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리에 축구가 보수라면
미, NBA 프로 농구는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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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8월 08일 06:4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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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최장집 교수가 일상의 사례 속에서 정치학의 주제를 생각해보길 권하며 대학원생 제자들에게 이메일로 보낸 것이다.

이 글을 받아 본 사람들은 여러 사람이 같이 읽을 수 있도록 매체에 기고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레디앙>에 문의를 해왔다. <레디앙>은 최교수로부터 게재 승락을 받았으며, 최교수는 사적인 이야기 등 몇 군데를 고쳐 최종 원고를 보내 왔다.

본문을 보면 알겠지만, 이 글은 그간의 최교수 글과는 매우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최교수는 ‘대안적 사회경제 발전모델’을 주제로 대학원생들과 세미나를 시작하였는데 한 주간의 여름휴가 기간 중에, 정치학을 잘 배우려면 정치학을 생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이 글을 썼다고 한다. 분량이 다소 길지만 전문을 실었다.

최교수가 보내온 원고 제목은 ‘이탈리아의 세리에 축구와 미국 NBA 농구: 공정성과 결과의 불확실성’이었으며 기사 제목은 편집진이 뽑은 것이다. <편집자 주>

   
▲ 최장집 고려대 교수
 

독일 월드컵 경기가 끝난 지도 한 달 가까이 돼간다. 온 나라를 집단적 흥분으로 몰아넣었던 월드컵의 열풍도 사라졌다. 모두 알다시피 2006년 독일 월드컵은 결승에서 프랑스의 레 블뢰 군단을 격파한 이탈리아 아주리 군단의 승리로 끝났다.

정치학도 관점에서 본 세리에 축구클럽의 부패스캔들

외신을 보면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들에서 시민들이 승리를 자축하는 모습이 나온다. 로마의 거리가 흥분과 환호로 넘쳐나는 장면과 함께 그 유명한 ‘트레비’ 분수에 여러 젊은이들이 뛰어드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흥분한 것은 프랑스도 마찬가지였다. 결승까지 가리라고는 상상치도 않았던 프랑스 시민들도, 지단의 맹활약으로 결승전까지 가는 모습을 보게 됐으니 그럴 수밖에. 우승은 못했지만 결승전에 올라간 것만이라도 대견해서 이탈리아에 버금가는 수많은 시민들이 파리거리로 쏟아져 나와 자축했다. 역시 기대수준을 낮추는 것은 나중에 더 많은 만족을 가질 수 있는 심리적 메커니즘임에 분명하다.

여기서 나는 남들이 다하는 월드컵 축구경기에 대한 관전평 내지 감상문을 쓰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축구경기 중계를 즐겨보는 보통의 축구애호가 중 한 사람이긴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내가 말하려는 이야기는 한 사람의 정치학도의 관점에서, 월드컵경기와 맞물려 진행되었던 이탈리아 세리에 축구클럽들의 부패스캔들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좀 더 넓은 맥락에서 이해하기 위해 미국 NBA 농구 제도와 비교해보려 한다.

지난 5월부터 터져 나온 승부조작 사건은 월드컵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줄곧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이탈리아를 큰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이번 축구부패 스캔들은 이탈리아사회 전반에 만연해있는 부패의 일상화라고 할 수 있는 현상이기 때문에 스포츠에서 나타나든 정치에서 나타나든 그것은 이탈리아적 패턴 혹은 이탈리아 사회의 가장 특징적인 면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탈리아의 축구부패, ‘칼치오포리’

1990년대초 이탈리아정치를 뒤흔들었던 ‘탄젠토포리’(tangentopoli, 정치뇌물 스캔들)라는 말은 ‘마니풀리테’(mani pulite, 깨끗한 손이란 뜻의 부패척결 작업)와 함께 세계적으로도 유명해졌다.

최근에도 이탈리아 최대 식료품그룹인 ‘파르마라트’(Parmalat)의 부패와 같이 기업과 은행 간 검은 뒷거래로 관료가 체포되고, 이탈리아은행 총재 안토니오 파찌오가 사임하는 등 경제계를 뒤흔들었던 큰 부패사건이 일어난 바 있다.

월드컵이 진행되는 동안 탄젠토포리의 복사판과 같은 이탈리아 세리에 축구클럽의 부패를 말하는 ‘칼치오포리’(calciopoli)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앞의 것이 정치권의 부패라면, 뒤의 것은 축구계를 무대로 했다는 정도이다.

이탈리아에서 축구부패는 어지간히 일상화된 일인가보다. 노동법원, 가정법원 하듯이 축구문제를 다루는 별도의 축구법원이 있을 정도이니까. 월드컵에서의 우승은 우승이고 부패를 평결하는 재판은 재판이다. 재판의 대상은 네 개 세리에 명문팀들이 조직적으로 심판을 매수해 승부를 조작한 사건이다.

월드컵 우승 개선 다음날 열린 축구법정

   
▲ 세리에 A 로고
 

월드컵 결승전에서 개선한 다음날 로마에서 개최된 축구법정은 유벤투스, AC밀란, 라치오, 피오렌티나 등 부패스캔들에 연루된 클럽들에 대해 평결을 내렸다. 유벤투스와 AC밀란은 2부 리그로 강등 당했고, 죄질이 경미한 다른 클럽들에게는 벌점을 줬다.

그러나 이 1차 평결이 가혹하다고 상고해서 개최된 재심에서는 유벤투스만이 2부 리그로 강등되었고, 다른 팀들은 감점으로 감면됐다. 그 판결에 따라 04-05, 05-06 시즌 우승팀 유벤투스는 우승이 취소되고, 따라서 세리에 경기순위가 재조정되는 등 축구경기의 기록은 다시 쓰여 졌다.

유벤투스가 누구인가? 이번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대표팀은 사실상 유벤투스를 중심축으로 한 것이다. 대표팀 감독은 유벤투스의 감독 마르첼로 리피가 맡았다. 아주리의 주장 칸나바로, 최우수 골키퍼로 야신상을 받은 부폰을 비롯해 잠부로타 같은 정상급 선수들이 대표팀의 주축이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현재의 프랑스대표 비에이라, 트레제게, 그리고 전에 선수로 뛴 바 있는 지단 등 세계정상급 선수들이 뛰고 있고 거쳐 간 유벤투스는 한때 아탈리아의 자랑이었다. 이제 리피 감독도 떠나고, 칸나바로는 레알 마드리드로, 잠부로타는 바르셀로나, 비에이라는 인터밀란으로 이적이 결정되었고, 앞으로도 여러 선수들이 떠날 것 같다. 이제 유벤투스는 사실상 해체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가족적 인간관계의 이탈리아식 부패 구조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명문 스포츠클럽이 주식시장에 상장된 거대기업이라는 것은 두루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탈리아 축구팀은 그 모델의 하나다. 이탈리아에서는 성공적인 거대기업가문들이 축구클럽을 실제로 운영하지는 않지만 자주 이를 소유해왔다.

   
 ▲유벤투스 팀의 로고
 

피아트의 설립자이자 유벤투스의 최대주주인 지안니 아녤리(Gianni Agnelli)가 이 패턴을 만들었다. 유벤투스가 피아트본사가 위치한 토리노를 본거지로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전통을 뒤따라 파르마라트 식품가공산업 왕국의 탄치(Tanzi) 가문은 부패스캔들로 거대기업군이 붕괴된 최근까지 피오렌티나 구단을 소유했고, 이탈리아의 최고 부자이자 최근까지 수상을 지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AC밀란을, 호화패션그룹 토드(Tod)의 디에고 델라 발레(Diego Della Valle) 회장은 그의 동생과 함께 피오렌티나를 소유한 구단주이다.

이탈리아 거대기업들의 소유주, 가장 강력한 정치인은 모두 축구 구단을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델라 발레 회장은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와의 한 인터뷰에서(2006/7/6) “우리는 토드에서 돈벌이하고 피오렌티나에서 손해를 보지요. 축구는 우리가족의 취미생활인데, 우리가 워낙 축구를 좋아해서”라고 말했다.

스캔들이 터진 것은 5월이었다. 클럽관계자들과 세리에 운영요원들, 그 밖에 다른 세리에 관계자들은 심판들을 그들 계획대로 선정해서 승부를 조작한 장본인들이다. 유벤투스의 전직 요원이 사태의 중심인물로 떠올랐고 피오렌티나, AC밀란, 라치오 등 다른 클럽들도 그에 관련됐다.

부패 중개업자 연결고리가 드러나지 않는 이탈리아식 부패 체계

그러나 이 스캔들을 더욱 이탈리아답게 만든 것은 그것이 하나의 부패의 체계를 만든다는데 있다. 부패를 만드는 중개업자들의 부정행위가 위로는 어디까지 연결되고, 아래로는 어떻게 선수들에게 연결되었는지 하는 연결고리가 확실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밀라노 카톨릭 대학의 한 정치학/경제학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 스캔들에서도 기득집단들은 잘 보호된다. 명령은 두 층으로 이루어지는데, 높은 사람들은 이 두층에 의해 보호되는 동안 실제 임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실무요원들이다.”

피오렌티나 구단주 델라 발레는 그가 한 행위가 분명히 드러나진 않았지만 사태의 중심에 있는 것으로 언론에서 보도된다. 그는 9시간이나 되는 검찰조사를 받고 나오면서, “우리는 평온하다, 피오렌티나를 엮어 넣은 것은 잘못이고, 진짜 희생자는 우리”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대표팀 골키퍼 잔루이지 부폰
(사진=www.soccer-europe.com)
 
   

토드의 주가는 스캔들이 터지기 이전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고 기업신뢰도도 거의 영향 받지 않았지만, 클럽에 대한 재정손실은 심각했다. 아녤리 가문의 전체 자산에서 구단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적지만, 유벤투스 구단은 향후 2년 동안 2억5천만 달러의 손해가 예상되는 등 해체의 위기를 맞게 됐다. (Financial Times, 2006/7/6)

월드컵 결승전 전날 흥미로운 외신기사가 있었다. (Financial Times, 2006/7/8-9). 만약 누군가 당시 이탈리아 축구장에서 경기를 관람한다면 과연 이 나라 축구대표팀이 내일 벌어지는 결승전에서 우승한다고 예상이나 할 수 있겠냐는 내용이었다.

황량한 경기장에 관중은 절반밖에 없고, 그중 많은 사람들은 불꽃놀이를 하는가하면, 또 한편에서는 인종적 비방발언을 소리 높여 외쳐대기도 하는 것을 보면서, 경기가 과연 있는 건가 없는 건가를 의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나라가 월드컵 우승을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해서 깊이 병든 이탈리아 축구계를 치유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축구계의 문제는 이탈리아 사회를 바라보는 하나의 렌즈일 수 있다. 20년 전만해도 이탈리아 축구경기는 멋진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고 한다.

강렬한 태양이 빛나는 일요일 오후 멋지고 평화로운 스타디움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경기하는 세리에 리그는 유럽 최대의 관중을 불러 모았다. 1980년대 중반 게임당 평균 관중 수는 4만 명이었으나 지난 시즌 관중 수는 그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요인의 하나는 명문 클럽이 항상 승리하는 경기 결과의 확실성에 있다. 이제 신세대 젊은이들은 축구를 즐기기보다 레슬링을 보거나 바렌티노 로시와 같은 자동차경주 영웅을 숭배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관중수가 뚝 떨어지니 클럽들의 수입 역시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 축구전문가는 “페어플레이는 드물고, 경기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러나 이런 일이 현재의 선수, 매니저, 단장이 잘못해서 벌어지는 문제는 아니다. 모든 종류의 이탈리아 제도에 만연되어있는 세계관의 역사적, 문화적 산물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페어플레이는 드물고, 경기는 눈살 찌푸리게 하고

축구 스캔들에서도 이탈리아 사회의 특징인 가족적 관계의 중심성을 느끼게 된다. 이탈리아 정치와 사회의 구조는 실제의 가족이 아니더라도 가족적 인간관계를 특징으로 한다. 가족이란 혈연으로 맺어진 가장 강력한 인간관계의 한 유형이 아닌가. 그것은 일차집단적이고, 내밀하고, 정의(情誼)적인 인간관계의 특성들을 구현하고 상징한다.

   
▲ 유벤투스 출신의 마르첼로 리피 2006 독일 월드컵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사진=www.soccer-europe.com)
 

이탈리아 정치와 사회는 이러한 가족적 관계의 그물망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사적 관계는 물론이려니와, 경제시장, 국가기구와 같은 공적 영역이나 나아가 마피아 같은 범죄조직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이다.

국가기구의 이면적(裏面的) 파벌관계를 의미하는 소토고베르노(Sottogoverno)라는 말이 나타내듯, 공사(公私)간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이러한 비공식적 유사(類似) 가족관계는 정부기구가 실제로 작동하는 기반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가 부패의 은밀한 온상이 되기 쉬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구조에서 민주주의는 어떻게 가능한가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현대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적인 정치이론가들, 대표적으로 노르베르토 보비오(Norberto Bobbio)와 지오반니 사르토리(Giovanni Sartori)의 이론에 대해 눈여겨보게 된다.

보비오의 『민주주의의 미래(Il futuro della democrazia)』를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대목의 하나는, ‘보이지 않는 권력’을 어떻게 보이게 할 것인가, 즉 그가 권위주의라고 생각하는 사적 권력의 수중에 놓인 국가를 어떻게 공적으로 만들 수 있는가하는 것을 민주주의의 핵심 내용으로 강조한다는 점이었다.

정치학자의 두 가지 길

보비오와 사르토리는 공통적으로 홉스, 로크, 칸트로 이어지는 고전적 자유주의를, 그 어떤 이념이나 가치보다도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근간으로 설정하고 있다.

문제를 단순화해 말한다면, 한 사람의 정치학자는 자신이 처한 정치적 환경과 조건에서 자신의 정치이론을 발전시킬 때 두 가지 방향 중 어느 하나를 갖게 된다. 하나는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역사적, 문화적 전통에 순응해서 말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물론 그에 거역해서 말하는 것일 게다.

보비오와 사르토리는 분명 후자의 경우에 속하는 이론가들이다. 이들은 이탈리아 사회, 그리고 이탈리아의 정치적 실천에 반(反)하여 이론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일차집단적 관계의 특성, 불분명한 공사 경계, 비밀스런 권력구조와 부패, 유기체적 사회 및 국가관, 루소적 의미의 적극적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의 가치, 정의(情誼)적 공동체주의적 가치들에 反하여, 그들이 강조하는 것은 개인주의적 자연권에 입각한 고전적 자유주의, 이샤야 벌린이 말하는 ‘소극적 자유’의 가치, 사회구조와 정치적 가치에 있어서의 다원주의, 권력영역에서 사적, 비합리적 요소의 배제/부정, 투명함과 공공성의 가치, 유기체적 공동체주의가 아닌 개인적, 물리적 힘의 관계를 통해 정치현실을 이해하는 현실주의가 그것이다.

요컨대 이들의 정치관은 모두 자유주의적이고 현대적이며, 그들의 민주주의이론은 모두 조셉 슘페터나 로버트 달이 기초를 놓은 ‘최소 정의적’ 민주주의개념과 상응하는 것이다.

탁월함을 구현하는 공정성, 평등의 원리가 만들어내는 결과의 불확실성

얘기가 다소 다른 방향으로 나갔지만 이탈리아 세리에 축구클럽과 미국의 NBA농구의 비교를 통해 공익과 사익의 문제, 보수와 진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구기 종목은 두 개인데, 하나는 축구이고 다른 하나는 농구이다.

축구는 역시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의 축구를, 농구는 두말 할 것도 없이 미국농구를 좋아한다. 또한 이 두 종목은 스포츠로서의 역동성 말고도 내가 중시하는 두 가지 기준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는 공정성이고 다른 하나는 결과의 불확실성이다.

여기에서 내가 의미하는 공정성은 선수들의 기량이 결과로 반영되는 것을 말한다. 즉 실력이 제대로 평가되는 문제이다. 이점에서 나는 축구보다 농구를 더 좋아한다. 농구는 선수들의 실력이 시즌의 최종결과에 그대로 반영된다.

그러나 축구는 선수들의 실력이 결과에 그대로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지난 월드컵에서도 아르헨티나 같은 팀들이 빨리 탈락했으며, 월드컵의 역사는 실력이 제일 강하다 해도 우승하지 못하는 경우를 자주 보여준다.

그리고 규칙 자체가 실력을 정확히 평가하기에는 너무 엉성하다. 본 경기에서 무승부일 때 연장전에서 승부를 가리는 것은 좋으나 그렇지 못할 때 페널티킥으로 승부를 가리는 것은 실력보다는 승부 자체를 가리기 위한 방법 같아 별로 신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축구가 농구에 비해 별로 공정하지 않다고 본다. 이 점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실력이 약해도 이기는 묘미가 크다고 말하고 있어 나와 의견을 달리하기도 한다.

내가 축구보다 농구를 좋아하는 이유

두 번째 기준인 결과의 불확실성이 갖는 중요성에 대해서는 모두 동의할 것이다. 이번에 이탈리아 세리에 클럽들이 안고 있는 문제, 그리고 급기야 부패스캔들이 불러온 문제는 경기의 결과를 점점 더 예측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왔다는 데 있다.

   
 ▲ AC 밀란의 로고
 

세리에 경기가 유벤투스가 압도적으로 승리를 많이 하고, 뒤이어 AC밀란이 하고, 나머지 팀들은 들러리에 불과하다면, 결국 세리에 시즌은 이 두 팀을 위한 의식(儀式) 이상이 안 될 것이다. 이기는 팀만 이기고 경기결과가 예측가능하다면 관중들이 경기에서 떨어져나갈 것임은 분명하다.

위의 두 조건은 하나의 스포츠경기가 많은 사람들이 즐길만한 보편적인 스포츠가 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요건이 아닌가한다. 공정성은 실력이 반영되고 그럼으로써 스타플레이어가 나올 수 있게 하는 요건이다. 스타플레이어가 없는 스포츠는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흥분할 수 있는 것이 못된다. 그래서 공정성은 탁월함이 드러날 수 있고, 드러나게 하는 원리이다.

말하자면, 스포츠 팀의 수준을 높이는 원리이다. ‘공은 둥글다’는 말이 나타내듯 실력이 없이도 행운으로 경기가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다면, 사실 그 스포츠는 보편적인 것이 되기 어렵다.

그에 비해 결과의 불확실성 원리는 평등의 가치를 표현한다. 하나의 경기규칙을 수용하는 팀들의 실력에 차이가 있지 않고서는 탁월함의 묘미를 만끽하지 못하지만, 그것도 정도의 문제이지 경쟁하는 팀들의 실력이 엇비슷해서 예측하기 어려운 드라마를 연출하지 않고서는 승부의 흥미가 반감된다.

한국 프로축구 세리에 닮아가는 거 아닌지

이 공정성과 불확실성은 상호배타적이고 충돌하는 원리여서 양자간의 적절한 균형이 아니고서는 최적의 결합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최근 들어 한국 프로축구도 그 내부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점점 이탈리아 세리에를 닮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프로축구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말도 나오고, 10개 구단 가운데 세 팀, 수원삼성, 성남일화, FC서울에 5, 6명씩 국가대표선수들이 몰려있다.

   
 

그렇다면 미국 NBA는 실력이 소수의 팀 몇 개로 집중되어 승패가 편중되는 문제를 어떻게 다루나? 두 가지 제도가 인상적이다. 하나는 연봉 상한제(salary cap)이고, 다른 하나는 신인선수 선발제(draft)이다.

최고 연봉을 제한하는 제도는 돈 많은 부자구단이 다른 구단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높은 연봉으로 슈퍼스타들을 사들여 초강팀을 만드는 것을 어렵게 한다. 뿐만 아니라 구단들이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과다경쟁을 막음으로써 그렇지 않을 때보다 더 많은 이익을 보장해준다.

신인선수 선발제는 각 구단이 처음 NBA에 가입하는 신진선수들을 선발하는 제도인데, 코비 브라이언트같이 고교시절부터 슈퍼스타 자질을 갖는 선수들이나 대학농구에서 두각을 나타낸 선수들을 대상으로 선발 이전의 기록을 수치화하여 순위를 매기고, 또 NBA팀들의 그 해 성적을 기준으로 순위를 매겨 제일 성적이 낮은 팀이 높은 순위의 신인들을 우선적으로 선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 받는다. 한마디로 말해 약한 팀을 강하게 만들어 기존의 강한 팀과 실력의 격차를 줄이도록 하는 제도라 하겠다.

NBA의 인상적인 제도 두 가지

이 두 제도의 중요한 효과는 NBA 소속 상위팀과 하위 팀간 실력의 격차를 줄임으로써 경쟁을 더 치열하게 하고 경기결과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데 있다. NBA의 기록에서도 나타나지만, 강한 팀의 전통은 있고, 몇 개의 팀은 분명 두드러지게 잘하지만 몇 개 팀이 우승을 독점하지는 못한다.

내 생각으로는 NBA의 운영규칙은 매우 합리적이다. 그것은 구단들이 최대의 이익을 갖도록 하면서도 경기의 치열함과 결과의 불확실성이 최대한 실현되는 적절한 균형을 가능케 한다. 그에 비해 이탈리아 세리에는 합리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최상위 팀은 막대한 이득을 보고 하위 팀은 손해를 보는 이익의 커다란 불균형적 배분이 나타나고, 그로 인한 실력의 편중으로 경기의 결과에서도 불확실성이 점점 줄어드는 현상을 보이며, 급기야는 관중수의 격감으로 막대한 이익을 거둬들이던 구단조차도 적자를 보게 되는 결과를 만들기 때문이다.

규제 없는 자유시장체제와 규제된 시장체제

이탈리아 세리에의 제도는 일종의 규제 없는 자유시장체제에, 미국 NBA는 규제된 시장체제에 비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세리에에 소속된 강한 팀들은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을 최대한 동원해 자신의 전력을 증강시킴으로써 경기에서 승리하고 가장 많은 이득을 확보한다.

그러나 이 팀이 소속된 세리에 리그 전체가 서서히 쇠락하고 급기야는 이익을 보지 못할 뿐 아니라 유벤투스의 사례에서 보듯 팀 해체라는 위기에까지 봉착하게 된다. 단기적으로는 가장 많은 돈을 번다는 면에서 합리적이고 성공적이지만, 장기적으로 그것은 자기파멸적 행위라는 사실이 입증되고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행위는 비합리적이다. 그것은 약육강식이 허용되는 무정부적 시장체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미국 NBA는 그 조직의 회장이 있고, 그 회장은 유능한 경영자로서 좋은 경쟁의 규칙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 그는 금년의 우승팀인 마이애미 히트, 또 LA 레이커스나, 디트로이트 피스톤스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는가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것은 구단주들의 관심사일 뿐이다.

그의 관심사는 NBA 전체가 얼마나 장사가 잘되게 하는가이다. 그 속에서 각 구단은 그들 능력껏 이익을 가져간다. 또한 그의 관심사는 NBA의 장사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가이다. 물론 그의 경쟁상대가 없는 것은 아니다.

NBA와 규제된 시장, 세리에와 무정부적 시장

미식축구연합, 미국야구연합, 미국아이스하키연합 등이 그 상대들이다. 보다 큰 경쟁은 NBA가 전체 미국의 구기 종목의 관중들 가운데서 얼마나 많은 비중을 확보 하는가에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이탈리아의 무정부적 시장이 도달하는 마지막 국면을 통해, 경기 외적인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더 많은 승리와 더 많은 이익을 얻으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세리에가 사적 네트워크에 의한 부패의 체계로 전락하고, 결국은 더 이상 시장이 아닌 것으로 변질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미국 NBA의 경우, 각 구단의 이해관계를 넘어 중앙에서 경쟁의 규칙을 만들고 이를 작동시키는 규제된 시장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경쟁시장이 될 수 있음을 본다.

이탈리아 세리에의 축구와 미국 NBA농구의 사례를 국가/국민경제에 비유해 보는 것도 가능하다. 하나의 국가가 극단적인 자유경쟁시장의 가치와 체제를 택할 때 그 결과는 사뭇 이탈리아 세리에의 경우를 닮을 가능성이 높다.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 소수의 사회계층, 소수의 대기업군으로 부가 편중적으로 배분되고, 다수 사람들이 저소득과 구매력의 약화로 고통 받게 될 때 그 나라 시장경제가 효율적으로 작동하기는 어렵다.

부의 축적이란 언제나 가장 쉬운 방법을 찾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무제한적 경쟁에서 부를 축적한 기업들은 시장의 경쟁과 법의 지배에 복종하는 어려운 방법을 통해서보다는 국가권력과의 결탁과 은밀하고 특수한 네트워크를 통한 정경유착의 고리들을 발전시키는 쉬운 방법을 찾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장기적으로 이러한 행위는 결국 한 사회의 경제 전체를 약화시킴으로써 스스로 경제활동의 기반 자체를 약화시키는 상황을 만들게 된다.

민주주의 틀 안에서의 보수와 진보

적절한 경쟁의 규칙과 규제 없이 기업들을 무제한의 이윤추구자로 만드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일견 합리적인 듯 보이지만, 크게 보면 매우 우매한 일이다. 국가/정부의 역할 없이 기업과 시장 스스로 공정하고 합리적인 경쟁체제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가/정부의 정치적 리더십의 역할은 미국 NBA 제도와 그 회장의 경영능력 같은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요컨대 그것은 시장에서 이익추구를 위해 경쟁하는 개별 행위자들과는 다른 수준에서 제 역할을 함으로써, 공정경쟁이 가능하고 부가 편중되지 않도록 하며 많은 사람들이 시장 경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공정한 경쟁의 규칙과 규제 정책들을 통해 효율적인 시장을 창출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와 좋은 정치적 리더십의 역할은 결국 시장경쟁의 참여자들 전체의 이익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당장 시장경쟁에서의 강자, 사회적 권력자들의 단기적 이해와 갈등하거나, 또는 이들이 갖는 어떤 이데올로기적 편견과 인지적 불일치를 이룰 때 강한 반대에 봉착할 수 있다.

당연히 정치적 리더십과 정치의 기술은 이들 단기적 이해관계에 선 사회집단들이 사회 전체의 이익, 그리고 장기적 이해관계를 위한 경기규칙에 따를 수 있도록 설득하고 규제하는 능력을 포함한다.

요컨대 오늘의 시점에서 보수와 진보는 무엇인가? 그리고 특히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보수와 진보는 무엇을 의미하나? 문제를 아주 단순화해 말하면 보수란 이탈리아 세리에의 운영체제처럼 무정부적 시장체제를 선호하는 경향을, 진보는 미국 NBA농구처럼 규제를 통해 공정한 경쟁의 조건을 만드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을 의미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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