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풀소리의 한시산책] 매창과 유희경
    2019년 10월 22일 10: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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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 중략 –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나뭇잎 밟는 소리 하나도 너일 것 같다

얼마나 간절하면 이럴까요. 얼마나 사랑하면 이럴까요. 미리 가 기다리는 나는 모든 발자국,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너’인 듯 다가오니까요. 더욱이 기다리는 동안 나의 혼은 이미 너에게 가고 있습니다.

물론 황지우의 이 시(詩)는 ‘사랑’만을 노래한 시는 아닙니다. 전두환 군사정권이 시퍼런 독재의 칼날을 휘두르던 시절 민주주의에 대한 간절한 갈망으로 쓴 시니까요. 하지만 그런 배경 설명이 없이 오늘날 이 시를 본다면 아름다운 사랑시임에 틀림없습니다. 사랑의 보편성을 넘어 사랑의 경계까지를 보여주니까요. 오늘 찾아가는 한시산책도 간절한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 전라도 부안(扶安)의 기생 매창(梅窓)과 유희경(劉希慶)이 그 주인공입니다.

매창(梅窓)(1573년(선조 6)~1610년(광해 2))의 본명은 이향금(李香今)입니다. 부안의 아전 이탕종(李湯從)의 첩의 딸, 즉 서녀입니다. 자는 천향(天香), 매창(梅窓)은 호입니다. 계유년에 태어났으므로 계생(癸生)이라 불렸고, 계랑(癸娘 또는 桂娘)이라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태어나 세 달 만에 엄마가 죽고, 열세 살에 아버지마저 죽어 부안 현감에게 의탁합니다. 아버지 아래서 한문을 배웠지만, 고아의 몸이라 자연스럽게 기생이 됐나 봅니다. 허균(許筠)이 남긴 기록을 볼 때 미모는 뛰어나지 않은 듯 보이지만, 시문(詩文)과 거문고에 뛰어나 개성의 황진이(黃眞伊)와 더불어 조선 명기의 쌍벽이라 일컫는 분입니다. 시문으로 서울에까지 알려져 당대의 문사인 유희경(劉希慶), 허균(許筠), 이귀(李貴) 등과 깊게 교유(交遊)했습니다.

먼저 매창의 시조 한 수 볼까요.

이화우(梨花雨)

이화우(梨花雨) 흣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千里)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배꽃이 비처럼 흩날리던 봄날 임과 이별을 했나 봅니다. 어느덧 바람 불고 낙엽 지는 가을이 왔습니다. 그도 지금 나를 생각할까요? 그가 나를 생각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꿈속에서 그를 그립니다. 이렇게 매창이 꿈속에서도 그리던 이는 누구일까요. 그분은 바로 유희경(劉希慶)(1545년(인종 1)~1636년(인조 14))입니다.

설악산 입구 벚꽃 터널. 이렇게 봄꽃이 흐드러진 봄날 유희경은 떠나갑니다.

유희경은 기록에 의하면 천인(賤人)이었다고 합니다.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에 천인에서 나중에 종2품 가의대부(嘉義大夫)까지 오른 어엿한 양반이 된 전설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유희경은 열세 살에 아버지가 죽습니다. 수락산 자락에 아버지를 묻으려 하지만 근처 고관의 무덤을 지키는 묘지기가 쫒아내 버립니다. 유희경은 사헌부에 호소하여 간신히 아버지 묘를 씁니다. 그리고 3년 동안 정성스럽게 시묘살이를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대학자 남언경(南彦經)이 기특한 생각에 손수 찾아가 옷을 주고, 망월암 승려들에게 음식을 가져다주게 합니다. 이를 계기로 남언경의 제자가 됩니다. 남언경은 대학자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의 제자로 특히 예학(禮學)에 밝았습니다. 유희경은 남언경으로부터 『문공가례(文公家禮)』를 배워 예학에 정통하게 됩니다. 예학 중에서도 장례의식에 특히 밝아서 나라의 큰 장례나 사대부가의 장례를 예법에 맞게 치르도록 지도하는 것으로 이름이 났습니다.

유희경은 시(詩)도 잘 썼습니다. 남언경과 동문수학하고, 나중에 영의정까지 지낸 박순(朴淳)이란 분이 있는데, 이분은 시로도 유명한 분입니다. 유희경은 바로 이분으로부터 시를 배웠습니다. 그의 시는 한가롭고 담담하여 당시(唐詩)에 가깝다는, 매우 높은 평을 들었습니다.

1591년(선조 24)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 봄날 유희경은 부안에서 매창을 만납니다. 아마도 상례전문가인 유희경을 부안 근처 유력한 집안에서 불렀겠지요. 당시 유희경은 시인으로서도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었고, 매창 또한 명기(名妓)로 한양의 풍류가에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유희경은 매창에게 달려갑니다. 이것이 이들의 애틋한 사랑의 시작입니다. 서로 천출(賤出)이면서 시인(詩人)으로도 이름났기 때문일까요. 둘은 이내 사랑에 빠집니다. 유희경이 47세, 매창이 19세지만 28년의 나이차는 그야말로 숫자일 뿐입니다. 첫 만남의 기쁨을 유희경은 이렇게 시로 표현했습니다.

贈癸娘(증계랑)

曾聞南國癸娘名(증문남국계랑명)
詩韻歌詞動洛城(시운가사동낙성)
今日相看眞面目(금일상간진면목)
却疑神女下三淸(각의신녀하삼청)

계랑에게 주는 시

일찍이 남국의 계랑 이름을 들었는데
시와 노래솜씨 서울에까지 알려졌었지
오늘에야 마주보며 진면목을 보노라니
무산신녀가 삼청궁에서 내려온 듯하구려

아침에 구름 걸린 북한산. 무산신녀의 아침 모습도 저럴까요.

신녀(神女)는 무산신녀(巫山神女)를 말합니다. 중국 전설 속의 황제 염제(炎帝) 신농씨의 셋째 딸 요희의 화신으로 절세 미녀입니다. 전국시대 초나라 회왕이 무산에서 낮잠을 자고 있을 때 꿈속에 나타나 사랑을 나눴다고 합니다. ‘언제 또 볼 수 있냐’고 묻자 ‘아침에는 상(上)봉우리에 구름이 되어 걸려 있다가 저녁이면 산기슭에 비가 되어 내리는데, 그게 바로 저랍니다’라고 답하고는 신녀는 홀연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사랑의 행위를 ‘운우지정(雲雨之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만남도 잠깐 배꽃이 비처럼 흩날리던 봄날 이들은 헤어집니다. 어느덧 계절은 돌아 다시 봄날이 왔습니다. 떠난 임을 그리며 매창은 시 한 수를 읊습니다. 그 시를 볼까요.

봄비에 벚꽃과 버들이 다투어 피었습니다

自恨(자한)  1 

– 梅窓  

東風一夜雨(동풍일야우) 
柳與梅爭春(유여매쟁춘) 
對此最難堪(대차최난감)
樽前惜別人(준전석별인)

그리움

봄바람에 밤새 비 내리더니
버들 매화 다투어 피어나네
봄날 가장 견디기 어려운 건
술잔 앞두고 이별한 임 생각

봄비가 내린 아침 창밖으로는 버들이 잎을 튀우고, 매화꽃이 피어납니다.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봄이 되니 배꽃 흩날리던 날 떠나간 정인(情人)이 더더욱 생각나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리운 건 유희경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길을 걸으면서도 계랑이 생각납니다. 시를 볼까요.

途中憶癸娘(도중억계랑)

一別佳人隔楚雲(일별가인격초운)
客中心緖轉紛紛(객중심서전분분)
靑鳥不來音信斷(청조불래음신단)
碧梧凉雨不堪聞(벽오량우불감문)

길을 가다 계랑을 생각하며

고운 임 이별 뒤 사랑 나눌 수 없어
나그네살이 마음만 더욱 어지러워라
파랑새는 오지 않고 소식마저 끊기니
오동잎에 찬비 소리 견디기 어려워라

‘초운(楚雲)’은 ‘초운상우(楚雲湘雨)’의 줄인말입니다. 말 그대로 풀이하면 초 나라 구름과 상강(湘江)의 비인데, 남녀의 그윽한 정을 상징합니다. 상례전문가인 유희경은 명문가의 초대를 받아 이 고을 저 고을을 다녔나 봅니다. 그러면서 여름이 가도록 임의 소식은 없고, 벽오동에 겨울을 재촉하는 찬비가 내리니 임이 더욱 그립습니다.

그리고는 임진왜란이 났습니다. 유희경은 의병을 모아 왜병에 맞섭니다. 그 공으로 1594년(선조 27) 교지(敎旨)를 받아 천인(賤人)의 신분에서 완전히 벗어납니다. 이제 양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운 정인(情人)에게 달려갈 수 없습니다. 겨우 천역에서 벗어난 처지에 기생이나 끼고 돈다는 세간의 평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1607년(선조 40) 드디어 둘은 15년 만에 다시 만납니다. 그것도 잠시 둘은 이내 헤어져야 합니다. 조심스러운 성품의 유희경은 여전히 세간의 풍문이 두려웠을 겁니다.

유희경은 1609년(광해 1) 나라에 공을 세워 정 3품 통정대부(通政大夫)가 됩니다. 그러나 매창은 그리움이 사무쳐서일까요. 한없이 시들어가 1610년(광해 2)에 숨을 거둡니다. 지금이야 서른여덟 살 꽃다운 나이지만, 당시로는 쓸쓸한 늙은 퇴기였지요. 매창은 읍 남쪽 언덕에 평생 아끼던 거문고와 함께 묻힙니다.

매창을 아끼던 또 한 남자가 있습니다. 조선 최대 풍운아의 한 사람인 허균(許筠)입니다. 자유분방한 허균이었지만 매창과는 10년 동안 남녀의 정이 아닌 우정만을 나눴습니다. 아마도 매창에게서 뛰어난 시인(詩人)이었지만 불우하게 요절한 누나 허난설헌(許蘭雪軒)의 모습이 어른거려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암튼 허균은 매창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시 한 수를 짓습니다. 「哀桂娘(애계랑, 계랑의 죽음을 슬퍼하며)」이라는 시인데 첫 구절만 소개하겠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시인으로써 매창을 얼마나 높이 평가했는지 보여주기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妙句甚擒錦(묘구심금금)
淸歌解駐雲(청가해주운)

신묘한 글귀는 비단을 펼쳐 놓은 듯
청아한 노래는 가는 바람 멈추어라

매창의 묘. 부안 남쪽 언덕에 있습니다.(사진 : 문화일보)

우리 현대사에도 우정인 듯, 연인인 듯 간절한 사랑을 나눈 이들이 있지요. 청마(靑馬) 유치환과 정운(丁芸) 이영도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영도의 시를 보면서 이번 한시산책을 마치렵니다.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은 어디까지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말입니다.

무제1

– 이영도

오면 민망하고 아니 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 귀 기울여 기다리며
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정작 마주 앉으면 말은 도로 없어지고
서로 야윈 가슴 먼 창만 바라다가
그래도 일어서 가면 하염없이 보내니라

필자소개
최경순
민주노총 전국민주버스노동조합과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에서 일했고,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공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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