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기투쟁 비정규노조의 '힘겨운 여름나기'
    By tathata
        2006년 08월 08일 06:5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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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일 35도 이상을 오르내리는 가마솥 더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비정규직 장기투쟁 사업장의 조합원들은 ‘또 다른’ 힘겨운 여름을 나고 있다. 오랜 투쟁으로 지칠 대로 지친 조합원들에게 여름휴가 기간은 즐거움을 안겨주기 보다는 시름을 깊게 하는 날들이다.

    기륭전자분회의 ‘헛깨열매’를 아시나요?

    오는 24일로 농성 365일째를 맞는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지금도 회사 앞에서 천막 농성을 진행하고 있지만, 화살처럼 내리꽂히는 뙤약볕으로 농성장 안은 찜질방을 방불케 한다. 김소연 분회장은 “농성을 시작한지 1년이 다 돼가지만 교섭은 진전이 되지 않고 있는데, 무더위까지 겹쳐 여러모로 힘들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기륭전자분회의 조합원들에게는 휴가가 따로 없다. 40여명의 조합원이 조를 나눠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데, 자신이 담당조가 아닌 날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집에서 휴식을 취한다.

    최근에는 4명의 조합원이 ‘휴가 아닌 휴가’를 보냈다. 조합원들이 구미에 내려가 코오롱, 오리온전기지회, 한국합섬노조, KM&I 사업장을 방문해 연대를 다졌다. 오는 길에는 포항에 들러서 포항건설노조의 결의대회에 참가했다. 기륭전자분회 조합원에게는 투쟁 사업장이 오히려 힘을 주는 휴식처였다.

       
    ▲기륭전자분회는 오는 24일로 농성 365일을 맞는다. 힘겨운 투쟁을 계속하기 위해 웰빙식품 ‘헛깨열매’를 판매한다.
     

    정작 그들은 마시지 못한 ‘웰빙식품’

    기륭전자분회는 웰빙건강식품인 ‘헛깨열매’를 판매한다. ‘웰빙’하지 못한 조합원들은 투쟁기금을 모으기 위해 간기능 강화, 숙취해소, 피로회복 등에 좋은 ‘웰빙식품’을 팔고 있다.

    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가 투쟁을 승리로 이끈 이후 기륭전자분회에 투쟁기금 5백만원을 전달해주었지만, 앞으로도 계속 투쟁을 이어갈 든든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 ‘장사’를 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리고 헛깨열매를 들고 민주노동당 대의원대회나 사업장을 찾아다녔다. 김 분회장은 “몸에도 좋고, 비정규직 노동자도 도와주는 일석이조 헛깨열매”라며 광고했고 반응은 지금까지 좋은 편이다.

    그러나 정작 기륭분회조합원들은 헛깨열매를 먹지 못했다. 1박스에 3만5천원하는 가격이 부담이 됐기 때문이다. 김 분회장은 “생계비도 빠듯한데 구입할 형편이 되나요?”라며 웃었다.

    KTX승무원 ‘양말 보따리’ 장사하다

    투쟁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장사에 뛰어든 것은 기륭전자분회만은 아니다. KTX승무원들은 양말 장사에 나섰다. 재정사업을 담당하는 이도경 조합원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잘 어울리는 000삭스”라며 홍보했다. 그동안 KTX승무원들의 ‘뛰어난’ 사업수완으로 애초 계획했던 물품은 다 팔고, 추가주문을 할 정도다.

    이 조합원은 “양말을 팔기 위해 부평 지엠대우차노조, 평택 기아차노조 등을 돌았다”며 “많은 조합원들이 투쟁을 격려하며 양말을 사주고 있다”고 말했다.

    KTX승무원들에게도 휴가가 없기는 마찬가지. 매일같이 집회를 열고, 용산역 농성장을 지키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이 조합원은 “남들이 다가는 휴가를 우리도 신나게 가게 싶지만, 힘든 조건 속에서도 묵묵하게 투쟁하고 있는 언니와 후배들이 있기에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코오롱정투위, “우울증과 무기력이 몰려옵니다”

    500일이 넘는 ‘코오롱 정리해고 분쇄투쟁위원회’ 회원들에게 이번 여름은 잔인한 계절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방법을 동원하여 싸워왔지만 사측을 변화를 이끌어내는 성과는 아쉽게도 없었다. 44명의 조합원들이 똘똘 뭉쳐 전력을 다해 투쟁해왔지만, 그들의 외침은 메아리도 없이 사라져갔다.

    지금 코오롱 정투위 회원 5명은 과천 코오롱 본사와 구미 코오롱공장에 농성거점을 마련하고 힘겨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회원들은 집으로 돌아가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있다.

    그들 가운데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들도 상당수다. 우울증은 회원들에게서 가족으로 옮겨가기도 했다.

    황인수 코오롱 정투위 사무국장은 “조합원들은 지금 어느 때보다 힘겨운 여름을 나고 있다. 우울증과 무기력증이 몰려와 어쩔 수가 없다. 아빠가 우울증에 걸리다 보니 아이들까지 우울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금전적으로 너무 힘들어 마이너스 통장, 대출로 근근히 연명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바닥을 보이고 있다”고 토로했다.

    휴가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 황 국장은 “기름값이라도 있어야 움직일텐데 그럴만한 여유도 없다”며 힘겹게 말했다. 코오롱정투위는 최근 투쟁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팔았던 홍삼엑기스 사업도 접었다. 주문이 들어오면 제때제때 택배로 보내야 하는데 그럴만한 여유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작 그들은 홍삼엑기스를 먹어보지 못했다. 비싼 웰빙식품을 사 먹을 형편이 못됐기 때문에 샘플만 몇 개 마셨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오롱정투위는 9월 투쟁을 계획하고 있다. 뜨거운 8월 동안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9월에는 새로운 방법으로 투쟁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헛깨열매 주문문의 : 김소연 기륭전자분회장 017-317-3460, 양말 주문문의 : 이도경 KTX승무원 016-346-5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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