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원순 변호사의 희망'은 희망이 아니다
        2006년 08월 08일 10:4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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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말부터 박원순 변호사가 중앙일보에 연재하고 있는 ‘박원순 변호사의 내 고장 희망찾기’는 연구자나 관료의 서류 안에서 잠자던 ‘지방 발전 모델’을 대중적인 관심의 영역으로 옮겨 놓은 의미 있는 시도다.

    물론 과거에도 선거 때마다 그런 문제를 두고 논쟁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언제나 주민의 결정은 발전 모델에 대한 것이 아니라, 지역주의나 정당에 대한 선택이었다는 점에서 ‘박원순 변호사의 내 고장 희망찾기’는 추후의 본격적인 발전 모델 모색을 위한 토대 쌓기라 할 수 있다.

    박 변호사의 연재에 흐르는 문제의식, 즉 중앙이 아닌 지방·주민 참여·생태농업 등은 낙후한 지방 나아가 한국 사회 전체가 안고 있는 모순점들을 극복해나가는 한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6회의 연재 동안 제시된 모범 사례가 과연 바람직하거나 타당한 지역 살리기 모델로 기능할 수 있을지는 매우 의문스럽다.

    ‘연재’에 나오는 내용의 상당 부분은 정부에 의해 이미 시행되고 있거나 시행 예정인 것이다. 예컨대, 박 변호사가 직접 제안하는 ‘농지은행’은 이미 시행 중인 것이고, ‘교사 자격, 교육법 개정’은 신자유주의 교육 기조 아래에서 정부가 도입 추진 중인 ‘개방형 교사 자격제’이다. 이미 시행되고 있다거나 정부안이라 하여 모범적이지 않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지만, 정부 정책을 그대로 소개하려면 ‘지방 실패’라는 기본 전제부터 버려야 한다.

    ‘연재’에서 자주 소개되는 ‘지방의 희망’은 몇몇 농업 사례다. 그런데 그런 모델의 일반화는 대단히 위험스럽다.

       
    ▲ 7월21일자 중앙일보 12면에 실린 박원순 변호사의 ‘내고장 희망찾기’
     

    “농산물만 갖고는 안 된다는 신념, 변화만이 살 길, 황토 관광 특구(4회, 한마음 공동체).” 이런 것이 바로 정부가 추진 중인 농업 포기 정책이고, 농촌 산업기반 다변화 정책은 농공단지나 농촌관광사업의 수많은 실패 사례만을 늘리고 있을 뿐이다. “BMW를 타는 농민, 매일 생산 매일 공급 시스템, 생산 매뉴얼, 생산성을 높였다(1회, 학사 농장).” 생산성 높여 고급 외제차 타면 좋겠지만, 현재의 농지 규모와 현재의 농업 노동력 구조에서는 전혀 불가능한 얘기고, 결국은 정부 계획처럼 농업구조조정을 통해 기업농 정책으로 가자는 얘기가 아닌가.

    “’처음에는 농촌의 어려운 현실을 보고 그것이 구조적인 문제라고 판단해 농민운동에 나섰습니다.’ 그러다 90년대 후반 들어 그는 유기농 생산공동체 운동으로 종목을 바꾼다(4회).”

    그러나, 농촌 문제는 여전히 ‘구조적인 문제’다. ‘연재’가 소개하는 것과 같은 틈새 시장에서의 특성화나 번뜩이는 아이디어, 과감한 투자는 농촌판, 운동권판 ‘성공시대’일 수는 있지만, 농촌 농업 문제 해결의 대안은 전혀 아니고, 압도적 다수의 농촌과 농민에게는 너무도 멀고 먼 허상일 뿐이다.

    여섯 번의 연재 중, 두 번의 생태환경 문제를 제외한 네 번이 농촌에 할애되었다. 농촌 문제 역시 지방 문제의 일부분인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지방 낙후의 대부분은 중소공업도시나 복합산업도시의 문제다. 그런데, ‘연재’는 공업 문제에 눈감고 있다.

    공업 문제를 뒤로 미루어 둔 것이 아니다. “40대 이후 젊은 명퇴자 … 이들이 농촌으로 되돌아가면 지역 경제가 살아나고 활성화하지 않을까(박원순).” “이 나라 전체가 아름다운 농촌공동체로 바뀌도록…하고 싶다(주형로).” ‘연재’는 바람직한 지방 모델을 농촌공동체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농촌에는 40대 명퇴자를 수용할 노동시장이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대부분의 명퇴자들이 가야 할 곳은 농촌이 아니라, 안정된 도시 노동시장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사회정책이다.

    ‘귀농’이 삶의 여러 방식으로 존중되고 권장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지방이 직면해 있는 난관을 타개하는 현실적 방책이나 지방 발전 모델로서는 타당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희망제작소’가 지방에서 희망을 찾으려면, 각성된 소수 집단의 선도적 실험이 아니라, 대다수의 지방 주거민을 소외시키고 있는 산업구조 정책과 노동시장 정책, 즉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 문제에 정면 대결하여야 한다.

    이 글은 시민의 신문(ngotimes.net)에도 함께 실립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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