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도 '호기롭게' 탈당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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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01월 21일 03:5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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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창우 부산시당 사무처장
     

    ‘나는 왜 호기롭게 탈당하지 못하는가?’ ‘웅얼거림’이라는 필명을 쓰는 분이 <레디앙>에 올린 글입니다. 이 글을 최근 52명이 집단 탈당한 민주노동당 해운대위원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저의 절친한 친구가 퍼다 놓았습니다.

    그의 심정을 대변하는 글인 것 같습니다. 그 친구 덕분에 저도 끝까지 봤고 상당히 논리적인 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받아들이기에 이 글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신당을 해본들 한 줌도 안 되는 민주노동당 쪼개자는 소동일 뿐이지 국민들이 알아주겠느냐? 민주노동당과 또 다른 뭘 갖고 호소할 거냐?"는 질문이라고 봅니다.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애초부터 자주파와 정파연합당을 만들 때 각 정파가 자기 지분을 키워가기 위해 경쟁하는 체제를 인정한 것 아니냐? 자주파의 패권은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정파연합당’이라는 대전제 위에서 함께 한 건데 지금 자주파가 완전히 고립된 상황에서 자주파 꼴 보기 싫어 뛰쳐나가겠다는 건 무책임한 것 아니냐?"

    그러니 "마지막으로 한판 제대로 싸워보자” 그 결과 “자주파가 ‘반신자유주의 우선성, 남북평화 공존’ 정도로 자기 노선을 수정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면 당을 계속 해볼 수 있는 것 아니냐?" 이것도 판단이 필요한 문제겠죠.

    제 친구는 자주파와 제대로 한 번 싸워보지도 않고 당에서 철수하는 것을 스스로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 같습니다.

    저도 이 문제에 관한 한 생각이 계속 바뀌어 왔습니다. 처음엔 탈당하겠다는 사람에게 “우리가 왜 나가냐? 우리가 원주민인데, 나가더라도 중간에 끼어들어 당을 이 꼴로 만든 친구들더러 나가라 해야지”라는 입장이었습니다.

    이런 입장이라면 심상정 비대위처럼, 이번 기회에 당을 농단해 온 자주파 노선에 대해 확실하게 책임을 묻고 금치산 판정을 내릴 정도로 확실하게 붙는 게 타당하다고 봅니다. 책임을 묻는다고 자주파가 수굿이 책임을 인정하기야 하겠습니까만, 어쨌든 당내에서 화끈하게 싸워야 당원들이나 국민들이 보기에도 자주파와 동거하는 것보다 딴 살림 차리는 게 낫겠구나 하는 동의를 받을 수 있다는 얘깁니다.

    자주파로부터 당권 탈환 무슨 의미 있나?

    그런데 그 이후에 좀 달라졌습니다. 민주노동당의 주도권을 자주파로부터 탈환해 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하는 거죠. 그건 민주노동당이라는 함선에 뚫린 구멍이 우리 내부의 자정 의지와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이미 치유 불가능이 되어버렸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이미 곧 침몰 직전 상황까지 침수되어서 불가피하게 하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나의 주관적 의지, 욕망과 무관하게 민주노동당은 이미 ‘사망했다’는 거죠. 인정하기 싫지만 이게 현실이라고 봅니다. "너네는 더 이상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세력이 아니다"라고 하는 데야 뭐라 하겠습니까?

    100년을 가는 진보정당을 만들겠다고 ‘호기’를 부렸습니다. 좌파 정당이 뿌리 내리기 힘든 객관적인 환경, 불리, 열세 이런 것들이 우리의 의지를 꺾을 순 없었습니다. 배가 고파도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4년 간 우리를 지켜 본 국민들이 "너네는 아니다"라고 하는 건 좀 다릅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나를 버티게 만들어준 유일한 힘, 희망이 사라진 겁니다. 이제 남은 건 그저 ‘관성’입니다.

    자주파처럼 시대착오적인 민족제일주의 노선이 당 최대의 패권 정파로 남아 있는 한 도저히 같이 당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당 내부의 문제 의식이라면 이른바 ‘인민의 평결’에 의해 이미 뇌사 판정을 받은 식물정당을 붙들고 산소호흡기로 강제 호흡을 시켜봐야 가망이 없다는 건 당을 객관적으로 바라본 외부의 시선입니다.

    이 두 가지는 연결된 것입니다. 심상정 비대위가 당권을 쥐고 당을 혁신한다 하더라도 당 대의원, 중앙위원 다수를 장악한 자주파가 실질적으로 해체되지 않는 한 민주노동당의 파행과 정파담합 구조는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임시당대회에서 기존 민주노동당을 ‘해산’하고 ‘재창당’을 선언하는 것이 ‘최선책’일 수 있습니다. 이 주장이 해당 행위라고 성토하는 분들이 계신데 죽어서 부활하는 예수님처럼 당을 해체해서 ‘진보정치’를 부활시키자는 뜻으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여기에 아직 동의하지 않는 많은 당원들이 있습니다. 아직 머뭇거리는 당원들이나 대중정치인들의 고민은 그것 자체로 존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 운동 자체를 유보할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혁신이든, 신당이든 그 뜻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진보의 재구성’이지요.

    ‘민생 중심 노선’ 구현이 핵심

    다음으로 "기존 민주노동당과 다른 뭔가를 보여줄 수 있느냐?"는 질문인데 정말 어려운 문제입니다. 저도 민주노동당의 강령이 ‘후져서’ 국민들을 설득하지 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새로 만들 진보정당도 민주노동당의 강령과 특별히 다를 것 같지도 않습니다.

    핵심적인 문제는 ‘민생 중심 노선’을 얼마나 투철하게 구현하느냐 하는 문제라고 봅니다. 즉 다양한 강령, 정책을 그저 열거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중심에 놓고 무엇을 앞세울 것인가 하는 문제라는 거죠.

    정치학자들이 말하는 ‘반응’과 ‘책임’이라는 현대 민주정치의 기본 원칙을 제대로 구현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저는 ‘반응’과 ‘책임’의 정치에서 민주노동당의 ‘동거정치 세력’이 철저히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되돌아 보면 해마다 그 소리가 그 소리인 비슷한 평가서를 내놓고 또 비슷한 사업계획서를 제출합니다. 국민들이 듣고 싶은 얘기를 들려주기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에 열중하는 게 우리 모습이었죠. 국민들은 민주노동당에 민생 중심 정치를 요구했는데 당은 반미 자주 통일 사업을 중심으로 딴 소리를 한다면 국민들의 요구에 ‘반응’하는 것도 아니고 지지자들에게 ‘책임’지는 정치를 하는 게 아니겠죠?

    그리고 새로운 진보정당이 당장 정치무대에서 뜰 것으로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반응과 책임의 정치를 한결같이 추구해 나간다면-한국정치사에서 민주노동당을 포함해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새로운 진보정당은 국민들의 신뢰를 얻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누가 호기롭게(?) 탈당하겠습니까? 당에 청춘을 묻은 분들, 창당 발기인으로 탈당계를 제 손으로 써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데 ‘호기’는 무슨 호기겠습니까? 그저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선택지가 안보이기 때문일 뿐입니다.

    당을 떠나는 이유요? 그건 진보 정치를 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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