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란 과연 무엇일까?
    '어긋나고 끝내 어긋나야 할 존재'
    [소설과 한국사회] 조셉 콘래드 「진보의 전초기지」
        2019년 10월 17일 09:39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최근 게재되는 시론이나 칼럼을 보면 진보진영이 분열했다, 첨예하다 등 이번 정국을 “고통스러운 리트머스”에 빗대는 등 다양한 우려가 쏟아졌다. 페친 및 각종 SNS 관계망을 삭제 차단 언팔로우하며 소위 주변인 정리에 들어갔다는 사람도 많았다. 언론의 무차별적 보도에 하루에도 수없이 널뛰는 감정을 통제하기 힘들어 보이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이미 입장을 정해버린 이들은 자기 구색에 맞는 글들을 열심히 퍼 나르며 전선을 구축하기도 했다. 평소 잘 몰랐던 사람들이 리플 공세를 펼치며 논쟁에 초대했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그 무상한 말이 들어맞기라도 하듯 연일 들끓는 논란 덕에 피로를 느끼거나, 몰랐던 상대의 진의를 파악했다던가, 새삼 자신이 놓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점검해보는 이들도 있었다.

    진보는 가는 방법이 다르지 결국 같은 곳을 향해 갈 것이라던 선배들의 말이 낭만적 수사로 느껴졌다, 한 치 앞도 예측하기 힘들고 쏟아지는 보도를 좇아가기도 벅차 사실과 의견을 분간하는 일조차 어려워진 현 시점에 왠지 그런 위로의 말들이 부질없게 느껴진다. 성급한 기우일까.

    소설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조셉 콘레드의 「진보의 전초기지」는 1890년 벨기에령 콩고에 상아 무역을 담당하는 출장소의 직원인 칼리어와 카츠의 이야기다. 그들은 교역소 관리자로 콩고강 상류 지역에서 부족들을 지휘해 상아를 모은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앞서 밀림에 ‘진보의 전초기지’를 세웠던 선임들을 존경해 왔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을 목격한 사람”들이 잠든 곳에 십자가를 세워주고 경건한 마음으로 임무를 수행하려고 한다. 그들은 “지구상 어두운 구석까지 찾아가 빛과 신앙과 교역을 전하고 다니는 사람들의 공로를 찬양”하는 기사를 읽으며 자신들에 대한 긍지를 느꼈다.

    그들에겐 현지인이자 통역자인 마꼴라라는 직원이 있었다. “입이 무겁고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마꼴라는 두 백인을 경멸했고 교역품 관리를 정확히 하는 시늉을 하며 두 백인을 관찰한다. 두 백인은 야만인들을 흉보며 “문명세계의 권리와 의무니 문명사회의 신선함”을 설파하고 문명의 우월성을 강조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다르게 생각하지 못했고 ‘진보의 전초기지’를 세운 선대를 오로지 숭상했다.

    두 남자는 고도로 조직된 문명화된 군중들을 통해서만 비로소 존재할 수 있는, 개인으로서는 철두철미하게 무능하고 하찮은 인물들이었다. 자신의 삶이나 성격적 본질 자체니, 능력이나 대담성 따위란 안정된 환경에 대한 믿음의 표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많지 않다. 용기와 침착성과 자신감이나 감정과 원칙, 위대하든 하찮든 모든 사상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의 것, 그 제도와 윤리의 불가항력이라든가 경찰과 여론의 힘을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집단의 것이다. (78쪽)

    작가는 그들을 대신해 독자에게 그들의 상태를 평해준다. “이제껏 사회가, 온정 때문이 아니라 사회 자체의 묘한 필요 때문에, 이 두 남자를 돌봐주고 독자적인 생각이나 자발성”을 금기시 했다. 그들은 그저 위대한 ‘진보의 전초기지’를 세운 문명화된 인간이며 “교역과 진보의 선구 주자”라고 서로를 치켜세웠다.

    그 와중에 마꼴라는 백인들이 고용한 부족민 인부들을 팔아넘기고 상아를 거래해 두 무능한 백인을 파산시킨다. 얼빠진 두 문명인이 무시해왔던 야만인 마꼴라는 백인들의 지배방식을 익혀 자신의 부족을 똑같이 착취하고 폭력을 사용해 교역품을 갈취한다. 두 백인은 마꼴라에게 속수무책 당하면서 “무언가가, 자신의 안전을 도모해주고 미개지가 가슴속으로 밀고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주던 무언가가, 자기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는 막연한 느낌”을 갖게 된다. 그들은 고립된 ‘진보의 전초기지’에서 점점 황폐해지고 서로 숨겨둔 설탕을 뺏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다가 동료를 총으로 쏴 죽인다. 커츠는 안개를 헤치며 도망친다. 저 멀리 자신을 구하러 온 본국의 증기선이 보인다.

    진보가 커츠를 강에서 불러댔다. 진보와 문명과 온갖 미덕이 그를 부르고 있었다. 기한을 채운 아이를 사회가 불러들이고 있었다. 어서 오라고, 보살핌과 가르침을 주고 심판과 판결을 내려주겠노라고. 사회는 그가 막 버리고 떠나온 그 쓰레기더미로 되돌아오라고, 그래서 정의가 행해질 수 있도록 하라고, 그를 불렀다. (105쪽)

    선장이 도착했을 때 이미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있는 커츠를 본다. 마꼴라는 무심하게 이 교역소의 선임들처럼 모두가 열병으로 죽었다고 말할 뿐이다.

    ‘진보의 전초기지’를 수호하며 상부구조의 관리인이 됐던 그들은 마꼴라를 양산했다. 이 작품은 콩고에서 서서히 미쳐가는 식민지 개척자의 정신 변화를 좇고 있는데 두 백인은 “억압이나 잔혹 행위, 범죄, 헌신, 자기희생, 덕망 등을 이야기하고, 분노와 열정을 입에 담기도 하지만, 낱말 이상의 실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고통이나 희생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진보에는 시간을 지속적으로 어긋나고야 마는 속성이 내재

    역사 속에 진보 정치인들은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자신들의 정치적 선택과 행동을 어떤 식으로든 정당화했다. 그 선택과 행동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줄 정치 담론을 구성하는 데 국가, 국민, 민족, 민주주의, 역사 등등 추상적인 용어에 절대적 규범성만 모호하게 부여한 채 선과 악을 나누기도 했다.

    콩고 교역소 백인 관리인들은 야만의 땅에 문명을 세운 진보인을 자처하며 진보의 우월성에 도취됐지만 결국 마꼴라를 통해 똑같이 되돌려 받았다. 위대한 ‘진보의 전초기지’는 백인의 지배의식과 서구우월주의에 폭력을 빼닮은 마꼴라를 탄생시켰다. 마꼴라는 백인들에게 위장적으로 저항하면서 자기를 처세를 위해 지배체제에 순응하며 그들의 방식을 체화한 또 한 명의 착취자인 셈이다.

    ‘커츠’와 ‘칼리어’는 고립된 밀림에서 늘 같은 생각을 해왔다. 그저 “동료가 만들어내는 특정한 소리를 존중”하기만 했다. 실상 19세기 말 유럽은 서구 부르주아뿐 아니라 진보적 사회주의자들도 식민지 건설에 찬성한 바 있었다.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내재된 서구 중심주의 그늘이 제국주의 정책을 추인하도록 했고 그 당시 식민지가 가져올 이익은 대중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경제 발전이란 담론에 대중은 열광했고 진보진영에선 유럽 프롤레타리아트가 해방 된다면 식민지 문제쯤이야 쉽게 해결될 거라는 막연한 추상성에 갇혀있던 것이다. 식민체제는 나아가 사회주의 발전에 피할 수 없는 현실로 여겨졌다. 그럼에도 로자, 레닌은 계속 어긋나며 날 선 논쟁을 이어갔다.

    이처럼 같은 진보진영일지라도 각자가 끼워 맞춘 현실인식의 틀 내에서 전혀 반대되는 지향이 혼용되곤 했다. 독일 사민당이 제국주의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실상 ‘문명화의 폭력’을 냉철하게 성찰하기가 어려웠음을 알 수 있다. 당시 그들은 팽창하는 제국주의의 흐름을 거스르기 어려웠고 근대성의 신화를 떨쳐버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때문에 계량과 수정은 본래 추구하던 것에 반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역사의 베일 앞에 예측은 무용했다. 커츠와 칼리어처럼 노예제도가 끔찍하다고 하면서도 노예 없이 어떤 일상도 부지할 수 없는 허울뿐인 진보의 전초기지만 남은 것이다.

    그렇다면 진보는 시류에 따라 ‘가는 방법’만 다를 뿐 정녕 ‘한 곳’에서 언젠간 만나게 되는 것일까. 어쩌면 어떻게 가느냐가 어디로 가느냐를 결정했던 게 아니었을까.

    주말마다 숫자로 압도적 공세를 펼치고 있는 서초동 촛불과 광화문 시위, 각계각층에 형성된 입장 차이. 쏟아지는 기사와 보도 속에 각자의 역사가 부딪혀 파열음을 냈다. 이 폭풍 속에 전혀 다른 상상력들이 심하게 쪼그라들고 폐기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염려를 지울 수 없었다.

    소위 입진보, 무능한 이상론자, 현실 정치를 모르는 자 등 진보를 폄훼하는 말들이 넘쳐나는 때다. 입진보를 비난하고 탁상공론에 빠진 실력 없는 패배자들로 낙인찍는 이 엄청난 공세에 유난히 침묵하고 상황을 관조하거나 혹은 적극적으로 대중의 생각과 자신의 철학을 일치시켜보려는 이들도 있었다. 혹은 이 국면을 운동 전체에 대한 보편적 고민으로 사유해보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까운 지인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검열한 지 꽤 된 것 같다고 했다. 이럴 때 소위 분위기 깨는 이의제기란 쉬운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어쩌면 진보의 한 축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욕먹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상 진보에는 시간을 지속적으로 어긋나고야 마는 속성이 내재돼 있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진보는 지금-여기가 아닌 아직 도래하지 않는 미래로 계속 의미를 지연시켜왔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며 비현실적이란 소리를 듣더라도 무던히 새로운 담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미래가 현실에 개입해 시간을 거스르고 새로운 현실을 모색하며 돌파해낼 때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 그들에게 ‘시대에 맞지 않는 것’ ‘시대착오적인 것’이란 비난은 불가피해 보인다. 시간에 자꾸 어긋나고 어긋날만한 담론을 외치는 것이 그들이 해 온 일이다. 단순히 현실을 이론에 맞게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사유에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새로운 상상력을 자꾸 추동해왔다.

    같은 정당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뜻을 함께한 집단이라 할지라도 잠재적 분쟁 상태로 존재하며 유대와 소외를 동시에 느끼는 일. 선택과 판단을 자주 유보하고 그 자신의 모순 속에 자발적으로 기거하는 일. 그리하여 자신만큼은 추상적 민주주의 포섭되지 않은 넌센스로 남아 의미의 완결을 지연시키는 일 말이다.

    나는 진보가 언제나 권력이 아니라 늘 새롭게 진화하는 지배권력에 새로운 대항값으로 남길 바란다. 시시각각 어긋나는 가치의 차이를 현실로 들춰내며 어긋나고 또 어긋날 것. 그리하여 끝내 지금-여기에서 불가해질 때야 비로소 아직 오지 않은 시간 앞에 성큼 다가선 어떤 이의 자취를 발견할 것이다.

    필자소개
    여미애
    추계예술대학교에서 소설 창작기법을 연구했으며 성균관대 박사과정에서 현대 문학평론을 공부하고 있다. 독서코칭 리더로 청소년들과 붉은 고전읽기를 15년간 진행해왔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