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끝에 선 엄마를 기록하다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마지막 모습은?
[책소개] 『작별 일기』(최현숙(지은이)/ 후마니타스)
    2019년 10월 05일 05:0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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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 독거노인들을 돌보던 요양보호사이자 『할매의 탄생』, 『할배의 탄생』을 통해 가난한 노인들의 목소리를 기록해 온 저자가 삶의 끝자락에 다다른 여든여섯 치매 노모 곁에서 매일매일 써내려간 천 일간의 일기를 모았다. 저자는 돌봄노동자이자 페미니스트의 시선으로 한국 사회에서 한 여성이 늙고 병들어 죽음으로 들어가는 기나긴 과정을 똑바로 바라보고 낱낱이 기록하면서, 그녀를 둘러싼 가족과 실버산업, 그리고 인간의 존엄까지도 냉정하게 되묻고 쪼개봄으로써 이 독특한 애도 일기를 완성해 냈다.

한 여성이 자신과는 상반된 삶을 살았던 엄마를 이해하고, 오랜 시간 불화했던 아버지와 서서히 거리를 좁혀 가며 상처를 치유해 가는 모습은 한 편의 성장소설을 읽는 것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자신이 돌보던 가난한 노인들의 이야기, 엄마가 몸담은 실버타운 노인들의 삶, 그리고 가부장적 자본주의하에서 늙어죽어가는 과정뿐만 아니라 자신의 내밀한 상처와 치부를 노련한 필치로 담담히 써내려간 최현숙은 이 책을 통해 구술기록자가 아닌 작가로서 첫걸음을 내딛는다.

# 현대 사회에서 ‘늙어 죽어감’을 공평치 않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노인 하나가 어디에서 어떻게 죽어 가는가는 지극히 사적이면서 또한 정치적인 문제이다. 그 정치 안에는 계급과 젠더, 가족주의 등의 이데올로기들과, 사회복지, 과학 및 산업, 생명 윤리(그 과잉으로서의 생명 연장), 고령화, 효, 신앙 등 많은 사회문화적 요소들이 뒤엉켜 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는 이런 항목들을 괴물처럼 빨아들여 사회 구성원 모두를 가해와 피해로 뒤엉키게 한다. (370쪽)

그들은 누추하게 늙어 가고 있었다. 마포구 대흥동 4층 쪽방 건물의 좁고 가파른 계단, 곰팡이가 번지고 있는 벽면, … 옥탑방 할아버지와 그의 작고 굽은 몸, 누런 눈, 지린내와 똥내가 가시지 않는 방, 그리고 그가 견뎌 낸 지독한 여름과 겨울들. 그에 반해 실버타운 노인들은 예외적 존재였다. (13쪽)

200만 원도 넘는다는 옥침대 위에, 걸레로도 못 쓸 내복을 입고 좋다고 웃고 있는 할망구라니. 둘이 맞장구를 치며 웃다 말고 내 웃음이 또 미웠다. 이런 옷을 입지 않을 수 없는 가난한 할머니들이 떠올라서다. 빈곤은 구멍 난 내복이 아니라, 구멍 난 내복이 쪽팔리는 거다.(47쪽)

모든 것을 돈과 효율의 타산에 넘긴 세상에서, ‘생명’이나 ‘효’ 등 지극히 사적이고 ‘천부적’이라고까지 여겨지는 영역에 대해서는 그토록 신봉하는 효율성의 기준조차 폐기한 채 돈을 지불하겠다는 부자 노인들과 자식들이 있고, 그들의 품위와 교양스러움과 연명을 위해 가난한 사람들의 친절 노동을 끌어와 돈을 챙기는 실버산업과 의료 산업이 있다. 그 건너편 ‘다른 세상’에는 돈이 없어 고생하다 죽음으로 떠밀리거나 죽음을 집어 드는 노인과 중장년, 청년과 청소년, 동반 자살 당하는 어린애들이 있다. …. 가난한 노인들의 복지 현장에서 9년간 밥을 벌며 관찰해 온 내게, 그 거리는 너무 까마득해 아예 다른 세상처럼 여겨진다. (288쪽)

애도일기(세간의 규정으로는 간병일기)로서 이 책이 가진 독특한 점은, 자신의 엄마와 자기 가족, 그리고 엄마를 포함한 ‘부자 노인들’에 대한 저자의 거리두기에 있다. 저자는 실버타운의 부자 노인들을 볼 때마다 자신이 돌보던 가난한 노인들의 삶을 떠올리며 고통스러운 질문들을 던진다.

아낌없이 쓸 줄 아는 소비자로서 쓸모를 갖춘 실버타운의 노인들의 삶과 고령화 사회에서 존재 자체가 문제시되는 가난한 노인들의 처지는 여러모로 다르다. 누추하고 신속한 가난한 이들의 늙어감, 자식들로부터 고립된 쪽방촌 노인들의 외로움, 부모 돌봄에 대한 과중한 부담으로 죄책감을 느끼고 형제들 간에 불화하는 보통의 가족들에 비해, 실버타운의 노인들은 상대적으로 느리고 우아하게 늙어가며, 자식들로부터 버림받을 가능성도 적고, 가족은 ‘돈 덕’으로 가족애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이러한 불평등한 늙어 죽어감 속에서, ‘기껏 움켜쥐었던’ 그들의 돈이 초고령 노후의 삶을 연장하는 비용으로 지불되는 것이 과연 그들이 말하는 효율의 기준에 맞는 것인지, 또 수많은 안타까운 죽음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그것이 과연 공정한 일인지 되묻는다.

“그러고 보니 나는 다른 노인들의 똥기저귀를 갈았고, 그녀들은 내 엄마의 똥기저귀를 갈고 있구나!” (372쪽)

한편으로 저자의 시선은 이런 부자 노인들의 별세계를 돌아가게 하는 간병노동자들에게로 향한다. 9년간 가난한 노인들의 똥기저귀를 갈며 “똥걸레나 빠는 여자” 취급을 당하며 살았던 저자는 자신의 이 일기를 간병일기나 시병일기로 부를 수 없음을 강조한다. 실제 자신의 엄마의 똥을 치우고 간병한 것은 바로 자신의 가족이 고용한 간병인과 타운에 고용된 간호사들이기 때문.

저자는 고작 시급 8천원에 자기 가족들을 돌봄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엄마 방에서 나던 냄새로부터 해방시켜 준 간병 노동자들이 실은 밥 먹을 장소도 시간도 없어 지하철 화장실에서, 길거리에서 주전부리로 허기를 채우고, 노인들을 들고 옮기고 목욕시키느라 자신들의 몸도 무너져 가지만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며, 도둑 누명을 쓰거나 성격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문자 한 통에 당일 해고되기도 하고, 연차와 숙련도에 상관없이 늘 최저임금밖에 받지 못하는 현실 속에 있음을 고발한다.

#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마지막 모습은 과연 존엄한가

나이가 든다는 것은 가정이나 사회에서 자신의 능력과 역할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느끼고 수긍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 죽음 곁에 다다른 노인이라면 빈부를 떠나 같은 심정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디까지 살아야 하는가?’는 개인적이자 사회적인 질문이다. ….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작정한다는 것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더 진지해지는 것을 말한다. (88쪽)

“죽고 싶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냐? 약이라도 먹고 죽어야겠다. 약 좀 구해 와.”

“그럼 나랑 같이 죽자. 나는 엄마가 있어서 죽을 생각을 안 하는데, 엄마가 죽을 거면 우리 같이 죽으면 되지 뭐.”

“니가 왜 죽냐? 아직도 팔팔한데. 나는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하고 여기 갇혀만 있으니 죽겠다는 거지. 나는 아무것도 못해. 그래서 죽고 싶어.” (258쪽)

한편으로 이 책은 부자든 가난하든 오래 살아 죽음에 이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지난한 과정(“느리게 죽음으로 흘러들어가는” 과정)을 섬뜩하리만치 세세히 묘사한다. 특히 가난한 노인들과 일상을 함께해 온 저자는 실버타운에서 다섯 남매의 돌봄을 받으며 죽어가는 엄마 역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서 자식으로서 느끼는 슬픔보다는 실버타운이라는 시설에서 갇혀 사는 생활과 그 속에서 느끼는 엄마의 감정을 세세히 쪼개 본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엄마는 “갇혀 있다, 다시 관짝으로 들어왔다, 예비 납골당이야” 같은 감정을 토로하는데, (거동이 불편한 마지막 단계의 노인들이 머무는) 케어홈으로 자리를 옮기고 휠체어에 갇히면서 이는 더 심해진다.

저자는 이런 엄마를 바라보며 “집도 동네도 사회도 아닌” 시설에서의 생활은 설사 그 시설이 아무리 고급시설이라 할지라도 “안 좋은 것”임을 확인한다. 현대사회는 노인이든 중증 장애인이든 지속적인 돌봄이 필요한 구성원을 가족 안에서 돌보는 것이 불가능한 사회이고, 그 돌봄 부담이 가족에게만 지워지는 것도 맞지 않지만, 시설이 답일 수는 없으며 실버타운 역시 여기서 예외는 아니라고 말한다.

# 엄마의 죽음을 겪어 냄으로써 맞이한 한 인간의 성장기

노부모가 함께 늙어 가는 모습을 곁에서 보고 느끼고 추론하고 해석하며 기록한 4년여의 시간은, 큰딸인 나의 그들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내 자신을 뒤집는 경험이었다. 특히 일흔 중반까지 갈등이 심했던 부부가 어느 시점 이후 눈에 띄게 친밀한 관계로 바뀌는 과정을 보면서 나는 그 갈등 때문에 내가 어릴 적 겪었던 상처를 위로할 수 있었고, 관계에 관한 인식도 확장할 수 있었다. (370쪽)

쉰 중반 넘어서까지 내 젊은 시절의 도벽에 대해 누구와도 얘기해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의 5만 원은 나를 늘 그 생각으로 돌아가게 하고, 마치 ‘그때 네게 그럴 수밖에 없어서 미안하다’라는 의미로 다가와 내 안의 트라우마를 감싸 준다. 그 5만 원에는 그 시절 딸에게 주고 싶었던 그의 마음과 주지 못했던 자격지심, 열등감, 분노, 그리고 미안함과 화해의 제안까지 담겨 있다고 나는 해석한다. (105쪽)

그는 나를 돌보고 싶어 했는데, 나는 그 돌봄이 싫었다. 내가 그걸 깨달은 건 오십 중반이 넘어서다. …… 미워하는 동안은 떠오르지 않았던, 꾹꾹 눌러둔 기억들이다. 그와 나는 서로 그런 곁이 되지 못하고 늘 엇갈렸다. ….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엄마와 구술생애사 작업을 하던 어느 귀퉁이에서, 마흔 중반 그 서생의 등짝이 쑤욱 올라왔다. 내 나이 오십 줄에 들었을 때다. 아버지와 자식 간의 시간 차. 애비가 젊고 자식이 어릴 때 자식은 애비를 죽였고, 애비가 늙고 자식이 따라 늙으면서야 죽인 애비를 내 안에서 다시, 아니 새롭게 살려 내는 중이다. (106쪽)

엄마는 나더러 자신의 침대 한쪽에 앉으라고는 하지만, 침대 위 이불에는 내 몸이 닿지 않도록 신경 쓴다. 오줌 냄새가 밴다는 거다. 내게 이부자리를 내줄 때마다 당신이 쓰던 게 아니라고 여러 번 강조한다. 침대에서 엄마랑 안고 누워 있자고 하면, “냄새나”라고 말한다. “괜찮아” 하며 일부러 엄마를 더 끌어안으면서 나는 혼자 울컥한다. “냄새나”라는 말은 어린 시절 내가 많이 듣던 말이다. 나는 엄마를 뒤에서 안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내 나이 스물넷, 배가 만삭이었을 때, 엄마가 내 단칸방에 와서 나란히 누웠던 게 생각났다. 가출과 결혼과 임신 과정에서 처음으로 내가 사는 독산동 벌집 단칸방에 엄마가 온 날이었다. 엄마는 내 결혼과 임신에 대해 걱정이 잔뜩 담긴 잔소리를 했고, 나는 등을 보인 채 소리 죽여 울었다. 엄마도 그때 울었을까. 작년에 여동생이 해준 말로는, 그 시절이 엄마에게는 경제적으로 가장 힘든 때였고, 자신은 대학 입시 원서 비용도 타내기 어려웠단다. (115쪽)

일기에는 한 여자의 열정과 절망과 갈증과 절박이 가득했다. 나는 느리게 읽어 내려갔다. 상반된 선택을 한 두 여자의 내면은 고스란히 닮아 있다. 그 나이쯤의 나 같기도 했다. 갈등과 불만과 미움으로 속이 바글바글하면서도, 온갖 돈벌이와 살림을 해대면서도, 일기를 썼구나. 그래야 살 수 있었구나. 구로공단 근처 벌집 단칸방에서 새벽이면 부엌 부뚜막에 둥그런 양은 밥상을 펴고 쪼그려 앉아 무엇이든 끄적거려야 했던, 그러지 않고는 나를 놓쳐 버릴 것 같았던 내 시절이 떠올랐다. (119쪽)

딸의 액취증을 모르쇠한 엄마, 초등학교 2학년부터 일숫돈을 걷게 하면서도 학용품 살 돈이나 용돈을 주지 않아 나를 도벽의 수렁에 빠지게 한 엄마, 자기도 남편을 미워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엔 그의 뒤에 숨어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던, 아버지의 여자. 그 시절 내게 집은 아버지의 집이었고, 엄마는 아버지의 여자였고, 남매들은 아버지의 자식들이었다. 그래서 내 독한 혼돈과 방황과 상처에 대해 가족 중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 ‘현숙아, 너 지금 뭐하는 거니?’ 거울 속 나를 바라봤다. 눈물을 머금고 웃고 있는 내 얼굴을 보면서 혼자 낄낄거리다 세수나 하고 나왔다. …… 나를 낳은 그녀도 외롭게 자기 길을 가고 있는 것이고, 그녀 뱃속에서 나온 나도 외롭게 내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내 안의 어린아이가 불쑥 올라와, 말귀도 못 알아듣는 늙어 빠진 엄마를 붙잡고 혼자 울고 있었다. (204쪽)

저자는 노부모의 늙어 감을 기록한 4년여의 시간이 “그들에 대한 이해”의 시간이자 “자기 자신을 뒤집는 경험”이었다고 고백한다. 이 책은 일기라는 장르답게 액취증과 도벽, 가출 등에 대한 내밀하고 솔직한 이야기들을 그 어떤 것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한편, 한 인간이 부모의 늙어감을 경험하며 동시에 자신도 늙어가는, 즉 성장해 가는 과정을 잘 보여 준다.

과거에는 다르다고만 생각했던 엄마의 삶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 엄마의 늙어감을 24년 늦게 뒤쫓아가며 그녀가 먼저 겪은 통증과 노쇠를 고스란히 따라 겪은 딸은 86년 엄마의 삶을 이해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의 모습과 화해하는 데 성공한다. 또 지독한 불화로 서로 마주할 순간조차 없었던 아버지와 조금씩 거리를 좁혀 나가며 자신을 조금씩 확장해 가는 과정은 가부장의 폭력으로부터 입은 내상을 치유해 가는 과정이기도 한데, 노화에 따른 아버지의 변화와 넉넉한 시선이 된 딸이 먼저 손을 내밀고 다가가는 모습들이 따듯한 힘과 용기를 준다.

# 혼자 힘들게 부모를 보내고 있는 자식들에게

엄마의 증상에 속상해 하거나 잔소리하거나 잘하도록 독려하는 것보다, 남은 기능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을 매개로 엄마와 소통하며 즐겁게 지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임을 남매들과 다시 확인했다. 인지 능력이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어려운 질문을 자꾸 하거나 문제 행동을 지적하면, 노인은 스트레스가 많아지면서 돌발적으로 공격성을 드러내거나 우울감이 깊어진다. (155쪽)

모든 부담을 분배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무슨 문제든 함께 논의하고 서로 보고하고 실천한다는 원칙과 경제적 부담은 경제력의 순서대로 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 우리 남매들의 중요한 장점이라면, 돈에 관해서는 일단 서로 돕는다는 점이다. 특히 가장 가난한 나로서는 이런저런 경제적 도움을 주로 받는 편이다. 또 돈에 관해서는 명확히 하자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공통된 견해이기 때문에 부모님 돌봄 비용에 대해서는 특히 함께 원칙을 정하고 지불 내역을 꼼꼼히 정리해 공유하고 있다. 만에 하나 돈 문제로 남매간 의가 상하는 것을 예방하자는 큰아들의 철저함에 모두 동의해서다. 물론 나는 공동 경비도 거의 내지 않거나, 때에 따라 전체의 1퍼센트를 지불하는 정도다. ‘돈 많은 사람 우선’이다 보니 나는 납부에서 예외적 존재다. 월 생활비 등 정기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돈은 총무인 막내가 통장을 만들어 관리하고 있고, 병원비나 3만 원 이상의 물품비 등 비정기적 지출은 별도의 공금 통장을 만들어 셋째가 관리하며, 둘 다 정기적으로 결산 보고를 하고 있다. (141쪽)

혼자 혹은 너무 힘들게 부모를 보내고 있는 자식들을 생각하면 이 책의 출간이 많이 조심스럽다. 돈이 없고 남매간 우애가 없어 많이 지쳐 있을 당신에게, 외람되지만 괜찮다고,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자고 말하고 싶다. “괜찮아요.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당신은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예요.” (373쪽)

이 책은 혼자만의 일기가 아니다. ‘이상하리만치 정확한 것을 좋아하는’ 다섯 남매는 주1회 방문을 정례화하면서 각자가 그날 한 돌봄 활동과 부모의 몸과 마음 상태를 기록해 대화방에 공유하기로 하는데, 이 책은 이런 방문보고서와 대화방의 대화 기록들을 중요한 한 축으로 한다. 어느 한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형태로 돌봄노동을 부담하지 않고, 각자의 능력만큼 부담을 배분하며, 세세한 규칙들을 제정해 돌봄내용을 공유해 가며 어려운 고비들을 돌파해 가는 다섯 남매의 이야기를 저자는 “가족애”와 “돈”이 있어 가능했던 작별 준비였지만 늙어 가는 부모를 남매들이 함께 돌보는 과정이 큰 위로가 되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저자는 가족애도 돈도 없는 수많은 딸아들들을 위해 가족(특히 여성)에게만 노인 돌봄이 떠맡겨지지 않는 사회”, “늙음과 죽음이 돈으로만 거래되지 않는 사회”, “돌봄 노동이 가장 싼 노동으로 취급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도 잊지 않는다. 이런 작별 과정에 대한 세세한 묘사와 치매 노인을 돌보는 방법들에 대한 저자의 식견은 부모와 작별을 준비하는 모든 이들에게 좋은 표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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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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