인을 희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보수층은 ‘탈남자’인 이 사람이 북에 송환된 탈북자가 처벌되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로 처벌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서 입을 다물 것이다. 한국의 진보진영은 이 분이 국가보안법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별 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통일을 위해 북에 간 것도 아니고, 남한의 주요 인사들이 별 어렵지 않게 북한을 방문하는 이 시점에 ‘탈남’한 이 사람은 남북관계에 거추장스러운 인물일 수 있기 때문이다.

보수-진보 말을 하라

살기 힘들어 탈남한 사람이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가 지배하는 영토로 잠입, 탈출’하였을 것이라는 대한민국 검찰의 논리는 역시 살기 위하여 국경을 넘은 탈북자를 처벌하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인민검찰원과 왜 그렇게 동일한지 모르겠다.

이제 국가보안법은 점점 희극적인 것으로 변하고 있다. 사건 수도 현저하게 줄었을 뿐만 아니라 발생하는 사건들도 이처럼 황당한 것뿐이다. 강정구 교수에 대한 국가보안법 논란보다 더욱더 희극적인 이 희대의 ‘탈남자’ 사건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양측으로부터 버려진 한 남자의 일생을 보여준다.

더 이상 희극을 반복하지 말자. 50대 남자를 가둠으로써 대한민국이 얻을 수 있는 것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7천만 겨레가 알고 있는 ‘민족적 동질성’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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