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거간꾼 또는 장식품", 이-"문제는 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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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8월 10일 09: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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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박원순 변호사의 칼럼에 대하여 <레디앙> 이재영 기획위원이 비판을 시작하였다. 여기에 대해서 내가 반박을 하는 것이 옳은지 혹은 보론을 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얼핏 감이 잘 서지 않았고, 그래서 반박문일지 아니면 보론이 될지에 대해서 입장을 정하지는 못하였다.

    1. 농업은 무엇이고 농촌은 무엇일까?

    농업농촌회생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얼마 전까지 농업살리기라는 말을 시민단체에서는 사용했고,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말도 사용했다. 농업은 우리나라에 대표적인 사양산업이라고 경제학자들은 보통 생각한다. 현재 7% 정도의 국민들이 이 분야에 종사하고 있고, 국민소득의 4% 정도를 생산한다. 그래서 재경부 관료들은 과감하게 3% 정도의 사람들이 이 분야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목놓아 외치는 중이다.

    우리나라의 행정구분은 읍, 면, 동으로 이루어진다. 주소가 동으로 끝나는 곳이 도시이고, 읍이나 면으로 끝나는 곳이 농촌이다. 그리고 이 농촌의 주 경제활동이 농업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농촌지역으로 분류되는 곳에서도 농촌이 전체 경제활동의 50%를 넘어서는 곳이 그리 많지는 않다. 게다가 직업분류 통계를 복잡하게 뒤져보면 대부분의 지역에서 몇 년 전부터 소상인 혹은 상공인들의 비중이 농업인보다 높아졌다.

    간단하게 표현하면, 우리나라의 농업은 죽어가는 중이고, 농민들이 사는 지역인 농촌은 황폐해지는 중이다.

    2. 노무현과 박원순의 농촌부흥계획은 다른가?

    농지은행에 관해서는 시민단체와 민주노동당을 포함해서 농지제도 연석회의 시절에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소위 ‘도시자본’에게 농지를 개방하자는 정부안에 대해서는 모두 반대하였는데, 농지은행에 대해서 입장이 조금 갈렸다.

    나는 농지은행을 반대했고, 강기갑 의원은 찬성했다. 그리고 나머지 단체들은 입장을 정리하지 못했다. 여기에 1만평 이상의 대농과 농민평균인 3천평 정도를 가지고 있는 소농들의 생각이 조금 갈린다. 농민이라고 해도 규모에 따라서 자신의 생각이 갈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여기에 대해서 탓하고 싶지는 않다.

    농촌을 살리자는 생각은 <문화일보>도 가지고 있고, 노무현도 가지고 있다. 오죽하면 농업기반공사가 슬쩍 ‘한국농촌공사’로 이름을 바꾸었을까? 그 말이 그 말인가 싶지만 이 말의 차이는 시쳇말로 ‘트렌드’였다. 나는 이 변화가 절망이고, 우리나라 농촌운동사에 길이 남을 배반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농업이라고 말하는 것과 농촌이라고 말하는 것 사이에는 ‘건설업’이라고 하는 3차 산업, 보통은 서비스업에 분류되는 한국사회에서는 매우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산업의 특수성이 개입되어 있다.

    농촌운동사에 길이 남을 배반

    노무현이 말하는 ‘농촌을 살리자’는 말은 농촌에 좋은 집과 아파트를 많이 짓고, 서울에서 금요일 오후에 출발해서 저녁 먹을 시간에는 당도할 수 있게 많이 도로를 만들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건설산업은 이러한 농촌계획에 대해서 적극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노무현이 말하는 “농촌에 아이가 없어서 큰일이다”는 말도 정말 무서운 말이다. 그러니까 더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내려가야 하고, 앞으로 2만 달러가 되면 집도 두 채씩 가지게 된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도시빈민류의 사람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또 다른 상층의 분들이 우리나라에는 계시고, 1%가 될지, 2%가 될지, 하여간 이 사람들만 2개의 집을 갖는다고 해도, 7%에서 곧 5%로 내려가게 될 농촌의 농민통계에는 가시적으로 잡힐만한 큰 변화가 생긴다.

    신문사에서 얘기하는 농촌살리기가 대체적으로 이런 건설업 부흥의 기조와 연결되어 있고, 노무현의 농촌개발계획도 이런 것의 연장선에 다름 아니다. 경제학으로 얘기하면 1차 산업인 농업에 지원되던 지원 및 보조금이 3차 산업의 건설업 보조금으로 바뀌는 셈이다.

    당연히 건설업 하나씩 끼고 있는 대자본에서 ‘사회의 희망’이라고 난리방방 거리게 되었고, 훌륭하신 생각하신다고 전부 박수쳤다. 국민의 돈으로 지방에 아파트 짓고, 무슨무슨 타운 짓고, 그걸 위해서 도로 만들어준다고 하니 자본이 박수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중앙일보>가 농촌살리기에 나선 진짜 이유

    게다가 지방의 농민이 아닌 소위 지역토호의 핵심세력인 지역건설업체도 지역에 돈이 들어오고, 끼워서 땅투기 조금만 하면 완전 팔자 고치고 중앙토호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

    <문화일보>에서 <중앙일보>까지 덩더쿵덩더쿵하는 농촌살리기는 이런 것이다. 농업과는 아무런 상관없고, 농촌과는 더더군다나 상관없는 노무현판 건설업살리기에 다름 아니다. 철원에서부터 전주와 남원을 거쳐 구레와 하동의 박경리의 토지마을에 이르기까지 실체는 이런 것이다. 농업에 들어갈 돈을 빼서 건설업에게 넘겨주는 일이고, 여기에 반발할지도 모르는 1만평 이상의 농민들에게 “당신의 땅값도 오릅니다”라고 하는 말에 다름아니다.

    이 과정에서 박원순 변호사의 역할은 좀 미안한 표현이지만, 거간꾼에 다름 아니었다. 이미 자본들이 “좋은 일”이라고 움직이고, 정부기관도 한국농촌공사로 이름을 바꾸어 움직이는 돈의 흐름에 따라 서 있을 뿐이다.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여기에 박원순발 ‘노이즈’로 끼어 있는 생태농업이니 풀뿌리 민주주의 심지어는 내발적 발전이라는 말도 모두 건설자본이 움직이는 큰 흐름에 대한 장식품에 다름 아니다.

    수많은 시민운동이 성공사례가 과연 대한민국을 행복하게 해주었는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몇 개의 중앙형 시민단체들은 새로운 ‘아이템’을 찾고, 약간의 돈을 굴릴 수 있게 되고, 소위 ‘인재’를 가까이 모을 수 있게 되겠지만, 희망과는 상관없다.

    더 심하게 표현하자면 이런 박원순표 희망은 마약과 같다. 건설기에 흘러 들어오는 돈이 있을 동안 작은 ‘맹아’라도 ‘소중한 사례’로 포장되고, 심지어는 농지은행 같은 악랄한 제도들도 미래를 위한 ‘출발점’으로 포장되겠지만, 건설공사가 끝나고 난 3년 혹은 5년 뒤에는 농촌이 무너지고 휑한 공터와 생태적 재앙만이 남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크게 모아’ 다함께 손을 잡고 ‘크게 한탕’하는 중앙단체의 먹이사슬에 엮이는 순간, 그야말로 미약한 풀뿌리 특히 농촌지역의 작은 공동체마저 민주주의을 실현하는 보루가 아니라, ‘돈맛 든’ 지방토호들의 놀이터로 변하게 된다.

    3. 그러나 농업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필요하다

    박원순표 40대 퇴직자들의 귀농 프로젝트는 간단히 말하면 사기에 해당하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이재영의 말이 옳다. 물론 부분적으로 그렇게 해서 즐거운 제2의 인생을 되찾을 사람들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이게 지역의 희망이고 나라의 희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실제로 농촌의 회생의 전기를 가까스로 찾은 영국이나 약간 먼저 이 길을 걸어간 덴마크나 스위스에도 이런 경우는 없다.

    <문화일보>나 <조선일보>가 언제 책임감이 있었던 적이 있던가? 혹은 우리의 노무현 대통령이 단 한 번이라도 책임 있는 생각으로 정책을 우리에게 제시한 적이 있던가? 그냥 그런 시각의 연장에서 박원순표 희망메시지를 읽으면 큰 무리 없다는 것이 내 조심스러운 생각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유기농전환이 되었든 아니면 유통관계에 대한 획기적인 전환이 되었든 요즘 외국에서 유행하는 말대로 농업은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의 대상이고, 어떻게 농업의 기반을 한 사회에서 재생산해낼 것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몇 개의 모델은 제시할 수 있지만 과연 우리나라에서 가능한 모델이 무엇인가라고 정색을 하고 진지하게 물어본다면 답을 제시하기가 쉽지는 않다.

    “공업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는”는 이재영의 질문은 “농업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는 질문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GDP 4%만큼의 고려라도, 혹은 인구 7%에 대한 배려라도, 농업은 식품안전과 생태안전 등 사회적 기능에 의해서 최소한 자신이 하는 것만큼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부분이다.

    그야말로 "공업의 것은 공업에게, 농업의 것은 농업에게"라고 답하고 싶다.

    농촌살리기라고 하면서 건설자본에게 돈을 몰아다주고, 건물 몇 개 짓고, 마을회관이나 문화회관이나 하면서 그 보다 몇 배나 되는 도로를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주는 지금의 농촌살리기는 여전히 공업과 서비스업이 농업의 것을 빼앗아 가고 있는 상황이다. 농촌에 119조원을 준다는 것과, 농업에 5조원이라도 실제로 지원이 될 수 있게 하자는 말은 전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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