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발 직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2006년 08월 09일 11: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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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5만 4천여명을 사실상 정규직화하기로 한 비정규직 대책을 발표하자 사회의 관심이 비정규직 문제로 쏠리고 있다. 경총을 비롯한 사용자들은 "민간 사이드를 압박하려는 수순"이라고 반발하고 나섰고 조선일보 등 보수 신문들도 "재계, 따라해야 하나 초긴장"이라는 제목으로 우려를 자극하고 나섰다.

    정부가 발표한 대책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31만명 중에 20%만을 대상으로 했고, 정규직화를 ‘무기계약’으로 바꿔 노동계는 ‘작은 진전 큰 실망’이라고 표현했다. 다만 상시고용 업무에 비정규직 사용이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간접고용을 비정규직 범위에 포함했다는 점에서 노동자들의 요구를 일부 수용했다고 볼 수 있다. 

       
     
    ▲ 지난 7월 20일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고 집회를 열고 있다.(사진 금속노조)
     

    정부도 스스로 밝혔듯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문제는 심각함을 넘어 폭발 직전까지 나아갔다. 회사의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비정규직을 대량으로 양산한 결과 그 규모는 850만명을 넘어 전체 노동자의 56%에 이르렀다. 정규직 노동자 임금의 60%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은 신용불량자를 양산했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구매력을 떨어뜨려 장기적인 경기침체의 중요한 원인이 됐다.

    지난 5월 한국을 방문한 스웨덴 금속노조 스테판뢰펜 위원장은 한국의 비정규직 규모에 대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고 뭔가 고용의 방식이 잘못되어 있는 것"이라며 "그렇게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을 느끼면서 어떻게 회사 일에 충실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바 있다.

    비정규직 규모가 20%를 넘지 않고, 정규직과의 임금차별도 전혀 없는 유럽의 노동자의 눈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한국에서는 ‘노동유연화’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어 온 것이다.

    차별과 억압에 맞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도 점점 확대되고 있다. 트럭과 버스를 만드는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5백여명은 지난 7월 11일부터 8월 8일까지 거의 한 달동안 파업을 벌여 트럭생산을 중단시켰다.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1천2백여명은 8일 주야 2시간 파업을 벌여 자동차라인을 세웠고, 10일에도 주야 4시간 파업을 벌인다. 하이닉스 청주공장에서, KM&I 군산공장에서, KTX 여승무원의 용산역 농성장에서, 포항의 포스코 건설현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울분과 절망과 분노가 8월 폭염을 뚫고 터져 나오고 있다.

    "제발 공장으로 돌아가게 해달라."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인정해달라." "인간답게 살고싶다." 이들의 요구는 20년 전 정규직 노동자들의 외쳤던 요구들이다. 그러나 정부와 사용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소박한 요구를 철저하게 짓밟아왔다.

    정부는 지난 7개월 동안 비정규직 노동자 147명을 구속해 일주일에 주말 빼고 매일 한 명씩 잡아들인  꼴이다. 사용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든 비정규직을 ‘계약해지’라는 이름으로 집단해고했고, 거액의 손해배상 가압류를 때렸다.

    정부는 "상시적인 업무에 비정규직 사용이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면서 국회에 계류중인 비정규직 관련 법안에 "비정규직 사용을 제한하자"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정규직으로 고용했어야 할 비정규직 1만명을 불법파견으로 고용한 현대자동차는 지금껏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고 있다. GM대우나 하이닉스같은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와 차별은 점점 더 확대되고 있다.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120m 크레인 고공농성, 하이닉스 비정규직의 15만볼트 송전탑 농성, 포항건설노동자들의 포스코 점거농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격렬한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이미 준비된 일이었고 예견된 투쟁이었다.

    포스코 건설노동자들처럼 ‘잡아 족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착취해 기업의 이윤을 추구하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것을 정부와 사용자들은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숨죽이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87년 ‘선배 노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거대하게 폭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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