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 “포항시민들 다 때려 죽여라”
        2006년 08월 10일 04:39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날카롭게 간 방패로 환갑이 가까운 늙은 노동자들을 내리치고, 쓰러진 노동자들을 몽둥이로 가격하고 다시 방패로 찍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광경이 포항 시내에서 또 다시 벌어졌다.

    상상을 초월하는 경찰의 폭력에 하루 동안만 150명의 노동자들이 부상을 입었다. 경찰은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포항시민들 다 때려 죽여”라고 외쳤고, 노인, 여자 할 것 없이 방패를 휘두르며 마치 적군을 다루듯이 했다. 지붕 위에서 두 눈을 똑똑히 뜨고 지켜본 경찰의 만행을 시민들은 “제발 국민들에게 정확히 알려 달라”고 애원했다.

    경찰의 소화기에 맞아 지난 1일 목숨을 잃은 포스코 건설노동자 고 하중근 조합원을 추모하고 살인적 폭력의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가 9일 오후 3시 포항 동국대학병원 앞에서 열렸다.

    이날 포항은 불타고 있었다. 35도가 넘는 폭염에 불타고 있었고, 인간답게 살고싶다며 절규하던 노동자를 소화기로 때려죽인 경찰의 만행에 대한 분노로 불타고 있었다.

    폭염을 포항 거리에서 보내고 있는 건설노동자 3천여명과 여름휴가를 끝내고 돌아온 금속노동자 1천5백명 등 7천명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집결한 포항 동국대학병원 앞. 경찰의 소화기에 맞아 유언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목숨을 잃은 하중근 조합원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동국대학병원을 바라보는 노동자들의 얼굴로 태양이 뜨겁게 작열하고 있었다.

       
     ▲ 9일 오후 3시 포항 동국대학병원 앞에서 민주노총 조합원 7천여명이 고 하중근 조합원 폭력살인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사진 금속노조)
     

    아스팔트 위의 온도계는 50도를 넘고

    두꺼운 신문을 깔았지만 아스팔트 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채 10분을 앉아있을 수 없었다. 도대체 이 아스팔트의 온도가 얼마나 될까 궁금했다. 대형 문방구를 찾아 온도계를 사들고 아스팔트 위에 올려놓았더니 35도에서 시작한 온도계는 채 10분 만에 50도를 치솟았다. 온도계를 들여다보던 금속노조 충남지부 김명환 산안부장은 50도에 깜짝 놀라며 “종이박스를 깔았는데도 뜨거워서 엉덩이가 익어버릴 것 같고 더워서 미쳐버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국에서 온 노동자들은 50도의 온도를 피해 그늘로 피해있을 수 없었다. 줄줄 흘러내리는 땀을 연신 수건으로 적시며 억울한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한상열 통일연대 상임대표는 “지금 우리는 살아서 이 뙤약볕이 뜨겁다는 걸 느끼지만 하중근 열사는 어떠냐?”며 “사랑하는 동지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는데 의리로라도 더 이상 물러설 수가 없다.”고 절규했다.

    민주노총 조준호 위원장이 “아직은 상여를 멜 때가 아니고 아직은 울 때가 아니”라며 “민주노총은 오늘부터 이 정권과 악덕 포스코와 사활을 건 투쟁을 시작할 것”이라고 선언하자 5천여명의 노동자들이 박수와 환호로 화답했다.

    “대통령이 사죄하고 사태해결에 나서라”

    민주노동당 단병호 국회의원은 “하중근 동지가 싸늘한 시신으로 영안실에 누운 지 열흘이 되어가고 폭력의 진상을 밝히겠다고 부검을 한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아직 어떠한 결과도 나오지 않고 있다.”며 “노무현 대통령이 즉각 이번 사태에 대한 사죄를 하고 폭력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직접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이 진실을 밝혀내지 못하면 부끄러워서 노동운동 못할 것 같다.”며 “반드시 밝혀내서 책임자를 처벌하고 하중근 동지가 편안한 마음으로 우리 곁을 떠날 수 있도록 하자."고 당부했다.

    포항건설노조 조합원들은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포스코 본사 점거농성을 벌여 58명이 구속됐고 이지경 위원장이 15일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고 하중근 노동자의 형님은 “이 억울한 죽음에 대해 진상규명이 되어야 한다”며 모든 것을 대책위에 맡겼다. 지감렬 포항건설노조 위원장 직무대행은 “‘소리없이’ 소중한 동지를 빼앗아간 포스코는 아무런 죄의식도 느끼지 않고 탄압을 계속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경찰청장과 현장책임자 처벌 ▲노무현 대통령 사죄 ▲재발방지대책 수립 ▲건설노조 탄압중단 손배가압류 철회 구속자석방 ▲유족들에게 사과 ▲포스코 사태해결 등을 요구했다.

    “가자 포스코로 죽은 이의 한을 풀자”

       

    4시 50분. 포스코를 향한 행진이 시작됐다. 형산강로터리를 수천명의 경찰이 틀어막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금속노조 조합원 등 2천여명은 섬안다리로 방향을 틀었다. 섬안다리 앞에는 천 명의 경찰들과 수십대의 경찰버스가 포스코를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길을 가로막고 있던 경찰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더니 전남에서 왔다고 대답했고 또 다른 경찰은 경남에서 왔다고 말했다. 전라도에서 경상도까지 전국의 경찰이 포스코를 지켜주고 있었다.

    금속노동자들은 “사람 죽인 놈들아, 길을 비켜”라고 말하며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채 5분이 지나지 않아 노동자들 머리 위로 곤봉이 날아왔고, 대형소화기를 뿌리며 방패로 내려치기 시작했다. 성난 노동자들은 경찰을 끌어냈고, 경찰의 방패와 곤봉을 빼앗았다. 노동자들과 전투경찰의 대치와 격렬한 싸움은 1시간 넘게 계속됐으나 포스코를 향한 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6시50분 금속노동자들은 건설노동자들이 있는 형산강 로터리 입구로 향했다.

    같은 시각 형산강로터리 입구에 도착한 5천여명의 노동자들은 다리 건너 포스코로 향한 길을 막고 있는 경찰과 맞섰다. 경찰은 83개중대 8천여명의 병력을 형산로터리 일대에 배치하고 컨테이너박스 6개를 동원해 진입도로를 봉쇄했다.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맨 몸뚱아리의 노동자들을 경찰이 치고 들어와 수십명이 다치는 사태가 벌어졌다. 여기저기서 노동자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건설노조 간부들 여러 명이 연행됐다. 한 간부를 다쳐서 병원으로 후송하는 중에 경찰이 남부경찰서로 끌고 가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망연자실했고, 여기저기서 쇠파이프를 달라는 항의가 빗발쳤다.

    “쟤네들 오면 방패로 친다”

    7시30분 1,500명의 금속노동자들이 합류하자 조합원들은 다시 싸우자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집회 장소에서 50m 정도 떨어진 곳에서는 경찰들이 방패를 아스팔트에 갈며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가까이 갔더니 한 지휘관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쟤네들 오면 방패로 친다. 상체 윗부분은 방패로 치지 않는다. 하체만 친다.” 1602, 1023, 1027 부대원들은 “악 악” 소리를 연거푸 내며 공격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었다.

    한 건설노동자가 일어나서 외쳤다. “우리 건설노동자는 현장에서 망치들고 일할 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평화적인 집회를 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물대포를 쏘고 방패로 찍고 몽둥이로 내리쳤습니다. 오늘 우리는 망치를 놓고 연장을 들었습니다. 우리의 소식을 전국 방방곡곡에 알려주십시오.” 건설노동자들 앞에 쇠파이프와 대나무, 삽자루가 놓여졌다. 건설노동자들은 경찰에 맞아 돌아가신 하중근 열사의 한을 풀 수 있다면 어떤 희생도 각오하겠다고 다짐했다.

    “밑바닥 인생인데 뭐가 두렵겠냐?”

    쇠파이프를 든 늙은 노동자에게 두렵지 않느냐고 물었다. 김 모(55) 조합원은 “어차피 우리 인생이 밑바닥 인생인데 두려울 게 뭐가 있겠냐?”고 되물었다. 그는 “우리는 140m 위에 올라가 물건 조립하고 기계 설치해요. 우리가 죽어나갈 때 저들은 돈 몇 푼 던져줬어요. 싸우지 않으면 아무도 우릴 인간 대우 해주질 않아요.”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다른 조합원은 “빨리 싸우고 소주나 한 잔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간대접 받지 못하며 살아왔던 이들에게는 아들 뻘도 되지 않는 스무 살 전경이 내리치는 날카로운 방패도, 피 흘리며 쓰러지는 것도 두렵지 않았다.

    “포항시민들 다 때려 죽여라”

       

     

    8시 5분. 집 밖으로 나와 길 양 옆에서 구경하던 200여명의 시민들 중에서 50여명이 도로로 뛰어들어 경찰에게 격하게 항의하고 있었다. “시민들 보는 앞에서 방패를 갈고 있잖아. 여기 기자들 어디 있어? MBC KBS 다 어디갔어? 이거 좀 봐라. 시민을 보고 욕하는 경찰이 어딨어? 다 때려 죽인다니. 어느 새끼야?”

    “책임자 나오라고 그래.” “어디 시민 한 번 찍어봐. 찍어봐 임마.” “그 뒤에 숨어있는 책임자 나오라고 해.” 시민들의 항의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런닝셔츠 바람에 샌달을 신은 김 모(40.남구 해도동) 씨는 “경찰들이 소리지르면서 방패를 갈고 있어서 시민 한 명이 뭐라고 하니까 방패로 때려 죽인다고 그랬어요.”라고 말했다.

    그의 친구라는 택배회사 직원은 “시민을 다 때려죽인다니, 아무리 데모한다지만 시민을 왜 죽이냐고. 방패 가는 거 보고 오죽했으면 시민들이 나왔겠냐? 시민들 세금갖고 니들은 인간들도 아냐. 책임자 나와서 사과하라 그래.”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방패를 날카롭게 갈아 고무패킹이 없어졌다

    강변에 바람 쐬러 나왔다가 이 광경을 목격하게 된 강진택 씨(46. 북구 대신동)는 “시민 보고 다 때려 죽여라 안하나. 얼마나 분통터져.”라며 “데모가 문제가 아이라. 포스코가 돈 벌어갖고 같이 먹고 살아야지.”라고 말했다.

    시민들의 항의는 시간이 갈수록 더 격해지고 있었다. 도로로 나온 시민들의 숫자는 어느새 200명을 넘어섰고, 곳곳에서 고함이 터져나왔다. 1602, 1623부대원들의 방패는 고무 패킹이 모두 사라져있었다. 사진기자들이 사진을 찍으려 하자 경찰은 방패를 옆으로 돌리며 사진을 방해했다.

    장사하는 사람들도 항의에 가세했다. 최상길(62. 남구 대도동) 씨는 “장사하다 하도 억울해서 나 혼자 술 마시다 나왔다”며 “공권력은 막는 거지 뒤에서 몽둥이로 치는 게 어딨냐?”고 말했다. 그는 “책임자 나와서 내 매상 책임져.”라고 소리쳤다. 시민들의 항의가 1시간을 넘도록 계속됐다.

    노동자들 쇠파이프를 들다

    9시 15분. 경찰은 방송차를 통해 말했다. “조끼를 벗어버리고 포항시민인 양 대원들에게 욕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부터 검거하겠습니다.” 방송차 소리에 시민들은 더욱 분노했고 여기저기서 심한 욕설을 내뱉었다.

    건설노동자들을 선두로 4천여명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경찰 앞으로 걸어나왔다. 조합원들은 시민들에게 위험하니 골목으로 비켜줄 것을 당부하자 한 시민은 “노조원들 잡혀가면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오늘의 상황을 정확히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에 경찰버스와 5m 거리에 있는 가건물 지붕으로 올라갔다. “하중근을 살려내라”며 노동자들이 쇠파이프를 높이 들고 경찰 앞으로 걸어나왔다. 5분도 지나지 않아 경찰은 경찰버스 옆으로 밀려났다. 성난 조합원들은 경찰버스를 부쉈다. 경찰은 물대포를 쏘며 조합원들을 막았다.

    핏물로 젖은 형산강 로타리 앞 도로

    그러나 그건 작전이었다. 9시 52분. 경찰은 양쪽에서 물대포를 쏘며 버스 앞쪽부터 치고 들어왔다. 버스 앞쪽 노동자들의 대열이 흩어진 것을 틈타 기역자로 조합원들을 몰아친 것이다. 당황한 노동자들이 잠시 저항하다 뒤로 돌아 뛰기 시작했다. 경찰은 넘어진 조합원들을 방패로 내리찍고 몽둥이로 머리를 가격하며 노동자들을 쫓아갔다.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렸고, 도로 곳곳이 핏물로 물들었다.

    순식간에 50여명 이상이 쓰러져 밟히고 방패에 맞아 길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일부 노동자들은 들 것에 실려나갔다. 끔찍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잔혹한 진압이었다. 지붕에서 내려와 경찰이 달려간 길을 따라 걸었다. 곳곳에서 쓰러져 웅크리고 있는 노동자들이 보였고, 피는 아스팔트 위에 낭자했다. 방송차로 사용됐던 화물차의 유리창은 완전히 박살나있었다.

    “이 사람 죽어요. 쓰러졌는데도 또 방패로 찍었어요.”

    10시 4분. “피가 계속 흐른다니까. 구급차 빨리 좀 오라고 해.” 한 노동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등산용품 판매점인 ‘K2산장’ 앞에 한 노동자의 목 뒤에서 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나오고 있었다. 시민들이 거칠게 항의하며 빨리 구급차를 들여보내라고 하는데도 경찰은 길을 막고 구급차를 보내지 않았다. “이 사람 죽어요. 뒷목을 두 번이나 찍었어요. 쓰러졌는데도 또 방패로 찍었어요.” 한 아주머니가 절규하듯이 소리쳤다.

    “뭐 이런 나라가 있노. 사람이 죽었는지 눈을 못 뜨고 있는데 또 때렸대이. 빨리 구급차 불러 이놈들아.” 참다못한 시민들이 소대장으로 보이는 경찰간부를 ‘K2산장’ 앞까지 끌고와 둘러싸고 멱살을 흔들었다. 그러자 곧바로 전경들이 달려와 시민들을 밀치고 그를 데려갔다. 쓰러진 노동자는 15분이 지나서야 겨우 구급차에 실려갔다.

    “너흰 에미 에비도 없냐?” “없다. ××년아.”

    곳곳에서 울음이 터지고 분노가 폭발했다. 고무신을 신고 나온 정원일(56. 남구 대도동) 씨는 “대한민국 민주국가에서 이런 법이 어딨노? 이게 국민의 경찰이야? 이게 깡패새끼들이야?”라고 소리쳤다. 그는 “한 경찰간부놈이 포항시민 다 죽인다고 그랬다니까.”라며 “어디서 온 놈들이길래 그런 소릴 지껄이냐?”고 말했다. 그는 누가 “경찰서장 지나간다”고 소리치자 달려가 “서장 내 좀 보자. 이런 법이 어딨노. 이 놈들아.”라고 말했다. 

    한 아주머니가 “니들은 애비 애미도 없냐?”고 소리치자 한 전투경찰은 “그래 없다. ××년아.”라고 말해 시민들을 또 다시 격분하게 만들었다. 급기야 시민들은 ‘K2산장’ 건너편 편의점 앞의 쓰레기통과 의자를 막 집어던졌다. 시민들의 항의가 계속되자 경찰은 병력을 뒤로 빼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항의는 자정까지 계속됐다.

    전쟁병동을 방불케하는 동국대병원

    10시 30분. 경찰에 짓밟힌 노동자들은 동국대병원 앞으로 집결했다. 동국대병원엔 7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중상을 입고 치료를 받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안면이 나가고, 귀가 찢어지고 머리가 터진 노동자들이 마치 전쟁병동을 방불케 한다는 것이었다. 포항사랑병원 등 다른 병원에 실려 간 노동자들을 합치면 중상자만 100명을 훨씬 넘을 것 같았다.

    금속노조 김창한 위원장도 쓰러져 경찰에 밟혔고, 지나가던 경찰이 방패로 내리쳐 온 몸이 아프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인천 KM&I 박세준 지회장도 10여명에게 집단구타를 당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상이 크지 않아 그들은 병원에 가지 않았다.

    노무현 정권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5만 4천명을 정규직화하겠다고 발표한 다음 날 일용직 건설노동자를 비롯한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저지른 잔혹한 폭력만행이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소화기로 건설노동자 하중근 조합원을 때려죽인 정권, 방패로 2명의 농민을 때려죽인 정권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밤 12시가 되어서야 전세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