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안데스 산맥의 만년설산 / 가장 높은 곳에 사는 / 께로족 마을을 찾아가는 길에 /

희박한 공기는 열 걸음만 걸어도 숨이 차고 / 발길에 떨어지는 들들이 아찔한 벼랑을 구르며 / 태초의 정적을 깨뜨리는 칠흑 같은 밤의 고원 / 어둠이 이토록 무겁고 두텁고 무서운 것이었던가 / 추위와 탈진으로 주저앉아 죽음의 공포가 엄습할 때 / 신기루인가/ 멀리 만년설 봉우리 사이로/ 희미한 불빛 하나

산 것이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우리를 부르는 / 께로족 청년의 호롱불 하나 / 이렇게 어둠이 크고 깊은 설산의 밤일지라도/ 빛은 저 작고 희미한 등불 하나로 충분했다.(후략)

(박노해 시,“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에서)

박노해 시인은 가난한 노동자로 사회변혁운동을 하다가 잡혀 무기징역을 받았지만, 감옥살이 7년여 만에 김대중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고 민주화운동유공자로 복권하였습니다. 지금은 ‘나눔문화’를 통하여 전 세계에서 생명, 평화, 나눔운동을 전개하고, 사진을 찍어 전시하고 시를 쓰고 있습니다. 박노해 시인 일행이 안데스 산맥에서 조난당하여 생명이 위태로울 때, 그들을 구한 것은 마을청년이 어둡고 추운 밤에 들고 서 있었던 호롱불 하나였습니다.

2017년 9월, 중앙성결교회(한기채 목사)가 호롱불 십자가 종탑 봉헌식을 갖고 이런 기념패를 교회 외벽에 부착하였습니다. “….. 1907년 정빈, 김상준 전도자에 의해 종로 염곡(소금)에 세워져 복음의 불(빛)을 밝혔던 중앙교회는 창립 110주년을 기념하여 이곳에 종탑을 세운다. ‘오래되고도 새로운 교회’를 지향하는 ‘도시 등대교회’ 중앙교회는 ‘사랑의 불꽃 십자가’를 동대문성곽에 어울리는 한국전통의 호롱불 형상에 담고, 태양열 LED를 통해 친환경적이며 역동적으로 세상을 밝힐 수 있는 <호롱불 십자가 종탑>을…. 2017년 9월 10일에 봉헌한다.”

새롭게 봉헌한 높이 6.4m, 폭 2.4m의 호롱불 십자가 종탑은 복음으로 한국사회를 밝히겠다는 의지입니다. 호롱불 십자가는 LED조명이 부착돼 있는데, 성결교의 상징인 사중복음을 드러내기 위해 빨간색 흰색 초록색 파랑색으로 색깔이 바뀌고 있으며, 십자가 조형물 밑에는 종이 달려있어 수요일과 주일 예배 30분 전 7번씩 타종한다고 합니다.

그림=이근복

한국인에 의해 자생적으로 출발한 성결교회는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의 사중복음을 강조하는 교단으로서 특히 중생 이후 차원 높은 성결을 추구해야 한다고 믿는 교회입니다. 중앙성결교회는 1907년 5월 30일 동양선교회 선교사 카우만(Charles. E. Cowman)부부, 킬보른(Ernest. A. Kilbourne)과 동양선교회의 도움으로 일본에 세운 동경성서학원에서 수학한 김상준, 정빈이 한국에 와서 동양선교회복음전도관이라는 이름으로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성결교회입니다. 1911년 영국 출신 토마스(John Thomas)는 경성성경학원(서울신학대학 전신)을 개원하여 본격적으로 목회자를 양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50년대 한국교회 연합단체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NCCK)와 <한국복음동지회, NAE)로 나뉘어 대립하던 여파로 성결교회는 1961년 분열하였는데, 중앙성결교회는 예수교대한성결교회(예성)에 소속하였다가 1974년 다시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로 복귀한 한국성결교회의 모교회입니다.

중앙성결교회는 서울 종로 염곡(현 종로 2가)에 설립되었다가 을지로 입구로 이전했고, 1909년 서울시청 뒤로 옮겨 1912년에 건물을 완공했습니다. 초대 목회자는 정빈이었으며, 김상준과 최홍은을 비롯한 여러 교역자들이 함께 사역하였는데, 1943년 12월, 조선총독부는 성결교회가 믿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일본의 천황 중심의 국체명징(國體明徵)과 맞지 않는다고 성결교회를 강제해산하고, 200여명의 남녀교역자와 100여명의 평신도 지도자들을 투옥하고 교회를 폐쇄하였습니다. 8.15 해방 후 성결교회는 9월 첫 주일 경성성경학교에서 재흥예배를 드렸습니다. 1977년 성결교회 창립 70주년을 맞이하여 총회기념관을 짖게 되자 중앙성결교회는 무교동 건물을 매각하고, 동대문 옆으로 옮겨서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습니다.

중앙성결교회의 유명한 담임목사로는 이성봉 목사와 이만신 목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복렬 담임목사의 여성교우와 부적절한 관계로 인하여 큰 내홍을 겪다가, 2004년 서울신대 한기채 교수가 담임목사로 부임했습니다. 한기채 목사는 부임설교에서 용서와 화해를 강조했고 “사람을 세우고 세상을 구하는 교회”라는 모토를 가지고 ‘총체적인 돌봄 목회’를 수행해 나갈 것이라고 천명하였습니다.

어릴 적 호롱불을 생각하면, 작고 가물가물했지만 그 불빛 아래서 숙제와 바느질 등 웬만한 것은 다 할 수 있었고, 추웠던 시절에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다는 기억이 납니다. 박노해 시인 일행을 구한 것도 작은 호롱불이었듯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이 척박하고 어둔 시대에 위로와 빛이 되길 바랍니다.

이 점에서 2017년에 호롱불 십자가를 봉헌한 한기채 목사님이 “교회가 설립된 1907년 당시 우리 민족은 호롱불을 켜고 생활했다.”면서 “‘오래되고도 새로운’ 교회, 기성의 어머니 교회라는 자부심을 안고 한국사회에 복음 평화 민주 사랑의 가치를 전하겠다.”고 한 말은 참 소중합니다. 올해 5월 한기채 담임목사님은 기독교대한성결교회 부총회장이 되었으니, 앞으로 80만 성결교인을 품고 중앙성결교회를 세상의 빛과 사랑으로 세우는 사명을 갖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